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주년 특집 ②]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 제레미 공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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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텔레수르(Telesur) 인터뷰 영상 캡처. 제레미 공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창간 2주년 특집] 직접 듣는 미국 사회주의 운동

사회주의는 고양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그 흐름이 가장 거세다. 많은 이들은 오바마에 대한 실망,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을 사회주의가 확산된 중요한 계기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실 사회주의를 겪어보지 않은 반면 대공황, 실업, 부채 등 자본주의의 쓰디쓴 현실만을 경험한 20, 30대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이 놓여 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더러운 말”이다.

우리는 창간 2주년을 맞아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현황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듣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번 기사는 인터뷰이다. 우리 매체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생생한 이야기를 폭넓게 소개한다는 취지로 서로 입장이 다른 두 조직의 회원을 인터뷰했다. 

첫 번째 인터뷰에 응한 제레미 공(Jeremy Gong)은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 이스트베이 지부 회원이다. 이스트베이 지부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있다. 제레미 공은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을 대변하는 밀레니얼 세대 사회주의자이다. DSA가 전통적으로 민주당 내 좌파 전략을 고수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제레미 공은 이런 전략에 대해 다소 다른 접근을 제시하고 있는 DSA 내에서도 가장 왼쪽에 있는 인물이다. 특히 DSA 조직 내 선거에서 “빵과 장미” 선본을 구성하고 『외침』이란 웹진을 내는 등 그가 속한 그룹은 DSA 주류와는 다른 급진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그룹의 특징은 사회주의 혁명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추진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장은 노동자계급의 주체적 조건을 들어 민주당의 활용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이 대목에 새로 고양된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모순과 고민이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레미 공과의 인터뷰는 10월 중순 이메일을 통해 서면으로 진행되었다.

<차 례>

① 미국의 젊은 세대는 왜 사회주의에 끌리고 있나(남수경)

②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 제레미 공과의 인터뷰

③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대니 캐치와의 인터뷰

Q1.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이 무섭습니다. 그리고 트럼프 집권 이후 DSA의 회원수도 급증했습니다. 미국에서 최근 사회주의 운동이 급성장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요?

2007-8년 금융공황 이후 전세계적으로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정치적 자각 과정이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좌파는 1970년대 이후로 매우 힘이 약하고 주변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초창기 정치적 자각의 방향은 혼란스럽고 반동적이거나 단명하곤 했습니다. 금융 위기가 일어나자 책임 있는 진보적 조처가 취해지고 은행과 자동차 산업이 사회화되기는커녕 오바마는 은행과 자동차 산업에 대해 구제자금을 제공하고 주택소유자에게 굉장히 좋은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그 결과 억만장자들의 이윤은 재빠르게 회복된 반면 수백만의 민중은 압류로 집을 잃었습니다. 2008-9년 무렵 강력한 사회주의 운동 혹은 노동자계급 운동이 있었다면, 좌파는 진보적 해법을 추진하거나 적어도 그 요구들을 대중화할 수 있었을 겁니다. 오바마의 친기업 행보는 자유주의적, 진보적 기성세력들로부터 “유일한 선택”이라며 지지를 받았습니다. 반면 많은 민중들은 새로이 정치화되었지만 오바마에 반대해 오른쪽으로 가버렸죠. 이것이 공화당 내 티파티 운동에서 명백히 드러난 것처럼 대중적인 자유지상주의적(libertarian) 감정이 중요한 원인입니다.

드디어 2011년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패에 대한 보다 좌익적 대응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운동은 단명했고 많은 모순과 결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그것은 자유지상주의자들로부터 대중적 인기를 빼앗아 오고 수천의 민중들을 좌파로 급진화시키는 씨앗을 심었고 이를 통해 억만장자 계급에 맞서 민중을 정치화하는 데 특히나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계급이란 관념을 미국에서 정치 어휘로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점거운동이 새로운 세대의 활동가들에게 직접 행동과 대중 항의에 대해 가르쳐줬다는 점입니다. 그 후 이것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란 이름 하에서 이루어진 경찰 폭력에 맞선 대중 흐름의 고양을 뒷받침했습니다. 이 운동은 2013년에 활동의 절정을 맞습니다. 이 운동도 역시 그것의 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모순적이었죠. 그것은 의식적인 좌익 활동가들뿐 아니라 노동자계급 분자들도 포함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중간계급 혹은 부르주아 분자들, 특히 민주당 및 포드 재단과 같이 억만장자들의 재정지원을 받는 NGO들과 결탁된 사람들에 의해 포섭되거나 운동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경찰 탄압 문제를 제기하고 인종주의적 범죄분석을 미국 정치의 전면과 중심에 내세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젊은이들의 정치화로 이어졌습니다.

