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퇴진으로 내몬 근본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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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自由魂

뜨거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시작된 민중의 거대한 투쟁은 한 달 여의 시간이 지났지만 전혀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광장의 투쟁은 더 거세가 타오르며 전진하고 있다. 이제 퇴진 투쟁은 9일 탄핵 소추라는 중요한 고비를 앞두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글은 이런 거대한 퇴진 투쟁의 힘이 어디서 나오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무엇보다 현 정세의 근본동력이 민중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세월호 참사와 대통령 부적격자 박근혜

박근혜 퇴진투쟁을 촉발한 근본동력은 일차적으로 박근혜 자신이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글은 세월호 참사로 시작하고자 한다. 원래부터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박근혜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로 박근혜의 집권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수구언론과 재벌, 새누리당, 지역주의와 같은 한국사회의 가장 후진적이고 반동적인 요소들이 박근혜라는 괴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전혀 자격이 없다는 게 명백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진도 팽목항 부근에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304명이 사망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국가의 기본적 기능조차 전혀 수행하지 않는 박근혜 정권의 추악한 본모습을 만인에게 폭로하였다. 특히 당시 국가의 중요 재난에 대처해야 할 최종 책임자인 대통령이 7시간 동안이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이것 자체만으로도 대통령 직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사안이고, 책임자로서 반드시 무겁게 처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안이다. 이미 이때 박근혜는 대통령 자격을 상실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일보 등 수구세력은 ‘세월호가 지겹다’식의 주장을 퍼트리면서 박근혜 정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다. 11월 6일 JTBC의 보도를 통해 밝혀졌듯이,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 두 달 후 대통령 보고용으로 작성한 문건에서 세월호 참사를 “여객선 사고”라고 칭하며 폄훼하는 작태를 보였고, “비판세력이 여객선 사고를 빌미로 투쟁을 재점화하려는 기도를 제어해야 한다”는 대응책을 제시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무능과 파렴치한 행위로 대중들 속에서 퇴진요구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통치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역할이 컸다. 당시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을 쟁점화하며 공격하는 태도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치 자신들이 여당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월호 문제가 더 커지지 않도록 무마하는 역할을 하였다. 가령 김한길은 박근혜의 사과같지 않은 사과에 대해 국민들에게 대통령의 사과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고, 안철수는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결국 세월호 참사 직후에 이루어진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사실상 승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그 후 연이은 재보궐선거에서도 새누리당이 승리하였다. 이렇게 사필귀정이 부정된 상황은 박근혜 정권과 그 지지세력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순간의 왜곡이었을 뿐이었고 역사는 결국 사필귀정으로 나아갔다.

퇴진투쟁이 촉발되는 데 일조한 지배계급 내부의 투쟁

4월 13일 총선 전까지 대부분의 예측은 새누리당의 압승이었다. 박근혜는 의기양양하게 ‘국회심판’을 부르짖었고, 심지어 개헌이 가능한 2/3석 이상을 휩쓸거라는 예상에 여러 자유주의 및 진보 인사들은 전전긍긍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런 예측은 완전히 엇나갔다. 선거기간 동안 이미 이상한 낌새를 느낀 대구권 새누리당 후보들은 무릎을 꿇으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했다. 결과는 새누리당의 완패였다

선거 결과는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새누리당과 박근혜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판단을 명백히 드러냈다. 그러나 박근혜는 이미 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으로 정치적 운신 폭이 좁아진 상황에서도 오만과 불통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주도권을 전혀 놓으려 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은 한편으로는 모험적 대북정책으로 수구세력을 결집하고 미제국주의의 지지를 등에 업으려고 하였다. 7월 사드배치가 전격적으로 결정되고, 10월 1일에는 북한 군인과 주민의 탈북을 권유하는 박근혜의 도발적 연설이 있었다. 박근혜 정권이 2017년 즈음 위험천만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도 점쳐졌다. 다른 한편으로 박근혜 정권은 사정을 통해 지배계급 내 반대세력을 억누르려 했다. 여기서 우병우가 핵심이었다. 박근혜는 우병우를 앞세워 검찰, 국정원 등 사정라인을 장악하고 이미 선거 전부터 재벌들에 대한 검찰수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선거 패배 이후에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정의 칼날을 휘두르려고 했다.

