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546조원, 누구를 위해 ‘투자’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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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을 구속하라!” 촛불집회에서 울려 퍼졌던 이 외침이 현실로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2일 특검은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을 뇌물공여 혐의로 소환 조사하여 만 하루 동안 수사를 했고, 곧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삼성 이재용을 포함한 자본가들에 대한 대중의 강한 분노가 없었다면 특검을 여기까지 밀어붙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분노의 중심에는, 국민연금공단이 손실이 있을 것을 알면서도 오직 이재용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투표를 했다는 폭로가 있었다. 이재용 일가가 많이 갖고 있는 제일모직 주식의 가치는 높게, 보다 적게 갖고 있는 삼성물산 주식의 가치는 낮게 평가된 이상한 합병 비율에도 불구하고 이재용에게 뇌물을 받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국민연금공단은 합병 찬성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재벌닷컴은 이로 인한 국민연금의 손해액이 6천 억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집계했으며, 국민연금 측이 해명이라고 제시한 자료를 보더라도 손해액은 3700억 원에 달한다. 많은 노동자들이 은퇴 이후 폐지를 줍지 않기 위해, 길바닥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꼬박꼬박 납부해서 쌓인 몇 천 억 원이 그저 자본가 한 명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날아간 것이다.

‘나쁜 기업’을 걸러내고 ‘책임 있게’ 투자하기?

이 폭로는 촛불집회에 나온 대중에게 재벌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공범을 넘어선 주범임을 명확히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546조나 모인 국민연금이 가입자의 노후 생활 보장을 위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이고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

이에 대해 이른바 진보 언론이나 야당에서는 ‘사회책임투자원칙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사회책임투자원칙이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이 대규모 기관투자자로서 어떤 기업에 얼마나 투자할지를 결정할 때 해당 기업이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12일에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이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 등과 함께 발의한 ‘이재용 방지법’(국민연금법 개정안)도 가입자 대표 권한 강화와 함께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수탁자책임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서 “기업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계열사에 대한 편법 지원 등 불투명한 경영을 견제하는 것”을 취지로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한국에서도 지난 12월 19일에 공표되었는데, 국민연금이 여기 가입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하는 대안”이라고도 한다.

사실 국민연금공단이 온갖 ‘나쁜 기업’들에게 우리의 연금을 갖다 바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13년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탄을 제조하는 한화와 풍산 기업에 대한 투자 철회 요구가 있었는데도 철회를 거부했고, ‘갑질’ 논란의 장본인이었던 남양유업에 대한 투자를 2015년 1분기에 5.03%에서 6.02%로 늘렸다. 또한 가습기 살균제 사고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4년이 지난 2015년에도 국민연금공단은 주요 가해자인 SK케미칼과 옥시에 각각 3308억 원과 1272억 원을 투자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소한 연금 가입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해하거나 법을 어기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걸러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원칙에서 ‘책임’이란 어디까지나 주주에 대한 책임을 의미하기에, 기본적인 원칙은 수익률의 극대화다. 예를 들어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특정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했는데 “만일 이로부터 투자손실이 예상된다면 이를 벌충하기 위해 특정 산업부분에서 수익률이 일등급을 나타내는 기업에 대한 투자를 포트폴리오 구성에 포함”시키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회책임투자원칙이 받아들여진다 하더라도 투자 전체에 있어 공공성을 우선순위로 삼는 것은 불가능하며, 누가 봐도 심각한 불법과 악행을 저질러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기업 몇 곳을 걸러내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여기서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과연 국민연금이 ‘나쁜’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고 ‘정상적인’ 기업에만 투자를 하면 가입자들이 노후에 연금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될까? 국민연금이 연금을 운용해서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이 정말 가입자들을 위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정부는 왜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을 쌓아 놓고도 우리가 계속 더 내고 덜 받아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기금이 고갈된다고 엄포를 놓는 것일까? 보다 근본적으로, 이렇게 많은 돈을 미리 쌓아 두고 불려서 수익을 내는 적립식으로 노후 복지 제도를 설계하는 것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특검 ‘구속 1호’ 문형표의 숙원사업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근혜 정부가, 아니 그 이전에 집권했던 정권들까지 모두 공통적으로 국민연금에 대해 그리고 있었던 ‘큰 그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전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문형표가 최순실 사태가 터지기 직전까지 밀어붙이고자 했던 사업은 기금운용본부를 공단으로부터 분리시켜 독립된 공사로 만드는 것이었다. 공단 안에 있는 기금운용본부, 그 중에서도 기금운용위원회는 현재 연금 운용에 대한 최종결정권을 갖고 있다. 이 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관련 정부부처 차관, 공단 이사장, 그리고 각계의 입장을 반영하는 14명의 위촉위원(사용자 대표, 근로자 대표, 지역가입자 대표, 관계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운용에 정부의 간섭을 배제시켜야 투자 수익률이 올라간다고 주장하였다. 쉽게 말해, 한국경제TV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금융투자업계 출신의 자산운용전문가를 기금운용본부장으로 선임하더라도, 전문가가 아니라 정부 입맛에 따라 운용”되는 상황을 빨리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런 문제의식에 입각한 법 개정은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때도 매번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기는 했지만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예컨대 2007년 노무현 정부는 기금운용위원회를 공단에서 분리시킬 뿐만 아니라 아예 복지부에서 분리시키고, 위원 자격도 금융. 투자 분야 전문가로 국한시키며, 그 아래 기금운용공사를 두어 운용 업무를 맡기자고 하였다. 역대 정권들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통해, 연금 운용에 있어 수익률을 사실상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고 고수익 고위험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을 완전히 없애고자 한 것이다.

