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임금,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는 정말 공모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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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사회주의로 다시 보는 페미니즘 개념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로 페미니즘 읽기”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도서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연재하였다. 이 기사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제 페미니즘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연재는 가부장제, 가족임금,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순으로 다룰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관심, 토론 기대한다.

올 한 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은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나도 김지영이다”라는 선언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이 책은, 아이를 가진 이후 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를 전담하게 된 주인공 김지영의 삶을 그려 여성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다.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현재에도 매우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책은 여성들이 체감하는 가장 핵심적인 성차별 중 하나가 가사 및 양육의 전담, 경력단절 및 임금 차별임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82년생 남성과 여성을 비교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통계에 따르면(2016년 기준), 남성에 비해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31.7% 낮으며,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에 비해 불안정 직종에 종사하는 비율이 12.4% 높고 임금은 월평균 67만 원 정도 차이가 났다.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의 공모’로 설명되는 페미니즘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물론 성별 임금격차, 성별 직종분리 등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며 한국 사회를 포함해 자본주의 체제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대체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을 내세웠는데, 그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것은 19세기 산업화 시기 영국을 중심으로 도입된 가족임금과 보호입법, 숙련노조에서의 여성배제로 여성의 임노동 참여가 제한되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되었다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함으로써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가 공모함으로써 현실화됐다. 이로써 자본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여성에게 저임금을 지급할 빌미를 얻었고,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남성들을 보조하고 남성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의 일부를 분담하는 시스템을 활용해 임금 지출 감소 효과를 맛보았다는 것이다. 한편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들을 가정 내로 유폐함으로써 남성의 가정 내 우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위와 같은 견해를 제시한 대표적 학자로 미셸 바렛이 있다. 그녀는 전자본주의적 ‘젠더 이데올로기’에 여전히 포섭되어 있었던 남성 노동자들과 노동자계급의 분열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 한 부르주아의 이해관계가 단기적으로 일치했기 때문에, 임노동과 관련된 성차별적 구조(‘성-분절 노동시장’)가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전자본주의 생산관계에서 비롯되어 자본주의의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남성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배반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미셸 바렛을 비롯한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의 이런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런 설명을 듣고 ‘역시 계급을 초월한 남성들의 연대가 존재해 왔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외국 여성사학계, 노동사학계 일각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설명에 대해 비판해왔다. 1977년에 제인 험프리즈(Jane Humphries)가 「계급투쟁과 노동자계급 가족의 지속」이란 논문에서 내놓은 가족임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나 1984년에 조안나 브레너(Joanna Brenner)와 마리아 라마스(Maria Ramas)가 「여성억압의 재고찰」에서 바렛에 대해 제기한 비판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글들은 공히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의 공모’라는 설명에 내재된 한계를 비판한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쟁점 1.
보호입법이 여성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쫓아냈다?

바렛을 위시한 페미니스트들은 1840~60년대에 영국, 미국에서 만들어진 보호법으로 인해 여성들이 저임금 부문에 종사하는 성별 직종분리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보호입법은 그 정도의 파급력을 지니지 못했거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 사뭇 다른 결과를 낳았다.

브레너와 라마스의 글에 따르면, 미국에서 보호입법이 통과된 주의 수는 적고 그마저도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 1847년에 방직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는 법(Ten Hours Bill)이, 1867년에는 이를 전 산업 분야로 확장하는 법이 통과됨으로써 보호입법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방직업에는 이미 성별 노동분업이 존재했기 때문에 여성노동 시간 규제는 여성 노동의 축출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 노동시간 감소에 상응하여 남성 노동일도 감소되었다.

여성 노동일의 제한 요구는 1830년대에 아동 노동일 축소 운동이 좌초되자 그 대안으로서 채택된 요구로, 남녀를 불문한 전 노동자의 노동일 축소를 위한 운동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구호였다. 부르주아는 성인 남성 노동자의 노동 시간 단축에는 극렬히 반대했으나 여성과 아동 노동 시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에 보호입법이 방직업에서 전 산업분야로 확장되었을 때, 남성노동자들은 이미 법에 규정된 여성노동자들의 최고 노동시간(10시간)에 비해 짧게 일하고 있었으며 보호법은 자연스레 그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쟁점 2.
숙련 노동조합의 여성 배제 정책, 어떻게 봐야 하나?

