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의 사드배치 철회투쟁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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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회]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서는 상주 사드배치를 반드시 반대해야 합니다. 사드배치 반대는 사회주의자 역시 적극 함께 해야할 민주적 요구입니다. 『사회주의자』는 그동안 진행된 사드배치 반대투쟁의 소식을 알리고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에 연대하고자, “성주의 사드배치 철회투쟁과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게재합니다.

이 문제는 제법 오래전부터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2014년 대통령 박근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대박’이라는 말을 꺼내기 이전일 것이다. 2014년 물밑에서 정부와 정치권을 떠돌던 사드에 관한 이야기가 2015년 2월 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 참석한 한민구 국방장관의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 아래 사드배치에 대한 입장이 정리되었다. 같은 해 3월 12일 유승민의 사드 강행에 대한 입장에 대해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소위 ‘3NO’, 즉 요청·협의·결정이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 했다. 하지만 3월 19일 사드배치 후보지가 대구로 잠정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결국 4월 15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의 배치를 부정하는 발언을 통해 논란은 일단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던 것이 2016년 대통령 박근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드배치는 우리의 안보와 국익에 따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히며 사드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어서 1월 21일,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미국의 국방부에 사드의 한국배치를 공개적으로 권고하게 된다.

이렇게 사드의 한국배치가 물위로 올라오고 그 배치에 대한 적극적 상황의 전개는 2016년 1월 6일에 실시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더하여 2월 7일 사거리 12,000km가 되는 북한의 광명성 4호가 발사되자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사드배치를 고려중이라는 입장을 밝히게 된다. 이런 북한의 움직임이 사드를 배치하게 만드는 어떤 원인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남한을 위한 배치의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사드가 북한의 핵에 대한 사드 방어체계의 효용성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과 북한의 여러 가지 무기체계에 비추어 보아도 남한의 방어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7월 11일 중앙일보에 미군이 사드를 후방에 배치하기를 원한다는 군 관계자와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는 사드배치의 성격이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날 언론에 사드배치 최적지가 성주의 성산포대라는 것이 보도되었다.

촛불집회의 시작

발표 하루 전 12일, 김항곤 군수는 ‘사드배치반대 범군민비상대책회의’를 발족시키고 배재만 군의장, 이재복 노인회장과 함께 군청 현관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 이 소식을 듣고 주민들이 군청마당으로 모여들었고, 공무원들이 촛불과 종이컵을 나누어주면서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7월 13일 공식적으로 한·미 국방부에 의해 사드배치지역이 성주로 발표되었다. 긴급하게 ‘사드성주배치반대 범군민궐기대회’가 성주의 성밖숲에서 열리게 된다. 예상보다 많은 5,000여명의 군민들이 참여를 하게 되었고, 집회 후 군청마당에 삼삼오오 모여든 주민들과 마이크를 잡은 농민회 회장 이재동 씨에 의해 500명이 참여한 1일차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성주읍의 코앞인 성산에 배치되는 사드의 전자파에 대한 우려가 이 시기 주민들을 모이게 했다. 전자파의 문제는 주민들의 건강뿐만이 아니라 부동산가치의 하락으로 인한 재산권의 침해와도 밀접히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또한 성주의 주요 농산물인 ‘성주참외’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는 사안이기도 하다. 전자파 문제는 이렇듯 주민들을 투쟁으로 끌어들인 삶과 밀접한 사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드문제를 국지화시켜 주민의 반발을 소위 ‘님비’로 몰아가려는 정부의 노림수도 숨어있다고 할 수 있다.

성주는 참외 농사를 통해 제법 괜찮은 농가소득이 유지되는 지역이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부모의 농사를 이어받아, 아니면 귀농을 통해 살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80년대 이후 민주주의 투쟁의 경험을 가진 이들 또한 제법 섞여 있으며, 가까운 대구의 공업지역인 성서와 연관되어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농민회 또한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건재한 지역이다.

