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배후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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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공무원U신문

2005년 11월 15일. 여의도에서는 ‘WTO 쌀 협상 비준안’ 국회 처리를 반대하는 전국농민대회가 열렸다. 시위는 격렬했고 강경 진압에 나선 경찰의 기세도 등등했다. 경찰의 날선 방패에 밀려 수십 명의 농민이 넘어졌다. 넘어진 농민들에게 경찰은 몽둥이를 휘둘렀다. 시위 농민들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 전용철(당시 43세) 씨와 홍덕표(당시 68세) 씨가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며칠 간격으로 사망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5년 11월 14일. 칠순에 이른 농민운동가 백남기 씨가 ‘민중총궐기’ 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경찰은 쓰러진 그를 부축하려고 달려든 사람들에게도 물대포를 쏘아댔고, 심지어 피 흘리는 백남기 씨를 호송하는 구급차를 향해서도 고압의 물줄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후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백남기 씨는 사경을 헤매다가 31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공권력에 의한 살인이었다.

국가폭력, 다른 듯 닮은 두 사건에 주목하라

국가의 폭력 장치를 공권력이라 한다. 그 공권력에 의한 살인사건이 딱 10년 간격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두 사건은 신기하리만치 닮았다. 먼저 희생된 농민들이 시위에 참가한 이유가 흡사하다. 10년 전에도 쌀이 문제였고, 이즈막에도 쌀이 문제였다. 2005년에는 국회에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 주도로 ‘WTO 쌀 협상 비준안’을 통과시켜 쌀 수입의 물꼬를 튼 것이 문제였다. 2015년에는, 10년 전 WTO 협상의 결과로 말미암아 쌀 전면 수입이 개방되어 쌀 재고량이 늘어나게 되고 그 때문에 농민들이 벼랑 끝으로 몰린 게 문제였다. 두 사건은 쌀 수입 개방이라는 동일한 배경과 맥락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 때문에 홍덕표, 전용철 씨는 “밥쌀 수입 반대”를 외치다가 공권력의 몽둥이에 쓰러졌고, 10년 뒤에 백남기 씨 또한 “밥쌀 수입 반대”를 똑 같이 외치다가 공권력의 물대포에 희생되었다.

두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도 닮았다. 2005년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폭행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로 경찰의 강경 진압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심지어 전용철 씨의 사망원인에 대해 “간경화 말기인데다 술 먹고 구토하고 쓰러졌을 개연성이 높다”는 발언으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면서 자신들의 폭력성을 은폐하려 했다. 이번 백남기 씨의 경우에도 경찰은 사망원인을 ‘병사’로 몰아가며 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은폐하려 하고 있다. 여기에 여당과 주류 언론, 무기력한 병원과 비겁한 법원, 무지몽매한 관변단체 등 지배체제의 부품들도 한통속이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혓바닥으로 진상을 가리려는 공권력의 행태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두 사건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대통령의 태도이다. 2005년 홍덕표, 전용철 씨 사건에 대해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이 특유의 어법으로 장문의 대국민사과를 한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쓰러진 뒤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IS(이슬람국가)를 들먹이며 복면 시위 금지를 주문하는가 하면 “국민을 불안에 몰아넣고 국가경제를 위축시키며 국제적 위상을 떨어뜨리는 불법 폭력 행위를 뿌리 뽑기 위해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서 대응해 나가야 할 것”,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이라며 11·14 민중총궐기 대회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천명했다.

시위대 폭력 책임 씌운 노무현의 사과문

이처럼 공권력 살인에 대한 통치자의 무지몽매한 태도는 10년 전의 비슷한 사건에 대한 당시 통치자의 태도와 비교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 추종자들은 해묵은 ‘노무현 사과문’을 끄집어내어 박근혜의 사과를 촉구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특히 추종자들은 노무현 사과문의 다음 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매우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인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 권력의 추종자들은 노무현의 사과내용 가운데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마저도 제대로 보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다. 우선 위에 인용된 내용 자체가 이명박과 박근혜가 즐겨 쓰는 ‘유체이탈’ 화법과 닮았다. ‘매우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공권력을 통제해야 할 사람은 바로 통치자 자신이다. 따라서 노무현은 경찰의 곤봉에 맞아 사람이 죽기 전에 미리 공권력을 엄격하게 통제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사과 내용을 보면 노무현은 공권력의 폭력 사태를 한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는 심판자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노무현은 공권력 폭력의 일차적인 책임을 시위대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 요컨대 노무현의 사과문은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이라거나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들을 스스로 조성한 것’, 그리고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는 표현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노무현의 사과문 어디에도 농민들의 분노를 보듬은 흔적은 없다. 굴욕적인 WTO 쌀 협상으로 농민들을 절망케 하고, 그로써 격렬한 시위를 야기한 정부 수반으로서의 반성 또한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노무현의 사과는 오히려 희생자들에 대한 질책에 가깝다.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에 대한 적대적 관점은 노무현과 박근혜가 다르지 않다. 다만 노무현과 박근혜가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한 가지. 희생자의 유족을 대하는 태도이다. 10년 전 노무현이 ‘비록 적의 초상집이지만 문상은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지금의 박근혜는 ‘적의 초상집인데 문상을 왜 가냐’며 버티는 정도의 차이, 즉 처세술의 차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의 사과문을 들먹이며 지금 박근혜의 사과를 촉구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과’라는 처세로 ‘공권력의 살인’이라는 실상을 덮고 가자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노무현 추종자들은 오지랖 넓게도 박근혜의 의전 비서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폭력에 중립은 없다