총선 이후 박근혜 정권의 태도는 지배계급 내 수구세력 사이의 갈등과 충돌로 이어졌다. 박근혜의 변함없는 통치방식에 수구언론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선거 패배로 민심이 확인되었는데도 박근혜 정권이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고 만용을 부리며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면, 자칫 수구세력이 모두 망하고 권력을 야당에게 넘겨주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수구언론은 박근혜의 독선과 불통이 선거패배의 원인이라고 규정하고, 박근혜가 선거 패배와 여소야대 상황을 인정하면서 국정기조를 변화시키길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4월 19일 사설에서 “여당의 패배에 대한 어떤 형태의 책임 인정과 반성도 없었고 야당과 대화하겠다는 의지도 부족했다”고 박근혜의 선거 이후 발언을 비판하며, “식물 대통령”이 안되려면 “야당을 국정 운영의 공동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대통령이 직접 야당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 적극 설득하고 양보할 건 할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아울러 조선일보가 선거 이후 일관되게 주장한 것이 바로 친박 계파 청산이었다. 친박을 수구세력 중 가장 문제가 되고 정권 재창출에 장애물이 된 세력으로 보고 이들을 배제해가려고 했던 것이다.

박근혜는 조선일보의 주장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고 이전처럼 불통 행보를 계속했다. 그러자 조선일보가 박근혜 정권의 핵심인 우병우의 비리를 폭로하며 우병우의 사퇴를 요구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조선일보가 박근혜와 완전히 근본적 단절을 하려 했다기보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박근혜를 무력화시키려고 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박근혜는 우병우의 비리가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도 이를 단지 정치공세로 치부했고, 조선일보를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부르고 조선일보 주필의 비리를 폭로하며 반격했다. 우병우는 살았고 조선일보는 패했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지배계급 내부의 투쟁은 정권의 추문을 민중 앞에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사람들로 하여금 정권이 갈 때까지 간 구제불능의 상태라는 점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우병우 비리사건은 지나가는 듯 했지만, 더블K·미르재단 문제가 터지고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만만찮고, 언론에서 계속 보도되자 박근혜는 이를 돌파하기 위해 10월 24일 국회연설에서 개헌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바로 그 날 박근혜에 결정타를 먹인 JTBC의 보도가 나왔다. JTBC는 박근혜의 연설문이 담긴 태블릿 PC 공개를 통해 최순실이 국정에 개입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했다. 비정상적 국정운영이 드러나고 그동안의 해명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게 밝혀지자, 박근혜 퇴진요구가 대중들로부터 들불처럼 번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중, 박근혜 퇴진투쟁의 가장 핵심적 근본동력

JTBC 보도가 있은 후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대중시위가 전면화되었다. 10월 29일 첫 집회가 열렸다. 3만 명의 인파가 모였지만, 기세가 만만찮았다. ‘이게 나라랴’, ‘민주공화국’과 같이 국가에 대한 환상을 품은 구호들이 주를 이루기도 했지만,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박근혜는 이미 끝났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처럼 밝고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세의 변화는 경찰의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경찰들은 명확한 방침이 없는 것처럼 우왕좌왕했고, 집회 참가자들은 쉽사리 광화문 광장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 날의 집회는 이후의 사태전개를 예견케 하는 집회였다.

