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Ⅰ권 해설을 마치며(1)―서문에 대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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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2018년 9월 20일 매체 『사회주의자』에 『자본론』 읽기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1년 3개월 정도가 지났다. 24번째 글로 『자본론』 Ⅰ권의 본론에 대한 해설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연재물에는 서론에 대한 해설이 빠져 있다. 필자가 서론에 대한 해설로부터 연재물을 시작하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독자들이 『자본론』의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서론을 해설할 경우, 『자본론』 읽기가 매우 어렵다는 느낌을 줄 가능성이 높아 서론 해설을 뛰어넘고 본론에 대한 해설을 끝낸 후 서론에 대해 해설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이 글에서는 서론에 대한 해설을 하도록 하겠다. 그런 후에 『자본론』Ⅰ권 전체를 요약, 조망하여 전체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문에 대한 해설

먼저 간단하게 『자본론』이 발간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맑스는 『자본론』 Ⅰ권을 발간하기 전인 1857/58년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담은 수고를 쓰기 시작하였다. 맑스가 1857/58년의 수고를 집필할 때, 원래는 자본, 토지소유, 임노동, 국가, 무역, 세계시장에 관한 여섯 권의 책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지 않고 최종적으로는 일부가 수정되어 『자본론』에는 자본, 토지소유, 임노동만이 포함되게 되었다. 또한 맑스는 처음부터 『자본론』을 쓴 것이 아니고 1857/58년의 수고를 토대로 1859년에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을 집필하여 발간하였다. 맑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1분책을 발간한 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제2분책을 신속하게 발간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맑스 스스로가 추가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건강상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생각대로 진행되지 못하였다. 1861~63년 사이에 맑스는 23권의 노트로 된 새로운 수고를 작성했다. 이 노트는 나중에 『자본론』 Ⅰ권에서 제시된 문제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맑스는 이 수고를 집필하면서 1862년 말에 두 번째 저작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제2분책으로 하지 않고 『자본론』이란 제목으로 별도의 저작으로 발간하기로 결정하였다. 맑스는 1861~63년 사이의 수고를 작성한 후에도 곧바로 『자본론』 집필로 가지 못하고 세 번째의 수고를 1863~65년에 추가로 작성하였다. 이 시기에 작업이 지체된 것은 똑같이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1864년에 결성된 국제노동자 협회의 일도 지체의 이유가 되었다. 맑스가 『자본론』 전체의 수고에 대한 첫 번째 개작을 마친 것은 1865년 12월 말에 이르러서였다. 1866년에 엥겔스의 조언으로 맑스는 저작 전체가 아니라 Ⅰ권만을 인쇄하기 위해 글을 다듬기 시작하였다. 『자본론』Ⅰ권은 1867년 9월 14일이 되어서야 발간되었다. Ⅱ, Ⅲ권은 맑스가 사망한 후 엥겔스에 의해 각각 1885년, 1894년에 발간되었다.

제1판 서문의 모두에서 맑스가 『자본론』 Ⅰ권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계속이라고 언급한 것은 『자본론』 Ⅰ권 발간에 이르기까지의 저간의 사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의 내용은 『자본론』Ⅰ권 제1편 제1~3장에 요약되어 있다.

맑스는 서문에서 “첫 부분이 항상 어렵다는 것은 어느 과학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제1장, 특히 상품분석이 들어 있는 절을 이해하기가 가장 힘들 것이다.”(『자본론』 Ⅰ, 3쪽)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자본론』 Ⅰ권을 읽어 본 독자라면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였을 것이다. 제1장 상품 부분은 전체가 어렵고, 특히 제3절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제4절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였을 것이다. 맑스가 미리 제1장이 어렵다는 것을 밝힌 것은 첫 부분의 어려움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지 말 것을 독자들에게 당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맑스는 자연과학에서와는 달리 경제적 형태의 분석에서는 현미경도 시약도 소용이 없고 추상력이 이것을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나 경제의 분석에서는 실험실에서처럼 대상을 연구할 수는 없다. 추상력을 동원하여 대상을 연구할 수 있을 뿐이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목적으로 한 것은 “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자본론』 Ⅰ, 6쪽)이었는데, 이를 위해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 및 그것에 대응하는 생산관계와 교환관계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 당시 이 생산양식이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가 영국이었기 때문에 맑스는 영국을 이론전개의 주요한 예증으로 활용하였다. 맑스는 영국보다도 후진국인 독일의 독자가 영국의 노동자들의 형편에 대해서 위선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거꾸로 독일에서는 사태가 그렇게는 나쁘지 않다고 자기를 위안하려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충고하고 있다. 왜냐하면 공업이 더 발달한 나라는 덜 발달한 나라에게 후자의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일에서는 영국에서보다도 사태는 더 나쁘다. 왜냐하면 “기타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독일-인용자) 서유럽 대륙의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발전의 불완전성에 의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자본론』 Ⅰ, 5쪽)기 때문이다. 또한 “또한 어떤 국민이든 다른 국민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또 배울 수 있다. 한 사회가 비록 자기 발전의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하더라도―사실 현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목적이다―자연적인 발전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러한 발전의 진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 이 구절은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자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과거의 사람들(러시아의 인민주의자들)에게 경고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자기 나라에서의 자본주의는 매우 특수해서 앞선 나라에서 발견된 일반적인 자본주의적 발전법칙, 운동법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고 있다.