이래저래 많은 이들이 현실의 사회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살아가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의 존재는 분명 투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제주의 강정과 청도와 밀양에서 기나긴 주민투쟁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으며 이런 경험들은 성주의 사드배치 철회투쟁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다.

변화하는 투쟁의 흐름

첫날의 촛불이 끝나갈 무렵 가천면에 사는 배윤호(현 투쟁위 공동위원장) 씨는 “지금 우리는 성주에 사드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사랑스러운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는 연설을 통해 이후 싸움 내용이 전환될 불씨를 주민들에게 심어놓게 된다.

7월 14일 매일신문에 성주군수와 군의장 명의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것은 대구공항과 K2공군기지의 통합공항을 성주로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관제데모 이후 그 동력을 가지고 정부로부터 지역발전 사업을 요구하려던 지자체 선출직들의 계획이 분명히 드러난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그들은 사드를 끝까지 반대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정부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이미 그런 계획을 입안해 놓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발전에 대한 선물을 통해 주민들의 분노를 돌려놓으려는 시도를 진행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7월 14일 촛불집회에서 대가에서 사는 박수규 씨(현 투쟁위 상황실장)가 군수와 군의원에게 매일신문 인터뷰 기사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미 촛불의 주민은 1,500명 이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촛불에 모인 주민들은 이 요구에 강하게 동조하고 나섰고 군수와 군의장이 나와 분명히 해명할 것을 외쳤다. 성난 주민들의 항의는 군수와 군의장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계획을 숨기도록 만들었고 사드가 철회될 때 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발언을 이끌어 내도록 하였다.

‘먹거리 나눔방’이라는 성주의 여성들 300여명이 참가하고 있던 카카오톡 대화방에 누군가가 사드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고 하루 만에 카카오톡 대화방 최대인원인 1318명이 모두 차버렸다. 이 방의 이름은 ‘1318+’가 되었다.

7월 15일 국무총리 황교안과 국방부장관 한민구가 성주에 내려왔다. 이것은 행정절차상 주민설명회를 위한 요식적인 자리를 위한 것이었던 것 같다. 학교 등교를 거부한 800여명의 학생들도 이날 집회에 참여를 하였다. 총리의 발언이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아 물병과 달걀이 날라들었다. 달려드는 주민들을 경호원들은 몸으로 막기에 급급했다. 이들은 주민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군청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 “여기 총리가 도망간다”는 소리가 들렸으며 순 십간에 달려든 주민들은 총리일행이 탄 버스를 막아섰다. 총리일행의 차량은 6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이후 성산포대에 도착해 있는 헬기로 도망치듯 가던 총리차량은 또다시 주민의 차량에 의해 막히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정부의 공세와 대응

이 사건을 계기로 투쟁을 갈라 치려는 정부의 공세가 시작됐다. 집회를 앞장서서 진행하던 이들을 외부세력, 종북주의자, 전문 시위꾼으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에서 보도된 외부세력이라고 하는 이들이 모두 성주에 주소지를 둔 주민이었다. 이런 정부의 공세가 적어도 성주주민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사드배치 발표 3일 후 대책위는 ‘성주사드배치 철회투쟁위원회’로 이름과 조직을 개편하게 된다. 관 주도로 구성된 대책위 33명중 10명의 ‘소신파’가 참여를 하게 된다. 이들은 사회운동의 경험이 있는 일부사람과 성주지역의 젊은 주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금까지 사드배치철회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부의 갈라치기는 가볍게 정리되어 버렸다. 투쟁위를 통해 사드를 반대하는 이는 ‘내부’로 사드를 찬성하는 이는 ‘외부’로 정리한 것이 그것이다. 주민들의 거센 항의에 놀란 때문인지 총리와 국방장관은 감금이 아니라며 한 발 물러섰다.

