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부채 탕감이 절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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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emocracynow.org]

5월이 되면 2017년 상반기 공채 시즌이 막을 내린다. 이맘때쯤이면 여기저기서 합격소식이 들릴 만도 한데 필자 주변은 올해 역시 깜깜무소식이다. 어쩌면 필자 주변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는 지인들 중에서도 ‘아가리 취준생’이 존재할지 모른다. 사실은 취업준비를 포기한 상태이지만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괴상한 신조어는 거듭되는 사회적 압박으로 의기소침에 빠진 오늘날 청년들의 암울한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이제 도처에 만연해 있다.

OECD가 매년 발간하는 『한눈에 보는 사회(Society at Glance)』 2016년 보고서에서는 특별 챕터로 청년 니트(NEET) 현상을 다루기까지 했다. 니트란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줄임말로, 취업자가 아니면서 동시에 취업준비를 위한 학원이나 교육기관에 속하지도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아가리 취준생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대졸 이상의 고학력 니트 비중이 약 24%로, OECD 전체에서 세 번째로 높다. 청년 니트 현상의 확대는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는 취업난에 청년들이 자포자기 상태에까지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한편 이미 실신 상태에 빠진 청년들도 수두룩하다. 여기서 실신이란 ‘실업자+신용불량자’ 상태를 말한다. 미래가 두려워 학자금 대출을 받아가며 꾸역꾸역 대학에 다녔지만 연이은 취업실패로 학자금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청년들이 급증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물론 취업이 되더라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취업되는 경우가 많기에 학자금의 굴레는 벗어나기 힘들다. 실제로 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은 취업자 세 명 중 두 명 이상이 상환기준소득 연 1,856만 원 이상 벌지 못해 학자금 상환을 못하고 있다. 취업자들도 대부분 실신 직전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도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국회에서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제도를 완전 무이자로 전환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으며, 대선 주자들은 입학금 폐지와 학자금 이자율 인하를 공통적인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책들도 조금 비틀어 생각해보면 원금은 채무자 본인 몫이라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상환해야할 원금이 천만원을 훌쩍 넘는데, 고작 무이자 전환이라니! 굶어 죽기 직전인 사람에게 빵부스러기 따위나 건네는 사람이 더 악랄한 법이다. 청년들에게는 확실한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즉각적인 부채 탕감이다. 여기 청년들에게 부채 탕감이 절실한 네 가지 이유가 있다.

1. 붕괴직전에 놓인 청년의 삶

빚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청년들은 더 가열히 취업준비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발생하는 취업 사교육비 및 생활비는 청년들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게 되지만 생활고를 감당치 못해 빈곤과 채무에 시달리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은 청년들 중 약 6%는 일을 하면서도 빈곤을 벗어날 수 없는 근로빈곤 상태이며, 절반은 불안정 고용으로 언제든 빈곤상태에 빠질 수 있는 위기 계층에 속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실시하는 고금리 대출 이용자 중 40%이상이 2-30대 청년층인 이유도 쉽게 납득이 간다. 상환 능력이 부족한 청년들의 처지와 고금리 대출이자가 맞물리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실제로 부채를 견디다 못해 파산신청을 한 20대가 최근 3년 동안 50% 이상 증가했으며, 2016년 기준으로 1만 명을 돌파했다. 더 큰 문제는 학자금 대출 같은 경우엔 파산선고로도 면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죽기 직전까지도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겨진다는 이야기다. 국회위원들은 애초에 자기들 손으로 입법을 해놓고서 뒤늦게 학자금대출 채무도 면책이 가능하도록 관련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파산신청으로 면책이 된다고 해도 이는 학자금 등의 청년부채를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당장 부채문제로 붕괴직전에 몰린 청년의 삶을 구제할 수 없다. 문제는 부채 그 자체이며 그 책임은 사회에 있다.

2. 청년부채 형성의 사회경제적 맥락

청년들이 부채를 떠안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지불하는 학자금이며, 여기에 기초적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출하는 생활비가 더해진다. 등록금이 비싼 이유는 정부의 대학 자율화 조치, 적나라하게 말하면 대학교육 상품화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에 의해 1989년 ‘등록금 자율화 조치’가 시행된 이후 등록금은 물가상승률 훨씬 앞지르며 천정부지로 솟았고, 김영삼 정부가 경쟁과 효율을 앞세워 본격적인 교육 시장화 정책을 추진하자 더욱 치솟았다. 연평균 7%에 육박하던 인상 기조는 등록금 투쟁이 불타오르던 2011년 즈음이 되어서야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이미 1989년에 비해 5배 가까이 폭등한 뒤였다.

