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시정명령 발부, 본격적인 싸움에 들어선 현중 서진이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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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서진이엔지 노동자들

현대건설기계의 사내하청업체 서진이엔지 노동자들의 위장폐업과 해고에 맞선 투쟁이 수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작년 7월 24일 노사협의회에서 기습적인 폐업 통보를 받으며 집단 해고된 노동자들은 7월 30일부터 현대건설기계의 모기업 현대중공업의 정문 앞에 천막을 치고 선전전과 출입투쟁 등 다양한 투쟁들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서진 노동자들은 8월 18일 울산 노동청에 현대건설기계에 대한 불법파견 진정서를 넣고, 10월 26일부터는 울산 노동청 앞에서 현대건설기계에 대한 수사와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 결과로 지난 12월 23일, 마침내 노동부는 원청 현대건설기계가 불법파견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대건설기계에 2021년 1월 28일까지 서진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명백한 불법파견, 배 째라는 자본

노동부가 불법파견 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일단 서진 노동자들의 가열찬 투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본부’라 불릴 정도로 자본에 편파적이었던 노동부가 보기에도 노골적인 불법파견이었던 탓이다.

원청 현대건설기계는 지금까지 서진이엔지에 작업표준서와 작업제작계획서를 직접 넘기며 업무를 지시해왔고, 원·하청이 함께 공유하는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직접 업무실적을 보고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현대건설기계는 서진 노동자들의 시업·종업시간은 물론 휴게시간, 연장 및 야간작업과 교대제 운영 등 노동시간 편성과 작업 배치 등에 직접 개입해왔고 직무교육과 훈련 뿐 아니라 휴가 사용이나 지각 등 근태 또한 직접 관리해왔다. 현대건설기계 정규직 노동자들과 서진 노동자들은 같은 공간에 뒤섞여 일해 왔으며, 직영과 하청의 업무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게다가 도급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업무를 서진 노동자들이 떠맡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러한 증거들은 서진 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현대건설기계의 지휘를 받는 노동자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제조업종의 직접생산공정에는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는 파견법의 조항을 원청은 노골적으로 위반해왔고, 정부는 이를 묵인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 이상 이를 노동부가 묵인할 수 없도록 압박했다. 결국 노동부는 현대건설기계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고용 시정명령이 내려진 후, 노동조합은 1월 5일과 1월 8일, 두 차례에 걸쳐 직접고용 이행계획에 대해 묻는 공문을 현대건설기계로 보냈다. 그러나 현대건설기계는 시정명령서에 명시된 기한이 다가오는 현 시점까지도 ‘시정지시서를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말 외에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자본이 말하는 ‘면밀히 검토 중’이라는 말은 ‘이행 계획 없음’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정 못하니 배 째라”는 의미의 침묵인 셈이다.

자본이 일단 버티고 보는 이유―나쁜 선례를 만들 수 없다!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하청업체 대표가 “나를 구속해도 좋다”며 현대중공업의 불법파견을 폭로한 적도 있었다. 모든 일이 원청의 지시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노동부의 실태조사 결과는 “작업계획도, 인력수급도, 노동시간 조정도 하청업체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며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또한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 협력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에 근로자확인 소송을 냈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수시로 ‘직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원청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정에 투입됐으며 원청 조장이나 반장들의 작업지시를 받아왔으며, 작업인원과 휴일근무자 등을 원청이 직접 관리했다. 설계도와 작업표준서, 요령지시 또한 원청에서 내려왔으며 전기·용접 장비나 용접봉 등도 원청에서 제공되어왔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해 있었던 1심에 이어 올해 1월에 진행된 2심 모두 “조선 업종의 특성상 불법파견으로 볼 수 없다”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렸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던 홍길동처럼 하청 노동자들도 진짜 사장을 진짜 사장이라 부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이행명령이 떨어졌다. 지금까지는 증거를 은폐하거나, 대형 로펌의 힘을 빌려 어떻게든 막아왔던 것이 뚫린 것이다. 일반상식으로 보았을 때는 직접고용 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기계는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자체가 계획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자본이 이토록 침묵으로 일관하는 까닭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직접고용만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심산에서다. 직접고용을 수용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수많은 하청 노동자들에게 “뭉치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감 부족’을 핑계로 현대건설기계가 위장폐업과 집단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자본은 해당 공정에 정규직을 투입시키는 인소싱을 시도했고, 서진 노동자들이 하던 공정의 일부를 외주화로 돌렸다. 애초에 폐업과 집단 해고는 “개기면 이렇게 된다”는 식의 본보기였다.(이에 관해서는 박준규 동지의 글 「서진이엔지 하청노동자들, 현중자본의 노골적 탄압에 맞서다」를 참고하라.) 서진 노동자들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무시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우후죽순 올라올 노동자 단결의 싹을 미리 밟아버리려는 것이다.

사실 자본이 노동부의 명령이나 법원의 판결을 받고서도 불법파견을 시정하지 않고 일단 버티고 보는 행태는 이미 자본가들에게 있어서는 오래된 관행이었다.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한국지엠, 아사히글라스 같은 사업장들의 경우가 이러한 자본의 행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과태료를 얼마를 물든, 변호사 수임료로 얼마가 들든 자본이 일단 버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더 싸게 먹히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무한정 쥐어짜다 손쉽게 버릴 수 있는 방식을 자본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버티며 시간 끄는 낡은 관행은 자본주의 착취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사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현중사내하청지회는 1월 19일부터 현대건설기계 본관 농성에 돌입했다.]

낡은 관행을 깰 제대로 된 한방이 필요하다

서진 노동자들은 정규직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해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일해 왔다. 기나긴 시간 동안 이어진 착취의 사슬은 역설적으로 서진 노동자들을 단결하게 만들었다.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의 50퍼센트 이상이 노동조합에 집단 가입한 것이다. 여성 노동자가 사용할 탈의실도 한 칸 없었던, 5년이고 10년이고 일해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핏하면 무급휴업에 내몰리는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투쟁에 나선 서진 노동자들은 위장폐업과 해고, 사측의 광기어린 폭력탄압과 증거은폐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을 이끌어냈다. 굳건한 투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다린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서진 노동자들은 알고 있다. 서진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고철TV’에 게시된 동영상에서는 “회사가 벌금 몇 십억이 무서워서 불법파견 인정할거였으면 애초에 우릴 자르지도 않았다.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하는 것을 회사가 대놓고 견제한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노보에 따르면 원청의 비용절감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의 복리후생과 노동조건이 2004년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만성적인 임금체불과 4대보험 체납,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산업재해 속에서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진 노동자들의 승리가 가져올 여파를 자본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자본의 이윤추구만을 위해 존재하는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절망의 구조에 붙은 불을 끄겠다는 심산으로 자본은 지루한 법정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도화선을 밟기는커녕 기름을 붓는 행위가 되고 있다.

1월 14일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현대중공업지부와 사내하청지회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개기고 보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더욱 강력한 투쟁을 예고했다. 그리고 1월 19일 아침 출근투쟁 이후 현대건설기계 본관에서 서진 노동자들이 농성에 돌입했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서진 노동자들의 투쟁 2라운드, 강력한 한 방을 날릴 수 있는 단결과 연대의 힘을 키워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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