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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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자본론』 읽기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맑스는 본원적 축적 중 먼저 무일푼의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트의 폭력적 창출, 그들을 임금 노동자로 전환시킨 피의 규율, [노동에 대한 착취도를 강화하면서 자본의 축적을 증진시키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한] 국가의 추악한 조치를 고발했는데, 다음으로 자본가가 처음에 어디로부터 나왔는가를 밝힌다. 맑스는 이와 관련해서 차지 농업가의 발생을 검토한다.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의 발생

영국에서 차지 농업가의 최초의 형태는 [그 자신이 농노였던] 베일리프였다. 14세기 후반에는 베일리프는 [지주로부터 종자, 가축, 농기구를 공급받는] 차지 농업가에 의해 교체되었다. 그러나 차지 농업가의 처지는 소농의 처지와 그렇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들은 얼마 안가서 분익농인 메테예로 되었지만(그는 농업에 필요한 자본의 일부를 제공했으며, 지주는 다른 부분을 제공했다. 두 사람은 계약에 의해 규정된 비율로 총생산물을 분배했다.) 이 형태는 영국에서 급속히 소멸하고, 진정한 차지 농업가의 형태에 자리를 양보했다. 진정한 차지 농업가는 임금노동자를 사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본을 증식시키며, 잉여생산물의 일부를 화폐 또는 현물로 지주에게 지대로 지불했다.

15세기 중 차지 농업가의 형편과 그의 생산분야는 아직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15 세기의 마지막 1/3에 시작해 16세기의 거의 전체 기간(마지막 수십 년을 제외하고)에 걸쳐 계속된 농업혁명은 [농촌주민의 대다수를 빈곤하게 만든 것과 동일한 속도로] 차지 농업가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16세기에는 결과적으로 중요한 하나의 계기가 첨가되었다. 당시에 귀금속의 가치, 따라서 화폐의 가치가 계속 하락한 것은 차지 농업가에게 유리하였다. 당시의 차지 계약이 장기 계약으로, 가끔 99년에 걸치는 것도 있어 그가 지불해야 하는 지대는 감소하고, 임금은 하락했고, 모든 농산물의 가격은 계속적으로 등귀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그는 자기의 임금노동자와 지주를 동시에 희생시켜 치부했다. 16세기 말에 당시로서는 부유한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계급이 형성되었다.

공업에 대한 농업혁명의 영향. 산업자본을 위한 국내시장의 조성

농촌 주민의 수탈과 추방은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를 도시 공업에 공급했다. 독립적인 자영농민의 희박화는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조밀화와 직접적으로 대응했다. 뿐만 아니라 토지는 그 경작자 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이전과 다름없는 양의 생산물을, 또는 전보다도 많은 양의 생산물을 생산했다. 농촌 주민의 일부가 유리됨과 동시에 그들이 이전에 소비한 생존수단도 또한 유리되어 이제 가변자본의 물질적 요소로 전환한다. 공업의 국내의 농업 원료도 생활수단과 동일한 사정이었다. 그것은 불변자본의 한 요소로 전환되었다.

가령 [프리드리히 2세의 시대에 모두가 아마방적에 종사하고 있었던] 웨스트팔렌의 농민 중 일부는 폭력적으로 토지를 수탈당하고 토지로부터 추방되며, 나머지 부분은 대규모 차지 농업가의 일용 노동자로 된다고 가정하자. 동시에 큰 아마방적업체와 직조업체가 생겨 ‘유리된 사람들’이 거기에서 임금노동을 한다고 가정하자. 과거에는 아마는 [자기가 재배해 가족과 함께 조금씩 방적하던] 무수한 소 생산자들 사이에 분배되었다. 그런데 이제 아마는 매뉴팩쳐 소유주의 불변 자본의 일부로 되었다. 이전에 농촌 일대에 흩어져 있던 방추와 직기는 지금은 노동자와 원료와 함께 소수의 큰 작업장에 집합하고 있다. 이것들 역시 불변자본의 일부가 되었다.