그 후 11월 5일 20만이 참여하는 두 번째 집회가 개최되었고, 11월 12일에는 100만이 넘는 87년 이후 최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는 정말로 ‘민중’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11월 19일에는 100만이 참여했고 26일 집회는 다시 190만이 참여했다. 그사이 박근혜가 3차 담화를 발표하여 국회에 사퇴일정을 떠넘기며 여야를 분열시키려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12월 3일 집회에는 232만이 참여하여 확고한 민중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민중의 거대한 투쟁과 확고한 퇴진 요구는 어떻게 등장한 것일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선 박근혜의 존재 자체가 그 일차적으로 이유일 것이다. 지배계급 내 분파들 사이의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정권의 비리와 난맥상, 불통 등도 이 상황에 이르는 데 작지 않은 역할을 했다. 최순실의 비선개입과 재벌과의 유착, 이를 폭로한 JTBC의 역할 역시 작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부싯돌 역할을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불이 붙을만한 불쏘시개가 널려 있었기에 이러한 거대한 민중의 흐름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불만 이면에는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던 심각한 삶의 조건 악화가 놓여 있었다. 그전부터 악화되어 있던 노동자 민중의 삶은 박근혜 정권 등장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몇 가지 수치로 예를 들어보자. 지난 10년간 출산 장려를 위해 80조를 투여했지만 출산률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심지어 같은 기간 동안 고소득층의 출산은 늘고 저소득층의 출산은 주는 출산양극화까지 일어났다. 청년고용율 70%를 공약으로 내건 박근혜 정권 하에서 청년실업은 10.9%로 사상 최대에 이르렀다. 빚내서 집사라는 주택정책으로 빚쟁이는 늘고, 전월세의 급상승으로 주거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소득불평등이 미국 다음으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의 진전 속에서 노인빈곤율 역시 48%로 심각하다. 수치는 실제 삶을 그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수치 이상으로 사회 전반에서 민중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민중이 투쟁에 나설 이유는 이미 널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정권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고, 비선실세 최순실의 전횡이 폭로된 것을 기회로 완전히 분출되었다. 이것은 민중의 완강한 태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라 할 수 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정유라가 학교를 다니면서 받은 특혜와 특권적 언사를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고 취직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와 비교하며 분노했다. 더 나아가 이것은 퇴진 투쟁이 박근혜 퇴진으로 끝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양한 내용으로 확장되고 있다. 박근혜만 문제가 아니라 재벌도 한패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보수야당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는 모습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결말로는 스스로가 겪고 있는 삶의 위기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도 확산되어, 투쟁 초기부터 ‘박근혜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이 민중들 속에서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 막연하지만 또 다른 기존 질서의 회복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박근혜 퇴진투쟁이 일어난 데에는 근본적으로 삶의 조건 악화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퇴진투쟁을 주도해가는 힘 역시 민중의 투쟁이다. 이것은 상투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분명한 사실이다. 한 달 동안 일어난 지배계급의 대응 변화야말로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민중에 의해 내몰리고 있는 지배계급 내의 각 세력들

우선 조선일보를 통해 수구세력의 대응을 살펴보자. 친박을 제외한 지배계급내 수구세력조차 박근혜 정권은 침몰하는 배라고 보고 버리려 했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이 그들이 박근혜의 퇴진까지 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선거 패배 이후의 현실을 인정한 상태에서, 박근혜가 이선 후퇴하고 야당과 협력하게 하는 한편 친박을 해체해서 전열을 가다듬은 후 자신들에게 유리한 재집권의 기회를 노리고자 했다.

