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 비결: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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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마지막 주 미국은 뉴욕 시에서 일어난 한 정치적 사건 때문에 요동쳤다. 6월 26일, 뉴욕시 14번 선거구 민주당 하원 예비경선에서 28세의 라틴계 여성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대승을 거두는 이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뉴욕시 14번 선거구는 뉴욕시 브롱크스 동부와 퀸즈 북중부 지역을 포괄하는 곳으로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이었다. 따라서 여기서는 민주당 예비경선이 곧 본선이라고 여겨진다. 이곳 현직 하원의원인 조셉 크롤리는 10번이나 당선되어 19년째 임기를 소화한 민주당 거물 정치인이다(미국 하원의원의 임기는 2년이다). 그는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중 서열 4위로 여겨졌고 11월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를 대신할 인물로 거론되고 있었다. 이런 거물 민주당 정치인을 28세의 무명 신인이 거꾸러트린 것이다.

여기서 더 주목할 점은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경선에 나와 승리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라는 사회주의 조직의 회원이고, 자신의 정치는 바로 사회주의라고 당당히 밝히고 선거에 임해 승리했다. 최근 몇 년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운동의 세가 커지고 있었다(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작년에 쓴 「세계적 사회주의 고양 흐름, 왜 한국은 아직 예외인가?」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러나 주류 정치의 심장부까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력이 진출한 것은 미국 정치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친민주당 성향의 자유주의 언론들은 대거 오카시오-코르테스의 당선 소식을 상세히 보도했다.

이쯤 되자 국내 언론에서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 소식을 타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개 오카시오-코르테스 승리가 미국에서 그렇게 큰 충격을 준 이유, 즉 ‘사회주의’에 대한 언급은 생략했다. 그동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회주의 열풍에 대해 계속 침묵하는 모습을 보인 자유주의 언론 경향신문과 한겨레21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경선 승리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언론은 이제 겨우 ‘사회주의’를 입에 담는 기사를 냈다(경향신문, 「미 민주당 중진들 꺾고 돌풍 일으킨 ‘2030 사회주의자들’」, 한겨레21, 「진격의 밀레니얼 사회주의자」).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경선 결과에 대한 국내 언론의 보도 행태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담론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보루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를 왜곡하는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 언론

오카시오-코르테스가 경선에서 승리하자 미국 지배계급의 한 축인 민주당과 자유주의 언론은 그 의미를 축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선 오카시오-코르테스 승리 원인은 그가 소수인종 여성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뉴욕주 14번 선거구는 과거 백인이 우세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백인 18.4%, 흑인 11.4%, 아시아계 16.2%, 히스패닉계 49.8%로 소수인종이 백인을 압도하는 지역이 됐다. 그래서 백인 남성인 크롤리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다나 밀뱅크가 그 대표적 논자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직접 반박을 했다. 그는 트위터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일부 사람들은 내가 ‘인구학적’ 이유로 승리했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집단의 유권자 층에서 승리했다.”

그 다음으로, 그의 승리가 정체성 정치의 유효성을 반증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뉴욕 매거진』의 에릭 레비츠는 “비록 좌익 정체성 정치가 진보적 경제 변화를 좌절시키는 데 이용될 수 있지만, 그것은 진보적 경제 변화를 진전시키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미국인은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조직 노동, 계급의식은 심하게 쇠퇴하고 있는 반면 인종, 성별, 대표성을 둘러싼 충돌이 정치의 중심에 놓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 요인을 “그녀가 자신의 메시지 대부분을 선거구민과의 정체성 기반 연결을 확립하는 데 쏟았다”는 점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아전인수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와 그 지지자들은 정체성 정치에서 벗어나 노동자계급에 기반을 둔 ‘계급 정치’를 분명하게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는 선거 직후 TV 인터뷰에서 “미국 노동자계급은 명확한 옹호자를 원한다”고 발언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저는 기업의 돈을 받지 않는, ‘모든 이를 위한 메디케어’, 연방정부 일자리 보장, 이민관세청(ICE) 폐지, 녹색 뉴딜을 옹호하는 후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이슈들을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렌즈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체성 정치’라고 쉽사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승리하자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는 그 의미를 폄하하고 나섰다. 펠로시는 경선 결과가 나온 26일 공화당 측으로부터 민주당 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가 “부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뉴욕에서 가장 진보적인 선거구에서 더 진보적으로 나간 것”이고 “그 선거구의 일”일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측 논리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요구가 사실 민주당이 원래 주장해왔던 내용이라는 것이다. 가령 이민관세청 폐지, ‘모든 이를 위한 메디케어’ 등은 확고한 민주당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사실 무근이다. 2016년 대선 경선 당시 힐러리는 이런 요구가 “절대 결코 통과될 수 없는” 정책이라고 단언했고,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카말라 해리스는 최근 입장을 수정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민관세청은 존재해야만 한다”는 입장이었다.