그런데 등록금 폭등은 일자리 감소와 함께 찾아왔다. 때문에 아무리 폭압적인 등록금 인상에도 청년들은 대학 진학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 취업시장이 좁아질수록 청년들 간의 경쟁은 심화될 수밖에 없었고, 더 높은 학력과 더 많은 스펙이 요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높은 교육수준을 요구하는 탓에 청년들은 매년 천만원에 육박하는 등록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감수하며 졸업장을 따내야 했다. 청년 부채는 청년들 개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와중에 사회로부터 채워진 족쇄다. 이는 점점 극심한 취업난을 야기하고 교육까지 상품화하는 이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에서 기인한다.

[사진: 뉴스1]

3. 복지의 탈을 쓴 학자금 정책

억압이 가혹해지고 모순이 심화될수록 저항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 및 물가 상승에 취업난까지 더해지면서 청년층의 위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투쟁은 반값등록금 의제를 중심으로 확장되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고 2011년에 폭발적으로 커져갔다. 이에 정부는 2010년부터 등록금 상한제를 도입하는 동시에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및 생활비 대출 제도를, 2012년부터는 국가장학금 제도를 실시하였다. 즉 반값등록금 요구를 무마시키는 용도로 현재의 학자금 대출 및 장학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정부는 저소득층을 위한 것 마냥 학자금 대출과 국가장학금 제도를 선전하였다.

물론 학자금 대출 제도 개선으로 재학 중에 신용불량자가 된 대학생들은 사라졌다. 단지 신용불량자 신세가 취업 후로 유예된 것뿐이다. 취업 후에도 대출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는 청년들의 신세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장학금 제도 또한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국가장학금 수혜자 수는 신청 대상자의 절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반해 학자금 대출 잔액은 줄어들기는커녕 도리어 12조원으로 불어났다. 이는 국가장학금 제도가 시행된 2012년 이래로 1.6배나 증가한 수치다. 정부는 사실상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었다고 선전하지만, 현재의 제도로 청년의 절규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저 대학과 은행자본의 배만 불릴 뿐이다.

애초부터 청년의 요구는 사회가 청년에게 전가한 경제적 부담을 유예시켜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부담은 제거되지 않고 온전히 유예되어 청년의 어깨에 고스란히 올라와있다. 반값등록금 투쟁이 빈곤과 야만으로부터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청년들의 절박함에서 시작된 것처럼, 이제 우리도 다시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며 구체적인 요구를 해나가야 한다. 이는 사회가 구성원에게 지우는 부담을 구성원 개인이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의 확산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4.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등록금이 높은 나라이지만, OECD내에서 고등교육 재정 지원 부문은 최하위인 나라다. 사회가 구성원에게 높은 학력을 강요하여 대학진학률이 7-80%에 육박하게 되었는데, 아직까지 그에 대한 비용은 대부분 개인에게 전가되고 있다. 부채 탕감 요구는 단순히 ”개인의 고통“을 줄여달라고 떼를 쓰는 것이 아니다.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취업을 해야 하고, 취업을 하려면 대학 졸업장을 가져야하는 사회는 누가 만든 것인가? 대학 졸업장을 가진 청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다시 사회로 편입되지 않는가? 청년들의 노동력은 사회에서 소비되는데 그 노동력을 만들기 위한 비용의 책임은 개인에게 지워지는 사회에 모순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이유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사회라는 조직을 꾸리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를 포함한 오늘날의 청년들은 태어날 때부터 끊임없이 경쟁궤도 위에서 훈련받고 달려온 탓에 자기 스스로를 사회적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는 파편화된 개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겪은 상황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자기 스스로가 자초한 것처럼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들의 선택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었다. 이제는 누가 이렇게 우리를 생존에 급급하며 살아가게 만들었는지 따져 묻고, 이렇게 살아가게 만든 세상을 변화시킬 때다. 청년 부채 탕감을 요구하는 투쟁은 우리들의 절박함을 새로운 사회를 향한 비전으로 바꿀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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