맑스는 개인들이 문제로 되는 것은 오직 그들이 경제적 범주의 인격화, 일정한 계급관계와 이익의 담지자인 한에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입장은 『자본론』 전체에서 반복되는데 경제적 사회구성의 발전을 자연사적 과정으로 보는 맑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873년 1월에 쓰인 제2판 후기에서 맑스는 『자본론』이 독일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받은 평가에 대한 기쁜 마음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는 독일 노동자계급의 이론적 사색의 능력에 대한 찬사도 들어있다.

『자본론』이 독일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층에서 이처럼 빨리 평가받게 된 것은 나의 노력에 대한 최대의 보상이다. [경제문제에서는 부르주아적 입장을 대변하는] 비엔나의 공장주 마이어는 보불전쟁 때 발간한 소책자에서, 독일인의 세습재산이라고 인정되어 온 이론적 사색의 탁월한 재능은 독일의 이른바 식자층에서는 완전히 소멸했으나 그 대신 독일 노동자계급 속에서 부활되고 있다고 아주 옳게 말한 바 있다.

(『자본론』Ⅰ, 10쪽, 강조는 인용자)

19세기 후반기에 독일노동자계급이 전 세계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전위로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노동자계급의 이론적 능력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독일 노동자계급의 탁월한 이론적 능력에 대한 언급은 비슷한 시기(1874년)에 쓰인 엥겔스의 글 「『독일 농민 전쟁』 제2판과 3판 서문」에서도 발견된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 밖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본질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이론적인 민족에 속하며, 독일의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완전히 잃어버린 이론적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지금까지 존재한 단 하나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론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오늘날의 상황처럼 노동자들의 살과 피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3권, 박종철 출판사, 167쪽)

제2판 후기가 연이어 다루는 중요한 주제는 독일의 정치경제학이 처한 위치이다. 독일에서 정치경제학은 맑스가 『자본론』을 쓸 때까지도 외국의 학문으로 남아 있었다.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발전이 과거에는 저해되어 정치경제학이 육성될 수 있는 토양이 없었다. 정치경제학은 영국과 프랑스로부터 기성품의 형태로 수입될 수밖에 없었고 독일의 교수들은 항상 학생이었다. 그런데 1848년 이래 자본주의적 생산이 독일에서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아직도 독일의 전문가들에게 미소를 짓지 않았다. 환경이 달라진 것이다. 그들이 편견 없이 정치경제학을 연구할 수 있었을 때에는 독일의 현실에 근대적 경제관계가 존재하지 않았고, 이러한 관계가 나타났을 때에는 [부르주아적 시야를 가지면서도 그것을 편견 없이 연구하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어 버렸던 것이다. 정치경제학이 부르주아적인 한, 즉 그것이 자본주의제도를 사회적 생산의 하나의 과도적인 역사적 발전단계로 보지 않고 사회적 생산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형태로 보는 한, 정치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잠재적 상태에 있거나 오직 고립적이고 산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동안만 과학으로 존속할 수 있다. 계급투쟁이 더욱더 공공연하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종말을 고한다.

맑스는 이것의 예로 영국을 들고 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계급투쟁이 아직 발전하지 않던 시기의 것이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최후의 위대한 대표자 리카도는 의식적으로 계급적 이익의 대립을 자기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는 소박하게도 이 대립을 자연에 의해 강요된 사회법칙으로 보았다. 다음 시기인 1820~30년에 영국에서는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활기찬 학문적 활동이 눈에 띄었다. 이 시기는 리카도 이론이 속류화되고 보급된 시기인 동시에 그의 이론이 종래의 학파와 투쟁한 시기였다. 이 시기 논쟁은 공평무사한 성격을 가졌는데 이것은 그 당시의 사정에 의해 설명된다. 한편으로 대공업 자체는 겨우 유년기를 벗어난 데 불과했다. 다른 한편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1830년에는 최종적인 결정적 위기가 닥쳐왔다. 프랑스와 영국에서 부르주아지가 정권을 쟁취했다. 이 순간부터 계급투쟁은 더욱더 공공연하고 위협적인 형태를 취했다. 그와 더불어 과학적인 부르주아 경제학은 조종을 울렸다. 그 뒤부터 어떤 이론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자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편리한가 불편한가, 정치적으로 위험한가 아닌가가 문제로 되었다.