한편 남성 노동자들이 숙련 노동조합에서 여성 노동자들을 배제했다는 주장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에서 빈번히 제기된다. 그러나 이 역시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 숙련 노조에게 당장 급한 것은 ‘남성으로서의 권위 회복’이 아니라 ‘숙련공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19세기 초, 자본가들은 정상 이하의 조건(저임금·열악한 노동조건)에서 가내노동을 하고자 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도처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남성 숙련 노동자들을 값싼 여성 노동자들로 대체하려 하였다. 이는 기계화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있던 숙련직 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을 배가시켰다.

이에 숙련 노조 중 하나인 런던 재단사 직인 노조는 파업을 일으켰으나 결국 패배하였고, 그 결과 노조가 파괴되고 방직업에서의 노동조건이 후퇴했다. 이런 상황에서 숙련 노조는 ‘남성’의 영역에 ‘여성’이 침범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기보다는, ‘숙련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는 생산부문에 ‘미숙련 상태’의 여성 노동자가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물론 숙련 노조의 대응이 잘못되었다고 평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숙련 노조가 취한 여성배제 정책의 핵심 동력이 젠더 이데올로기나, 여성을 열등한 상태에 두려는 남성의 욕구는 분명 아니었다. 이는 1830년대 영국의 런던 제본공조합, 글레스고우 뮬방적공과 같은 노동조합이 여성들의 투쟁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노조는 미숙련 업무를 맡는 여성 노동자들이 숙련공인 남성노동자와 경쟁적 위치에 놓이지 않는 한 여성 노동자들을 도왔다.

이렇듯 숙련 노조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는 남성 노동자와 자본가가 결탁하여 여성 노동자를 소외시킨 역사를 보여준다기보다는, 더욱 싼 값의 노동력을 찾기 위해 배회하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벌어진 대립의 역사를 보여준다. 숙련직에서 여성을 배제하려 한 것이 여성들을 하급 일자리로 몰아넣은 게 아니라, 여성들이 이미 하급의 일자리를 전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의 쟁점 3.
아내의 가사노동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줄여 자본가에게 이득을 준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자본가와 남성노동자가 타협한 산물이라는 견해는 뒤바뀐 인과관계와 몇몇 역사적 사실의 왜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견해가 정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남성 노동자만 가족임금을 받으며 임금노동을 하고 그 아내가 가사노동을 전담할 경우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자본가 또한 이득을 본다’는 가설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가설을 전제로 산업화 시기였던 19세기와 복지국가가 성립된 시기인 20세기를 거쳐 가족임금이 도입·확산된 계기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설 역시 여러 가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가사노동과 노동력 가치 사이의 관계는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아내가 존재할 경우 남편의 노동력 가치가 하락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 요리, 빨래, 청소 등의 서비스가 싼값에 제공되는 사회라면 가정주부인 아내가 가사를 전담하는 것보다 서비스를 구매할 때 비용이 더 적게 들 수 있다. 또한 가사노동이 가능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드는 비용이 가사노동으로 인해 경감되는 비용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이렇게 가사노동의 전담이 사회의 형태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기 때문에 아내의 가정주부화가 늘 자본가에게 유리하다고 볼 수 없다.

또한 가족도 생산력의 발전 정도나 사회의 제반 조건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하기 때문에 그 기능을 항상 하나로만 정의 내리기 어렵다. 앞서 거론한 경제사학자인 제인 험프리즈는 몰역사적, 몰계급적으로 가족의 억압적 기능만 강조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19세기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물리적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가족을 꼭 필요로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당시 가족은 복지제도가 전혀 발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령, 장애, 질병 등으로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 구성원을 부양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험프리즈는 19세기 노동자계급이 이와 같은 기능을 하는 가족을 유지하고 총임금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가족임금을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당대에는 자본가가 가족이 생존 가능한 수준에 맞춰 임금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가족구성원의 수에 비례해 임금이 증대되지 않는 경향이 존재했다. 따라서 가족 중 한 명만 임금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가사노동을 해서 가족임금을 받는 것이 노동자계급 가족의 생존에 더욱 유리했다는 것이다. 맑스도 『자본론』 I권 제15장 “기계와 대공업” 중 “자본에 의한 추가노동력의 취득. 여성과 아동의 고용” 부분에서 가족구성원 중 1명이 가족을 부양할 때보다 가족구성원 모두가 고용되어 임금노동을 할 때 잉여가치율이 높아지고 착취의 정도가 증대한다고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볼 때 당시 노동자들에게 가족임금이 착취의 정도를 줄이는 대응책으로서의 의미를 가졌다는 험프리즈의 견해는, 가족의 기능이나 가족임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견해에 비해 설득력을 지닌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된 이유

