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논란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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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희용의 녹색세상 블로그]

노무현 정권에서 협상이 시작되어 이명박 정권에서 국회 비준을 통과하기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5년 만에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논란은 지난 6월 말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불거졌다. 당시 정상회담에 앞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 핵무기와 남한 내 사드(THAAD) 배치 등 안보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하여 미국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강경화 외교장관의 입을 빌어 한국 내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 했고, 국내 수구보수 세력의 해묵은 슬로건인 ‘한미동맹 강화’를 미리 천명함으로써 한껏 자세를 낮춘 다음에 미국으로 건너가 정상회담에 임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전망과 달리 트럼프의 주된 관심사는 한미 FTA의 ‘재협상(renegotiating)’이었다. 문재인의 방미 기간 내내 트럼프는 직접 발언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미 FTA 재협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덕분에 한미정상회담의 주요 의제가 안보 문제에서 무역 문제로 선회했다. 동시에 한국의 야당과 언론은 문재인의 방미 기간 중 한미 FTA 재협상에 대한 합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쏟아냈고, 이에 대해 청와대는 “재협상 합의는 없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7월 13일에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미 FTA에 관한 양국 공동위원회 특별회담을 요구하는 서한을 한국 정부에 보내왔고, 입장이 난처해진 문재인 정부는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재협상이 아니라 개정협상(amendments)이라며 발뺌을 하고 있다.

[사진: KBS1 뉴스캡쳐]

재협상이냐 개정협상이냐, 용어 논란의 의미

물론 한미정상회담 공동 발표문에 재협상을 합의한 내용은 없다. 미국 무역대표부가 보내온 공동위원회 요구 서한에도 ‘개정 및 수정을 위한 후속 협상’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재협상은 없다는 문재인 정부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미 FTA 논란을 촉발한 트럼프는 일관되게 재협상이라는 말을 써왔다. 한미정상회담 공동발표를 한 6월 30일에도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백악관을 방문한 문재인의 사진과 함께 “양국이 무역협정을 재협상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코멘트를 덧붙였다. 특히 7월 12일에는 프랑스 행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한미FTA는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이며 한국과의 ‘재협상’으로 이를 바로잡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같은 사안을 두고 트럼프는 재협상, 문재인 정부는 개정협상이라며 용어의 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는 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재협상은 말 그대로 협정을 다시 한다는 뜻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발효 중인 협정 전체를 뒤집을 수 있으며, 심지어는 협정 자체를 파기하는 상황까지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반면 개정협상은 이미 발효 중인 협정의 근간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분적으로 수정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협상이라는 말에는 한미 FTA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트럼프의 의지가, 개정협상이라는 말에는 한미 FTA를 손대지 않았으면 하는 문재인 정부의 속내가 반영되어 있는 셈이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하여 각기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먼저 트럼프는 대선 후보 때부터 북미자유협정(NAFTA)이나 한미 FTA가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강변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TP)도 미국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자본주의 모순으로 인한 고용위기와 재정적자를 ‘자유무역협정’ 탓으로 돌린 것이다. 그것은 이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미국 노동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덕분에 트럼프는 정가의 예상을 깨고 대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지지율이 땅에 떨어지고, 탄핵론까지 나오면서 곤경에 처한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자유무역협정에 칼질을 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했고, 그 첫 표적이 한미 FTA 재협상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가 비교적 다루기 쉬운 상대라는 점도 작용했을 터였다.

트럼프와 달리 문재인은 한미 FTA의 역사와 정치 역정을 함께 해온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다수 노동자 농민의 반발을 짓밟고 미국과의 FTA 협상을 강행한 노무현 정권의 핵심 참모 출신이다. 따라서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에게 한미FTA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양날의 칼이었다. 그것은 한국의 노동대중에는 업보인 동시에 자본가계급에는 업적인 까닭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미 FTA 발효 이후 5년 동안 세계 교역량은 2.7% 줄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의 교역량은 연평균 1.7%씩 늘어났다거나, 이 기간에 한국이 대미무역에서 매년 몇 백억 달러씩 흑자를 내왔다는 지표가 등장하면서 한미 FTA를 ‘성공적인’ 협정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트럼프의 호들갑이 더해지면서 어느새 한미 FTA는 미국에 ‘나쁜 것’이고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확산되었다. 더불어 한미 FTA는 트럼프의 공세에 맞서 문재인 정부가 옹호해야 할 성역이 되었다. 그것이 문재인 정부가 한미 FTA에 대하여 ‘개정협상’을 고수하며 ‘재협상’으로는 가지 않으려 버티는 배경이다.