1848년의 대륙혁명(프랑스의 2월 혁명으로 촉발된 유럽 대륙의 혁명을 말한다)은 영국에서도 반향을 일으켰다. 지배계급의 아첨꾼의 다른 편에서 아직도 약간의 과학적 명성을 얻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단순한 궤변과 아첨꾼으로 되는 데 만족하지 않던 사람들이 자본의 정치경제학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와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이로부터 존 스튜어트 밀을 대표자로 하는 절충주의가 나왔다. 이와 같은 사정 하에서 정치경제학의 부르주아과학의 대변자들은 두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총명한 실무가들은 [변호론적인 속류경제학의 가장 천박한, 따라서 가장 성공적인 대표자] 바스티아의 깃발 아래 뭉쳤고, 교수인체 하며 자기들의 학문적 위신을 자랑하는 인간들은 [타협불가능한 것을 타협시키려는] 존 스튜어트 밀의 뒤를 따랐다.

독일 사람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의 몰락기에도 과거의 고전적인 시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외국학자의 단순한 학생이었다. 독일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그것의 적대적 성격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역사적인 소란스러운 투쟁을 통해 나타난 뒤에야 겨우 성숙했다. 더욱이 독일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일 부르주아지보다 훨씬 더 이론적으로 명확한 계급의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치경제학의 부르주아과학이 드디어 가능한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에 그것은 다시 불가능하게 되었다. 독일 사회의 역사적 발전의 이와 같은 특수성 때문에 ‘부르주아’ 경제학의 독창적인 발전은 전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비판까지 불가능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비판이 하나의 계급을 대변하고 있는 한,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타도와 모든 계급의 최종적 철폐를 자기의 역사적 사명으로 하고 있는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프롤레타리아트를 대변하는 부르주아 경제학 비판이 가능한 것이다.

제2판 후기에서 맑스는 『자본론』의 방법에 대한 카우프만의 논평을 비교적 길게 인용한 후 카우프만이 호의적으로 묘사한 방법이 다름 아닌 ‘변증법적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이에 대해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최초의 『자본론』 번역판이 러시아판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러시아는 후진국이었는데 1872년 봄에 『자본론』의 러시아어 번역판이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발간되었다. 이는 당시 러시아 혁명가들의 선진적 사상에 대한 열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사건이다. 독일 노동자계급에 이어 러시아 노동자계급이 역사적으로 전 세계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전위로 20세기 초반에 등장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맑스는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간주함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자본론』Ⅰ, 19쪽) 맑스가 변증법을 말하면서 헤겔을 언급한 것은 변증법이 헤겔의 수중에서 신비화되기는 했지만, 그가 최초로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으로 또 알아볼 수 있게 서술하였기 때문이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었다. 맑스는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그것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한 것이다. 그동안 해설 연재물을 통해 필자는 『자본론』 Ⅰ권에 변증법이 적용된 사례들을 그때그때마다 언급하였는데(가령, 본질과 현상,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가치형태의 이행, 공황의 가능성과 현실성, 대공업이 노동에 미친 영향, 대공업이 가족, 양성 관계에 미친 영향,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이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으로 전환,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에서 나타나는 부정의 부정 등) 독자들이 다시 한 번 찾아서 확인해보기를 권한다. 맑스의 말처럼 변증법은 모든 것을 유동적,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배계급에게는 분노와 공포를 주는 것이다.

1872년의 프랑스어판 서문에는 맑스가 자본론읽기의 어려움을 감수할 것을 제1판 서문에 이어 재차 당부하는 부분이 들어있다. 이 부분은 현재의 독자에게도 필요한 경구이기 때문에 인용한다.

다만 진리를 갈망하는 독자들에게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려주고 그들에게 미리 경고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학문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오직 피로를 두려워하지 않고 학문의 가파른 오솔길을 기어 올라가는 사람만이 학문의 빛나는 정상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본론』 Ⅰ, 21쪽, 강조는 인용자)

마지막으로 맑스 사후 엥겔스가 1886년에 작성한 영어판 서문을 보도록 하겠다. 이 서문에는 “유럽대륙에서는 『자본론』을 가끔 ‘노동자계급의 성경’이라고 부른다”(『자본론』 Ⅰ, 30쪽)는 구절이 나온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는 실업자들이 참다못해 자기의 운명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쥐게 될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확실히 예상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순간에는 맑스의 목소리를 응당 들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전 생애에 걸쳐 영국의 경제사와 경제사정을 연구한 뒤 자기의 전체 이론을 수립했고, 이 연구에 의거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영국만이 전적으로 평화적·합법적 수단에 의해 필연적인 사회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영국의 지배계급들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반란’ 없이 이 평화적·합법적 혁명에 굴복하리라고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첨언하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자본론』Ⅰ, 31, 32쪽)는 부분이 나온다. 독자들이 미래를 전망할 때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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