이렇듯,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되기까지 이어진 노동자계급의 실천(보호입법, 숙련노조에서의 여성배제 등)은 임노동과 관련된 성차별적 구조가 만들어진 원인이라기보다는, 이미 형성된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여성노동이 이렇게 부차화된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맑스주의는 생물학적 특성만을 강조하거나 혹은 이데올로기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모두 극복하고, 유물론적 관점에 따라 자연적 존재로서의 여성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여성을 모두 고찰함으로써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물론 임신, 출산 등이 가능한 생물학적 특성이 사회적 성별을 결정한다고 할 수 없으나, 여성억압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요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길러 사회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억압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다. 계급 발생 이전 원시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이 억압으로 작용하지 않았지만,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여성의 임신, 출산으로 인한 성별 분업이 억압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는 계급 사회의 도래와 시기적으로 일치하는 것이었다. 계급 사회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은 여성억압에 기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계급 사회라 할지라도, 직접생산자가 스스로의 생산과정을 통제할 수 있었던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최소한 여성들이 임신, 월경 여부에 따라 중간에 휴식을 취하는 등 생산 참여 정도를 조절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일반화된 이후 직접생산자가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여성들도 이러한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과정을 기계의 리듬에 맞춰 통제하는 자본가가, 임신 중이거나 출산 후 회복 중인 여성노동자의 조건에 맞춰 생산 속도를 조절해줄 리가 없었고, 출산휴가나 탁아 서비스를 제공해주기 위해 굳이 추가적 비용의 지출을 자처할 이유도 없었다. 자본 간 경쟁이 개별 자본가의 존립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이는 더더욱 어려웠다. 이에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 중에도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려야 했고 출산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아이를 낳아도 수유조차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신 및 출산 가능성이라는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과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는 강한 충돌을 이루었다. 또한 산업화 초기 아동노동이 가족수입의 주요한 원천 중 하나로 작용하고, 노동자계급은 복지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자식의 부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이를 많이 낳고 키우는 것이 노동자계급의 생존 전략이었다. 남편과 아내 중 누군가는 가사와 양육을 수행해야 했고, 이 필요성과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충돌했기에 임신과 출산을 직접 하는 당사자인 여성이 집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전제로 일자리를 구하다 보니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되었다. 이와 같은 성별 직종분리를 전제로 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가족구성은 19세기 노동자계급에게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강요된 선택이었다.

“김지영”들의 고된 삶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이렇듯, 지금과 같은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이 확립된 것은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의 공모’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미 여성이 이미 자본가의 입장에서 남성보다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대응의 결과였다. 만약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철폐되고 생산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서 노동자들이 직접 생산과정을 통제한다면, 생리휴가, 출산휴가 등 인간 재생산의 필요와 생산 참여를 양립시키기 위해 필요한 요구가 실현되지 못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런 사회에서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은 더 이상 억압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확립에 있어서 ‘젠더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거나 자본가와 노동자가 남성으로서의 이해관계를 갖고 공모했다고 주장하는 관점을 지양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는 위와 같은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은 결국 남성 노동자들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젠더 이데올로기에 속아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배반하고 남성 자본가들과 한 편이 되었다거나, 여성과 남성은 같은 노동자일지라도 단결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이 그런 비관적인 결론을 뒷받침하는 논거들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와 고된 가사 노동에 지친 삶을 사는, 이 땅의 무수히 많은 ‘김지영’들에게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주고, 평등과 해방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함께 찾아나가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여성억압에 대한 보다 정확한 분석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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