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관점에 명확히 서 있지 못한 사회변혁노동자당의 주거문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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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는 여러 삶의 문제 중에서 주거문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다. 최근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에서는 토지국유화,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의 몰수,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주장하며 다양한 실천을 전개하고 있는데, 지난 11월 14일 홍대입구역 앞에서 열린 주거문제 제2차 선전전에서 한 발언자는 자신이 돈을 벌어 필수적인 생활비를 제하고 모두 저축을 할 경우 방 2개짜리 아파트를 159년 정도를 일해야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민중의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해야 한다는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제 주거문제는 더 이상 땜빵식, 임기응변식 정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점에 와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을 제시하고 투쟁해야 할 때인 것이다. 따라서 주거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규명하고 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러한 원인 규명과 해법 제시가 사회주의적 관점에 입각해 있어야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지금 주거문제의 상황은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해법을 유력한 대안으로 만들고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지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문제 삼아야 하고, 다주택 소유자 등 토지소유자계급과 투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주의자』 매체에서는 주거문제에 대한 여러 글들을 게재해왔고 최근에는 ‘토지국유화,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의 몰수,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과도적 요구로 제기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자세한 내용은 성두현의 「주거문제의 해결 방안, 토지국유화와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의 몰수」를 참고하기 바람). 아울러 주거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분석과 해법을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여러 사회주의 세력에서 내놓고 있는 주거문제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사회주의자라면 어떠한 입장을 제시해야 하는지가 더욱 분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주거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는 다른 사회주의 단위로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변혁노동자당은 몇 년 전부터 주거문제에 대해 기관지 『변혁정치』에 꾸준히 글을 실어왔고, 특히 학생위원회를 중심으로 2018년에는 청년주거권 쟁취 운동을 벌인 바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적극적인 입장 개진에도 불구하고 변혁당의 주거문제 입장은 잘못된 이론에 입각해 있을 뿐 아니라 토지의 사적 소유 철폐 문제에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또한 소부르주아적 토지공개념, 불로소득 환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주거문제에 있어서는 사실상 소부르주아 급진파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지대자본: 잘못된 이론에 입각한 주거문제 분석

변혁당이 잘못된 이론에 입각해 주거문제를 분석하고 있음은 ‘지대자본’이라는 용어 속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변혁정치』에서는 주거문제의 원인을 ‘지대자본’에게 돌리는 글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 이를테면, 2018년 5월 16일자 허성실의 글 「누구도 쫓겨나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권리를 위해_청년학생 공공주거 쟁취 운동에 나서자」에 따르면 “청년주거권에 대한 여러 대안이 부유하는 상황에서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주거 문제의 핵심 과제가 지대자본에 대한 통제, 즉 근본적인 시장 통제와 토지 사회화임을 밝혀왔다.”고 말한다.
  • 같은 날 게재된 백종성의 「누구도 쫓겨나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권리를 위해_정부 주거대책의 문제점」에서는 “문재인 정부 주거정책, 건설·지대자본과 투쟁없이는 공공주거도 없다”는 부제를 달고 있다.
  • 같은 해 10월 2일자 허성실의 「주택, 소유의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_첫걸음 뗀 청년주거권 쟁취 공동투쟁」에서는 “토지 소유를 통해 얻는 지대수익 또한 대중에 대한 수탈에 지나지 않기에, 지대수익 근절을 요구해야 한다. …… 따라서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지대자본의 폐기를 요구하는 대중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몇 달 전인 올해 7월 30일에 실린 고근형의 글 「혼돈의 부동산 시장: 출구는 오직, 사회주의」 글을 보면 “주택이 건설자본과 지대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상품으로 존재하는 한, 주택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글을 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변혁당에서는 ‘지대자본’을 매우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에서는 ‘지대자본’이라는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임금, 자본가의 이윤처럼, 지대라는 범주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대는 자본가와는 다른, 또 다른 지배계급인 토지소유자계급이 가져가는 소득형태다. 따라서 지대는 자본이나 이윤과는 완전히 별개의 경제적 범주인 것이다.