승리의 비결은 사회주의

이것은 모두, 한편에서는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경선 승리가 갖는 급진적 의미를 거세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단지 민주당 주류에 활력을 불어넣는 ‘젊은 피’ 수혈 정도로 그 흐름을 수렴시키려는 시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민주당 내 경선이라는 방식을 택했지만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의 근본동력은 바로 사회주의에 있었다.

2008년 대공황 이후 악화일로에 놓인 미국 노동자 민중의 처지가 사회주의가 부상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되었다. 이 속에서 자본주의는 노동자의 삶을 악화시키는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이 확산되었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 정치의 한계, 극우 민족주의 성향 트럼프의 당선을 지켜보면서 밀레니얼 세대라고 불리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받아들이는 흐름이 대거 형성되었다.

오카시오-코르테스 역시 이 흐름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태어났다. ‘현실’ 사회주의가 어땠는지 한 번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 강력했던 반공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 반면 다른 밀레니얼 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는 자본주의의 황금시기를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그가 자본주의에 대해 겪은 것은 쓰디 쓴 경험들이었다. 대공황이 터진 2008년 아버지가 사망했고, 아버지 사망 후 집안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이 해 보스턴대학에 진학한 그의 대학 생활도 경제적으로 순탄할 수 없었다. 그는 아직도 대학 때 빌린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처지는 그로 하여금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세운 버니 샌더스의 선거 운동에 결합하게 만들고,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인간 존엄의 문제였다. 그는 사회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사회주의의 의미는 기본적인 수준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대표적 자유주의 언론 『뉴욕타임즈』조차 오카시오-코르테스로 대변되는 사회주의 흐름이 “민주당 재건 작업”으로 귀결되길 바라지만,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부상하게 된 원인 자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진단한다. 「밀레니얼 사회주의자들이 오고 있다」란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산수단의 민중적 통제에 대한 이야기는 더 나이가 든 많은 민주당원들에게는 파문장과도 같다. 심지어 매우 자유주의적인 사람에게도 그렇다. 그 주장이 청년들에게는 훨씬 더 잘 먹힌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18세에서 34세 사이의 민주당원 중 61%가 사회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 대침체, 교육비 증가, 부실한 건강 보험, 직장의 불안정성 증가가 결합하여 젊은 사람들은 물질적 불안이 계속 나빠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광범위한 공산주의의 실패 기억은 그들에게 없고, 자본주의의 실패만이 그들 주변에 널려있다.

미국 주류 정치뿐 아니라 사회주의 세력들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에 주목하는 것은 그가 선거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이런 이념에 입각해 이민관세청 폐지, 연방정부 일자리 보장, ‘모든 이를 위한 메디케어’, 무상 대학교육, 주택문제 해결 등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제시하여 승리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 경제, 정치 질서를 넘어서는 대안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고, 사회주의와 같이 급진적 이념과 주장이 대중들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회주의는 “사물의 현존 상태를 철폐하는 현실 운동”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고양되면서 가장 큰 덕을 본 단체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이다. 이곳은 작년 초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회원 수의 폭발적 성장을 기록했는데, 이번에도 오카시오-코르테스 승리 직후 단 며칠 사이에 4,000명의 회원이 가입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정치 행보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한계는 바로 ‘민주당 내 좌파’ 전략이다. 그들은 민주당 내에 들어가서 일종의 사회주의 블록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전략은 1980년대 중반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가 결성된 이래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전략이고 계속 실패한 전략이다. 2016년을 전후해 회원 구성이 크게 변경되었어도 민주당을 통해 사회주의를 확대할 수 있다는 발상은 깨지지 않고 있다. 다만 내부에서는 민주당 내 좌파 전략에 대해 온도 차이는 존재한다. 가령 위에서 인용한 『뉴욕 타임즈』 기사에 따르면 펜실베니아 주의원에 당선된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회원 섬머 리는 “민주당 개조”를 주장한다. 반면 뉴욕 주의원 선거에 출마할 줄리아 살라자르는 『자코뱅』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재편은 기껏해야 기특한 2차 목표이지 제일 목표는 아니다. ……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이 기획에 많은 노력과 자원을 쏟는 것은 우둔하고 근시안적”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이들은 공히 노동자계급과 주변 공동체 이웃을 만나는 것이 민주당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현실론을 제시한다.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외부의 여러 사회주의자들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를 환영하면서도 이들의 ‘민주당 내 좌파’ 전략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레프트 보이스』의 편집자 후안 크루즈 페레는 그리스 시리자의 실패 사례를 들며,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의 전략을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수천 명의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가입을 이끈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계급 민중에게 민주당은 대안이 아니다. 지금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는 민주당 재건을 돕고 있다.” ‘국제 사회주의 조직(International Socialist Organization)’의 활동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다. 즉 “민주당은 자본가 정당이다. 이것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 규정이다. 지난 30년 동안 당이 전투적인 신자유주의를 추구한 것은 단순히 당 주류의 친자본가적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당의 재정적 기반의 문제이다. 민주당은 후원의 8-90%를 기업과 부유한 개인들에게 의존한다.”

