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신고리 5, 6호기의 틀에서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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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현황

한국에는 1975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24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고 있다(고리 1호기는 7월 19일 0시를 기점으로 운영이 영구 중지되어 폐로절차에 들어갔다). 건설 중인 핵발전소는 5기이고(신고리 4, 5, 6호기와 신한울 1, 2호기), 건설 예정인 핵발전소는 4기(신울진 3, 4호기와 천지 1, 2호기)이다. 설비용량은 2017년 1월 기준으로 23,116MW로 전체 전력생산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운전중인 핵발전소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99기), 프랑스(58기), 일본(43기), 중국(36기) 러시아(35기)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 동안 정부는 2년마다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전력생산 계획을 수립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에너지정책을 계획하고 집행해왔다. 기본계획에는 주요하게는 경제전망에 따른 전력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따른 발전소의 증설과 전력생산원(핵발전, 화력, 수력, 재생)의 비중 등 계획을 마련하며,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8차 기본계획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보면 지금까지 정부는 전력수요를 과다하게 예측하고 이에 따라 핵발전소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과거 7차 계획 수요전망 부풀려졌어”…전력수요 토론회)

재앙, 현실이 되다.

그 동안 핵발전소는 발전단가가 다른 발전에 비해 싸고, 매연과 미세먼지가 적은 친환경적인 발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 거짓이 드러나 누구나 믿는 것은 아니다(핵발전소의 거짓과 진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현실에서 핵발전소의 안전 신화가 깨진 것은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에서 쓰나미로 정전이 되면서 노심용융이 일어나고 방사능이 유출된 사고였다. 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은 그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지역주민의 이주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무대책의 상황에 처해있다. 그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후쿠시마의 진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에서도 핵발전소에 대한 시각이 180도로 바뀌었다. 지역주민들의 님비현상으로 치부되었던 투쟁들이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지역주민들의 탈핵운동도 광범한 지지를 받으며 전국적인 운동으로 확장됐다.

[사진: 에너지정의행동]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의 탈핵협약식. ‘신고리 5,6호기 백지화와 허가취소’를 약속했다.

문재인의 약속, 탈핵

지난 6월 19일, 1977년 건설된 이후 40년 동안 가동됐던 핵발전소 고리 1호기가 영구적으로 정지됐다. 탈핵운동의 역사적인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문재인은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탈핵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날 발언은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시절인 2017년 4월 14일 핵발전소 주민들과 합의한 탈핵협정문에서 명백하게 후퇴한 내용이었다.

협정문의 핵심 내용은 △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2호기 건설 (잠정)중단과 사회적 논의, △ 신고리 5, 6호기와 신울진 3, 4호기 백지화와 허가취소, △ 영덕, 삼척 핵발전소 건설 계획 백지화, △ 월성 1호기 항소 취소와 폐쇄, △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와 제2원자력연구원 건설 계획 중단(재검토), △ 대선 이후 6개월 이내 ‘(가칭) 탈핵국민위원회’를 구성하여 향후 탈핵로드맵을 논의 등 6개 항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신고리 5, 6호기는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3개월 운영 한 후 판단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다른 신규핵발전소와 기존에 가동중인 핵발전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조차 없다.

분명 문재인은 노력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즉각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협약식 서명 60일, 취임 40일 만에 스스로 약속을 깬 것이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밝힌 대로라면 문재인 정권에서 신규핵발전소가 임기 내에 고리 1호기 3배 규모의 대용량 핵발전소 5기가 추가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리 1호기의 가동중단을 공약의 연장선장에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 발표가 과연 탈핵으로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을 둘러싸고도 문재인 정권의 탈핵 정책에 대해서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어쨌든 고리 1호기의 영구정지와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잠정중단 및 공론화위원회 설치는 후보시절 6개 지역 핵발전소 지역주민들과의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여타의 약속―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한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는 상황이고,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잠정중단과 공론화위원회만으로도 찬핵 및 탈핵진영의 격론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전면적인 탈핵이 신고리 5, 6호기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가?’하는 불신과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신고리 5, 6호기를 둘러싼 찬핵/탈핵의 논란의 와중에 문재인 입에서 향후 탈핵 로드맵과 관련한 결정적인 중대 발언이 나왔다. 7월 21일 국가 재정 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에서 신고리 5, 6호기를 제외한 나머지 신규건설예정인 핵발전소(신고리 3,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의 건설을 백지화하지 않겠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문재인은 당선 전 후보와 당의 이름으로 6개 핵발전소 지역 주민들과의 탈핵약속을 철회한 것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공론화위원회의 프레임을 깨자