10월 25일 JTBC 보도 직후의 조선일보의 반응은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조선일보는 26일 사설에서 “대통령 탄핵까지를 요구하는 격앙된 민심이 봇물을 이루고 있”고 말하면서, 대통령의 여당 탈당, 중립적 관리 역할, 북핵 위기 대처에만 전념, 야당이 동의하는 거국 총리 임명 등을 주장했다. 27일 사설에서는 “친박 스스로가 대통령에게 탈당(脫黨)을 요구하고 정치 집단으로서 문(門)을 닫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의 음모론처럼, 조선일보가 체계적이고 일관된 플랜을 가지고 착착 움직여갔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퇴진투쟁의 전개에 따라, 이들의 계획은 계속 들어맞지 않게 되었고 이 속에서 자기입장을 수구세력에 최대한 유리하게 변화시켜갈 수밖에 없었다. 그 원인은 한편으로는 박근혜 자신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광화문에 모인 민중의 투쟁이었다. 박근혜는 특유의 독선과 고집을 전혀 버리지 않았고 자신이 이미 회복 불능상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가 심각해질 때마다 권력보전을 위한 공작정치와 상황모면식 대응을 반복하였다. 이는 민중의 분노에 부채질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박근혜 스스로가 대중동력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연료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 박근혜가 한사코 고집을 피며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 민중의 투쟁이 갈수록 거세지자, 조선일보는 아무 것도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민심의 성난 파도가 모든 것을 쓸고 갈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이다”라고 한 10월 31일 사설, “보수 세력이 분별 잃은 가짜 보수들에 의해 몰락 위기에 처했다”는 11월 19일 사설은 이런 처지를 잘 보여준다. 검찰수사발표가 나온 다음 날인 21일에는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어진 이상 탄핵을 가(可)든 부(否)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최대한 혼란 없이 마무리 짓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가 처음으로 이선후퇴에서 탄핵으로 입장이 바뀐 시점이었다. 이런 주장들은 모두 대규모 집회가 일어난 직후에 나온 것이었다.

그 후에도 조선일보는 상황에 따라 계속 입장을 변화시켜왔다. 21일에는 개헌과 박근혜 탄핵을 연계하더니 12월 1일에는 개헌 불가로 돌아섰다. 11월 29일 3차 담화이후 조선일보는 탄핵에서 새누리당이 내놓은 4월 퇴진, 6월 대선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전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바로 퇴진투쟁 초기 입장과 다르게 박근혜가 대통령에서 물러나는 것은 이미 불가피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중의 투쟁에 의해 조선일보조차 이전의 입장으로부터 멀리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자유주의 정치세력 역시 자신의 의도와 달리 민중의 거대한 흐름에 떠밀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자유주의 세력은 애초에 박근혜의 퇴진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수구세력과 다를 바 없이 박근혜 이선후퇴, 거국중립내각, 야당추천 총리를 주장했다. 이것은 이미 심각한 타격을 받아 사실 상 껍질만 남은 박근혜 정권을 내년 대선까지 유지시키면서 정권교체의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가겠다는 꼼수에서 나온 것이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이를 통해 현재의 정치위기가 급진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지배체제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다. 10월 28일 탄핵이나 퇴진에 반대하며 “국민의 분노를 담으면서도 국가가 더 큰 혼란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더민주 원내대표 우상호의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자유주의 세력 역시 자본가계급이 일부이자 지배질서의 한축이기 때문에,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서 자연스레 나온 것이었다.

퇴진투쟁 초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이런 태도를 계속 반복했다. 11월 4일 박근혜의 제2차 대국민담화 이후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제대로 된 거국내각을 주장했고 단지 이것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를 상정한 ‘단계적 퇴진론’을 거론했을 뿐이다.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인 문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11월 초까지 퇴진에 반대하면서 2선후퇴와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했다.

