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Ⅰ권 해설을 마치며(2)―『자본론』 Ⅰ권의 전체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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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자본론』Ⅰ권의 전체 흐름

필자는 2018년에서 쓴 「『자본론』 강좌를 시작하며: 『자본론』, 이렇게 공부하면 좋습니다」에서 “『자본론』을 처음 공부할 때는 『자본론』 내용의 큰 흐름에 집중하고 어려운 부분을 만나면 여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전후 맥락을 파악하고 넘어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라고 조언하고 자본론학습 중간단계마다 책의 목차들을 다시 훑어보기를 권하였다. 이제 『자본론』 Ⅰ권 전체의 학습이 끝났기 때문에 같은 취지로 『자본론』 Ⅰ권의 전체 흐름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상품과 화폐

『자본론』 Ⅰ권의 핵심주제는 잉여가치의 생산과 자본의 축적과정이다. 잉여가치의 생산을 해명하기 위해서 맑스는 먼저 제1편 상품과 화폐 제1장 상품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의 기본형태인 상품을 분석한다. 따라서 맑스가 분석하는 상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상품이다. 상품은 사용가치를 갖는다. 또한 한 상품은 다른 상품들과 교환된다. 한 상품이 다른 상품들과 교환되는 비율인 교환가치라는 현상형태의 배후에는 가치가 있는데 이 가치는 추상적인 인간노동이 응고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치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그 상품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다. 상품이 사용가치와 가치라는 이중성을 갖는 것처럼 노동도 이중성을 갖는데 구체적 유용노동의 측면에서 사용가치를 생산하고 추상적 인간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가치를 형성한다.

상품의 가치대상성은 순전히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에 가치대상성은 상품과 상품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즉, 가치는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를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맑스는 제1장 제3절에서 가치형태가 단순한 가치형태에서 출발하여 화폐형태에 이르는 과정을 분석하여 화폐형태의 발생기원을 밝혔다. 이로써 화폐의 신비도 폭로되었다.

맑스는 상품분석을 마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제4절에서 상품의 물신성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다. 상품의 물신성은, 상품형태가 인간 자신의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물건들의 사회적인 자연적 속성]으로 보이게 하며, 따라서 총노동에 대한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의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상품의 물신성이 나타나는 것은, 상품생산자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상호 의존하지 않고 사적으로 생산하므로, 이들이 자기의 노동생산물의 교환을 통해서 비로소 사회적으로 접촉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신성 문제는 『자본론』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상품물신성은 화폐물신성, 자본물신성. …… 삼위일체(3권 제48장에서 다룸. 1,006~1,011쪽에서는 『자본론』 전체가 다룬 물신성 문제를 요약정리까지 하고 있다.)로 발전한다.

맑스는 제2장에서 다시 한 번 화폐 출현의 필연성을 다룬다. 제1, 2장으로부터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의 발전 속에서 화폐가 필연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하게 밝혀진다. 화폐출현의 필연성을 검토한 후 맑스는 제3장에서 화폐의 기능을 자세히 검토한다. 화폐 기능에는 크게 다섯 가지가 있는데 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로서의 기능이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

제1편에서 상품과 화폐를 분석한 후 맑스는 제2편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에서 자본으로의 이행을 검토한다. 화폐가 자본으로 전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역사적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자본의 역사적 존재 조건은 결코 상품유통과 화폐유통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상품인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노동으로서 가치의 원천이다. 노동력의 사용가치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노동으로서 가치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다. 노동력의 가치는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이 특수한 상품의 생산과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규정되고 결국은 노동력 소유자의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로 귀결된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1편, 제2편의 예비적인 분석을 토대로 맑스는 『자본론』 Ⅰ권의 본론인 잉여가치의 생산을 검토한다. 제3편에서 먼저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검토하고 제4편에서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검토하며 제5편에서는 이 둘을 종합한다.