농촌 주민의 일부의 수탈과 추방은 산업자본을 위해 노동자와 그들의 생활수단 및 그들의 노동재료를 유리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국내시장을 창조했다. 종전에 농민가족은 생활수단과 원료를 자신이 생산했으며 그리고 그 대부분은 자신이 소비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원료와 생활수단이 상품으로 되었다. 대차지 농업가는 이것들을 파는데 매뉴팩쳐에서 자기의 시장을 발견했다. 실, 아마포, 거칠게 만든 모직물 등등 [즉, 각 농민가족이 자기의 수중에 있는 원료로 자기들의 소비를 위해 방적하고 직조하던 물건들]이 이제는 매뉴팩쳐의 제품으로 전환되며, 이 제품의 판로는 다름 아닌 농촌지방이다. 이리하여 농촌 부업의 파괴, 매뉴팩쳐와 농업의 분리과정이 이전의 자립적 농민들의 수탈, 생산수단으로부터 그들의 격리와 병행해 진행된다. 그리고 농촌의 가내공업을 파괴함으로써 국내시장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필요한 규모와 안정성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매뉴팩쳐 시기는 아직도 이 변혁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수행하지는 못한다. 매뉴팩쳐는 도시의 수공업과 농촌의 가내부업을 광범한 배경으로 삼으면서 국민생산을 매우 부분적으로만 장악할 따름이다. 매뉴팩쳐는 이러한 부업과 수공업을 한 형태, 일정한 공업부문, 일정한 지점에서 파괴하면서도 동일한 것들을 다른 형태, 다른 공업부문, 다른 지점에서 소생시킨다. 대규모 공업만이 기계의 형태로 자본주의적 농업에 확고한 토대를 제공하며, 농촌주민의 압도적 대다수를 근본적으로 수탈하며, 농촌 가내공업의 근본인 방적업과 직조업을 파괴함으로써 농업과 가내 공업 사이의 분리를 완성한다. 따라서 대규모 공업만이 산업자본을 위해 자체 국내시장을 비로소 정복한다.

산업자본가의 발생

여기에서 산업자본가의 ‘산업’은 맑스에 의하면 농업에 대칭되는 것이다. 따라서 맑스가 산업자본가를 말할 때 차지 농업가가 아닌 산업자본가를 지칭한다. 이 산업자본가의 발생은 차지 농업가의 발생처럼 그렇게 점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중세는 두 개의 독특한 자본 형태, 고리대 자본과 상인 자본을 물려주었다. 농촌의 봉건제도와 도시의 길드제도는 고리대금업과 상업에 의해 조성된 화폐자본이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러한 속박들은 봉건적 가신단의 해체와 농촌 주민의 수탈 및 추방과 함께 제거되었다. 새로운 매뉴팩쳐는 해안의 항구 또는 [구도시와 그 길드의 통제 밖에 있는] 농촌지역들에 건설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공업배양지들을 반대하는 자치도시의 치열한 투쟁이 일어났다.

아메리카에서의 금은의 발견,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가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이러한 것들이 생산의 자본주의적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들은 본원적 축적의 주요한 계기들이었다! 그 뒤를 이어 일어난 것은 지구를 무대로 하는 유럽 국민들의 무역전쟁이었다.

맑스는 이어서 본원적 축적의 상이한 요소들을 검토한다. 이 요소들은 식민제도, 국채제도, 근대적 조세제도, 보호무역제도 등이다. 이들 요소들은 대체적인 연대기에 따라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에 분배될 수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이 요소들이 17세기에 체계적으로 통합되었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부분적으로는 잔인한 폭력에 입각하는 것이었는데, 예컨대 식민제도가 그러하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들은 봉건적 생산양식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전환과정을 온실 속에서 촉진해 그 과도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국가권력[즉 사회의 집중되고 조직된 힘]을 이용한다. 폭력은 낡은 사회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그 조산사로 된다. 폭력 자체가 하나의 경제적 잠재력이다.

(『자본론』 Ⅰ, 1,033쪽, 강조는 인용자)

(a) 식민제도

맑스는 기독교적 식민제도의 악랄함을 언급한 후 17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 경영사의 추악함을 폭로하고 있다.