이런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에 대한 비판은 타당한 비판이다. 그러나 오카시오-코르테스의 경선 결과에 대해 한계를 인식하면서도 그 긍정성을 강조하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수십 년 동안 사회주의가 침체 상태에 있던 미국에서 새로운 운동이 다시 올라오다 보면 과거의 낡은 내용과 새로운 급진적 내용이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향후 낡은 내용이 급진적 내용을 잡아먹는 일이 발생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급진적 내용의 강화 발전이 두드러지고, 전자와 같은 일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 게 향후 미국 사회주의 운동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필자가 보기에는 합목적적 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현실이 그것에 끼워 맞춰야 하는 이상”이 아니라 “사물의 현존 상태를 철폐하는 현실 운동”이라고 보았다.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이 발전하고 있는 모습은 바로 사회주의가 현존 상태를 철폐하는 현실 운동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사회주의에 가까워진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 사회주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사람들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심각한 모순을 절감한 사람들이다. 자기 삶을 옭죄는 자본주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점차 자본주의가 유일한 사회경제체제가 아니고, 사회주의라는 대안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그러다보니 분배 문제에 치우친,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인식에서 다소 동떨어진 사회주의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노동자 착취에 대한 주장도 점차 등장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성격에 대한 인식도 고양되고, 노동자계급과의 결합이 강조되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일은 수십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는 게 현지 사회주의자들의 평가이다. 가령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는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회원인 매트 스톤과 제레미 공은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승리한 요인으로 명확한 계급 정치를 내세운 것을 들면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에 실질적인 도전을 할 수 있는 힘과 이해를 모두 가진 유일한 사회 세력”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부에서 새로 개정한 강령을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구의 조그마한 소수가 막대한 부와 권력을 통제한다. 자본가들은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함으로서 막대한 재산을 가져가고 이 부를 정치체제와 경제를 자기 마음대로 조작하는 데 이용한다. 이것이 사회주의 정치에서 노동자계급이 중심적인 이유이다. 노동하는 민중은 사회의 막대한 다수일 뿐 아니라 그들에 대한 착취가 자본가들의 이윤이 샘솟게 하고 사회가 돌아가게 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사회를 변혁할 이해와 사회 권력, 수를 지닌 유일한 집단이다.

이러한 인식의 발전이 이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독자 정당의 필요성 앞에 멈춰있는 형국이다. 미국 사회주의 운동이 자본주의를 정말 극복하는 대안 운동으로 발전할 지는 독자적인 사회주의 정당 건설로까지 그것의 의식과 실천이 발전할 지에 달려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세계 자본주의의 패권 국가 미국에서 들리는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 소식은, 한국 노동자 민중이 처한 상황에서 볼 때 반가운 소식이다. 한국에서도 자본주의 모순이 격심해지고, 이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불만이 늘어가고 있다. 이는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 감소 양상에서도 보인다. 최근 한국 갤럽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이유의 절반 가까이가 ‘경제·민생 문제의 해결 부족’이었다. 한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필요로 하는 현실의 상태는 차고 넘친다.

앞서 말했듯이 사회주의는 “사물의 현존 상태를 철폐하는 현실 운동”이다. 이 진리를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이 이 진리를 입증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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