투쟁은 전자파 문제에서 발화된 ‘성주사드배치철회’로 시작해서, 정부의 ‘님비’ 공격이 시작될 무렵 평화문제를 옮기면서 ‘한반도 사드배치철회’로 옮겨갔다. 이후 주민의 생존권과 관련된 구호와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슬로건의 탄력적 변화를 통해 투쟁은 움직여 나가고 있다. 님비가 아니라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는 님비라고, 님비여서 어쩔 것이냐며 정부의 공세를 해체시키며 무력화시켜 버렸다. 이런 투쟁의 자세는 이후 소위 ‘성주군수의 막말파동’에서도 그대로 관철된다. “술집하고 다방하는 것들”이라는 발언에 대해 우리는 그런 이들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술집하고 다방하면 어쩌라고, 너희 월급을 우리들이 술집하고 다방해서 주는 것이다”라고 받아버렸다. 이는 군수의 개인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군수의 측근들 사이에서 이미 똑같은 내용으로 떠돌던 이야기이다. 이런 마타도어를 통해 촛불의 주민들을 갈라놓으려는 계획 속에서 막말파동이 진행된 것으로 보이나 오히려 이는 성주군수의 정치생명을 끊어놓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7월 21일 서울상경집회가 서울역에서 열렸다. 누군가 제안한 파란색의 평화나비가 이 집회에 내부인과 외부인을 구분하는 비표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서울역 집회는 매우 평화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집회의 평화적인 부분이 언론에 부각되고 회자되며 오히려 정부에 의한 성주투쟁의 탄압 근거가 사라지게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908명의 삭발이 있었던 사드배치철회 평화촉구결의대회가 8월 15일 성밖숲에서 8,000여명이 모여 진행되었다. 1318+ 카톡방에서 삭발투쟁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삭발, 단식, 혈서 같은 투쟁이 폭력이 내부로 향하게 되는 패배주의적인 자학적 투쟁이기 때문이며 머리를 깍은 이들과 머리를 깍지 않은 이들을 분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 동에서 동원된 삭발자들과 자발적 삭발자들은 머리를 깎았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하며 삭발행사의 의미는 끝나버렸다. 단식자들, 혈서 쓴 이들 모두가 3부지 찬성자들이 되어버렸다. 동원된 삭발자들 중 많은 이들이 또한 그러하다.

소위 3부지건의와 그 이후

소위 ‘제3부지’ 건의는 성주투쟁위에서는 공식적으로 무효라고 선언되었지만, 언론에서는 투쟁위가 공식적으로 건의했다고 보도가 나가 버렸다. 정부에 의해 족쇄가 채워진 언론들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 사드투쟁을 둘러싼 언론들의 모습이다.

8월 22일 군수와 3명의 투쟁위원들이 제3부지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이는 사드배치의 행정절차상 주민들이 공식적으로 건의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요건을 갖추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성주군 내에는 제3부지와 관련된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성주군의 공무원이 대구의 한 현수막업체에서 90개를 주문하여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게시의 명의는 ‘제3부지 추진위회’이다.

아마도 군수는 제3부지를 제안하고 이런 명칭의 단체를 발족시키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을 지지하는 주민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제3부지 건의를 위해 성주군의 각 동장들이 모인 이장 상록회를 동원하려고 했으나 반발로 동원하지 못했다. 이는 여전히 성주의 민심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현재 투쟁의 주체들이 제3부지를 용인하는 사람들을 적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투쟁위의 유연한 대응으로 적대와 분리를 통해 세력화하는 것이 차단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피로감 때문에 3부지 이야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여전히 사드가 철회되는 것이 더 좋다는 민심이 지역의 저변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김천의 인접지역인 롯데 골프장이 김천지역과 그곳에 원불교의 성지인 2대 정산종사의 탄생지가 있음으로 인하여 투쟁이 확장되어 버린 상태이다.

