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주년 특집 ①] 미국의 젊은 세대는 왜 사회주의에 끌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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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my Osborne/AFP/Getty Images]

[창간 2주년 특집] 직접 듣는 미국 사회주의 운동

사회주의는 고양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 미국에서 그 흐름이 가장 거세다. 많은 이들은 오바마에 대한 실망, 샌더스의 대선 캠페인을 사회주의가 확산된 중요한 계기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현실 사회주의를 겪어보지 않은 반면 대공황, 실업, 부채 등 자본주의의 쓰디쓴 현실만을 경험한 20, 30대 밀레니얼 세대의 경험이 놓여 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가 “더러운 말”이다.

우리는 창간 2주년을 맞아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현황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들로부터 듣는 기회를 만들었다. 한 편의 글과 두 편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부분과 서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 등을 함께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 운동이 의거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다. 미국의 사회주의 고양은 자본주의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한국의 민중에게 중요한 교훈과 상상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사회주의다.

<차 례>

① 미국의 젊은 세대는 왜 사회주의에 끌리고 있나(남수경)

②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 회원 제레미 공과의 인터뷰

③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 대니 캐치와의 인터뷰

9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젊은 세대, 소위 밀레니얼 세대 3명 당 1명 (31%)이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라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같은 질문에 거의 절반인 48%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조짐은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부터 두드러졌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샌더스는 30세 미만 젊은이들 200만명의 표를 얻었는데, 이는 클린턴 (77만 표)과 트럼프 (83만 표)가 같은 세대에게 얻은 표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이다. 샌더스에 대한 지지는 두 자본주의 정당인 공화-민주 양당 체제에 대한 불만, 특히 지난 수십 년 간 신자유주의 정책을 앞장서 추진해 온 민주당에 대한 불만의 반영이었다.

선거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지지하는 바람은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기존 민주당 의원을 꺾고 승리한 연방 하원의원 후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와 뉴욕주 상원의원 후보 줄리아 살라자는 미국 최대의 사회주의 조직인 DSA(Democratic Socialist of America) 회원으로 11월 중간선거에서 당선이 거의 확정적이다. 연방하원 의회와 뉴욕주 상원 의회에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진출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DSA와 연관된 후보 40여 명이 11월 중간선거에 나간다.

선거 공간 밖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DSA는 2016년 대선 당시 회원이 5천 명이었는데 2년이 지난 지금 회원이 거의 5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새로 가입하는 회원들의 주를 이루면서 회원들의 중간 연령은 2013년 68세에서 2017년 33세로 대폭 줄어들었다. 민주당 내에서 선거전략을 추구하는 DSA 외에도 “국제사회주의자조직(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 ISO)”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도 성장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에 반대하는 대중의 직접적인 저항행동도 커지고 있는데, 2016년 이후 미국인 5명 중 1명은 시위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에 끌리는 이유

이렇게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규정하거나 또는 선거에서 사회주의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냉전의 종식은 서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에서 자유주의가 승리한 것이라고 『역사의 종말』에서 주장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조차 최근 인터뷰에서 사회주의가 컴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말한 사회주의는 경제 불평등의 해소와 시장에 대한 규제 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일부 수정하는 것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정치적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의 젊은이들은 사회주의에 끌리고 있는가?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말이 대중화 되는데 샌더스가 큰 역할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젊은 세대가 처한 객관적 조건이 이들에게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고민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월가와 기업의 끝없는 탐욕과 부패로 인해 2008년 발발한 최악의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위기는 노동자들의 삶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뜨렸고, 빈부격차는 가속화 되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이러한 경제위기의 시기에 성년이 된 세대이다.

1940년대에 태어난 미국인들은 자기 부모세대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확률이 92%였다. 이에 반해 198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는 단지 50%만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노동자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오늘날 미국의 젊은이들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덜 벌고, 그들의 평균 수입은 1980년대 이래 가장 낮다.

