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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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he 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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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자본론』 Ⅰ권의 제25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은 제10장 노동일을 다룰 때 언급하였듯이 맑스가 『자본론』 Ⅰ권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장 셋 중 하나이다. 그 만큼 맑스가 신경을 많이 쓴 장이다. 제25장은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다. 자본의 축적에 따라 노동자의 처지는 어떻게 되는가? 부의 축적에 따라 노동자의 부도 축적되는가? 아니면 노동자는 부를 생산하지만 부의 축적 성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부로부터 배제되는가?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종속관계는 완화되는가? 맑스는 제25장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과학적으로 이에 답하고 있다. 그리고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본의 구성과 축적 과정의 진행 중에 일어나는 이 구성의 변화이다.

자본의 구성이 불변이면, 축적에 따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자본의 구성은 두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다.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가치비율을 맑스는 자본의 가치구성이라고 부른다. 생산과정에서 기능하는 소재의 측면에서 어떤 자본도 생산수단과 살아있는 노동력으로 분할되는데, 생산수단의 양과 이 생산수단의 활용에 필요한 노동량 사이의 비율을 맑스는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양자 사이에는 긴밀한 상호관계가 있다. 이 상호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맑스는 자본의 가치구성이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의해 결정되고 또 기술적 구성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는 경우, 그것을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고 부른다.

맑스는 먼저 축적 과정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불변인 경우를 상정한다. 이 경우 자본의 축적에 따라 자본의 축적욕이 노동력[또는 노동자 수]의 증가를 능가할 수 있으며,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그 공급을 능가해 임금이 등귀할 수 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들이 다소 유리한 사정 하에서 자신들을 유지하고 번식한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적 성격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재생산이 자본관계 자체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대재생산도 자본관계를 확대된 규모에서 재생산한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증식이다.

앞의 경우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축적이다. 이러한 축적 조건 아래에서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종속관계는 견딜 만한 형태를 취한다. 그 종속관계는 자본의 증대에 따라 더욱 내포적으로 되지 않고 더욱 외연적으로 될 뿐이다. 노동자들 자신의 잉여생산물 중 더 많은 부분이 지불수단의 형태로 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데, 이 덕택으로 노동자들은 자기들의 소비범위를 확대하고 소비재원을 약간 늘릴 수가 있고, 약간의 준비금까지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더라도, 임금노동자의 종속관계와 착취는 사라지지 않는다. 자본축적의 결과 노동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사실상 임금노동자 자신이 이미 만들어낸 금사슬의 길이와 무게로 인해 그 사슬의 긴장이 약간 완화된다는 것을 의미할 따름이다. 임금의 증가는 기껏해야 노동자가 제공해야 할 불불노동의 양적 감소를 의미할 따름이다. 이 감소는 결코 자본주의체제 그 자체를 위협하는 점까지 도달할 수는 없다.

자본축적의 결과 노동의 가격이 등귀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경우 중 하나를 의미한다.

(a) 노동의 가격이 등귀해도 축적의 진행은 방해받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 등귀하는 경우다.

(b) 노동가격의 등귀의 결과 이윤이라는 자극이 감소되어 축적이 약화되는 경우다.

이 경우 축적률은 감소한다. 그러나 그 감소와 더불어 그 감소의 원인이 사라진다. 노동의 가격은 다시 자본의 자기증식욕에 적합한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

두 경우 모두 축적률이 독립변수이고 임금률은 종속변수이다. 그 반대가 아니다. 축적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임금률이 증가하는 것이고, 축적률이 감소하기 때문에 임금률이 감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축적과 임금률 사이의 관계는 [자본으로 전환된] 불불노동과 [추가자본의 가동에 필요한] 추가적 지불노동 사이의 관계에 불과하다. 만약 [노동자계급이 제공하고 자본가계급이 축적하는] 불불노동의 양이 급속히 증가해 그것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지불노동의 비상한 추가가 필요한 경우, 임금은 등귀하고, 그리고 불불노동은 그에 비례해서 감소한다. 그러나 이 감소는 자본을 길러내는 잉여노동이 더 이상 정상적인 양으로 제공되지 않는 점에 도달하자마자, 반작용이 시작된다. 축적은 쇠퇴하고 임금의 등귀운동은 장애에 부닥친다. 그리하여 임금의 등귀는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침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점점 더 확대되는 규모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계 안에 머문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에 의해 자연법칙으로까지 신비화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법칙이 실제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자본관계의 끊임없는 확대재생산을 매우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노동착취도의 어떤 감소와 노동가격의 어떤 등귀도 자본주의적 축적의 성격 그것에 의해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론』 Ⅰ, 848쪽)

