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낡았다고? 진정으로 낡은 건 그렇게 사고하는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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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지금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는 최근 한 목소리로 글로벌 경제위기를 경고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과잉생산 공황의 폭발을 유예시켰던 중국 경제가 가일층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세계무역액은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반면에 전 세계 부채는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상태이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기에 박근혜 정권은 구조조정과 성과연봉제 등 노동계급을 향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와 동시에 줄어들 줄 모르는 가계부채와 산업재해, 실업이 노동자민중의 삶을 잠식하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 모순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마저 풍전등화에 놓여 있다. 마치 지진으로 흔들리는 핵발전소 마냥 한국 자본주의는 위태롭기만 하다.

총체적인 위기에 보수우파들조차 자본주의의 미래를 걱정하고 나섰다. 가령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빈부격차,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 등”을 지적하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식 자본주의 시스템을 뜯어 고치자고 주장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정글 자본주의를 넘어 공생의 사회로 가야 한다며 같은 이름의 연구소까지 세웠다. 그리고 그보다 이른 2011년의 조선일보는 시장경제에만 모든 것을 내맡겨서는 지속 가능한 사회가 불가능하다며 ‘따뜻한 자본주의’를 내건 ‘자본주의 4.0’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지배계급조차 호들갑을 떨 정도로 현대 자본주의의 위기는 연일 악화되고 있다.

사회주의는 낡았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격화됨에 따라 이를 극복할 대안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다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0여 년 전,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사회주의는 낡은 이념이다.’, ‘자본주의 이외에 대안은 없다’라는 주장이 난무했었다.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는 과거의 낡은 이념에 불과하므로,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하고 일시적으로 힘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단적으로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에 버금갈 정도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2001년 IT 공황에 이어 2008년 대공황이 발생했고 공황 발생 후 10년이 다가오는데도 지금까지도 자본주의는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150여 년 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자기 자신의 모순과 위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체제의 위기에 직면하리라 보았는데, 이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래 전에 낡고, 죽은 것으로 치부되던 사회주의가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사회주의의 불모지라 여겨졌던 미국에서조차 사회주의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라 자처하는 대선후보는 물론이거니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하버드대 정치연구소(IOP)가 18∼29세 청년 3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1%가 자본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에 반해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도는 이전보다 올라갔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노동자민중의 삶이 무너져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고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는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여전히 사회주의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선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진중권이 대표적인 인물일 것이다. 그는 2010년 과거 진보신당의 당원게시판에서 마르크스를 19세기의 유물로 취급하며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때 잘 나가던 칼럼니스트 박경철 역시 경향신문에 낸 기고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들이 교정되어 왔다며 자본주의가 자기파괴적 속성을 가졌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틀렸다는 사고를 여과 없이 드러냈었다.

그나마 앞선 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는 사회주의가 낡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자본주의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빠져있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지금과 같이 상황이 절박하고 자본주의의 위기가 총체적으로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급진적인 방향으로 언어와 실천이 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국가의 구제금융이나 부조 없이는 스스로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이른바 경제구제책이라고 자본과 국가가 내놓은 대안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제는 내로라하는 자본가들조차도 자본주의가 위기에서 벗어날 방도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아예 지금 상태를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로 받아들이자고 설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낡았다’는 생각에 빠져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고 자본주의 틀 안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면 이는 사실상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자본주의에 투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낡은 것은 무엇인가?

진정으로 낡은 것은 오히려 현실에서 명백히 드러나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외면하는 것이다.

부르주아들 사이에서 격화되어 가는 경쟁과, 이 경쟁 때문에 일어나는 상업공황은 노동자의 임금을 더욱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점점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기계의 끊임없는 개선은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처지를 더욱더 불안하게 한다. … 가정, 교육, 그리고 부모와 자녀 간의 화목한 관계라는 부르주아들의 입에 발린 이야기는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가족적 유대가 대공업에 의하여 갈가리 찢겨질수록, 그리하여 아동들이 단순히 판매품이나 노동도구로 전락할수록 더욱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공산당 선언』)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1848년에 집필한 ‘공산당선언’에서처럼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민중의 삶, 임금노동자의 삶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몰락하고 있다. 고용된 노동자는 장시간의 노동과 끝없는 야근, 실질적으로 하락하는 임금에 치여 온갖 부채를 짊어진 채 삶의 모든 부분을 착취당하고 있다. 지배계급을 제외한 모든 노동자민중의 삶이 천 길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청년, 노년 할 것 없이 모두가 빈곤과 실업에 고통 받고 있는 이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자본의 도구로 치부하고 구조적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기꺼이 노예가 되길 바라는 것이 지금 우리 현실이다.

현재의 위기는 명백한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이다. 일찍이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컨대 생산력이 너무나도 확대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이 생산력이 그 속에서 운용되고 있는 사회제도[자본주의(옮김이 주)]에 대해, 견디기 어려운 질곡에 대해 반역하는 것”이라고. 지금 상황에 이보다 적절한 설명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유일하게 가능한 해결,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회질서라는 질곡으로부터 사회적 생산력을 해방시키고 실제의 생산자인 민중을 임금노예제로부터 해방시키는 사회혁명” 뿐이다.

Caution Sign - Socialism Ahead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스런 사회적 모순에서 빠져나올 길은 오직 사회주의다. 사회주의는 굳어 있는 활자도 몽상도 아니다. 사회주의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이다. 그리고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 이 세계로부터 기인한다. 국가재정을 훌쩍 넘은 가계부채와 줄어들 줄 모르는 청년실업, 전쟁의 위협 등은 자본주의 철폐가 공문구가 아닌 시대의 역사적 과제이자 동시에 사명임을 반증한다. 자본주의 체제에 가려진 항구적인 실업의 문제,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정치체제, 뿌리 깊게 박혀 이중 삼중으로 드러나는 각종의 억압과 약탈적 지대 등은 현 체제에 걷잡을 수 없는 균열을 내고 있다. 작년 11월, 백남기 열사가 민중총궐기에 있었던 이유, 그리고 10만 명의 사람들이 무기력한 현실로부터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이 세계, 자본주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는 희망이 없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항상 노동자민중의 처절한 희생과 비극을 대가로 자신의 체제를 유지해왔다. 1825년 이래 몸집을 불려온 공황이 급기야 대불황과 대공황으로 이어져 제1, 2차 제국주의 대전쟁이란 비극으로 귀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는 이전과 비교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위기가 우리 앞에 도래해 있다. 이와 같은 급박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숱하게 실패한 자본주의에 기대기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야만과 사회주의 사이의 선택만이 남아있다.

사회주의는 전혀 낡지 않았다. 또한 마르크스의 이론은 21세기에 들어서도 그 누구의 이론보다 현실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사회주의가 낡았다는 생각에 빠져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사실을 한사코 거론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사실상 자본주의 옹호론, 자본주의 수선론을 내세우기 급급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낡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낡은 사고와 패배주의, 무기력증을 걷어낼 때 비로소 운동이 전진할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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