네덜란드인이 자바섬에서 사용할 노예를 얻기 위해 셀레베스섬에서 실시한 인간 약탈제도처럼 특징적인 것은 없다. 이 목적을 위해 특별한 인간도둑이 훈련되었다. …… 훔쳐온 젊은이들은 노예선박으로 운반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때까지 셀레베스 섬의 비밀감옥에 숨겼다.

(자본론』 Ⅰ, 1,034쪽)

말라카를 손에 넣은 네덜란드인들은 포르투갈 총독을 매수했는데 총독의 허가로 시내로 들어간 그들은 매수금액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를 학살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영국의 동인도 회사이다. 동인도 회사는 인도의 정치적 지배 이외에 차 무역과 중국과의 무역 전반에 대한 배타적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럽을 왕래하는 화물수송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었다 소금, 아편 후추 및 기타 상품에 대한 독점은 부의 무진장한 원천이었다. 의회에 제출된 한 문서에 의하면, 이 회사와 그 직원들은 1757년부터 1766년까지 인도인들로부터 6백만 파운드의 선물을 받았다. 1769년부터 1770년까지 영국인들은 쌀을 전부 매점하고 그것을 엄청난 가격이 아니면 다시 팔지 않음으로써 인위적인 기근을 조성했다.

원주민의 취급이 가장 횡포하게 자행된 곳은, 서인도의 플란테이션 농장에서와, 멕시코와 동인도의 부유하고 인구가 조밀한 나라들에서였다. 신교의 엄격한 주창자들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인디언의 머리가죽에 상금을 걸었는데, 수십 년 뒤 영국에 반기(미국의 독립전쟁)를 든 청교도의 자손들에게 식민제도는 복수하였다. 영국의 매수와 사주 하에 그들은 인디언의 도끼에 찍혀 죽었다.

식민지는 싹트는 매뉴팩쳐에 판매시장을 보장해 주었으며, 이 시장의 독점은 축적을 더 한층 강화했다. [유럽 밖에서 직접적인 약탈과 토착민의 노예화와 살인 강도에 의해 획득한] 재물은 본국으로 흘러 들어와 자본으로 전환되었다.

(b) 국채

국채제도는 매뉴팩쳐 시기에 유럽 전체에 전파되었다. 식민제도는 그에 따르는 해상무역 및 무역전쟁과 더불어 이 국채제도를 성장시킨 온실이었다. 국채는 자본주의 시대를 특징짓는다. 공채는 본원적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의 하나로 된다. 공채는 비생산적인 화폐에 창조의 힘을 부여하고 그것을 자본으로 전환시킨다. 국채는 주식회사, 온갖 종류의 유가증권 거래, 투기업, 한마디로 말해 증권투기와 근대적 은행지배를 발생시켰다. 국립이라는 칭호로 장식한 대은행들은 그 출생 첫날부터 사적 투기업자들의 회사에 불과했다. 그들은 정부에 협력했으며, 그들에게 부여된 특권에 의해 정부에 화폐를 대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은행들의 전면적인 발전은 ‘뱅크 오브 잉글랜드’의 창립으로부터 시작된다. BOE는 자기의 화폐를 8%로 정부에 대부하는 것으로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 은행은 화폐를 주조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로부터 부여받음으로써 자기의 자본을 은행권의 형태로 다시 한 번 국민에게 대부했다. 얼마 안 가서 이 은행 자체가 만들어낸 신용화폐는 주화로 기능하게 되었으며, BOE는 이 주화로 국가에 대부했고 국가를 대신해 공채이자를 지불했다. 이 은행은 점차 영국의 퇴장 귀금속의 [없어서는 안 될] 보관창고로 되었으며, 전체 상업신용의 중심으로 되었다.

