시리아 내전, 계급관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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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함락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국내의 관심이 높아졌다. 6년간 이어진 전쟁은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겼다. 시리아 인권관측소(SOHR)의 집계에 따르면 2016년 12월 말까지 무려 31만 여명이 내전으로 사망하였으며 9만 여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또한 전체 2300만 명의 인구 중 600만 명이 피난민 신세가 되었고 480만 명의 난민이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알레포 함락 이후 한 행사에서 피살됨에 따라 보다 큰 전면전이 우려되기도 하였으나 12월 30일,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시리아 정부군과 ISIS(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를 제외한 반군 사이의 전면적 휴전이 체결된 이후 현재까지 살얼음판 같은 긴장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상이한 관점

현재 국내에 소개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 제국주의에 맞선 아사드 정권과 러시아 개입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관점이다. 이에 따르면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는 자발적인 봉기가 아닌 미국 또는 서방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야기된 것이 된다. 다른 하나는 아사드 정권과 이슬람 극단주의 또는 ISIS에 대항한 민중혁명을 지지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예를 들어 무장한 좌파 세력이나 쿠르드족 독립세력인 YPG(인민수비대), 반(反) 아사드 반 ISIS 세력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두 대척점 사이에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존재한다. 일부는 서방 세력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아사드 정권의 학살을 저지할 것을 요구하는가 하면 반군이나 인도주의적 국제군의 개입을 주장하는 쪽도 있다. 당연하지만 정부군과 반군 모두를 동등하게 비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설혹 진영논리에 입각해 아사드 정권이 미 제국주의에 반대한다 하여도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노동자 권력을 요구하는 민중운동을 탄압하던 2000년대 초반에 아사드 정권과 미국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또한 아사드 정권이 알 카에다에 속해 있다가 분리된 알 누스라 전선의 핵심 지도자들을 석방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진영논리를 거부하는 관점에도 허점은 존재한다. 예를 들어 6년간의 시리아 내전을 단순히 아사드 정권과 ISIS, 그리고 YPG와 혁명반군이란 네 집단 사이의 충돌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역사적으로 오랜 세월동안 축적되고 심화된 시리아 내의 갈등은 지역 전역에 퍼져 있으며 동시에 파편화되어있다. 분열된 반 아사드 봉기는 때때로 반동적인 방향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2011년과 2012년 바트당 정권 퇴진에 시리아 민중들이 한 목소리로 뭉쳤던 것만큼의 일관성을 현 시리아 반군에게 찾을 수 있는가 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의 본질

결국 수천 킬로 떨어져 있는, 다른 의미에서 항상 전쟁 위협에 놓여있는 한국의 노동자 민중에게 있어 시리아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전쟁에 대한 명확한 계급적 원칙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과거 사회주의자들이 전쟁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에 앞서 국제사회주의기구였던 제2인터내셔널에서는 전쟁을 야기한 제국주의의 본질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영토 쟁탈전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독일의 베른슈타인을 비롯한 수정주의자들은 영국과 같은 제국주의 선진국의 식민지 프로젝트가 상대적으로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시킨다는 측면에서 진보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베벨이나 구스타브 노스케는 아예 진보적 식민지 자체를 지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제2인터내셔널의 다른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비판받았는데, 그들은 사회주의자로서 특정 민족에 대한 다른 민족의 지배와 통제란 곧 인간해방이란 지향을 내걸고 있는 사회주의의 목표와 상호 모순되는 것이기에 용인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전쟁과 식민주의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도 부합하지 않다는 관점 아래, 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과 1910년, 그리고 1914년에 군국주의와 전쟁을 비판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 중 1907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대회에서 국제 사회주의자들은 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해야 하는 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전쟁은 지배계급이 자기 이익을 위해 문명국민들 사이에 체계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민족적 편견에 의해 촉진된다. 지배계급의 목적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국제적 연대의 의무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계급적 임무들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전쟁은 자본주의의 본질 그 자체 중 일부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폐지되거나, 또는 군사 기술의 진보와 군사력이 불러온 분노에 의해 발생한 엄청난 인적·금전적 희생이 인민들로 하여금 이 체제를 폐지하도록 내몰 때에야 비로소 전쟁은 없어질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병사를 제공하고 대부분의 물질적 희생을 치루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최고 목표―모든 인민의 연대를 가져 올 사회주의를 기초로 한 경제 질서의 창출―와 모순되는 전쟁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대자이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군대로 하여금 전쟁을 수행케 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쟁의 슬로건 이전에 전쟁의 구체적인 배경이며 사회경제적 토대에 있다. 겉으로 인도주의적 개입이나 평화를 내걸었다 하더라도 그 밑바탕에 개입 당사자의 이해, 자본의 이해가 깔려 있다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비극의 시작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왜 전쟁이 발발하였는지를 보다 명료하게, 국가 간 갈등을 넘어 계급모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평화에 대한 추상적인 요구와 선언만큼이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어떻게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행동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시리아의 복잡한 계급관계

