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토론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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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지난 주 금요일 『사회주의자』에서 주최한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토론회가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2015년 이후 최근 몇 년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났다. #Me_too운동,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안희정 무죄판결 규탄 시위까지 여성억압에 맞선 대중적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는 시기에 열린 이 토론회는 진보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내에서 여성억압과 여성해방 문제를 논의하기에 좋은 자리였다. 특히 페미니즘 운동 안에서 생물학적 여성만이 여성해방의 주체로 참석할 수 있다는 워마드 등의 반진보적인 관점이 가시화되고 있는 와중, 여성억압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을 논하는 자리가 열렸다는 것 자체로도 의의가 있었다.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해방’이라는 오래된 단어를 전면에 내세운 토론회에는 다소 ‘고리타분’한 제목과는 반대로 많은 참가자가 참석했다. 70여명의 인원이 참석해 민주노총 대회의실을 채웠다. 페미니즘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는 영페미니스트부터 중년의 노동자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 구성이었다. 자리가 모자라 추가 의자를 놓고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있는 대회의실의 모습은 여성해방의 사회주의적 관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하기에 충분했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제시한 발제자

김민재 발제자(「사회주의자」 기자)는 여성해방 운동이 확대 강화되는 이유에는 물질적 생존 자체가 녹록치 못한 여성들의 현실이 배경으로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올해 6월 기준 20대 실업률은 9%를 넘었으며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은 더욱 심각했다.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불안정한 생활 환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 속에서 겪는 성차별과 여성억압을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여성억압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 원인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도 했다. 그래야 해결을 위한 실천전략을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답으로 ‘남성지배 여성억압’의 사회구조를 지칭하는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이 평등했던 원시 공산사회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졌다.

원시 공산사회에서는 성별 노동분업이 존재했으나 지금과 같은 사회적 억압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여성이 주로 하는 채집이 식량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남성 이상이었기 때문에 공동체에서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점차 생산력이 발전하고 중농업 사회로 이행하게 되면서 신체적으로 근력이 더 발달한 남성이 사회적 생산에서 주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고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이 점차 여성 억압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생산양식의 역사적 변화에 따라 여성억압은 형태를 달리해왔다. 발제자는 이처럼 여성억압의 기원을 역사유물론적으로 설명하는 이론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라고 소개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본주의에서의 여성억압도 설명했다. 자본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여성억압에 영향을 끼쳤다. 먼저 기계의 발달과 같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추동했고, 이는 상대적으로 근력이 부족한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대규모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물적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공평하게 착취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이는 곧 임신, 출산, 수유, 생리 등 일정 시간 휴식이 필요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여성을 열등한 노동력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여성의 사회적 생산 진출을 가능케 했다는 점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물적 토대를 마련해준 동시에 여성의 신체적 특성을 이해해주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착취하는 성맹적 특성으로 인해 여성해방의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발제자에 따르면 성별 노동분업의 물질적 토대와 근거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점점 없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여성해방을 위한 물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고 이 변화를 밀어붙여 자본주의 철폐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진보세력의 향후 과제에 있어서는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강조했다. 그리고 여성해방을 추구하면서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취하는 각기 다른 입장을 명확히 인지하는 한편 여성해방운동에 유입된 새롭고 다양한 주체들에게 새로운 틀을 제시해주어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사진: 사회주의자]

