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이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1
2845
[사진: 한겨레]

현재 한국에서 인공임신중절은 불법이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고(형법 269조 1항 자기낙태죄), 그 여성의 요청에 따라 낙태시술을 한 의사 등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형법 270조 1항 의사낙태죄).

모자보건법 14조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이 허용되는 다섯 가지 예외사유를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외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 모체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경우 등 극단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만 허용될 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이 허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2010년 만 15세~44세의 가임기 여성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에서 인공임신중절 사유 전체를 100%로 환산할 경우 원치 않는 임신 32.5%, 태아의 건강문제 16.3%, 경제상태의 어려움 16.0%, 미혼 14.3%, 가족계획 12.0% 등으로 나타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임신 지속 여부를 결정할 때 임신한 여성이 처한 사회적 상황, 경제적 조건은 상당히 중요한 요인이다. 그렇기에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임신중절이 허용되지 않음으로써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불법’이 된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0년 한 해 동안 16만 8738건 정도의 인공임신중절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합법적’인 것은 6%뿐이다. 매년 낙태죄로 기소되는 건수는 약 10건 내외에 불과하고 실제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인공임신중절이 범죄로 규정되어 있기에, 모자보건법상 예외사유가 아닌 사유로 임신을 중지하려는 여성들은 안전한 임신중절시술에 대한 정보에 접근하기도 어렵고, 만약 병원에서 고가의 시술 비용을 요구하면 요구하는 만큼 지불해야 하며, 스스로 범죄자라는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낙태죄 폐지가 ‘대세’가 되기까지

낙태죄 폐지 요구를 전면에 내건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시작된 것은 2016년 하반기부터였다. 2016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개정하여 인공임신중절 시술 의사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예고한 것이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11월 11일 보건복지부가 결국 입법예고했던 개정안을 백지화했음에도, 여성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고 더 나아가 형법상 낙태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전면화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에 한 달 동안 무려 23만 5372명이 서명을 하여 청와대가 2017년 11월 26일 답변을 내놓은 것도 인공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사회운동 단체들은 “2018년을 낙태죄 폐지의 원년으로”(한국여성민우회 구호) 만들기 위해 각종 토론회, 거리선전전, 집회 등을 꾸준히 전개했다.

현재 낙태죄 폐지 여론이 우세한 것은 바로 여성들 및 진보운동단체들이 이렇게 투쟁한 결과이다. 2017년 11월 전국 성인 5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51.9%,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비율이 36.2%로 나타났다. 7년 전인 2010년에는 낙태 허용 의견이 33.6%, 불허 의견이 53.1%였으나 역전된 것이다.

지난 5월 24일 낙태죄 규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공개변론이 진행되었다. 이는 2017년 2월에, 부녀의 촉탁을 받아 낙태 시술을 한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산부인과 의사가 형법 260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공개변론의 분위기 역시 낙태죄 폐지 흐름이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임을 보여주었다. 합헌을 주장하는 법무부의 태도는 수세적이었고, 심지어 법무부가 참고인으로 부른 전문가조차도, 출산이냐 낙태냐는 국가가 강요할 수 없고 임신 12주 미만인 경우 임신중절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법무부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여성은 성관계를 해 놓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담은 합헌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였다가 이것이 언론에 의해 일부 공개되어 큰 지탄을 받자 결국 문제된 의견서를 철회하기도 했다.

전세계적 흐름도 낙태죄 폐지, 임신중지권 보장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이미 OECD 회원국 35개국 중 25개국에서 임부 본인 요청에 따른 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데, 이와 달리 원칙적 금지인 10개국 중에서도 4개국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유로서 사회경제적 사유를 인정한다. OECD 국가 중 사회경제적 사유도 예외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6개국이었다. 그런데 이 6개국 중 하나였던 아일랜드에서 지난 5월 25일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금지 헌법 조항의 폐지를 결정했다. 해외에 체류하던 아일랜드 여성들은 투표를 위해 귀국하자는 “#HomeToVote” 해시태그 캠페인까지 벌이며, “Repeal(폐지)”이라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공항으로 줄지어 입국했다. 또한 6월 14일에는 아르헨티나의 하원 의회가 임신 14주까지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많은 이들이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선고되어 2018년이 정말로 낙태죄 폐지 원년이 될 가능성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반면 현재 집권 세력은 여전히 낙태죄를 폐지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당장 법무부가 낙태죄 합헌 입장이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은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독교 단체의 “낙태는 생명 경시 풍조에서 오는 것이며 특히 낙태 허용과 합법화는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에도 역행한다. 낙태 예방에 대한 귀 정당의 방안은 무엇인가?”라는 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낙태 방지 운동 등에 적극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답변했다.