제3편은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다룬다. 먼저 제7장은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을 다룬다. 맑스는 제1장에서 상품의 두 요소인 사용가치와 가치를 나누어 검토하고 노동을 구체적 유용노동과 추상적 인간노동으로 나누어 검토하였다. 이와 똑같이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으로 나누어 검토한다. 맑스는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노동과정을 특정 사회형태와 관계없이 고찰한다. 그런 후 가치증식과정,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을 검토한다. 이 검토에서 밝혀진 것은,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것은 노동자가 노동력의 가치에 대상화된 노동시간(가령 6시간)을 초과하여(가령 6시간) 노동하기(가령 12시간) 때문이라는 점이다. 결국, 생산과정에서 노동력이 창조하는 가치는 노동력의 가치보다 큰데 이 차액이 잉여가치이다. 그리고 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자본가가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구매에서, 그리고 생산된 상품의 판매에서 등가교환을 하지만 그러함에도 잉여가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제7장에서 잉여가치 생산의 구조가 해명되었다. 그런데 제3편의 제목은 그냥 잉여가치의 생산이 아니라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이 제목이 붙여진 것은 제4편에서 다루어지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맑스는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르고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이에 대응해 노동일의 두 부분들의 길이 변화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검토한 후 맑스는 자본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분한다. 자본 중 생산수단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량이 변동하지 않기 때문에 맑스는 이것을 불변자본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반대로, 자본 중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동하기 때문에 맑스는 이것을 가변자본이라고 부른다. 제3편에서는 잉여가치율도 다루는데 이것은 잉여가치/가변자본으로 자본에 의한 노동력 착취도의 정확한 표현이다.

제3편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부분이 제10장 노동일이다. 이 장은 매우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생생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제10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고발장이자 규탄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0장은 앞부분 제1절에서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싸고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사이에 계급투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이런 점에서 제1절은 노동시간(노동일)에 대한 이론을 담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후에 자본가들이 잉여노동을 훔쳐가는 양태를 폭로하고 착취의 법적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분들과 주간노동과 야간 노동, 교대제를 폭로하고 있다. 뒷부분의 제5,6,7절에서는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제5절과 제6절은 역사적으로 전개된 반대 방향의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14세기 중엽에서 17세기 말까지의 노동일의 연장을 위한 강제법, 법률에 의한 노동시간의 강제적 제한(1833~64년의 영국의 공장법)}을 다루고 제7절은 영국의 공장법이 타국에 준 영향을 다루고 있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4편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다룬다. 앞에서 말했듯이 상대적 잉여가치는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어 생기는 잉여가치를 말한다.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면 잉여노동시간은 증가하게 되고 잉여가치도 증가하게 된다. 이런 일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노동력의 가치가 감소해야 하고 생활수단의 가치가 감소해야 하는데 결국 생활수단의 생산과 관련해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해야 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생활수단의 생산과 관련해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여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어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별자본가, 가령 생활수단의 한 종류인 속옷을 생산하는 자본가가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킬 때, 이 자본가가 결코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켜 그만큼 필요노동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자본가가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은, 여타의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작은 가치의 속옷을 생산하여 특별하게 더 많은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즉,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자본가가 생산하는 상품의 개별가치는 사회적 가치보다 작다. 여기서 특별잉여가치가 발생한다. 자본가들이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여 상품가치를 저렴하게 하려는 동기를 갖는 것은 바로 이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다른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 방식을 도입한다. 그 결과 새로운 생산방식이 일반화되게 되고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제거되게 되어 특별잉여가치는 소멸한다. 특별잉여가치의 발생과 소멸과정이 누적되어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생활수단의 생산과 관련된 산업부문들에서 일어나서 생활수단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를 떨어뜨릴 때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일반적인 잉여가치율이 상승하게 된다. 이것이 상대적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전체 구조이다.

노동생산성을 증가시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방식에는 협업, 매뉴팩쳐, 기계제 대공업이 있다.