각 토론자들의 의견

김민재 발제자의 발제가 끝난 후 이지완 토론자(「사회주의자」 기자), 나영 토론자(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유현미 토론자(서울대 사회학과 H교수사건 대학원대책위원회)의 순서로 토론문 발제가 이어졌다. 이하는 각 토론자가 발제 시 강조한 내용과 발제문에 대해 제시한 의견을 중심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이지완 토론자는 발제문 입장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여성억압의 기원과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 간의 관계를 기계론적 유물론, 관념론도 아닌 역사유물론으로 설명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맑스는 ‘생산’을 자연과 인간을 매개하는 행위라는 뜻에서 인간의 생산과 번식까지 모두 포함한 넓은 개념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맑스가 사용한 본래적 의미로써 ‘물질적 생산’을 통해 여성억압을 설명하려고 한다. 이는 ‘생산’ 개념을 경제적 영역의 협소한 생산으로 왜곡해 이해함으로써 ‘재생산’이나 젠더 이데올로기와 같이 이 협소하게 정의된 생산 영역 밖에서 여성억압의 근원을 찾으려는 페미니즘 조류와 구분되는 점이다. 나아가 토론자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여성해방을 위해 자본주의를 철폐해야 한다는 명쾌한 주장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강점을 가진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나영 토론자는 여성의 신체적 특성이 자본주의의 성맹적 착취라는 특성과 충돌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이 억압된다고 설명했던 발제문의 분석에 대해 결국 다시 여성억압의 원인을 생물학적 특성으로 보는 것이 아니냐, 만약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자체가 변화하여 생산 조건이 변화하게 되면 정말 여남은 평등해질 수 있냐는 등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했다. 그는 여성해방 실천을 모색하기 위해서 임금노동과 상품생산이라는 경제적 영역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들며 적녹보라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적녹보라 패러다임은 ‘현재의 체제를 이루는 모순들이 역사적으로 연동되며 작동해온 구조로서 파악하고 그에 따른 실천을 모색하는 운동의 방향’이라고 한다. 임금노동 체제에서는 노동력이 이성애, 비장애인, 성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다른 구성원들은 이들의 경제력에 의존하게 된다. 이처럼 하나의 중심 모순을 기준으로 해서 억압 구조를 설명하게 되면 권위있는 특정 세력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억압 구조를 총체적인 하나의 이론으로만 설명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현미 토론자는 여성의 문제를 단순히 억압이라는 틀로만 설명할 수 있냐는 물음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토론자는 여성집단이 자본주의 하에서 가지는 복합적 위치에 대해 강조하며 여성 억압과 다른 억압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성판매 여성은 성을 판매하는 판매자로써 억압구조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주체적으로 성 산업과 대부업을 유지시키는 경제적 주체로도 기능한다. 여성해방을 위해서 구조적 분석이 필요하나, 단일한 이론으로만 여성억압이 해설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발제문에 대해서는 그것이 물질적 생산 범위에 머무는 기존 맑스주의의 도식적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견을 냈다. 한편 그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 쟁점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토론회 말미에 김민재 발제자도 이에 대해 일부 동의하는 의견을 말했다. 사회주의적 여성해방론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시되는 이론이니만큼 틀 자체를 새로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러다보니 아직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진: 사회주의자]

토론 중 드러난 ‘생산’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

토론회의 주제는 1) 여성억압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2) 여성억압과 다른억압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3)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의 세 가지였다. 토론자들의 의견을 통해 확인되듯이 발제자와 이지완 토론자, 나영 토론자와 유현미 토론자 사이에는 최근 여성운동에서 보이는 퇴행적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의 공유 정도를 제외하고는 세 가지 쟁점 모두에서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래서인지 토론에서는 사회주의 여성해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첨예한 질문이 오고가지 못했고 참석자들은 지지부진하게 반복되는 토론의 흐름에 답답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 중심에는 ‘생산’ 개념에 대한 이해 차이가 있었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많이 왜곡되어온 맑스주의 “생산” 개념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갔으나 다른 편에서는 반맑스주의적 통념에 의거한 “생산” 개념을 반복했다.

이를테면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영 토론자는 김민재 발제자와 이지완 토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상반된 내용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한 페미니즘은 여성억압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에서만 설명한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방향, 어떤 해결과정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나영 토론자는 자본주의는 상품생산, 임금노동 중심으로 전제되어 있으며 ‘재생산’이 여기서 무슨 작동을 하고 있는지는 얘기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김민재 발제자와 이지완 토론자가 비판한 생산/재생산 이분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유현미 토론자 역시 ‘물질적 생산 범위에 머무는 기존 맑스주의의 도식적 이해’라는 식의 의견을 통해 비슷한 인식을 보였다.

이에 대해 김민재 발제자는, 토론자들이 맑스주의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낸다고 하면서 새로운 통찰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개념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완 토론자 역시 물질적 생산은 현실 속에서 말하는 인간 실천 전반임을 다시 한 번 짚으며 만약 생산과 재생산을 따로 개념적으로 정의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생산과 재생산의 도식적 구분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생산’에 대한 이해의 차이는 토론 진행에서 더 생산적인 논의를 부진케 하는 주된 요인이었고, 토론회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으로 남았다.

[사진: 사회주의자]

하지만 이 아쉬움은 도리어 토론회의 2막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여성억압의 기원에 대한 역사유물론적 분석은 여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물적 토대가 생산의 역사적 변화에 있고 여성의 사회적 생산 참여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을 일깨워주었으며 페미니즘과 구별되는 또 다른 여성해방의 길을 열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건실하게 쌓아올려진 역사유물론적 분석 틀 위에 만들어진 여성해방운동은 앞으로 닥칠 어떠한 조류 속에서도 정확한 정세판단을 가져다 줄 것이며 민중의 분노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사회주의 여성해방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확인한 지금, 사회주의, 진보 운동진영 내에서 새롭고 주체적인 여성해방의 길을 만들어나갈 논의 자리가 적극적으로 열리기를 바란다.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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