민중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기회주의적 태도에 분노했다. 보수야당에 대한 성토가 터져 나왔고, 이들에 대해 갖고 있던 대중의 환상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민중의 분노는 자유주의 야당 세력을 보다 강경한 퇴진입장으로 내몰았다. 11월 12일 대규모 집회 직후인 15일 문재인은 퇴진으로 입장을 뒤늦게 변경했다. 추미애가 독단적으로 잡은 박근혜와의 15일 영수회담 역시 그 전날 더민주 내부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민중의 확고한 의자가 자유주의자로 하여금 민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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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동안 이러한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정세에 둔감한 사람들만이 민중의 분출에 전전긍긍하며 대응하고 있는 지배계급의 현실을 간과할 뿐이다. 이런 일은 12월 3일 232만 명이 모인 집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일어났다. 박근혜는 집회 며칠 전 3차 담화를 통해 끝까지 간교한 술수를 부리려고 했다. 새누리당은 이미 조율이라도 한 듯이 박근혜의 담화에 화답하였고, 친박·비박 대단결로 4월 퇴진 6월 대선 당론을 확정하였다. 새누리당은 만약 박근혜가 이에 동의한다면 야당의 동의가 없어도 탄핵을 포기하고 이른바 ‘명예로운 퇴진’으로 갈 요량이었다. 그리고 이미 박근혜가 사퇴 의사를 밝힌 이상 민중의 투쟁도 점차 사그라들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정치적으로 각성한 민중은 새누리당과 박근혜의 술수를 명확하게 간파했고, 거리에 일주일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 술수를 박살냈다. 3일 집회에서는 ‘구속수사! 즉각퇴진!’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새누리당은 당사 앞에서의 대규모 항의시위에 직면했고, 소속 국회의원들 역시 압도적인 항의 문자, 전화를 감당해야 했다. 비박의 탄핵 대열 이탈 과정에서 동요한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수난을 당했다. 안철수는 대구 집회에 참여했다 분노한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했고, 문재인은 광주 집회에 참여했다 자유발언을 거부당했다. 서울 집회에 나온 박지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렇게 표현된 민중들의 확고한 태도는 결국 비박계의 이탈로 이어졌다. 집회 다음날인 4일 오후, 새누리당 비주류가 모인 비상시국위원회 회의에서는 “민심을 달래지 못하면 새누리당이 촛불에 불타 잿더미가 될 수 있다”는 말 등이 나왔고, 결국 4월 퇴진 6월 대선에 대해 박근혜가 수용해도 여야합의가 이루지지 않는다면 탄핵으로 간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민중의 급진화: 미래를 결정할 힘

한 달 여의 짧은 기간이지만 정세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바로 얼마 전의 상황이 낡은 것이 되고 있다. 심지어 이 글을 작성하는 사이에도 비박계의 입장 변화라는 중요한 상황변화가 발생했다. 9일, 그리고 그 이후의 시점까지 또 얼마나 많은 변화가 발생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이것을 주도하는 힘은 민중으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 여전히 한국 자본주의의 지배질서는 확고했고, 노동자민중은 자유주의적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했다. 현재 기존 정치세력을 대체할 제3의 급진적 정치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박근혜 퇴진투쟁은 향후 이전의 지배질서가 일정 부분 복원되는 틀 안에서 정리될 가능성도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퇴진투쟁 속에서 이러한 측면만을 본다면 그 또한 사태를 정확하게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민중이 기존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이미 그것은 크게 균열이 일어났다. 거리에서 엄청난 민주주의와 투쟁을 경험한 민중이 이전과 동일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동일하게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대통령을 퇴진시킨 민중을 지배계급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을 것이고, 앞으로 민중은 더 많은 자기 요구를 제기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야기된 대중들의 삶의 위기가 퇴진투쟁의 배후에 깔린 중요한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렇게 퇴진투쟁으로 열린 공간은 퇴진투쟁을 넘어서 보다 급진적 의식과 실천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이제 각성한 민중이, 자신의 삶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더 급진적 인식과 요구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썩어빠지고 무능하고 파렴치한 정권을 몰아내야 하지만 이 정권을 몰아낸다고 내 문제가 해결되는가’ 하는 식의 질문이 자연스레 제기될 수밖에 없고, 그 대답은 바로 이런 삶의 위기를 야기하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향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민중의 급진화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한 실천을 만들어갈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 사회주의자들 앞에 놓인 과제가 어떠한 것인지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12월 7일 게재된 성두현의 글을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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