실제 자본주의에서 지배계급은 자본가계급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토지소유자계급 역시 지배계급의 하나다. 자본주의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이 낯설게 들릴 수 있으나, 맑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에서는 이것이 매우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맑스가 「고타 강령 초안 비판」에서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수단은 자본가계급의 독점이다”라고 기술한 고타 강령을 비판하면서, “오늘날의 사회에서 노동수단은 토지소유자(토지소유의 독점은 더구나 자본 독점의 토대이다)와 자본가의 독점이다”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토지소유자들이 토지라는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토지의 사적 소유는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는 그 성격에서 차이가 있다. 토지의 사적 소유로 인해 토지소유자는 지구의 특정 땅 조각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그에 근거해서 지대를 수취할 수 있다. 자본가는 자본을 투하하여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노동력뿐 아니라 생산수단을 구매해야 하는데, 토지는 자본가가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생산수단의 하나가 된다. 그 결과 자본가는 토지를 이용한 대가로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를 내야 한다. 이 지대는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의 일부가 분배된 것이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지대 부담은 자신의 이윤을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자본가계급은 토지소유자계급과 갈등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런 자본가계급과 토지소유자계급 사이의 갈등은 18세기, 19세기 영국의 양당 정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지대자본이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변혁당에서는 ‘지대자본’이라는 범주를 아무런 이론적 검토도 없이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변혁당의 글에서 지대자본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이론적으로 잘못된 범주를 사용하는 것은 변혁당이 자본주의에서 토지소유, 지대문제, 그리고 주거문제가 악화되는 원인에 대해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만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잘못된 실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토지소유자로 보든 지대자본으로 보든 어찌되었든 투쟁대상으로 보는 것은 다 같은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토지의 사적 소유가 여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는 다르다는 점, 토지소유자는 자본가들과도 갈등관계에 놓여있다는 점 등을 간과하여 투쟁의 성격과 의미를 잘못 해석할 수 있다. 이를테면 토지의 국유화가 그 자체로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 요구인데 마치 그것이 사회주의인 것처럼 과대평가할 수 있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공적인 소유와 통제”를 하는 것이 “사회주의 원리를 도입”하는 것으로 보는 고근형의 7월 30일자 글을 그 한 예일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토지 국유화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사회주의 요구라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민중이 겪는 주거문제의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서 그것이 과도적 요구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도적 성격은 이미 맑스나 레닌이 지적한 것인데, 예컨대 레닌은 1917년 4월말에 쓴 「농업문제 결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토지 국유화는 비록 부르주아적 조치일지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준으로 모든 비부르주아적 부속물들로부터 계급투쟁의 자유와 토지 임차의 자유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토지 국유화는 토지의 사적 소유 폐지를 의미하기에, 사실상 프롤레타리아트 당이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그러한 개혁을 촉진해야만 하는 모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일반에 강력한 일격을 가하는 것이다.”

또한 지대에 대한 잘못된 이론은 토지가격과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완전히 잘못된 설명을 낳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토지가격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로부터 역산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지대가 계속 상승하는 이유는, 토지에 대한 자본의 투하를 통해 획득된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결국에는 토지를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토지소유자들이 모두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대로부터 역산된 토지가격이 덩달아 오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주택가격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것은 사실 토지가격이다. 그런데 7월 30일자 고근형의 글은 “주택이 건설자본과 지대자본의 이윤을 보장해주는 상품으로 존재하는 한, 주택가격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말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설명이다. 또한 2018년 7월 16일자 허운의 글 「지대추구의 덫, 보유세 개편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까」는 부동산 투기가 발생하는 이유를 부동산이 상품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라고 보면서 “부동산의 가격이 끊임없이 오름으로 인해 과대해진 지대”라고 말하고 있다. 이 역시 잘못된 설명이다. 지대 상승의 원인이 마치 자본이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주택이란 상품 가격을 높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대자본이라는 허구의 범주를 내세운 이상, 이런 잘못된 설명은 불가피하고, 이로부터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날 뿐이다.