협업은 하나의 동일한 생산과정에, 또는 서로 다르게 상호 관련된 생산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본 형태이다. 자본주의적 협업에서 노동자가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분업에 의거한 협업은 매뉴팩쳐에서 그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매뉴팩쳐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하나의 특징적 형태로 대략 16세기 중엽에서 18세기의 마지막 1/3에 이르는 본래의 매뉴팩쳐 시대를 통해 지배적이었다. 매뉴팩쳐의 살아있는 메카니즘을 형성하고 있는 집단적 노동자는 일면적으로 전문화된 부분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매뉴팩쳐에서는 협업 일반에서 그렇듯이 각종 노동의 결합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매뉴팩쳐는 노동자의 일체의 생산적인 능력과 소질을 억압하면서 특수한 기능만을 촉진함으로써 노동자를 기형적인 불구자로 만든다. 매뉴팩쳐에서는 자본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의 개인적 생산력의 빈약화를 통해 풍부해진다.

사회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자본주의적 형태의 하나인 매뉴팩쳐적 분업은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하나의 독특한 방법, 또는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자본의 자기증식을 증대시키는 하나의 특수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매뉴팩쳐적 분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강화하는 새로운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진정한 매뉴팩쳐 시대에는 매뉴팩쳐 특유의 경향들의 완전한 발전은 여러 가지 장애에 부닥친다. 수공업적 숙련은 여전히 매뉴팩쳐의 토대이며, 매뉴팩쳐의 메카니즘 전체가 [노동자 자신들로부터 독립된] 그 어떤 객관적 골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본은 끊임없이 노동자의 불복종 행위에 마주치게 된다.

매뉴팩쳐가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르자, 매뉴팩쳐 자신의 협소한 기술적 토대는 매뉴팩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 상의 여러 가지 필요와 모순되게 되었다. 매뉴팩쳐의 가장 완전한 성과 중의 하나는 노동도구 그 자체[특히 이미 사용하고 있던 복잡한 기계장치]를 생산하는 작업장이었다. 이 작업장은 이번에는 기계를 생산했다. 기계는 수공업적 노동자가 사회적 생산의 규제원리로 역할 하는 것을 철폐한다. 그리하여 노동자를 일정한 부분적 기능에 일생 동안 얽매어 두는 기술적 이유가 사라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위의 규제원리가] 자본에 가한 장애물도 소멸되어 버린다.

제15장 기계와 대공업은 『자본론』 Ⅰ권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세 장 중 하나이다. 맑스가 정성을 들여 쓴 부분이다.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사용목적은 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다. 완전히 발전한 기계는 동력기, 전동장치, 도구 또는 작업기로 이루어진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의 출발점은 작업기였다. 매뉴팩쳐적 생산과 기계제 생산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후자에서는 매뉴팩쳐적 생산의 주체적인 분업 원칙은 없어진다(주객전도 현상). 여기에서의 총과정은 객체적으로 그 자체로 고찰되며 그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어떻게 수행되느냐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단계들로 분할된다.

대공업은 기계 그 자체를 기계로 생산하는 단계에 이르며 이때 비로소 대공업은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되었다.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은 자본가에 의한 기계사용의 첫 번째 결과였다. 기계는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노동자 가족의 구성원 모두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함으로써 임금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되었다. 기계는 처음부터 인간적 착취재료를 추가할 뿐만 아니라 착취의 정도를 증가시킨다. 기계는 아동과 여성을 대량으로 노동자계급에 추가함으로써, 성인 남성노동자가 매뉴팩쳐 시기 전체를 통해 자본의 독재에 대항했던 반항을 드디어 타파하게 된다. 기계는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이 기계의 도입이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하여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대한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고, 또 노동방식 자체와 사회적 노동유기체의 성격을 크게 변혁시킴으로써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경향에 대한 모든 반항을 좌절시키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부분적으로는 노동자계급 중 종전에 자본가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층들을 자본가에 복종시킴으로써, 또 부분적으로는 기계에 의해 쫓겨난 노동자들을 하는 일 없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과잉노동인구를 생산한다. 기계는 노동일의 길이에 관한 온갖 도덕적, 자연적 제한을 없애버린다는 근대산업사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또한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모든 생활시간을 자본의 가치증식에 이용할 수 있는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된다는 경제적 역설이 이로부터 나온다.”(『자본론』 Ⅰ, 547쪽) 기계의 도입 이후 영국에서는 반세기 동안 노동일의 연장과 공장노동의 강도의 증대가 병행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노동일의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의 증가가 불가능하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가들이 사용한 것이 노동의 강화였다.

