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채를 탕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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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 최악의 청년실업 때문에 삶을 저당 잡힌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청년고용률은 42.3%에 그친데다, 신규 청년취업자 중 비정규직 비율이 64%에 달해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의 노동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한 취업포털 사이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4년제 대학생 3,605명 중 29.9%가 본인 명의의 ‘빚’이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대학생 세 명 중 한 명은 빚쟁이란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은 평균 2,580만 원으로 학비 마련과 개인생활비 등이 주된 사유로 나타났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지난 2년 동안 20대 청년층의 워크아웃(파산) 신청 비율이 37% 이상 증가했음을 지적하며 청년부채를 우려하고 나섰다. 저금리 기조 속에 타 연령층의 워크아웃 비율이 하락하고 있는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청년층의 위기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만 원 정도의 학자금 대출이 있는 필자는 최근 울며 겨자 먹기로 원금상환을 유예해야만 했다. 당장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조차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원금 상환은 꿈만 같은 이야기다. 여기에 취업 사교육 시장의 압박이 청년층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설문조사에선 취업 준비생 283명 중 84.5%의 응답자가 ‘사교육에 의지하고 싶을 만큼 취업준비가 어렵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정부가 과도한 스펙 쌓기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줄여보겠다는 취지로 야심차게 도입한 NCS 직무기반 채용마저 사교육 시장의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니 백약이 무효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싶다. 공기업과 대기업, 언론사와 로스쿨까지 취업 사교육 시장이 점점 더 자신의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는 만큼 실업에 고통 받는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구직공고가 뜰 때마다 수십, 수백 군데에 보낼 자기소개서를 첨삭받기 위해서 각종 학원과 과외를 알아보고, 그것도 안 되면 고액의 취업 컨설팅을 찾아 헤매는 청년실업자들의 모습은 입시지옥의 입시생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헬조선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학자금 대출이라는 이름의 덫

반면 청년층의 대출로 이득을 보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장학재단이나 공무원연금공단, 은행과 소액대출 사업체 등 양지에서 대출사업을 하는 대부자본은 겉으로 학자금 대출과 생활자금 대출이 마치 사회적 복지인 것처럼 포장하며 그 나름의 이윤을 정당화하고 있다.

여기에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는 미등록 대부업체와 사금융 고리대까지 포함시킨다면 각종의 청년부채로 이자를 갈취하고 있는 대부자본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날 것이다. 물론 개인의 부채로 메운 학자금으로 이윤을 챙기는 대학자본도 빼놓을 수 없다.

작년 대학교육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학자금 대출기관인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2010년에 70만 명의 학생들이 3.7조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2014년에는 152만 명의 학생들이 10.7조 원의 대출을 받은 걸로 나타난다. 5년 사이에 2배 이상의 학생이 3배 이상의 금액을 대출한 것이다.