또 다른 예로, 토지가 국유화되어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가 철폐된다 하더라도 지대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지대의 유형에는 절대지대와 차액지대가 있고, 토지 국유화가 될 경우 절대지대는 사라지는 반면 비록 대폭 줄어든다 하더라도 차액지대는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지대가 모두 사라지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잘못 선동할 수도 있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지대수익 근절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사진: 뉴시스]

분명한 토지의 사적 소유 철폐, 토지국유화 입장이 없다

노동자 민중이 격심한 주거문제를 겪는 것은 한국만의 특수한 경우도 아니고, 일부 투기세력만의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에서는 지대와, 그것과 더불어 토지가격과 주택가격이 끊임없이 상승하는 경향이 발생하기 때문에 주거문제는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에서 만든 ‘주거문제의 해결방안’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따라서 토지의 사적 소유 자체를 문제 삼을 때에만 주거문제의 해법이 나올 수 있다. 특히 지배세력이 온갖 부동산 정책을 내놓아도 노동자 민중의 주거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철폐하는 토지 국유화만이 현실적인 해법으로 되고 있다. 이와 아울러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고 그로 인해 민중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는 다주택소유자에 대해서 1가구 1주택을 초과하여 소유하는 주택을 몰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변혁당 역시 주거문제 해법의 근본은 토지의 사적 소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음을 지적한다. 2018년 9월 3일자 허운의 「문재인 부동산 정책의 딜레마」는 “진짜 문제는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올해 5월 1일자 글 「AC 1년, 대안은 사회주의: ‘착한 임대인’이 해결할 수 없는 것」에서 장혜경은 “토지가 사적으로 소유하는 자산으로 남는 한, 부동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변혁당의 주거문제 관련 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토지국유화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확인하기 어렵다.

가령 앞서 인용한 2018년 5월 18일자 허성실의 글에서 ‘토지 사회화’를 언급하고 있으나 이것이 토지의 사적 소유 철폐를 의미하는 토지국유화인지는 불분명하다. 앞선 부분에서 소위 ‘지대자본’에 대한 시장 통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철폐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토지의 사적 소유에 일정한 공적 제약을 가한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같은 날짜 백종성의 글은 민중의 주거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비주거용 주택소유 통제”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소유권에 대한 직접적 공격이라는 의미로는 해설될 수는 없다. 바로 다음 문장에서 “토지·주택보유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을 사회로 환수”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다주택소유자들의 소유 주택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 단지 그들이 벌어들이는 불로소득 중 일부를 환수하여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2일자 고근형의 글 「주택, 소유의 공간에서 삶의 공간으로_집값 폭등 원인과 노동자 민중의 주거권 보장 방안」 역시 “주거권 보장을 위해서는 토지 소유를 통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나 이것도 마찬가지로 토지 국유화와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올해 5월 1일자 장혜경의 글에서는 “토지 공유제”를 주장했으나 이것 또한 토지의 사적 소유 철폐라기보다는 기업의 비업무용 토지 소유 금지 등을 통해 국가(지자체) 소유 토지 비율을 늘려 가는데 머물러있다.

한편 변혁당은 토지 국유화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토지 소유에 대한 ‘통제’라는 말은 남발하고 있다. 장혜경의 경우에도 공적으로 소유하는 토지의 활용에 대한 구성원들의 민주적 통제를 주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통제’라는 말은 단지 좋은 느낌을 주는 말로 남용되며 불분명한 입장을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토지의 사적 소유를 어떻게 해야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철폐’가 아닌 ‘통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적 소유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폐해를 줄이자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주택 소유에 대한 접근에서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주택 소유에 대해 ‘몰수’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기보다는 경우에 따라서는 다주택 소유를 금지하겠다고 하다가도 다른 경우에는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려 단지 주택에서 공적 영역을 늘려가겠다는 정도에 머무르기도 하고 있다.