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기계는 고용된 노동자의 수를 크게 감소시키고 임금노동자를 과잉으로 만듦으로써 임금을 하락시킨다. 또한 기계는 자본의 독재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주기적 반항인 파업을 진압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무기로 된다.

제15장의 마지막 두 절인 제9, 10절은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어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절들이다. 공장법의 교육조항은 대체로 빈약한 것이지만 초등교육을 아동고용의 의무조건으로 선언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적인 공공의 교육이 출현한 것이다. 때문에 공교육의 탄생은 공장제도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조항들의 성공은 교육과 체육을 육체노동과 결합시키는 것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근대적 공업은 결코 어떤 생산과정의 기존형태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도 않으며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종전의 모든 생산방식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근대적 공업의 기술적 토대는 혁명적이다. 대공업은 노동의 전환[따라서 노동자가 다양한 종류의 노동에 최대로 적합하게 되는 것]을 하나의 사활적인 문제로 만든다. 따라서 노동전환의 이러한 가능성은 사회적 생산의 일반 법칙이 되어야 하며, 기존의 관계들은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개조되어야 한다. 비참한 상태에 묶어 두고 있는 산업 예비군이라는 괴물은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도 절대적으로 할 수 있는] 개인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즉, 부분적으로 발달한 개인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대공업은 종래의 가족제도의 경제적 토대와 그에 상응하는 가족노동을 붕괴시킴으로써 종래의 가족 관계까지도 해체했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종래의 가족제도의 붕괴가 아무리 무섭고 메스껍게 보일지라도, 대공업은 가정의 영역밖에 있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에서 부인, 미성년자, 남녀 아동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가족과 양성관계의 더 높은 형태를 위한 새로운 경제적 토대를 창조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구를 대중심지로 집결시키며 도시인구의 비중을 끊임없이 증가시키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사회의 역사적 동력을 집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한다. 즉 인간이 식품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토지 성분들을 토지로 복귀시키지 않고, 따라서 토지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연조건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노동자의 육체적 건강과 농촌노동자의 정신생활을 다 같이 파괴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물질대사의 유지를 위한 자연발생적 조건을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물질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서 그리고 인류의 완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건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제5편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서는 제3편과 제4편을 종합한다. 제5편에서는 생산적 노동의 개념을 다룬다. 노동과정의 측면에서 “노동과정 전체를 그 결과인 생산물의 입장에서 고찰하면,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은 생산수단으로 나타나고, 노동 그 자체는 생산적 노동으로 나타난다.”(『자본론』 Ⅰ, 240쪽) 그런데 생산적 노동의 개념은 생산물이 개인적 생산자의 직접적 생산물로부터 하나의 사회적 생산물, 또는 집단적 노동자의 공동생산물로 전환할 때 확장된다. 그러나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는 생산적 노동의 개념은 더욱 협소해진다.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는 자본가를 위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자만이 생산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생산적 노동자가 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다! 제5편에서는 이어서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의 상호관련을 다룬다.