지난 십년 동안 기후변화와 미국 제국주의를 둘러싼 문제 등 여타 항의와 정치화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실타래들이 하나의 광범위한 정치·경제 개혁 프로그램으로 모이게 된 것은, 2015년 버니 샌더스가 대통령 선거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였죠. 샌더스의 선거 운동은 오바마 이후, 월스트리트 점거 이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가 중요하고 실질적인 사회 변혁을 이뤄내는 데 실패한 이후 환상에서 깨어난 수많은 민중들을 고무시킬 수 있었습니다. 야심찬 개혁 의제를 가지고 억만장자 계급과의 어떠한 재정적·정치적 연줄도 없이 공공연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선거에 나섬으로써, 샌더스는 정치 영역에서 노동자계급 정치를 위해 무엇이 가능한지를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가르쳐줬습니다. 그의 보편적 사회 재화, 특히 “모든 이를 위한 메디케어(Medicare for All)”, 대학 무상교육 요구는 광범위한 인기를 얻게 되었죠. 그리고 그 요구들은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에 투표하거나 전혀 투표를 하지 않는 노동하는 민중의 새로운 연합을 위한 정치적 토대입니다.

또한 샌더스는 민주적 사회주의란 관념을 미국 정치 담론의 중심에 명백히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사회주의자들과 비교한다면 어떤 눈에 띠는 빨갱이 몰이나 주변화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것은 미국 정치에서 커다란 변화입니다. 사회주의 이념―그것은 자본주의 비판 입장에 서있고 더 나은 세상의 가능성과 엘리트들이 곳곳에서 그런 대안을 봉쇄해왔다는 점을 지적합니다―만으로 수많은 민중, 특히 젊은이들의 의식 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2016년 트럼프가 당선되고 민주당이 공화당 의제에 아무런 진지한 저항도 하지 않자 젊은이들이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에 가입하는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Q2. 당신은 한 글에서 “사회주의자는 사회적 병폐들에 대한 분석의 중심에, 그리고 사회를 어떻게 변혁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의 중심에 계급을 위치시킨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실질적인 도전을 할 이해와 권력을 모두 가진 유일한 사회 세력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노동자들의 혁명적 잠재력이 경시되는 분위기가 팽배했기 때문이죠.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된 근거는 무엇입니까?

노동자계급을 사회 변혁의 중심 주체로 보아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라 할 수 있는 초보적인 사회주의 전략 논쟁들이 요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새로운 출판물인 『외침(The Call)』(http://socialistcall.com)에 이 문제에 관한 글 두 편을 공저자로 썼습니다. 『외침』에 결합한 DSA 내 그룹은 DSA 내에서 다수 경향은 아닙니다. 따라서 『외침』에서나 제가 채택한 사상은 DSA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날까지 정체성이나 여타 특수한 이슈들을 둘러싸고 형성된 느슨한 사회 운동들, 계급 타협이나 친기업적 노동조합주의, 혹은 자본가 정치인이나 자본가가 재정 지원하는 NGO 지도부와의 타협을 여전히 신뢰하는 좌파 흐름이나 태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활동가들은 반드시 그 같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변화 주체들을 선호하며 노동자계급의 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계급적, 맑스주의적 전망이 없다면, 그들은 서로 다른 이슈 기반 운동들을 통일시키거나 “운동 지도자들”의 타협과 단절하는 일을 해낼 수 없습니다. 다른 활동가들은 무정부적-공산주의적 이론에 가까운 “극좌”적 입장을 채택해왔습니다. 그들은 효과적인 계급적 정치투쟁을 수행하는 노동자계급 다수의 힘을 무시하고 그 대신 다른 사회적 주체를 찾거나 정치 자체를 방기합니다. 그러고선 “생활양식 정치”, 순수한 항의, 직접 행동, 혹은 “이중 권력”을 택합니다.

제 동지들 다수는 제가 앞에서 묘사한 2008년 위기, 혹은 그 이전까지로 되돌아가는 정치적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 같은 사회 운동이나 항의가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지 못하는 것을 접하고 좌절과 환멸을 경험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들 다수는 사회운동의 역사, 특히 노동운동의 역사뿐 아니라 맑스와 맑스주의 전통을 학습했습니다. 이런 학습이 노동자계급 속에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은 운동들은 무용지물이라는 경험과 결합되었기에 저나 다른 사람들이 계급 중심성이란 맑스주의 입장을 택할 수 있었습니다.

맑스주의는 우리에게 우리 사회에 대한 강력한 분석을 제공합니다. 한 조그마한 계급이 무산 노동자계급 대다수가 낳은 이윤을 모두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배치는 파라오 시대에 견줄만 한 부의 불평등 뿐 아니라 사회 권력의 불평등도 발생시킵니다. 자본가들은 우리 경제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정치체제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오직 사회주의―사회적 재산에 대한 사적 통제의 철폐, 그리고 착취와 계급 전반의 철폐―만이 지구상에 참된 정의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 줍니다.