소부르주아적 해법에서 맴도는 주거문제 접근법

잘못된 이론, 토지의 사적 소유 문제에 대한 불분명한 입장은 결국 주거문제 해결방안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적 관점이 아닌 소부르주아적 주거문제 해법에서 맴도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러 내용들 속에서 일관되게 확인되는 변혁당의 주장은,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관련 세금의 세율을 높이고 이를 통해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여 민중의 주거문제 해결에 사용하자는 것이다. 2018년 5월 16일자 백종성의 글은 보유세 강화, 분양원가 공개, 재건축초과이윤 환수제 등을 통해 건설자본, 지대자본의 불로소득을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4월 1일자 허운의 「주택 공시가격 인상이 ‘세금 폭탄’이라고?」는 터무니없이 낮은 부동산세를 비판하며 “시세에 따른 과세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비판한 후 공시가격의 현실화와 아울러 공공주택 확충과 “주택가격 상승으로 발생하는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했다.

올해 9월 1일자 장혜경의 글 「[보론] 집을 시장에 맡기는 한, 부동산 투기는 잡을 수 없다」는 이와 같은 생각을 집대성하고 있다. 장혜경은 “주택의 탈상품화와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그 방안으로 종합부동산세 과세 확대와 낮은 보유세율 대폭 인상, (재)개발 이익 환수 등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여(여기에 더해 연기금 투자도 거론된다) “공공토지-주택기금”을 마련하고 이 기금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입장은 이미 자유주의세력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소부르주아 세력들이 주장해온 ‘토지공개념’과 ‘불로소득 환수’와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이런 입장이 왜 잘못된 것인지는 「토지공개념,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한 대목만 인용하도록 하겠다.

토지공개념,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는 얼핏 들으면 모두 좋은 이야기처럼 들린다. 토지의 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부동산 소유자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챙긴 소득을 환수하자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는 모두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 자본주의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토지공개념의 경우 소소유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퇴보적인 관점이고,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주장의 경우 마치 지대만이 불로소득이고 이윤은 불로소득이 아닌 것 같은 환상을 조장함으로써 자본주의의 본질을 은폐한다.

이런 소부르주아적 ‘토지공개념’, ‘불로소득 환수’ 주장과 변혁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신들이 이 주장을 더 강력하게 개진한다는 것 정도이다. 이렇다 보니,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 즉 문재인 정권의 정책이 다주택소유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폭로, 비판하기 보다는, 문재인 정권의 기조는 바람직한데 그것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비판하게 된다. 예컨대 투기수요 차단, 불로소득 환수 방향은 맞지만 이에 걸맞게 부동산 세금 인상은 하지 않아 문제라는 태도인 것이다. 2018년 9월 3일자 허운의 「문제인 부동산 정책의 딜레마」는 “진짜 문제는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문재인 정권이 “실수요자가 아닌 다주택자들의 투기 소요를 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주거복지와 임대로 안정이라는 진보적 의제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자본주의 경제를 어떻게든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으로부터 오는 제한들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며 정부의 기조 자체는 “진보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변혁당의 주거문제 입장은 ‘토지공개념’과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하는 소부르주아 입장의 가장 급진적 부위를 자처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마치며

변혁당은 주거문제의 핵심이 토지의 사적 소유에 있음은 올바로 지적한다. 그러나 그 외에 모든 지점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론적으로 ‘지대자본’이란 독자적 범주 발명을 통해 자본주의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와 지대 문제 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실제 해결방안 제시에서도 토지국유화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통제’와 같은 말을 남발하며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한편, 사실상 토지공개념, 불로소득 환수를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소부르주아적 주거문제 해법을 지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주거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폐해를 제한하는 데 머무를 뿐이다. 변혁당의 주거문제 입장을 살펴본 바,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상 사회주의적 관점에 서있지 못한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다.

현재 주거문제는 노동자 민중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 있다. 사회주의자들이 주거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확립하여 노동자 민중에게 적극 알리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주의세력 스스로 잘못된 관점에서 벗어나 올바른 관점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 댓글

  1.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사회주의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대신 이상한 말을 만들어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지대자본이 무엇을 말하는지 자신들도 모를 것이다. 정치경제학을 공부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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