문재인이 왜 약속을 번복했는가가 탈핵운동에서 근본적인 변수가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탈핵운동진영의 현실 판단과 지향이다. 그 시험대가 바로 신고리 5, 6호기의 잠정적인 건설중단과 공론화위원회다. 이에 대한 판단에 따라 탈핵운동이 전진하거나 후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탈핵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85개 단체 참여)’이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탈핵운동은 중요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대부분의 탈핵운동진영은 공론화위원회 출범 전에는 전면적인 탈핵을 주장했다. 그러나 최근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가시화되면서, 이제는 몇몇 단위만 빼곤 전면적인 탈핵을 위한 행동은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모든 활동은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중단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환경운동연합, ‘안전한 세상을 위한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시민행동 발족식‘ 관련 보도자료 및 탈핵신문, 「신고리5·6호기 공론화로 전면 탈핵의 방향을 제한해선 안 된다」 참고)

7월 21일 국가 재정 전략회의 마무리 발언을 다시 언급하면, 문재인은 “신고리 5·6호기는 원래 전면 중단한다는 것이 공약이지만, 이미 공정율이 28%에 달했기 때문에 밀어붙이지 않고 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기로 합리적 선택을 내렸다”, “이미 가동에 들어간 신고리 3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 모두 수명이 60년이라며 이것만으로도 원전은 2079년까지 가동된다”라고 말했다. 즉 사실상 탈핵은 2079년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핵발전소를 계속 운영하겠다는 것이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를 전혀 교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정율 98%인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한 대만사례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당장 탈핵 로드맵을 제시하고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임기가 끝나고 아무런 권한도, 그래서 책임도 없는 58년 후인 2079년을 탈핵 약속의 시점으로 잡는 것을 어떻게 약속이라고 할 수 있을까? 탈핵진영이 요구했던 것은 ‘지금 당장!’이 아니었던가? 현재 가동중인 핵발전소에서 끊임없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7월 26일 한빛원전본부에 따르면 안전망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콘크리트방호벽에 구멍이 생기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탈핵이란 미래의 안전뿐만이 아니라 현재의 위험도 제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탈핵의 핵심은 건설중인 핵발전소를 중단하고 현재 가동중인 핵발전소의 빠른 폐로 절차에 들어가는 로드맵을 당장 실행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탈핵운동이 결정권한도 없는,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매몰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대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 중인 핵발전소 중단, 가동 중인 핵발전소 조기 폐쇄

탈핵의지가 없는 문재인이 제안한 공론화위원회는, 그 곳에 참여하고 있는 탈핵운동진영의 주관적 희망과 다르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나 최저임금위윈회에 참여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고 탈핵운동진영 스스로 검토했던 과거 탈핵운동 과정에서의 각종 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칼자루를 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정부가 만든 규칙이 적용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의지만으로 좋은 경기를 펼칠 수는 없다. 물론 정권교체는 좋은 기회일 수 있지만,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한계가 분명한 데도 공론화위원회의 성공이 아니면 탈핵의 기회가 사라질 것이라는 조급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다. 결국 정부, 여당이 전면적인 탈핵이 아니라 신고리 5, 6호기와 노후 핵발전소를 맞바꾸겠다는 계획을 드러낸 상황에서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의 명분을 만들어주는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탈핵진영이 애초 외쳤던 것은 ‘지금 당장, 전면적인 탈핵’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사드배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던 문재인 정권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기회가 왔다는 듯 사드 추가배치를 서둘러 결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바라보는 시선,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탈핵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매우 주관적이며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문재인 정권은 탈핵 약속을 파기했는데도,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탈핵진영이 참여하는 것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건설 중인 핵발전소는 모두 중단하고, 가동 중인 핵발전소도 조기에 폐쇄하자’는 애초의 주장 그대로, 탈핵의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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