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이성 운동은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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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y 김용욱(참세상), CC BY 2.0

우리 운동에는 알리바이성 운동이 만연해 있다. 알리바이성 운동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운동’,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운동’이다. 알리바이성 운동은 실제로는 분명한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뭔가 실천하고 있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이 대놓고 말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운동이 ‘알리바이성 운동’으로 전락했다는 점은 누구도 쉽게 부정할 수 없다.

필자가 이 글을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공교롭게도 얼마 전 매일노동뉴스에 “알리바이 실천을 의심한다”라는 글이 게재되었다. 이 글을 쓴 한석호는 “우리 주장과 실천이 알리바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혁명주의든, 개량주의든, 평등파든 자주파든, 국내파든 국제파든 진보 범주에 속한 누구도 의도하거나 공모하지 않았지만 진보의 총합은 알리바이 주장과 알리바이 실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라는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스스로가 “개량주의자”임을 부정하지 않는 활동가의 삐딱한 시선이 담겨 있긴 하지만, 이 글은 노동운동이 알리바이성 운동으로 전락했다는 생각 자체는 널리 퍼진 생각이라는 점을 확인시켜준다. 사람들의 생각이 이 정도라면 이제 알리바이성 운동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를 분명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알리바이성 운동

노동운동에 ‘알리바이성 운동’이 만연하다는 비판의 날을 세웠으니, 이제는 구체적인 예를 들 차례이다. 한석호조차 혁명주의, 개량주의, 평등파, 자주파 등등 할 것 없이 모두 ‘알리바이 실천’에서 벗어나지 못하다고 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은 주로 사회변혁노동자당(이하 변혁당)을 ‘알리바이성 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변혁당이 대외적으로 사회주의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하면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전진이 중요한 역사적 과제가 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건 세력들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변혁당의 실천은 사회주의를 내걸었을 뿐 실제에 있어서는 알리바이성 운동을 통해 사회주의를 애매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글은 다른 개량주의, 기회주의 세력의 알리바이성 운동보다 변혁당의 알리바이성 운동을 심각하게 보는 것이다. 이제 변혁당의 활동이 사실상 알리바이성 활동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을 몇 가지 실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애초 사회주의정당에 반대했던 변혁당 창당 주체세력들

변혁당을 추진한 주체들은 애초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반대한 세력이었다. 변혁당의 출발은 2012년 5월에 제안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활동가모임”(약칭 변혁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변혁모임 결성을 주도한 세력은 주로 현장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이 상당수 퇴보하는 민주노총 운동 속에서 나름 민주노조의 원칙을 견지하려던 세력들이었으며, 여러 투쟁사업장에서 끈질긴 투쟁을 전개한 세력들이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변혁적 현장실천’이라는 조직의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이들은 전반적으로 조합주의적 틀을 넘어서지는 못한 상태였다. 다만 민주노총 운동의 퇴보를 비판하는 문제의식에 머무르고 있었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들은 기존 진보정당이 노동자들을 배신하며 몰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적극 제기하며 나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진보정당을 대체하는 수준의 새로운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을 주장하였다.(당시 이를 비판한 글로 “사회주의정당 건설을 포기하고 노동자정당 건설에 투항하는 사회주의세력들”(해방 72호)을 보기 바란다)

이들은 대개 현장정서, 대중성 결여, 단결의 필요성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내걸며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전면화하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 했다. 이 세력이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반대한다는 점은 진보언론을 통해서도 쉽사리 확인된다. 가령 2012년 7월 14일 열린 변혁모임 2차 토론회에서, 김호규는 “사회주의 선언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는 전제 위에 “전체를 모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만큼, 최소공배수로 합의하는 수준에서 당 건설이 이뤄져야한다”고 말하였다(참세상, “전국활동가모임, 14일 2차 토론회 개최…9월 1일 ‘전국활동가대회’”).