(c) 국제신용제도

국채와 더불어 국제신용제도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여러 국민의 본원적 축적의 은폐된 원천의 하나였다. 예를 들면 베네치아의 추악한 강탈제도는 네덜란드의 풍부한 자본의 비밀원천의 하나를 형성했다. 왜냐하면 베네치아는 몰락의 시기에 거액의 화폐를 네덜란드에 대부해 주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는 네덜란드와 영국 사이에서도 볼 수 있다. 이미 18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의 매뉴팩쳐는 영국의 매뉴팩쳐보다 훨씬 뒤떨어졌으며, 네덜란드는 월등한 상공업국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1701~1776년에 네덜란드의 주요한 사업의 하나로 된 것은 방대한 자본의 대부업무, 특히 자기의 강력한 경쟁국인 영국에 대한 대부업무였다. 맑스가 『자본론』을 쓰던 당시에 비슷한 관계가 영국과 미국 사이에도 발생하였다.

(d) 근대적 조세제도

국채는 국가세입에 근거하고 있으며 세입으로 해마다의 이자 지불 등에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근대적 조세제도는 국채제도의 필수적인 보완물이었다. 국채는 결과적으로는 세금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차례차례로 계약된 국채의 누적 때문에 세금은 증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가장 필수적인 생활수단에 대한 과세(따라서 그 가격등귀)를 그 축으로 하는 근대적 조세제도는 그 자체 안에 조세의 자동적인 점진적 증대의 맹아를 내포하고 있다. 근대적 재정은 농민, 수공업자 등 하층 중간계급의 모든 구성부분을 폭력적으로 수탈하였다.

(e) 보호무역제도

보호무역제도는 제조업자들을 만들어 내고, 독립적 노동자를 수탈하며, 국민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자본화하고, 낡은 생산방식으로부터 근대적 생산방식으로의 이행을 폭력적으로 단축시키기 위한 인위적 수단이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이윤 추구자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간접적으로는 보호관세에 의해, 직접적으로는 수출장려금 등등에 의해 자국 국민을 약탈했다.

식민제도, 국채, 국제신용제도, 근대적 조세제도, 보호무역제도 등등은 매뉴팩쳐 시기에는 새싹에 불과했는데 대규모 공업의 유년기에는 거대하게 번창했다. 매뉴팩쳐 시기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함에 따라 유럽의 사회여론은 수치와 양심의 최후의 흔적마저 상실했다. 리버풀은 노예무역에 의해 크게 성장했다. 노예무역은 이 도시의 본원적 축적의 방법이었다. 리버풀에서 노예무역에 사용된 선박의 수는 1730년 15척, 1751년 53척, 1760년 74척, 1770년 96척, 1792년 132척이었다. 면공업은 영국에서는 아동의 노예제도를 도입했고, 미국에서는 종래의 대체로 가부장제적 노예제도를 상업적 착취제도로 전환시키는 데 자극을 주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영원한 자연법칙’이 자유롭게 작용하도록 하고, 노동자와 노동수단 사이의 분리를 완성하며, 한쪽 끝에서는 사회의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을 자본으로 전환시키며 다른 쪽 끝에서는 국민 대중을 임금노동자로, 즉 자유로운 ‘노동빈민’[이것은 근대사의 인위적인 산물이다]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위에서 말한 모든 수고가 필요했다. 만약 화폐가, 오지에가 말하는 바와 같이, “한쪽 볼에 핏자국을 띠고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면,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털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이 세상에 나온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본론』 Ⅰ, 1,045~46쪽, 강조는 인용자)

근대적 식민이론

『자본론』 Ⅰ권의 마지막 장은 제33장 근대적 식민이론이다. 이 장은 ‘근대적 식민이론’이 자신의 주장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비밀—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축적방식, 따라서 또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개인 자신의 노동에 입각하는 사적 소유의 철폐, 즉 노동자의 수탈을 기본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비밀을 누설했다는 점을 맑스가 폭로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비밀은 이미 앞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 내용을 ‘근대적 식민이론’의 주장을 통해 재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용적으로 실제로 『자본론』 Ⅰ권을 마무리하는 장은 제33장이 아니라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근대적 식민이론을 먼저 다루도록 하겠다.

맑스의 웨이크필드의 근대적 식민이론 검토는 매우 재치 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맑스는 웨이크필드의 주장을 따라가면서 이 주장 자체를 활용하여, 노동자가 생산수단의 소유자로 남아있으면, 즉, 직접적 생산자가 생산수단을 박탈당하지 않으면 자본주의적 축적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고 있다.