더구나 맑스의 분석은 깊이 있는 전략적 통찰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권력은 그들의 투자에서 나온 이윤과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받는 원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국가의 서비스와 자본가 이윤은 모두 수백만 노동자의 노동에서 생겨나는 겁니다. 이것은 자신의 노동을 통해 노동자계급은 이윤을 중단시키고 현상 유지를 분쇄하며, 그럼으로써 지배계급으로부터 양보를 끌어내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넘겨받아 노동자 자신의 이해에 입각해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잠재적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노동자는 사회의 압도적 다수입니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본가 이해로부터 독립된 자기 이해를 조직할 수 있다면, 이것은 노동자에게 선거에서, 사회운동에서 막대한 잠재적 정치권력을 부여합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세대 동안 맑스주의자들에게 제기되어 왔던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노동자들이 여전히 이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가?’ 킴 무디(Kim Moody)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우리가 그런 힘을 가졌다는 게 학술적으로는 증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을 스스로 경험하는 게 필요한 활동가와 노동자들 다수에게 더 중요한 사건이 있습니다. 2018년은 노동자계급의 강력한 파업 활동이 엄청 증가한 해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웨스트 버지니아에서 시작한 교사 파업 물결이었는데, 이것은 파업의 힘, 그리고 보다 일반적으로 말해 노동자의 힘을 결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사진: https://twitter.com/DSAEastBay/]

Q3. DSA의 전략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내에서 좌파”입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민주당을 바꾼다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최근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경우 매케인 추모와 쿠오모 지지 천명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기성 지배 정치 안에 존재하는 순응 기제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국 진보세력 내 많은 사람들이 거의 30년 동안 자유주의자들과 연합했고 자신의 정치적 독자성을 방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보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당신은 DSA의 전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여러 세대 동안 주장해온 것처럼 민주당은 노동자계급 정치의 수단이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일반적인 의미의 “정당”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다른 나라 경우에서처럼 단일한 정치 강령과 내부 민주주의를 가진 대중정당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와 달리 민주당은, 한편으로 자본가인 기부자들과 정치 컨설턴트들로, 다른 한편으로는 친기업적 정치인들로 이루어진 정치자금 조달 기구입니다. 당내 예비선거와 각종 대회 등을 통해 당에 대중적 요소들의 유입이 일부 일어나지만, 그것이 당의 중요 기구들, 자금 흐름과는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민주당 유권자―이 당에는 실은 “당원”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라고 여겨지는 민중이 아니라 자본가인 기부자들의 통제를 받습니다. 이 구조에서 의미있는 개혁이 일어나거나 사회주의 좌파가 장악하는 일은 거의 언감생심인 거죠.

그러나 사회주의 좌파는 당장 양당체제와 결정적으로 단절할 수 있을 정도로 노동자계급 내에 의미 있는 사회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의 모든 전국적 노동조합은 뭐가 되었든 민주당을 헌신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 자체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을 완강히 지지하고 있거나, 정치에 완전히 환멸을 느껴 무관심해져 있습니다. 3억 이상이 사는 나라에서 우리가 양당 체제를 완전히 기권하거나 이를테면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주변화 된 녹색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식으로 의미 있는 정치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2018년, DSA 내 일부 분자들은 그 대신 두 가지 길을 추구해왔습니다. 한편으로 민주당 내 “재편(realignment)”을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추구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이런 생각을 가진 경우입니다. 그리고 버니 샌더스 자체가 이런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런 선거 레이스를 노동 및 진보 정치에도 걸쳐있고 지배계급에도 걸쳐있는 민주당의 모순을 폭로하고 심화시키는 계기로 보는 저와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우리는 조반카 베클스(Jovanka Beckles)란 이름의 후보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리치몬드에서 기업들과 싸워온 오랜 경험을 지닌 민주적 사회주의자입니다. 베클스는 클린턴과 오바마의 참모였고 거대 자본가들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후원을 받는 버피 위크스에 맞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대다수 사람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 레이스는 우리에게 오바마와 클린턴 쪽 세력들이 노동하는 민중들의 이해가 아니라 부시와 트럼프의 이해에 더 가깝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DSA 지부는 버피 위크스와 캘리포니아 민주당 기성세력의 정치적 충성심을 묘사하기 위해 “https://buffywicks.money/”란 홈페이지 만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최근 뉴욕의 민주당 예비경선 레이스는 사회주의자가 어떤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DSA 노동운동가들의 주도로 뉴욕 주의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 금지법, 일명 “타일러 법”을 폐지하도록 압박했습니다. DSA 지지 후보인 줄리아 살라자와 신시아 닉슨이 압박을 가한 결과, 친기업 성향의 민주당 소속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뿐 아니라 이른바 진보적이라는 뉴욕시 시장 빌 드 브라시오, 심지어 공공부문 노조 지도부들까지도 금지법에 찬성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선거 레이스가 일터와 선거정치에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과 자주적 활동을 상승시키는 계급투쟁의 도구로 봉사하는 한편 민주당 연합을 공공연히 깨뜨리는 데 봉사하길 바랍니다. 노동자계급의 의식과 투쟁이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면, 조직되고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양당 체제와 그것을 유지시켜주는 강고한 노조 관료세력 모두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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