변혁모임이 2013년 11월 19일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약칭 추진위)로 전환하면서 이른바 ‘5대 정치원칙’에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사회 건설’이 명시적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변혁당은 창당하면서 사회주의가 포함된 강령을 채택했다. 그렇다고 그 안의 활동가들이 실제로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이는 변혁당 스스로도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변혁당의 기관지인 『변혁정치』 16호는 “변혁모임을 통해 새롭게 당건설 주체로 나선 현장활동가들은 ‘사회주의 건설’을 5대 정치원칙 전면에 내거는 문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하고 있다(변혁정치 16호, “진단과 전망_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평가”). 올해 1월 6일 변혁당 창당 직전 진행된 “노동자계급정당 출범 의미_좌담”에서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강령에 사회주의 이념을 걸었을 때 대중적으로 얼마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어서 시기상조라는 생각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강령은 사회주의’, 당명은 사회변혁

그래도 사회주의를 내건 당을 만들었는데, 부족함이 있어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처음에는 사회주의정당 건설에 반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으로 전진한 것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1-2년의 시간은 경우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시간이긴 하다. 그러나 변혁당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정당에서 강령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사회주의정당의 강령은 여타 자본가정당이나 사민주의정당과 다르게 당의 활동에서도 중요한 규정력을 갖고, 강령에서 반영된 내용 하나하나는 매우 정제된 형태로 중요한 이론적, 실천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주의 정당을 진짜 제대로 건설하려는 세력들이 모였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렇지 않은 개량주의 정당의 경우, 강령은 귀에 듣기 좋은 진보적 언어의 상찬이 되기 쉽고 처음 창당할 때나 잠깐 신경 쓰고 일상 활동에는 별로 규정력도 없는 종잇조각에 불과하기 십상이다. “사회주의의 대전환”을 강령에서 명시했지만 사회주의정당이라고 누구도 보지 않는 노동당이 대표적 경우이다.

변혁당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주의를 강령에 넣었지만, 이것은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옷을 입은 것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당명이다. 창당대회에서 당명을 결정할 때, 사회주의가 포함된 당명은 하나도 제안되지 않았다. 당시 ‘평등사회당’, ‘노동계급당’, ‘사회변혁노동자당’이 당명으로 제안되었는데 그 중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채택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강령은 사회주의를 채택한 당이 당명은 ‘사회변혁’을 채택했다. 사회주의자연하지만 사회주의를 정말 전면화하는 것은 부담스러워 하는 속내에 가장 걸맞은 당명이 선택된 것이다.

반자본주의가 아니라 반자본’,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화

변혁당이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 알리바이성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혁당의 언어와 정책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변혁’이라는 말은 변혁당 활동가들이 매우 선호하는 용어인데, 이 용어 자체에 변혁당의 동요하는 정체성이 드러난다.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속내가 ‘변혁’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변혁’이라는 용어는 뭔가 급진적이고 센 이미지는 주지만, 사실 그 내용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속빈 강정의 용어라 할 수 있다.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변혁당은 ‘자본주의 반대’,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등의 용어보다 ‘반자본’, ‘사회화’라는 말을 빈번히 사용한다. ‘반자본’, ‘사회화’라는 용어 자체가 잘못된 용어라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용어들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전면에 쓰기 부담스러워서 대체어로서 나왔다는 점이다.

우선 변혁당은 ‘반자본주의’ 대신 ‘반자본’을 즐겨 사용한다. 이 둘의 차이는 ‘반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반대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면, ‘반자본’은 민주노조운동이 일상적으로 벌이고 있는 개별 자본에 맞선 노동조합 투쟁을 염두에 두고 나온 말이라는 점이다. 사실 노동자의 투쟁은 투쟁이 낮은 수준의 경제투쟁이 되었든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이 되었든 자본에 맞선 투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따라서 단순히 ‘반자본’ 투쟁을 말하는 것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넘어선다는 문제의식이 담기지 않는다.