상승폭은 다소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인상추세인 대학 등록금을 고려하면 대출금 곡선의 상승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부채를 안고 내몰린 청년이 원금은커녕 이자조차 상환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부채절벽’이라 일컫기도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정부지원 학자금대출의 연체율은 4.19%, 원금 및 이자를 2년 이상 연체해 신용유의자로 전락한 청년은 1만 7000여명이다. 정부에 진 빚만 해도 이러한데 일반 은행과 사금융까지 포함한다면 상황은 보다 심각해질 것이다. 일례로 정부지원의 학자금 및 생활비 대출을 감당치 못해 사금융의 고금리 채무로 전환하여 신용불량에 빠지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학자금 대출은 여타의 채무와 달리, 법원에서 파산선고를 받아도 면제되지 않는다. 즉 세금이나 벌금, 추징금 및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금처럼 면책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학자금 대출을 받는 이들 중에 이런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고교 졸업생 중 70% 이상이 대학을 가야만 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선 미래를 고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연 평균 천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반대로 감당치 못하면 범죄로 취급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허울뿐인 대선 주자들의 청년 공약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기 대권을 노리는 대선주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청년공약을 내놓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남경필 경기지사는 직접적으로 청년부채를 해결하는 공약보다 취업 준비 또는 취업 유지를 전제로 삼은 지원금을 내걸었다. 반면 유승민 의원은 창업활성화와 일시적인 청년 부조를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지금까지 크게 실효성이 없었던 실업대책을 다소 변주한 데 그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재명 성남시장은 성남시에서 시행한 청년배당 제도를 만19~29세의 시민을 대상으로 전국에 확대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일 청년부채가 자본의 이해를 위해 노동력 개발비용을 개인에게 전가한 것이라면 이 시장의 기본소득은 사회적 비용으로 자본의 배만 불려주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여기에 제한적으로 생계형 부채를 탕감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부채가 발생한 원인 자체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달리 천정배 전 국민의당 대표는 청년부채를 사회적 관점으로 접근했다. 그는 최근 간담회에서 “청년층에 대한 부채탕감이나 지원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말하지만 청년부채 문제는 본질적으로 사회구조적 문제”라며 “청년들이 높은 등록금, 비싼 집값 등으로 빚을 질 수 밖에 사회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IMF 외환위기 이후에 대기업과 금융기관 부실화로 인해 공적자금이 169조원 가까이 투입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말하는 사람은 없다”며 “어려운 국민들을 위해서 몇 조원 쓰는 것이 도덕적 해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천 전 대표가 지적한 “취업난”과 “대부업체 등의 공격적 영업”은 표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말처럼 청년부채가 사회구조적 문제라면 청년실업과 대부자본의 이면에 깔린 사회의 본질을 바꾸지 않는 이상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본질을 도외시한 학자금 대출 탕감이나 취업지원책은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잘해봤자 안정적으로 자본에게 착취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서 그 효용을 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삶을 저당 잡는 청년부채 탕감하라!

대학교육은 청년들이 사회에서 한명의 노동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각종의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대학교육이 일반화됨에 따라 평균적인 교육비용 역시 상승하게 되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중요한 건 이윤을 실현시켜 줄 노동자를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을 국가와 자본이 아니라 청년 자신 또는 부모가 현재와 미래의 노동을 팔아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질서와 계급을 유지 재생산하는 체제의 외피 아래 은폐된다.

대학이 더 이상 안정적 고용이나 재정적 보상을 담보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닥친 실업의 두려움 때문에 청년들은 어쩔 수 없이 상품화된 교육과 졸업장에 매몰된다. 각종의 대출은 인간으로서의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상품으로 둔갑시키고, 선택이란 이름으로 강제된 경쟁과 높은 교육비는 미래에 대한 투자로 포장된다. 청년에게 있어 부채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대부자본의 먹잇감이란 사실을 망각케 하고 나아가 자본에게 종속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화폐를 대부하는 행위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당장 오른손에 있는 물건을 왼손으로 옮긴다 하여 무엇이 생기겠는가? 일찍이 종교개혁으로 이름 높은 루터는 대부업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에게 100원을 대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나는 지불할 수도 없고 구매할 수도 없어 두 쪽에서 손해를 입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은 나에게 이중의 손해를 끼쳤다. … 따라서 (나는) 100원을 대부하고, 그것에 대해 입지도 않은 이중의 손해를 계상한다. … 이 가상적인 손해에 대해 이웃의 화폐로 보상받는 당신은 고리대금업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자본가들은 과거 공물을 강탈했던 지주가 자본주의적 지주로 변모하여 토지소유를 근거로 자본주의적 계약에 따라 지대를 정당화하듯이 화폐소유를 근거로 이자를 정당화한다. 허나 정당화된 건 자본주의적 소유에 근거한 착취,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빼앗을 권리뿐이다. 그리고 이는 오직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존재하는, 그러나 그 외피를 개인과 개인의 거래로 은폐하는 사회에서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부채의 탕감은 자본주의가 청년에게 짐 지운 족쇄를 깨고 사회와 국가를 더 광범위하게 변화시킬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학자금 대출로 위축된 청년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투쟁이고 나아가 무상교육을 쟁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이후 사회 각층에서 민주주의 요구가 상승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지배계급의 선심성 또는 기만적 공약이 난무하는 가운데 얼마를 더 받아낼 것인가를 넘어 원래 우리의 것을 되찾는 투쟁이 전개되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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