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맞선 사회주의 생태운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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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ndrew McCaren/LNP/Shutterstock]

기후위기의 심각성, ‘기후위기비상행동’ 구성으로 이어지다

필자는 7월 23일 오전 그린피스 서울사무실에서 열린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한국 시민 종교 사회단체 정당 집담회”에 참석했다. 당일 집담회에는 다양한 단체에서 온 80명이 넘는 사람들이 회의실을 가득 메워 기후위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집담회에서는 9월 21일(토)에 공동행동을 진행한다는 결정과 함께 8월 7일 워크숍을 갖고 향후 계획을 논의하기로 하고 마무리되었다.

8월 7일 워크숍은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렸는데, 23일 집담회보다 훨씬 더 많은 150명 이상이 참석했다. 그 열기 또한 매우 뜨겁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참석자 발언 중에는 대략 2050년까지 인간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영으로 만드는 ‘넷 제로(net zero)’로 가려면 매년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야 하고, 이것은 ‘전시’ 상황에 다름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한 마디로, 기후위기 상황이 심각하고 기후위기에 맞선 행동을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참석자들 사이에 공유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8월 7일에 정식으로 정해진 단위 이름인 ‘기후위기비상행동’에서도 드러났다.

사실 한국에서 기후위기 문제는 지난 여러 해 동안 사회적으로나 환경운동 안에서 중요한 이슈로 잘 부각되지 못했다. 따라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이 모여 하나의 행동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요인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경고하고 기후위기에 맞선 과감한 행동에 돌입한 다양한 국제적 흐름이 등장했다.

  • 2018년 10월 인천에서 열린 제48차 IPCC 총회에서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채택되었다. 이 보고서는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급속하고 광범위하며 전례 없는 사회 모든 측면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사회주의를 앞세워서 2018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자신의 대표 정책으로 ‘녹색 뉴딜’을 내걸어 미국과 다른 여러 나라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 스웨덴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가 2018년 8월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후, 전세계 많은 청소년들이 그 영향을 받아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후파업을 단행했다. 3월 15일, 135개국에서 총 200만 명의 청소년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 영국에서는 2018년 10월 31일 사람들이 모여 영국 정부에 맞선 “반란 선언”을 발표하고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이란 단체를 결성했다. 멸종저항의 주장에 공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삽시간에 모였고, 그들은 ‘점거’와 ‘연행’이라는 매우 과감한 전술을 택했다. 4월 15일 시위 때 참가자들은 의회광장 등 런던 시내 주요 지점을 점거했다. 또한 이날부터 4월 말까지 총 1,130명의 시위 참가자들이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됐다.

이러한 기후위기에 맞선 국제적 흐름은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이를테면 위에서 언급한 집담회와 워크숍에서는 툰베리나 멸종저항 등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왔다. 특히 8월 7일 워크숍에서는 9월 21일에 발표될 “우리의 요구”에 들어갈 내용이 논의되었는데, 기획단에서 준비한 관련 자료에는 멸종저항의 요구가 예시사례로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것이 많은 이들로 하여금 기후위기비상행동에 모이도록 한 동력이 되었다. 예컨대 3월 22일자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피부로 와 닿는 기후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심각한 문제 3위에 기후변화가 올라왔고, 기후변화로 인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는 답변은 73%에 달했다. 일상생활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체감한다는 응답도 93%나 됐다. 이제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폭염과 가뭄, 한파는 한국에서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절감하기에 충분했을 터였다.

[사진: 사회주의자]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다

한편 기후위기비상행동의 구성 과정에서 필자는 기후위기에 대한 여러 인식을 접할 수 있었는데, 그 중에는 비판적으로 볼 내용들도 있었다.