물론 시리아 내전은 다양한 외세와 비국가 무장단체, 시리아의 복잡한 계급관계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반전운동에 있어 명확한 방향을 찾기가 어렵다. 우선 현재 시리아의 집권 정당이자 장기집권으로 비판받고 있는 바트당은 초기에 아랍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시리아 사회의 통합과 자유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리고 공공 산업 및 상업 및 서비스 분야에 있어 국가중심의 발전계획을 수립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80년 대 이래 바트당은 노골적으로 노동조합을 억압하였고 바트당원들이 노조를 이끌게 했다. 또한 1990년대에는 이미 농업의 90% 이상과 석유산업을 제외한 대외 무역 및 국내 생산의 4분의 3이 민간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이는 전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아닌 구(舊) 지배계급과 신(新) 산업 부르주아지, 그리고 관료와 상업 부르주아지라는 네 부류의 소수 부르주아의 통제 하에 놓였다.

이른바 구지배계급으로 불리는 ‘토지 소유 관료’ 출신들은 오스만 시대부터 시리아에서 사회적,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오스만 제국의 몰락 이후 프랑스 등 제국주의 세력과의 결탁 아래 산업 부르주아지로 탈바꿈한 부류들이다. 반면 신 산업 부르주아지들은 전통적인 지배계급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물, 설탕 정제 및 가공, 섬유 직조 및 제조와 같은 구지배계급의 산업이 아닌 중산층과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소비재에 집중했다. 세 번째는 바트당을 등에 업고 성장한 관료 부르주아지들로, 이들은 장기집권한 아사드 정권과 결탁하여 불법과 합법을 넘나들며 이윤을 축적했다고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상인과 외국 기업의 대리인, 국제 금융 투자자들로 구성된 상업 부르주아지는 국가와의 파트너쉽에 있어 미묘한 갈등 관계에 놓여 있었는다. 실제로 시리아의 위정자들은 부패와 부정을 문제로 이들을 탄압하다가도 곧 그들을 석방하여 민관협력을 이어갔다. 이와 같은 복잡한 시리아 지배계급의 구성을 고려하면 2000년 바샤르 알 아사드가 정권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바트당 내 여러 가지 잡음과 충돌이 발생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이렇듯 상이한 지배계급이 시리아의 경제·사회 위기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요구에 맞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신자유주의적 억압과 각종의 경제구조 개편을 감행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2010년까지 10년 동안 외양적으로 성장한 규모에 비해 민간부문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고 실업률 또한 악화되었다. 겉으로 세속주의를 표방한데 비해 사회적으로는 사우디로부터 전파된 와하비즘이 퍼져갔고 종파적 갈등은 아사드 정권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 결국 2011년 시리아 내에서 민주화운동이 발생한 건 아사드 정권의 독재라는 정치적 상황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토대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지배계급 간의 충돌과 노동자 민중의 저항이 중층적으로 작동하며 나타난 것이다.

아사드 정권을 넘어 노동자 민중의 민주주의로

비록 현재는 휴전 상태라고 하지만 시리아의 상황은 엄혹하다. 휴전조치를 위반하는 교전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외국 세력들, 특히 상호 충돌하는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러시아와 미국의 갈등은 내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발칸 지역의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게 될 것을 우려하고 반대로 미국은 시리아가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걸 꺼려해 반군에 지원을 하면서도 적극적 개입을 주저한다. 여기에는 최근에 끝난 미국 대선도 있지만 반군 내에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복합적으로 포진되어 있는 현실관계가 반영되어 있다. 일례로 이슬람 근본주의와 아사드 정권 모두에 저항하는 시리아 민중이 있다. 북부 시리아 쿠르드 지역에서 직접 민주주의와 여성 억압을 철폐하려는 로자바 연방은 그 중 하나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교차하는 시리아의 특수성 아래서 민주주의를 향한 여러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감춰지고 있다.

주요 외신들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공 던지기를 하며 누가 잘했고 못 했는가 만을 이야기할 뿐이지 왜 그리고 어떻게 시리아 민중이 싸우고 있는 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쟁의 원흉으로 몰아세우는 데 비해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예맨과 모술 폭격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어느 한 국가를 악마화 하는 데 여념이 없는 시각에서 벗어나 시리아 사회를 직시해야 한다. 전쟁의 책임과 야만성을 교전국에게 돌리기에 급급하다면 남는 것은 국제 노동자 계급의 분열뿐이다.

우리는 시리아의 노동자 민중이 6년 동안 아니, 그 이전부터 제기한 민주주의가 단순한 수사적인 또는 형식적인 요구가 아닌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저항임을 이해해야 한다. 수십 년간의 독재기간 동안 자신만의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계승한 정권에 대한 저항이자 빈곤화된 민중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시도를 과연 종교적 극단주의의 반란이자 미 제국주의의 부추김으로 볼 수 있을지 여부는 오직 사회를 계급모순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고민할 때에만 판단할 수 있다. 이 글은 부족하지만 시리아 내전을 단순히 국가 간의 또는 국제적 모순만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 내부의 사회적 관계를 고찰해 보려 했다. 모쪼록 시리아의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 시리아 노동자 민중의 실제 현실과 구체적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논의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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