웨이크필드의 근대적 식민이론은 식민지에서 임금노동자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을 그는 ‘조직적 식민‘이라고 부르고 있다. 웨이크 필드는 식민지에서 어느 한 사람이 화폐, 생활수단, 기계, 기타 생산수단을 소유하더라도, 만약 그 필수적인 임금노동자[즉 자기 자신을 자유의사에 의해 판매하지 않을 수 없는 다른 사람]가 없다면 그는 아직 자본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물건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보여준 예는 필이라는 사람의 실패였다. 필은 총액 50,000파운드의 생활수단과 생산수단을 영국으로부터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의 스완강 지역으로 가지고 갔다. 필은 그밖에 노동계급의 남녀 성인과 아동들 3,000명을 데리고 갔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자 필에게는 그의 잠자리를 돌보아 준다든가 강물을 길어다 줄 하인이 한 사람도 없었다.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지가 널려 있는 조건에서 데리고 간 3,000명이 임금노동자로 그의 밑에서 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필은 모든 것을 예견했지만 영국의 생산관계를 스완강변으로 수출하는 것만은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식민지에서 자본가에게 골칫거리는 임금노동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연방의 북부 주 들에서는 임금노동자의 부류에 주민의 1/10이나 속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 영국에서는 …… 국민의 대부분이 임금노동자이다.

(웨이크필드, 『영국과 미국』, 『자본론』 Ⅰ권, 1,056쪽에서 재인용)

산도밍고의 최초의 스페인 이주민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노동자를 한 사람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노동자가 없이는” (즉 노예제도가 없이는) “자본은 소멸했든가 또는 적어도 각 개인이 자기 자신의 손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적은 규모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영국인들이 건설한 최후의 식민지(스완강 식민지)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거기에서는 종자, 가축, 도구 등등의 거액의 자본이 그것을 사용할 노동자의 부족 때문에 소멸했으며, 또한 거기에서는 어떤 이주자도 자기 자신의 손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규모를 초과하는 자본을 유지할 수 없었다.

(웨이크필드, 『영국과 미국』, 『자본론』 Ⅰ권, 1,056~57쪽에서 재인용)

식민지에서는 노동조건과 그것의 근원인 토지로부터 노동자가 아직 분리되어 있지 않거나, 또는 다만 드물게만, 또는 너무나 제한된 범위에서만 분리되어 있다. 식민지에서는 아직 공업과 농업의 분리도 없으며, 농촌 가내공업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식민지에서는 자본을 위한 국내시장도 제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식민지에서는 많은 노동자가 이미 성인으로 식민지에 들어오기 때문에 인구의 절대적 증가는 본국보다 훨씬 빠르지만, 노동시장은 항상 공급 부족이다. 노동의 수요공급의 법칙은 완전히 무너진다. 임금노동자의 규칙적인 재생산은 [부분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전혀 어찌할 수 없는 장애에 부딪친다. 자본의 축적에 비한 과잉 임금노동자의 생산이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오늘의 임금노동자도 내일에는 독립적인 농민 또는 수공업자로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노동자의 착취도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낮을 뿐만 아니라 이 임금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한 종속관계, 종속감정까지도 잃어 버린다. 결국 웨이크필드는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폐단을 개탄한다.

그리고 그는 식민지의 반자본주의적 암을 치료할 방법을 처방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정부로 하여금 처녀지에 수요공급의 법칙과는 상관없는 인위적 가격[즉 이주민이 토지를 구입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서는 비교적 장기간 임금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가격]을 붙이게 해야 한다. 또는 정부는 임금노동자에게 매우 높은 가격으로 토지를 판매함으로써 형성되는 기금[, 신성한 수요공급의 법칙을 유린함으로써 노동자의 임금으로부터 짜내는 이 화폐기금]을 사용해 유럽으로부터 식민지로 빈민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자본가를 위해 임금노동시장을 충만한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자본론』Ⅰ권, 1,063쪽, 강조는 인용자)

웨이크 필드가 제시한 ‘본원적 축적’의 이 방법은 영국정부가 실제로 실시했지만 실패했다. 이 실패는 『자본론』 Ⅲ권에서 보게 될 필의 은행법 실패만큼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

제32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역사적 경향은 『자본론』 Ⅰ권을 실제로 마무리하는 장이다. 이 장에서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스스로를 부정하게 됨을 밝히고 있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후의 미래를 검토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자체의 모순으로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지금까지 본원적 축적과정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일련의 폭력적 방법이 포함되어 있는데 책에서는 획기적인 방법만이 고찰되었다.