툰베리는 올해 초 다보스 포럼에서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를 만들었다”는 말이 “편리한 거짓말”이고 “일부 사람들, 특히 일부 회사와 일부 의사 결정자들은 막대한 돈을 얻기 위해 돈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집담회에서는 환경운동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친자본’ 운동이 필요하다는 황당한 발언이 나왔고, 필자가 참여한 워크숍 조별토론에서는 기업에 대해 기후변화를 일으킨 직접적 책임을 묻는 것에 미온적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특히 7월 23일 집담회에서 제안 배경을 발제한 한 청년 활동가는 기후위기 문제를 ‘당사자성’이라는 키워드로 접근했는데, 필자는 이것이 기후위기에 대해 대표적으로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당사자성’은 요컨대 기후위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문제이니 모두가 자기 문제로 삼고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툰베리가 비판한 기후위기에 대한 접근방식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접근은, 기후위기의 발생 원인과 그 책임문제에 있어서 실제 책임이 있는 집단에 대한 문제제기를 희석시키고 모든 ‘시민’이 당사자니 다 같이 싸우자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그러다보면 정부, 기업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운동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하는 운동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책임 문제에 대해 이미 UN에서조차 1992년 리우 환경회의 때 “공통의 그러나 차별적 책임(Common But Differentiated Responsibilities)”을 원리를 채택했다. 즉 기후위기의 책임은 모든 이에게 동등하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서 더 나아가 인위적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모든 인간이 동등한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구체적 사실 역시 속속 드러났다.

  • 6월 29일에 발표된 UN 극빈과 인권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빈곤한 절반―35억 명―은 단 10%의 탄소만을 배출했으나 가장 부유한 10%는 절반이나 배출했다. 가장 부유한 1%에 속한 사람이 하위 10%에 있는 사람보다 175배나 더 많은 탄소를 사용한다.”
  • “CDP(탄소공개프로젝트)”라는 비영리단체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8년부터 2015년까지 배출된 탄소의 71%가 전세계 100개 기업에서 나왔다.
  • 한국의 경우에도 2016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6억9410만 톤 중 87.1%인 6억480만 톤이 에너지 생산에서, 7.4%가 산업공정에서 나왔다. 즉 에너지와 산업공정이 온실가스 배출의 94.5%를 차지하는 것이다.
  • 한편 2014년 기준 포스코, 한국남동발전, 한국동서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현대제철, 현대그린파워, 포스코에너지, 쌍용양회공업 등 국내 10개 기업이 온실가스 총배출량의 48% 가량을 배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실을 비추어보았을 때, 기후변화의 책임은 인간 모두에게 있으니, 모든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나서서 싸우자는 식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기후변화의 주범은 바로 자본주의다. IPCC에서 낸 여러 보고서는 일관되게 산업화 이후 인간의 활동이 대기 중 온실가스를 급격하게 증가시켜왔다고 말한다. 이는 기후과학자들의 과학적 연구 결과로, 이 시기는 자본주의가 역사에 본격 등장한 시기다. 자본주의가 온실가스의 대량 배출로 기후변화를 야기한 이유는 그리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한 생산을 목적으로 하고, 이를 위해 생산을 위한 생산, 축적을 위한 축적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생산체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지속시키기 위한 막대한 에너지 공급 구조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화석연료가 선택된 것이다.

이 점을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초창기 자본주의는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았기 때문에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점차 기계제 대공업으로 옮아가면서 생산에 기계가 대거 사용되기 시작했다. 맑스는 『자본론』에서 완전히 발달한 기계를 동력기, 전동장치, 도구·작업기 등 세 부분으로 나눈다. 이 중 “18세기 산업혁명의 출발점은 작업기였다”. 기계제 대공업으로 인해 인간이 작업기의 단순한 동력으로 전락하면서 “동력의 담당자가 인간의 근육이라는 사실은 벌써 우연적인 것이 되며, 바람·물·증기 등등이 그 대신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기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것을 가동시킬 더 큰 기계장치가 요구되고 그 장치는 “인간의 동력보다 더 강력한 동력을 요구”했다. 그리고 자연력이 동력으로서 인간을 대신하게 되었다.

인간을 대신하는 동력 중에는 대표적으로 말이나 바람이 있었다. 또한 “대공업의 발생지인 영국에서는 수력의 사용이 이미 매뉴팩쳐 시기에도 우세했다.” 그러나 이러한 동력은 모두 그 힘이 약하거나 통제가 어렵거나 공간적 제약이 있는 등 한계가 있었다. 그 결과 이른바 증기기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은 기계제 대공업이 성장하는 데 다음과 같은 엄청난 장점이 있었다.