사드배치를 받아들여 정부의 발전사업을 유치하려던 성주군수와 일부 사드 찬성론자들의 계획은, 사드가 배치되더라도 정부의 선물이 김천으로 갈 것이라는 점과 경북의 모든 지역이 반대하는 비행장 유치는 오히려 또 다른 투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 지하철 성주연장은 연간 약40~100억의 적자가 발생하는 사업으로 이 적자를 성주군이 물어줄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가능성이 없다.

‘제3부지’ 찬성론자들은 투쟁위의 해체를 선언하며 떠나버렸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촛불대표’를 선출하고 ‘촛불지킴단’을 모집하고 있던 촛불투쟁의 주체들은 투쟁위를 개편하며 제2기 투쟁위를 발족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주의 주민들은 “투쟁은 즐겁게, 신나게, 끈질기게, 건강하게”라고 외치며 민주적인 삶을 경험하고 있다. 정부의 공세가 강해지면 그 다음날 집회장에 사람들이 더욱 많이 모인다. 마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꼭 촛불에 나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 같다. 성주의 주민들은 촛불집회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경험하고 그것을 몸에 차곡차곡 쌓아놓는다. 몸으로 익힌 것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사드이후 성주를 변화시키는 또 다른 잠재력이 될 것이다.

투쟁 100, 민주주의 100

이제 어느덧 100일이 되어버렸다. “사드배치철회 투쟁 100일이 기념할 만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 있기는 하지만 성주주민의 민주주의 100일 이라면 기념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사드배치 철회투쟁은 지금까지 있어온 그 어떤 투쟁보다 무거운 무게를 가지는 투쟁이다. 단순한 정부의 정책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미·일·한 군사동맹체제, 권력의 연장을 노리는 박근혜정부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미국의 북한 핵시설과 핵무기에 대한 대응과도 관계되어 있다.

3차 핵실험 후 ‘통일대박’이야기와 사드배치 문제가 언급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4차 핵실험 이후 사드배치 문제가 공식적으로 언급되고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무기를 팔아먹고 그것을 사들이기 위한 미국과 한국정부의 사드배치 명분이 되었건, 아니면 실제로 오키나와와 괌을 보호하기 위한 전진배치모드의 레이더이건 간에, 북한의 핵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또한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이후를 대비한 방어무기체계라는 점을 배제하지 않는다면 사드를 둘러싼 한반도 전쟁의 위기와 핵과 관련된 위험성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의 사드배치 일정에 어깃장을 놓았다고 판단되는 북한의 5차 핵실험은 또 다른 변수를 가져다주고 있다. 매우 많은 차원의 방정식을 푸는 것과도 같지만 그것은 외부적 요인들이며 우연적 요소들로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힘의 관계들은 어느 한 가지 요소에 의해 다른 부분들마저도 변화시켜 버린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 투쟁은 단순하다.

우연인지 아니면 그런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투쟁의 상징을 평화나비라 불렀다. 우리가 일으키는 날개 짓이 다른 요소들과 만나며 태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의미이며 또한 투쟁을 통한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투쟁의 긴 시간은, 처음 분노를 통해 투쟁에 나섰던 이들로 하여금 이길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를 들도록 만든다. 이 회의는 슬픔과 불안, 공포를 강화시키며 투쟁에서 개별화되며 떨어져 나가도록 만든다.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일은 이런 ‘슬픔의 감응’을 이기는 ‘기쁨의 감응’을 투쟁을 통해 유지하고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공감하고 그것을 통해 신명, 기쁨, 즐거움 등의 감정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주민의 투쟁은 이것을 통해 유지되고 확장된다.

최근 ‘선제타격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것은 역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존재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성주와 김천, 원불교가 연대하고 전국의 모든 도시들과 세계의 평화주의자들이 연대하여 투쟁한다면 승리의 가능성이 점점 커져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매일 벌이는 민주주의의 잔치를 통해 성주의 주민들은 이미 항상 승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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