임금

『자본론』 Ⅰ권의 두 번째 핵심주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다. 그런데 맑스는 이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제6편에서 임금을 검토한다. 서문에 대한 해설에서 언급하였듯이 맑스가 1857/1858년의 수고를 집필할 때 임노동을 자본, 토지소유에 이어 제3부에서 다룰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수정되어 임노동은 『자본론』에 포함되게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제6편이다. 임금은 제6장에서 밝혀졌듯이 노동력의 가치이다. 그러함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은 노동의 대가, 노동의 가치로 나타난다. “‘노동의 가치’라는 표현에서는 가치의 개념이 완전히 소멸될 뿐 아니라 거꾸로 되어 그 반대물로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적 표현은 생산관계 자체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본질적 관계의 현상형태를 나타내는 범주이다. 현상에서 사물이 흔히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정치경제학을 제외한 모든 과학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론』 Ⅰ, 726쪽)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나타내는 불합리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동의 가치(v)는 노동의 가치생산물(v+s)보다 항상 적다. 그리하여 임금형태는 노동일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 지불노동과 불불노동으로 분할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게 한다. 즉, 전체노동이 지불노동으로 나타난다. 임금형태는 자본관계, 착취관계를 은폐하고 왜곡한다. 현실적 관계를 은폐하고 그와 정반대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이 현상형태야말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일체의 정의관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체의 신비화, 자유에 대한 자본주의의 모든 환상, 속류경제학의 모든 변호론적 속임수의 토대가 되고 있다. 임금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시간급제 임금이다. 성과급제 임금은 시간급제 임금의 전환된 형태이다.

자본의 축적 과정

제7편은 『자본론』 Ⅰ권의 두 번째 핵심주제인 자본의 축적 과정을 다룬다. 먼저 단순재생산을 검토한다. 어떤 사회적 생산과정도, 그것을 연속된 전체로서, 끊임없는 갱신의 흐름으로서 고찰할 때에는, 동시에 재생산과정이다.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수입이 되는데 이 수입 모두 자본가에 의해 소비된다면, 단순재생산이 일어난다. 단순재생산은 이전과 같은 규모에서 생산과정의 단순한 반복이기는 하나, 이 단순한 반복성 또는 연속성은 생산과정에 대해 새로운 특징을 부여하거나 또는 고립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상의 일부 특징을 없애 버린다. 가변자본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하고, 또 어떤 사회적 생산체제에서도 그가 언제나 생산하고 재생산해야만 하는]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재원, 즉 노동기금이 취하는 특수한 역사적 현상형태에 불과하다. 생산과정의 단순한 연속은 조만간에 필연적으로 모든 자본을 자본화된 잉여가치로 전환시켜 버린다. 단순재생산에 의해 최초에는 출발점에 불과했던 것(노동의 생산물과 노동 그 자체의 분리)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적인 결과로 된다.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도 개별자본가나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고립된 생산과정이 아니라 완전히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실제의 사회적 규모에서 고찰한다면,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자본의 재생산과정의 한 계기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의 개인적 소비는, 한편으로는 그들의 유지와 재생산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활수단을 끊임없이 소멸시킴으로써 그들을 노동시장에 계속 나타나도록 만든다. 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그가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은 개별 고용주들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과 계약이라는 법적 허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자본론』 Ⅰ, 779, 780쪽)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재생산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품이나 잉여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관계 자체를, 즉 한편으로는 자본가를,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자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단순재생산에 이어 다음은 확대재생산이다.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재전환시키는 것을 자본의 축적이라고 한다. 축적이 누적되어 감에 따라 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이와 같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교환관계는 유통과정에만 속하는 단순한 외관일 따름이며, [거래 그 자체의 내용과 관계가 없고 도리어 그것을 모호하게 할 뿐인] 단순한 형태에 불과하며, 그것의 내용은 자본가가 이미 대상화된 타인노동의 일부를 아무런 등가물도 지불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교환한다는 것이다. 최초에는 소유권이 한 인간자신의 노동에 기초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소유가 이제는, 자본가측에서는 타인의 불불노동 또는 그 생산물을 취득하는 권리로 되며, 노동자의 측에서는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취득하지 못하는 것으로 된다. 노동과 소유의 분리는 노동과 소유의 동일성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법칙의 필연적 결과로 된다.