비록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는 아직 완수되지 못했지만 국민연금 운용 방식은 이제까지 큰 틀에서 그들의 뜻대로 되어 왔다. 복지 부문에 대한 투자는 1% 미만으로 떨어진 지 오래이며, 99% 이상이 금융 부문에 투자되고 있다. 주식 투자의 비중도 급격히 증가했다(2006년에는 11.59%, 2016년 10월 말 기준 32.5%).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279곳이고, 그 중에서 10대 그룹 상장사는 58곳이다. 국민연금은 이렇게 스스로 자본시장에서 강력한 기관투자자(institutional investors)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연금의 일부를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같은 외부 운용사에 맡기는 ‘위탁운용’을 통해 자본시장 전반을 활성화시켰다. 위탁운용을 하면 기금운용위원회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들고, 금융투자 전문가들의 결정에 따라 투자가 이루어진다. 국민연금의 고위험 투자에 대한 각종 규제는 꾸준히 완화되었고 2008년 12월에는 심지어 국민연금 기금운용 관련 조항에서 ‘투기적 목적의 파생상품 거래를 제한’하는 단서규정조차 삭제되었다. 비록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해 규모를 줄이기는 했지만, 2016년에 국민연금은 헤지펀드에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노동자의 연금이 자본가의 투기 자금으로

이렇게 연금을 갖고 위험성 자산에 투자하는 데 대한 규제가 철폐되고 연금이 자본시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금의 금융자본화는 신자유주의화와 맥을 같이 한다.

1970년대 이후 실물 생산 부문의 이윤율이 저하함에 따라 독점자본은 국제적 수준에서 인수합병을 하여 자본을 집적, 집중시켜야만 했고 그러려면 금융영역의 도움이 필요했다. 독점자본이 금융화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동에 대한 각종 규제가 철폐되고 금리가 인상되었다. 각국의 통화제도와 금융시장이 긴밀하게 연계되면서 전 세계적 금융 투기의 장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에게는 자본시장의 팽창을 위한 밑천이 필요했기에, 세계은행은 부과방식(돈을 쌓아 두지 않고 매년 필요한 복지 예산만큼 세금에 추가하여 부과하는 방식)이었던 연금 제도를 적립방식으로 바꾸는 연금개혁 담론을 적극적으로 내세웠고 라틴아메리카 같은 곳에서는 직접 개입하여 강제하기도 했다(주은선, 「신자유주의 시대의 연금개혁-노후보장의 시장화, 개별화, 금융화」, 경제와 사회, 2009.12). 그리고 그렇게 적립된 연금은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받은 돈을 금융자본으로 변모시켜 다시 자본가계급에게 갖다 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내는 연금은 더 이상 우리의 인간다운 노후를 위한 것이 아니며, 국민연금공단이 내려고 하는 수익도 단기적인 투기 수익일 뿐이지 우리에게 나중에 연금으로 돌아올 수익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금융 투기를 통해 장기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끊임없이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 연기금의 규모가 20% 줄어들었고(주은선, 같은 글), 국민연금은 8조 4800억 원을 날렸다. 근본적으로, 546조원이나 되는 돈을 그들의 손에 쌓아 둔다는 것 자체가 그 돈이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저들이 말하는 ‘수익’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대통령을 탄핵 가결까지 이어진 이 촛불집회 정국 속에서도 ‘국민연금이 외압을 받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한 것이므로 독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다시 추진해야 한다‘는 언론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금운용본부 공사화 재시도 등 추가적인 연금의 금융화 시도, 규제 완화 시도를 저지하려는 투쟁이 필요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안으로 적립방식을 부과방식으로 전환시키라는 요구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공단의 합병 찬성 결정으로 인한 손실 사건을 단순히 ’국민연금공단이 청와대의 압력 때문에 우리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 책임을 외면했다‘는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연금을 날린 자들이 말하는 ’수익‘은 결코 연금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것이 아니라 그 연금을 갖고 투기를 할 자본가들의 것이다. 우리에겐 그런 ’수익‘도 필요 없고, 연금까지 투기의 밑천으로 삼는 썩어 가는 자본주의도 필요 없으며 그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우리는 그들에게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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