그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해 그 자체의 동력을 생산하며,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이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동의 수단이며, 수차와 같이 농촌적이 아니고 도시적이며, 생산을 수차의 경우처럼 농촌에 분산시키지 않고 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그 기술의 적용이 보편적이며, 그 설치지의 선정에서 지역적 사정들에 의한 제약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자본론』 1권 제15장).

이러한 이유에서 자본주의는 산업혁명을 겪고 기계제 대공업으로 나아가면서 석탄, 그 다음에는 석유 등 화석연료를 생산의 주된 동력원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바로 지금의 기후위기를 야기하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자본주의 생산체제를 변혁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맞선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만들자

기후위기에 맞선 생태운동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자본주의 정면으로 맞서는 운동이자 그 대안으로 무제한적 이윤이 아닌 사회구성원의 지속가능한 필요 충족이 생산의 목적인 사회주의를 제시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즉 기후위기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생태운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는 이러한 급진적 목표를 추구하는 생태운동을 보기 어렵다. 여러 환경운동 단체들은 그동안 기존 체제에 포섭되는 양상을 보여 왔고 위에서 말했듯이 ‘당사자성’이란 키워드로 상징되는 기후위기 인식론 자체에도 큰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사회주의, 진보세력 안에서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생태문제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실천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비상사태’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진 지금,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실정이다.

사회주의 생태운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강조할 지점은 바로 노동자들이 이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점이다. 기후위기의 원인이 자본주의인 만큼 기후위기를 야기한 주책임자는 다름 아닌 자본가계급이다.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로 노동자와 민중에게 돌아간다. 즉 기후위기는 바로 계급문제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기후위기가 계급문제라는 생각이 이제는 상당히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제적으로 보면, 지난 3월 영국 노동당 당수 제레미 코빈은 기후파괴는 계급문제라면서 “최악의 오염, 최악의 대기질로 고통받는 것은 바로 노동자계급 공동체입니다. 자원이 고갈되어 일자리를 잃는 것은 바로 노동자계급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탈출할 때 뒤처져 있을 사람들이 바로 노동자계급입니다”라고 연설했다. 앞서 언급한 UN 극빈과 인권에 관한 보고서는 “우리는, 부자는 폭염, 기아, 갈등에서 벗어날 돈이 있지만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은 고통 받는 처지에 계속 놓일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시나리오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서도 이번 여름은 작년보다 폭염이 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의 충격을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결부지어 다루는 언론 보도가 줄지어 나왔다. 예컨대 EBS 다큐시선은 “1°C의 불평등: 폭염이라는 이름의 재난”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 방송에 나온 통영환경운동연합 지욱철 의장은 “있는 자가 내뿜는 탄소 배출이 훨씬 많을 겁니다. 그 피해를 가난한 사람들이 받고 있고요, 말 못하는 생물들이 받고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8월 5일자 MBC 기사 「그늘 하나 없는 ‘땡볕’..노동자 3백 명이 쓰러졌다」는 건설현장과 공항, 백화점 주차요원 둥 폭염에 노출된 노동자의 상황을, 8월 10일자 『미디어오늘』 기사 「폭염·번개에 공항노동자 9명 쓰러지고 1명 숨졌다」는 폭염의 위험에 노출된 공항 야외노동자들의 실태를 다뤘다. 『오마이뉴스』 역시 「옥외작업노동자의 건강, 안녕하신가요」라는 제하의 기사들을 연재했다. 이처럼 기후위기가 노동자의 노동환경에 커다란 위협을 가한다는 점은 이제 자명한 진실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기후위기의 영향에 대한 다양한 안전 대책을 정부와 자본에 요구하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 중단시키고 기후위기를 낳은 원인 자체를 제거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기후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IPCC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에 의거하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넷 제로’로 만들어야만 기후재앙을 피할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경제의 근본적 변혁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이런 때 우리는 비상한 인식과 비상한 실천이 필요하다. 사회주의 생태운동이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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