낙태죄 존치론자들의 주장이 어떤 점에서 잘못되었는지를 5. 24. 공개변론에서 논란이 된 주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여성억압을 정당화하는 낙태죄 존치 주장

낙태죄를 존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낙태죄가 폐지되면 인공임신중절이 크게 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을 당연한 전제로 놓은 후 인공임신중절이 태아를 죽이는 일일 뿐 아니라 여성의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등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 전제 자체가 틀렸다. 낙태죄는 인공임신중절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안전한 낙태: 보건 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한 기술 및 정책 지침」의 근거가 된 각종 연구들에 따르면, “낙태에 대해 폐쇄적인 법률을 가진 국가와 개방적인 법률을 가진 국가에서 계획 외 임신을 한 여성이 낙태할 비율은 거의 같다.”(최규진, 「낙태에 대한 개방적 접근의 필요성」, 『생명, 윤리와 정책』, 2018년 4월) 낙태를 강하게 제한할수록 높아지는 것은 모성사망률뿐이다(최규진, 위의 글). 임신중절을 결정하는 여성들에게는 그런 결정을 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 그렇기에 불법화의 결과는 그들이 임신중절을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절을 시도하여 건강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이다.

낙태죄 존치론자들이 더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보다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태아는 적어도 20주 내지 22주가 되기 전까지는 모체와 독립적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 법무부는 제출했다가 철회한 의견서에서 태아에 대해 “단지 그 생존이 모체의존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권의 주체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은 흡사 산소호흡기 등 기계 장치에 삶을 의존하는 환자도 스스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생명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는 법무부가 임신한 여성을 기계 장치와 똑같이 보고 있다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태아가 생존을 의존하는 존재인 모체는 엄연한 인간이다. 거꾸로 한 사람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동의가 없어도 약 9개월 동안 그의 신체를 이용할 수 있고, 그 다른 사람이 자기 신체를 제공하기를 거부하면 그를 형사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이는 없을 것이다. 즉, 설령 태아에게 이미 출생한 사람과 같은 ‘생명권’이 있다 해도 태아의 생존이 모체에 의존하는 한 여성에게 원치 않는 임신을 지속하라고 강요할 근거는 없다. 적어도 여성을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 본다면 그렇다.

또한 낙태죄 존치론자들은 성관계를 하면 임신 가능성이 있음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기에, 강간에 의한 임신이 아닌 한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법무부는 위 의견서에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변화인 임신에 따른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인간의 의지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섭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하였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성관계를 하면 임신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는 자연적, 생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임신에서 출산, 양육에 이르는 과정에서 여성 본인이 자신의 몸을 어디까지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지, 어디까지를 권리로 확보할 수 있는지는 사회적인 문제다. 오늘날의 사회적 생산력 수준에서는 수술뿐만 아니라, 성공률이 90~98%에 달하고 세계보건기구로부터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은 약물인 미페프리스톤(상품명 미프진)을 통한 임신중절도 가능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사회에서 ‘임신하면 모름지기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은 전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며, 임신 가능한 몸을 갖고 태어난 이들, 즉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억압이다.

요컨대 낙태죄 존치 주장은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하는 여성들의 처지와 인공임신중절의 실태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임신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아야 하는 기계 같은 존재로만 여기며 결과적으로 여성억압을 정당화하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임신, 출산 결정권이 여성들에게 절박한 이유

5월 24일 공개변론에서 조용호 주심재판관은 청구인 측에 “낙태죄로 훼손된 태아는 생명이 될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되고 이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 원칙적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임부의 생명, 건강의 보호 등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서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하였다. 이에 대해 청구인 측 대리인들 중 한 명인 최현정 변호사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일단 …… 여성이 낙태를 결정하는 것이 무책임한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어느 남성이 성관계를 하면서, 이 성관계가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자녀의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까지 염두에 두고 성관계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임신이라는 사건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항상 그러한 고민을 몸에 담고 있습니다. …… 그리고 태아가 생명을 잃게 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 최근 실태조사에서 여성들 500여명이 임신의 지속을 결정하였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자신의 일과 학업과 꿈을 포기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여성의 인생에 대해서는, 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 누가 고민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답변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임신중절 문제를 생각할 때 ‘태아의 생명이 어떻게 되건 자기 사익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여성’을 떠올리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태아를 임신중절하지 않고 출산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 태어난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임신한 여성은 자신이 과연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지를 숙고한 후 임신을 지속할지를 결정한다. 이 과정은 낙태죄 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여성 자신의 ‘사익’과 태아의 생명을 비교하는 과정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삶과 아이의 삶을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위의 답변에서처럼 어머니가 임신, 출산 때문에 일과 학업과 꿈을 포기하여 살길이 막막하다면 아이 역시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태아는 임신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야 생존 가능한 존재인 바, 여성이 이와 같은 어려운 고민을 거쳐 임신을 지속하지 못하겠다는 결정을 어떤 이유에서든 내렸다면, 여성의 이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이렇듯 지금의 낙태죄 폐지 투쟁은 임신중지권이라는 여성의 기본적 권리를 옹호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형사처벌에 반대하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확장하는 것이자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투쟁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 일체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다.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억압을 없애고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적극 나서는 것 역시 사회주의 운동의 중요한 역할이다. 많은 여성들의 꾸준한 투쟁을 통해 낙태죄 폐지 여론이 우세해진 지금, 사회주의 세력 역시 여성의 기본적인 권리인 임신중지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낙태죄 폐지 투쟁에 힘을 모아야 한다. 2018년을 낙태죄 폐지의 해로 만들자.

한개의 댓글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