이제 ‘사회화’의 경우를 살펴보자. ‘사회화’는 변혁당의 핵심적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기관지 『변혁정치』 등에서 사회화에 대한 숱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서 ‘사회화’ 개념 역시 낯선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내용이 사회화라는 단어로 모두 포괄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자의적으로 의미를 확대해서 적용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런데 변혁당은 사회화라는 용어를 통해 자본주의의 핵심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공격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예각화하기 보다는 재벌 사회화, 재벌독점이윤 사회화, 교육 사회화, 금융 사회화, 재생산 사회화 등등에서 보듯이 마치 ‘사회화’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듯 사용하고 있다. 각각의 영역과 사회 문제에 각각의 구체적 처방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사회화 슬로건에 모든 문제를 끼워 넣고 있는 셈이다.

사이비진보정당 세력과 갈라서지 않는 불철저한 정치

변혁당의 알리바이성 운동을 이렇게까지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추상적 수준의 공론이나 기우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알리바이성 운동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는 실제 정치에서 사이비진보정당에 대한 태도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통합진보당의 창당은 노동운동 내 기회주의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결합이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분열 속에서 만들어진 정의당은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결합을 더욱 강화했고, 중단 없는 우경화의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정의당은 더 이상 진보라 할 수 없는 세력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진보가 아닌데도 진보를 참칭하면서 진보의 의미를 왜곡․변질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진보정당이 그래도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정의당의 존재는 또 하나의 알리바이성 운동이며, 노동자계급에게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세력의 태도는 정의당의 본질을 폭로하고 철저하게 운동적 단절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변혁당은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 변혁당이 정의당을 비판하지 않는 것인가 하면, 그런 것은 아니다. 알리바이성 운동이 여기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비판은 하지만 철저한 단절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여지는 언제나 남겨두는 식의 비판을 한다.

가령 『변혁정치』 7호에서 이종회는 “그들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문제제기는 하겠지만, 기존의 보수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그 운동이 가지는 나름의 의미도 있지 않겠습니까? 정치적 외연을 확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의미를 두고 싶네요”라는 식으로 정의당의 존재를 긍정했다. 이것이 진짜 사회주의정당 대표의 말인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8월말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 논란이 되었던 정치방침에 대해서도 동일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변혁당은 성명서에서 “지난 정치세력화의 오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진보대통합당’을 만들자는 동지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7월 1일 『변혁정치』 26호에서 “진보변혁진영의 정치운동”의 단결을 강조하고 “민중경선 통한 대선투쟁 해볼 만”이라고 말하면서 구통진당 세력뿐 아니라 정의당까지 함께 참여하는 대선전략을 제시한다. 이런 생각을 글쓴이의 개인적 의견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변혁당의 한 회원이 변혁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글은, 변혁당이 전반적으로 알리바이성 운동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는 내부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에게 해당부분 인용하고자 한다.

‘정의당, 노동당, 민중연합당, 녹색당, 사회변혁노동자당 등 여러 정당으로 존재하는 진보변혁진영의 정치운동이 어떻게 단결을 이루어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은 잘못되었다. …… 거기에는 노선과 강령에서 부르주아 좌파정당이라 불릴 수 있는 정당도 있고, 민주연합전술을 기본 정치방침으로 가지고 있는 정당도 있다. 이들 모든 정당이나, 또는 그 이외에 진보정치나 노동자정치에 기웃거리는 세력들 모두가 정치적으로 하나로 단결할 수도 없고, 당연히 정치적 단결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전술, 또는 정치방침이다. …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민중경선 통한 대선투쟁’은 허울뿐인 진보통합정당 건설노선이다. …… 노동자 민중 진영 경선을 통한 단일후보 선출 노선은 사전에 진보진영 임시 정당 건설하는 노선이나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단일 진보정당 건설노선이다.