제7편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역시 맑스가 『자본론』 Ⅰ권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장이다. 제25장은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제25장에서 처음 나오는 개념으로서 매우 중요한 것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다.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가치비율을 맑스는 자본의 가치구성이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생산과정에서 기능하는 소재의 측면에서 어떤 자본도 생산수단과 살아있는 노동력으로 분할되는데, 생산수단의 양과 이 생산수단의 활용에 필요한 노동량 사이의 비율을 맑스는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양자 사이에는 긴밀한 상호관계가 있다. 이 상호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맑스는 자본의 가치구성이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의해 결정되고 또 기술적 구성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 그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맑스는 먼저 축적 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불변인 경우를 상정하고 검토한다. 그런 후 자본의 구성이 고도화되는 경우를 살펴본다. 그리고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축적에 따라 자본의 구성이 고도화되는 것이 실제적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토대가 일단 주어지면, 축적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발전이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되는 시기가 온다. 그런데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의 수준은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강도로 일정한 시간에 생산물로 전환시키는 생산수단의 상대적 규모로 표현된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에 의해 움직이는 생산수단의 양에 비한 노동량의 감소로 나타난다.

자본축적에 따라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따라 자본축적이 발전한다. 이 두 경제적 요인들은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 때문에 가변적 구성부분은 불변적 구성 부분에 비해 점점 더 작아진다. 자본의 축적에 따라 자본의 집적이 이루어진다. 자본의 집중은 축적의 작용을 강화하고 촉진함과 동시에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혁을 확대하고 촉진한다. 한편으로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추가자본은 그 크기에 비해 더욱더 소수의 노동자를 흡수한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구성으로 주기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자본은 종전에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더욱 더 많이 축출한다. 이것은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이 자본의 규모에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맑스는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검토한다. [총자본의 증가에 따라 촉진되며 총자본 자체의 증가보다 빠른 속도로 촉진되는]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는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또한 노동인구는 그들 자신이 생산하는 자본축적에 의해 그들 자신을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드는 [즉 상대적 과잉인구로 만드는] 수단을 점점 더 큰 규모로 생산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인구법칙이다. 상대적 과잉인구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로 된다. 산업예비군은 자본의 갑작스러운 확장력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공한다. 노동자계급 중 취업자들의 과도노동은 그 예비군을 증가시키고, 거꾸로 예비군이 경쟁을 통해 취업자들에게 가하는 압박의 강화로 취업자는 과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 과잉인구의 존재형태로는 유동적 형태, 잠재적 형태, 정체적 형태 그리고 구호 빈민이 있다. 사회적 부, 기능하는 자본, 그 증대의 규모와 활력, 따라서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수와 그의 노동생산성이 크면 클수록, 산업예비군은 그만큼 더 커진다. 자본의 확장력과 같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도 똑같은 이유들로 인해 발전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상대적 크기는 부의 잠재적 힘과 함께 증대한다. 그러나 현역 노동자군에 비해 이 예비군이 크면 클수록 이 고정적 과잉인구는 그 만큼 더 많아지는데, 그들의 곤궁은 노동고통과 역비례 관계에 있다. 끝으로, 노동자계급의 극빈층과 산업예비군이 크면 클수록, 공식적인 구호 빈민은 그만큼 더 많아진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이다. 맑스는 마침내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제4편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분석할 때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는 사회적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회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들은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며, 노동자를 부분 인간으로 불구화하며,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로 떨어뜨리며, 그의 노동의 실제 내용을 파괴함으로써 노동을 혐오스러운 고통으로 전화시키며, 과학이 독립적인 힘으로 노동과정에 도입되는 정도에 비례해 노동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로부터 소외시킨다. 또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모든 방법들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악하며,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를 독재[그 비열함 때문에 더욱 혐오스럽다]에 굴복시키며, 그의 전체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며,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자거노트의 수레바퀴 밑으로 질질 끌고 간다. 그러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의 방법이며, 그리고 축적의 모든 확대는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된다. 이로부터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의 상태는 [그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헤파이스토스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 편 끝[즉 자기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야만화,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자본론』 Ⅰ, 880, 881쪽)

맑스는 이어서 제25장 제5절에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을 자세하게 예증하고 있는데 제10장 노동일의 제2~4절과 같이 자본주의에 대한 생생한 폭로를 담고 있다.