“FTA는 끝났다”는 트럼프와 FTA에 매달리는 문재인 정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트럼프에게 한미 FTA는 ‘끔찍한 거래(horrible deal)’이다. 심지어 그는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 막대한 재정적자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심각한 국가채무(national debt)의 근원을 무역적자(trade deficits) 탓으로 돌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트럼프 특유의 근거 없는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미국의 경제방송인 CNBC도 “현재 미국의 부채가 무역 적자가 주 원인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미국 내 주류 언론의 이러한 비판을 ‘가짜뉴스’로 치부하며 자신의 트위터를 “자유무역협정은 끝났다”는 메시지를 계속 내보냈다.

자유무역에 대한 트럼프의 반대 의지는 지난 6월 30일의 한미정상회담 공동발표문에도 반영되었다. 그날 공동발표문은 문재인과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언론발표를 마친 지 7시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다. 이처럼 외교적 관례에서 벗어나 공동성명서 발표가 지연된 이유는 사흘 뒤에야 청와대 관료의 입을 통해 밝혀졌다. 이미 합의가 끝난 공동성명 문안에 대하여 트럼프가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다. 즉 공동성명의 세 번째 항목인 ‘경제성장촉진을 위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무역의 증진(Advancing Fair Free Trade to Promote Economic Growth)’에 대하여 트럼프가 ‘자유(Free)’라는 단어를 삭제하도록 강력하게 요구했고, 이 요구에 따라 문안 수정을 하느라 발표가 늦어진 것이었다.

이처럼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은 끝났다는 메시지를 곳곳에서 표출하면서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보호무역으로 미국의 노동자들을 구제하겠다는 의지를 펼쳐왔다. 그것은 선거전에서 미국의 노동자들을 현혹하기에 충분했고, 실제로 대통령 당선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물론 그것은, 역사적 숭고함과는 거리가 먼 부동산 자본가 트럼프의 정치적 퍼포먼스일 것이다. 한미 FTA 재협상 카드 또한 만만한 정부와 무역협상 테이블을 열어 ‘한탕’을 해보겠다는 미국 투기 자본가들의 비즈니스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자유무역에 대한 문제 제기는 그의 정치적 의도와 상관없이 의미가 있다. 알량한 무역흑자를 들이대며 한미 FTA가 그저 좋은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래서 어떻게든 한미 FTA를 존속시켜보려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하긴 한국의 자유주의 정권과 관련 있는 인사들 가운데서도 한미 FTA의 문제를 지적하며 자성의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다. 요컨대 한미 FTA 협상을 타결한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은 국민참여당 대표 시절이던 2011년 7월 5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방문하여 노무현 정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한 데 대해 사과하고 “제가 대통령이었다면 한미 FTA 하자는 말은 안 했을 것”이라며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또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내며 한미 FTA 비준을 위한 합동 담화문에 서명한 천정배는 2011년 8월에,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손해라며, 그 비준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미 의회 소식지 『더 힐』에 기고했다가 국내 자유주의 세력의 맹공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앞서 노무현 정권에서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은 2006년 2월, 한미 FTA 협상 재개 선언 직후부터 전국을 돌며 한미 FTA의 부당성과 졸속성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기도 했다.

FTA는 노동착취 강화를 위한 자본과 자본의 거래

그러나 국내 자유주의 인사들의 이러한 비판과 자성은 한국 농민의 피해나 이른바 ‘국익’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 한미 FTA의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로서 자유무역협정의 계급적 성격을 밝힌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자유무역협정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미국에서 나왔다. 지난해 미국의 대선 예비후보였던 버니 샌더스는 “자유무역협정이 대기업과 자본가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이용되고, 미국을 비롯한 협정국 인민에게 오히려 불이익을 준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버니 샌더스의 주장은 한미 FTA 발효 5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미국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지난 5년간 한국은 일자리가 줄어들어 고용 위기가 커졌다. 그에 따라 임금 격차는 나날이 벌어졌고,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농업 해체는 가속화되었고, 식량자급과 공공성은 약화되었다. 철도 등 기간시설에 대한 민영화가 가속화되어 물가는 상승하고 위험은 증가했다. 총체적으로 삶의 질이 하락했다.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일반명사처럼 통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 노동자 계급의 처지도 장사꾼 트럼프의 정략에 현혹될 만큼 엉망이다.

자유무역협정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협정으로 체결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 실제 내용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 더 넓은 시장에서 지배권을 확대하기 위한 자본의 팽창전략이다. 그 점에서 자유무역협정은 ‘자유투자협정’과 같은 말이다. 한미 FTA 또한 값싼 노동력과 넓은 시장을 확보하여 이윤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국의 대자본가들이 쳐놓은 덫이며 함정이다. 거기에 말려든 한미 양국 노동자들은 이미 일자리 감소와 노동착취 강화로 고통 받고 있다. 요컨대 한미 FTA 덕분에 늘어났다는 무역수지 흑자로 몇몇 자본가는 주머니를 불렸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곧 한국과 미국의 노동자계급이 착취당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는 자본가 국가가 주도하는 모든 무역협정을 거부하는 게 답이다. 국가 간의 무역관계는 노동자계급의 주도로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이 모든 국가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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