본원적 축적과정에서 개개의 독립적 노동자와 그의 노동조건과의 융합에 입각한 사적 소유는, 타인노동의 착취에 입각한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 축출된다.

뿐만 아니라 이 변환에 이어 수탈의 대상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자영의 노동자가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이다. 자본가가 자본가에 의해 수탈당한다.

이 수탈은 자본주의적 생산자체의 내재적 법칙의 작용을 통해, 즉 자본의 집중을 통해 수행된다. 그러니까 한 자본가가 많은 자본가를 파멸시킨다. 이러한 집중과 병행해서 다른 발전도 일어난다. 예를 들면 노동과정의 협업적 형태의 성장, 과학의 의식적 기술적 적용, 토지의 계획적 이용, 노동수단이 공동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는 것, 모든 생산수단이 결합된 사회화된 노동의 생산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절약되는 것, 따라서 또 자본주의 체제의 국제적 성격 등등이 일어난다.

이 전환과정의 모든 이익을 가로채고 독점하는 대자본가의 수가 끊임없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빈곤, 억압, 예속, 타락, 착취의 양은 더욱더 증대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반항도 또한 증대한다. 자본의 독점은 [이 독점과 더불어 또 이 독점 밑에서 번창해온] 그 생산방식의 속박으로 된다. 독점자체가 속박으로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중대한 일이 발생한다. 생산수단의 집중과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 자본주의적 외피와 양립할 수 없는 점에 도달한다. 자본주의적 외피는 파열된다. 자본주의적 사적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소유자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에 의해 부정된 사적 소유를 부활시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협업 및 토지와 생산수단[노동 그것에 의해 생산된 것]의 공동점유—에 입각한 개인적 소유룰 확립한다.

개인들 자신의 자기 노동에 입각한 분산된 사적 소유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은, 사실상 이미 사회적 생산경영에 바탕을 두고 있은 자본주의적 소유가 사회적 소유로 전환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리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왜냐하면 전자의 경우 소수의 횡령자가 국민대중을 수탈하지만, 후자의 경우 국민대중이 소수의 횡령자를 수탈하기 때문이다.

맑스는 제32장의 마지막 단락에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을 주로 달고 있다. 여기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수행할 주체적 요소, 프롤레타리아트가 강조된다. 위의 내용과 이 구절을 같이 읽으면 그 의미가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것이다.

부르주아지가 싫든 좋든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는 산업의 진보는 경쟁에 의한 노동자들의 고립화 대신 결사에 의한 그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져온다. 이리하여 대공업의 발전은 부르주아지가 자기 자신을 위해 생산물을 생산하고 취득하는 토대를 그 자체를 무너뜨린다. 부르주아지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을 만들어 낸다. 부르주아지의 멸망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어느 것도 피할 수 없다. ……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중 오직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다른 모든 계급은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몰락하며 멸망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의 가장 특징적인 산물이다. 하층 중간계급들 즉 소공장주,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이들은 모두 중간계급으로 살아남기 위해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 …… 그들은 반동적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바퀴를 뒤로 돌리려 하기 때문이다.

(맑스, 엥겔스, 『공산당 선언』, 강조는 인용자)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제8편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후의 미래를 동시에 검토한다. 이로써 『자본론』 Ⅰ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사, 자본주의의 운동법칙,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이후의 미래 모두를 검토하게 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역사상 출현한 다른 생산양식들과 똑같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시적, 역사적 생산양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자본론』 Ⅰ권 전체를 요약, 조망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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