요약하면, 변혁당은 겉으로는 사이비진보정치세력을 비판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상 함께 할 여지는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알리바이성 운동은 급진적 운동의 등장을 막는 늪

알리바이성 운동은 실제로는 분명한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뭔가 실천하고 있다는 착각을 갖게 만든다는 데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알리바이성 운동은 늪에 비유될 수 있다. 운동의 도상에 하나의 늪을 만들어 사람들이 이 늪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면서 진지한 급진적 운동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변혁당의 실천과 관련해 살펴보면 이렇다. 현재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은 낮은 수준에 놓여 있다. 노동자 태반이 스스로가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을 이룰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노동자들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독자세력화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약화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이런 의식 상태를 극복하고 노동자들 속에서 계급의식을 고양시키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변혁당은 사회주의를 겉으로는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실천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회주의 운동을 애매하게 만들어 노동자 계급의식의 고양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

알리바이성 운동에서 벗어나자

변혁당이 알리바이성 운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구성원들의 운동적 배경이 깔려있다.

이들 대부분이 민주노총 구조에 의지하여 활동하면서도 민주노총의 투쟁회피나 우경화 등에 반대하는 현장파-좌파세력으로 존재해왔고, 여전히 이 구도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상당수가 나름 헌신적인 경제투쟁을 전개하여 왔고 민주노총의 퇴보에 비판적인 건강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조합주의 운동을 넘지 못하였고, 민주노총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민주노총 구조에 기댄 운동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사회주의가 그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는 객관적 상황이 형성되어가자, 변혁당 창당 주체들은 사회주의를 내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사회주의를 내걸었지만 사회주의를 제대로 하는 것은 아닌 운동, 사이비진보정치세력을 한편으로는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적으로 단절하지 않는 운동이 생겨난 것이다.

민주노조 운동 내 현장파-좌파세력으로서 차지하는 위치와 어찌되었든 사회주의를 대외적으로는 표방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변혁당이 어느 정도 조직을 유지하고 재생산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 가속화로 정치지형이 양극화하는 상황에서 변혁당과 같은 정치적 실천은 갈수록 무력해지고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맞게 급진적인 의식과 실천을 만들어내어야 하는데, 알리바이성 운동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알리바이성 운동이 극복되지 않은 채 반복된다면, 그 운동은 오른쪽으로 끌려가게 될 운명에 처한다.

이 글은 알리바이성 운동이 야기하는 정치적 문제들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쓰였다. 변혁당의 알리바이성 운동을 상세하게 살펴본 것은 변혁당의 운동이 알리바이성 운동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이 글은 어떤 동지들에게는 기분이 좋지 않은 글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 운동에 알리바이성 운동이 만연해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되물어본다면,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누구도 이에 대해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알리바이성 운동이 새로운 급진적 의식과 투쟁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는 늪이 되어버렸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회주의 운동 건설의 전제조건일 것이다. 필자의 글을 밑거름으로 하여, 앞으로 우리 운동에 만연한 알리바이성 운동에 대한 비판과 극복노력이 활발해지길 바란다.

필자는 해방연대 사회주의 소책자 시리즈 ④ 『왜 진보정치는 몰락했는가』에 “사회주의정당 건설의 전진을 가로막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에서 이번 글에서 다룬 주제를 더 상세하게 서술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접하고 싶은 분들은 이 소책자를 읽어보길 바란다.

4 댓글

  1. 언제부턴가 투쟁의 현장에 당신들 노동해방실천연대 깃발도 안보이던데 제대로 투쟁이나 조직하고 실천하면서 평가하시죠. 골방에서 사회주의외치고 당명에 꼭 사회주의 단어가 들어가야만 사회주의 운동하는건가요

  2. 남 욕하는거 말곤 ㅋㅋㅋ 할줄 아는 자기들 운동도 없으면서 ㅋㅋ 변혁당 없었으면 자기네 운동은 뭐가 있으려나 ㅋㅋ

    집착도 병임. 남욕할 시간에 본인들 운동이나 발전시키셈, 유로꼬뮤니즘도 뭐 대단히 혁명적인진 몰겠는데?

    본인들이 국보법 마지막 재판에서 한 얘기는 없네? 와 이거 진짜 관종 아님 정신병임. 아프면 운동말고 좀 치료를 받으셈.

    변혁당 짝사랑 좀 고만하고~관심 좀 끊고~ 변혁당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니네 운동 좀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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