이른바 본원적 축적

제8편 이른바 본원적 축적은 『자본론』 Ⅰ권의 마지막 편이다. 제8편은 먼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를 검토한다. 제8편은 이러한 검토 후에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는 것을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에서 검토한다. 이른바 본원적 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자유로운 노동자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직접적 생산자들이 농노적 예속과 길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 생산자들이 그들의 모든 생산수단을 박탈당하고 종래의 봉건제도가 제공하던 일체의 생존보장을 박탈당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수탈의 역사는 피와 불의 문자로 인류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다. 본원적 축적의 역사에서 무엇보다도 획기적인 것은 많은 인간이 갑자기 그리고 폭력적으로 그들의 생존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프롤레타리아트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농민으로부터 토지를 수탈하는 것은 이 전체 과정의 토대를 이룬다. 때문에 맑스는 영국에서 벌어진 농촌 주민으로부터의 토지 수탈을 자세하게 검토한다. 그런 후 자본가가 처음에 어디로부터 나왔는가를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발생을 검토하는 것을 통해 밝힌다. 그리고 산업자본가의 발생을 검토한다. 여기서 맑스는 본원적 축적의 상이한 요소들, 식민제도, 국채제도, 근대적 조세제도, 보호무역제도 등을 검토하는데 국가권력이 수행한 역할을 강조한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부분적으로는 잔인한 폭력에 입각하는 것이었는데, 예컨대 식민제도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들은 봉건적 생산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과정을 온실 속에서 촉진해 그 과도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된 힘]을 이용한다. 폭력은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 조산사로 된다. 폭력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잠재력이다.”(『자본론』 Ⅰ, 1,033쪽) 또한 맑스는 근대적 식민이론의 검토를 통해 직접적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박탈당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적 축적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은 『자본론』 Ⅰ권을 실제로 마무리하는 장이다. 이 장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됨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체의 모순으로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자본주의 발전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끊임없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의 양은 더욱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제8편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후의 미래를 동시에 검토하므로 이로써 『자본론』 Ⅰ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 자본주의의 운동법칙,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후의 미래 모두를 검토하게 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역사상 출현한 다른 생산양식들과 똑같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시적, 역사적 생산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이상에서 『자본론』 Ⅰ권 전체를 요약, 조망해보았다. 이렇게 전체 흐름을 파악해보면 『자본론』 Ⅰ권의 핵심내용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자본론』 Ⅰ권 전체가 매우 역동적으로 서술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자본론』 Ⅰ권 해설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주의자』 주최의 『자본론』 강좌를 2018년 8월 16일에 시작하고 같은 해 9월 20일부터 『자본론』 Ⅰ권 읽기 연재를 시작하여 이제 이를 마칠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 강좌와 이어진 복습 모임이 『자본론』 해설을 일단 Ⅰ권만이라도 완료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오랜 시간 같이 학습한 학생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해설 글들을 쓰면서 최대한 『자본론』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독자들이 『자본론』 읽기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최대한 독자의 관점에 서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물신성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 가족, 여성, 생태 등에 대해, 『자본론』에 담겨 있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해 신경을 썼다. 이 해설이 아무쪼록 『자본론』 읽기에 도전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자본론』 Ⅰ권 해설을 마무리하면서 독자 분들이 Ⅱ, Ⅲ 권도 계획을 세워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자본론』 강좌를 시작하며」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자본론』 Ⅰ권에 가장 핵심적인 부분들이 들어가 있지만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은 Ⅱ, Ⅲ권, 특히 Ⅲ권에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계획을 갖고, 가능한 한 『자본론』 Ⅰ, Ⅱ, Ⅲ권 전체를 읽기를 바란다. 필자는 Ⅱ, Ⅲ 권에 대해서도 연재물이나 별도의 책자를 통해 해설을 할 계획이다. 필자가 해설 글들을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자본론』을 이해하여 자본주의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싸울 수 있게 되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독자 분들이 학습 모임을 만들어서 해설 글들을 참고하면서 『자본론』 학습에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끝으로 그 동안 해설 글들을 꾸준히 읽어 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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