이른바 ‘민주화’ 이전, 공권력이라는 개념조차도 희미하던 시절에는 국가폭력이 일상적인 공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실제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국가의 이름으로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인민을 살상했다. 독재정부나 자본주의 착취 체제에 저항하는 인민과 그 주변 사람들이 주로 희생되었다. 게다가 인민에 대한 국가폭력이 독재 정권 하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이른바 민주화 이후에도 수많은 학생, 노동자, 농민, 빈민 등 기층 민중이 현실의 착취질서에 저항하다가 알게 모르게 죽음을 맞았다. 노무현, 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도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표출된 것이다.

사실 국가를 불문하고 국가폭력의 야만성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하와이대 교수 럼멜의 <정부에 의한 죽음>에 따르면,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2억 명 이상이 군대와 경찰 등 국가폭력에 살해당하였다. 그런데 이 가운데 83%인 1억6천9백만여 명이 민간인이다. 더욱 경악할 것은, 사망자 중 65%인 1억3천여만 명이 자국민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세기가 커다란 전쟁이 많았던 시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자본주의 시대의 공권력이 자국의 인민을 주된 적으로 삼아 살해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은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규모로 자행되고 있다.

이처럼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이 멈추지 않고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처벌이 이루어지더라도 그 정도는 미미하다. 어쩌다 통치 책임자의 사과 한 마디라도 나오면 오히려 듣는 사람들이 감지덕지하는 지경이다. 개인들의 폭력행위에 엄격한 나라일수록 이른바 국가의 폭력에는 관대하다. 공권력의 본질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또는 ‘치안 유지’에 있다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중이 철저하게 지배당한 까닭이다.

자본가국가는 그간 우리에게 두 가지 미신적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왔다. 그 첫째는 공권력이 법의 통제에 따라 작동된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공권력의 합법적 사용은 문제가 없는데, 불법적 사용이나 과잉 사용이 문제라는 믿음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군대나 경찰 등 국가폭력장치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때는 전쟁이나 계엄령처럼 법이 정지된 때이다. 두 번째 미신은 공권력이 ‘중립적’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폭력에는 중립이 없다.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계급사회에서 공권력은 지배계급의 이해에 따라 행사되는 독점적 폭력장치일 뿐이다.

국가폭력의 배후는 자본가계급

우리는 국가폭력 장치가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노무현 정권 시절이던 2005년에도, 박근혜 정권 치하인 2015년에도 국가는 자본주의 착취제도의 유지를 위해 쌀 수입 개방의 문을 열었고, 이에 저항하던 농민들을 향해 공권력은 어김없이 철퇴를 휘둘렀다. 우리는 또 토건자본의 개발이익 실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민을 불구덩이에 밀어 넣는 공권력의 만행을 경험한 바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현장에 공권력이 들이닥쳐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이처럼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지켜주기 위해, 그로써 그들의 지배를 지속적으로 보호하기위해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질서 유지, 또는 치안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억누르는 임무를 수행한다.

국가의 본질은 폭력이다. 의회민주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분칠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권력의 폭력성이 다소 완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국가는 숱한 이데올로기와 물리적 폭력을 이용하여 자본가들의 독재기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모순이 격화되거나 자본가계급의 처지가 위태로울 때면 국가는 자국민에 대하여 언제든 가차 없는 폭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국가폭력의 배후에는 언제나 자본가계급의 요구가 도사리고 있다. 농민운동가 백남기 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국가폭력의 배후도 그것이다. 이러한 국가폭력을 멈추려면 자본주의를 멈춰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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