실질임금이 감소되었을 뿐 아니라 젊은 세대는 엄청난 부채에도 시달리고 있다. 18세에서 34세 사이 미국인 4명 중 3명은 부채를 지고 있는데, 이들 중 약 25%는 3만 달러(한화 약 3천 3백만 원)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다. 그 중 11%의 부채는 10만 달러(한화 약 1억 1천 만 원)가 넘는다. 1960-70년 대 대학을 다닌 베이비부머 세대는 졸업할 때 학자금 빚을 전혀 지지 않았다. 대학 학비가 지금보다 훨씬 낮았고,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학비보조를 받는 것이 지금보다 더 수월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격히 변해서 2017년 기준 학자금 대출은 1조 4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2009년 이후 두 배 증가한 액수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 일인당 평균 3만 4천 달러(한화 약 3천7백만 원)의 학자금 빚을 지게 된다.

밀레니얼 세대를 억누르고 있는 것은 학자금 대출만이 아니다. 최근에 나온 조사에 따르면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좀 더 나이가 많은 밀레니얼 세대는 일인당 평균 4만 2천 달러(한화 약 4천6백만 원)의 신용카드 빚을 지니고 있다. 신용카드 빚이 학자금 대출금 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집을 사거나 심지어 차를 사는 것도 미루고 있고, 결혼이나 아이를 낳는 것도 거의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모 세대의 아메리칸 드림이 사회적 계층의 상승이었다면, 평생을 갚아도 다 갚기 힘든 학자금 빚을 지고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힘든 젊은이들에게 부모 세대의 아메리카 드림은 신기루일 뿐이다. 이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면 죽기 전에 빚을 청산하는 것일 것이다.

최근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임금인상이 물가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 주요인이다. 예를 들면, 공립대학 등록금은 1996년에서 2016년 사이에 2배 증가했고,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은 같은 시기 4배 증가했다.

[사진: left voice]

“변화와 희망”을 말한 오바마에 대한 실망, 사회주의가 싹트는 것으로 이어져

1930년 대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 속에서 2009년 1월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그의 선거 슬로건처럼 기존 워싱턴 파워 엘리트들과는 다른 듯 보였다. 취임 초 그의 지지율은 80%가 넘었고, 그가 부시 정권의 제국주의적 “테러와의 전쟁”과 친기업 정책을 끝장낼 것이라는 대중적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집권기간 동안 기존의 제국주의 전쟁과 대외정책을 계속 이어 나갔고, 특히 취임 초부터 월가를 개혁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면서 대규모 월가 퍼주기 식의 구제금융과 규제완화 등 일관된 신자유주의적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월가점령운동의 “1%에 반대하는 99퍼센트”라는 구호가 나왔고, 부자 증세, 월가 규제, 메디케어 같은 공공의료보험의 전국민적 확대, 공립대학 무상교육 등의 요구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받게 되었다.

사실 샌더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전통적 의미의 사회주의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정책 이전 민주당이 추구하던 자유주의와 더 유사하다. 샌더스를 “정직한 뉴딜주의자”라고 한 노엄 촘스키의 말처럼 샌더스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에 대한 해법으로 제2의 뉴딜정책을 추구한다. 1940년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은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당시 위기에서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마찬가지로 샌더스 선거캠페인에 지지를 보내며 DSA에 가입한 사람들이나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 모두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과 이윤이 우선인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전면 철폐하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분명히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 지금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또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들 내에서는 사민주의부터 혁명적 사회주의까지 다양한 정치적 경향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20세기 초 미국의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의 사회당이나 냉전 시대의 공산당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기존 질서와의 결별을 뜻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냉혹한 현실과 다른 대안, 즉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실에 대한 대중의 깊은 불만이 새로운 대안에 대한 갈망으로 표출되면서 새로운 운동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급진적인 주장에 귀 기울일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그 운동의 성과가 미국 역사에서 여러 번 반복된 것처럼 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차지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첫 발은 급진화되는 대중을 조직해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이루어 내는 일일 것이다.

한개의 댓글

  1. “마찬가지로 샌더스 선거캠페인에 지지를 보내며 DSA에 가입한 사람들이나 스스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 모두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과 이윤이 우선인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전면 철폐하는 혁명적 사회주의를 분명히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 […] 하지만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기존 질서와의 결별을 뜻한다.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냉혹한 현실과 다른 대안, 즉 새로운 정치와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아무리 창간 특집이라도
    기껏해야 과거 독일 사민당 수준을 가진 미국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을
    이런 식으로 띠우시다니요…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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