자본의 구성이 고도화되면, 축적과 그에 수반하는 집적의 진행과정에서 가변자본부분의 상대적 감소가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축적 과정에서 자본의 구성이 불변인 경우를 살펴보았다. 지금부터는 자본의 구성이 고도화되는 경우를 살펴본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토대가 일단 주어지면, 축적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발전이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로 되는 시기가 온다.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강조하였듯이 “상품을 값싸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자체를 값싸게 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려 하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며 끊임없는 경향이다.”(『자본론』 Ⅰ, 432쪽) 그런데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의 수준은 노동자가 동일한 노동강도로 일정한 시간에 생산물로 전환시키는 생산수단의 상대적 규모로 표현된다. 이 경우 이 생산수단들은 이중의 역할을 한다. 어떤 생산수단의 증대는 노동생산성이 증대한 결과이고, 또 어떤 생산수단의 증대는 노동생산성이 증대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생산수단에 결합되는] 노동력에 비한 생산수단의 양의 증대는 [노동생산성 증대의 조건이든 결과이든] 노동생산성의 증대의 표현이다. 따라서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에 의해 움직이는 생산수단의 양에 비한 노동량의 감소로 나타난다.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이러한 변화[즉 생산수단에 활기를 주는 노동력의 양에 비한 생산수단의 양의 증대]는 이번에는 자본의 가치구성[즉 자본가치의 가변적 구성부분을 희생으로 하는 불변적 구성 부분의 증대]에 반영된다. 자본의 가변 부분에 대한 불변 부분의 점진적인 증대라는 이 법칙은 상품가격의 비교 분석에 의해 모든 단계에서 확인된다. 가격 중 소비된 생산수단의 가치를 대표하는 부분[즉 불변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정비례하고, 노동에 대한 지불을 대표하는 부분[즉 가변자본]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반비례한다. 그러나 축적의 진전이 가변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를 감소시킨다 하더라도, 가변자본 부분의 절대적 크기는 증가할 수 있다.

제4편에서 본 바와 같이, 노동의 생산성의 발전은 대규모의 협업을 전제한다. 지배적인 제도가 상품생산이라면, 대규모의 협업은 개별 자본의 증대에 의해서만, 또한 사회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가의 사적 소유로 전환되는 정도에 따라서만 실현된다. 상품생산의 토대 위에서는 대규모 생산은 자본주의적 형태로서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별 상품생산자들의 수중에 일정한 자본이 축적되는 것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전제로 된다(맑스는 수공업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이행하는 동안 이러한 축적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것을 맑스는 본원적 축적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서는 제8편 이른바 본원적 축적에서 다룬다). 사회적 노동생산성의 증진방법은 잉여가치의 생산을 증대시키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본축적에 따라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따라 자본축적이 발전한다. 이 두 경제적 요인들은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 때문에 가변적 구성부분은 불변적 구성부분에 비해 점점 더 작아진다.

자본의 축적에 따라 자본의 집적이 이루어진다. 자본들 사이에는 흡수가 발생하는데, 이것은 이미 형성된 자본의 집적이며, 그 개별적 독립성의 파괴이며,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수탈이며, 다수의 소자본을 소수의 대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집적과 구별되는 진정한 집중이다. 집중이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예는 상품 값을 싸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쟁전이다. 상품 값이 싸지는 것은, 기타 조건이 같다면, 노동생산성에 의존하며, 노동생산성은 생산규모에 의존하다. 그러므로 대자본은 소자본을 격파한다. 경쟁은 언제나 다수의 소자본가의 멸망으로 끝난다. 이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함께 신용제도가 발생해서 자본집중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기구로 전환된다(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Ⅲ, 제5편 제27장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신용의 역할에서 자세히 다룬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발전에 비례해 집중의 가장 강력한 두 지렛대인 경쟁과 신용도 발전한다. 그러므로 집중의 경향은 날로 강해진다.

집중은 산업자본가들에게 그들의 사업규모를 확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축적을 보완한다. 어디에서나 기업체들의 규모 확장은 많은 사람들의 집단 노동을 더 포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되며, 또 그들의 물질적 추진력을 더 광범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출발점으로 된다. 축적은 집중에 비해 느린 과정이다. 만약 개별 자본들의 축적에 의해 자본이 증대되고 나서야 철도부설이 실행되었다면 철도는 매우 늦게 출현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집중은 주식회사에 의해 순식간에 이것을 수행했다. 그리고 집중은 축적의 작용을 강화하고 촉진함과 동시에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변혁을 확대하고 촉진한다.

한편으로 축적과정에서 형성된 추가자본은 그 크기에 비해 더욱더 소수의 노동자를 흡수한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구성으로 주기적으로 재생산되는 구자본은 종전에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더욱 더 많이 축출한다. 이것은 자본의 축적과정에서 노동자의 고용이 자본의 규모에 비례해서 증가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의 누진적 생산

이제부터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본격적으로 검토한다. 먼저 상대적 과잉인구, 산업예비군을 검토한다. 바로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의 구성이 고도화되면, 축적과 그에 수반하는 집적의 진행과정에서 가변자본부분의 상대적 감소가 발생한다. 그런데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변동은 축적의 진전에 따라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가령 불변자본:가변자본이 최초에는 1;1이었으나 이제는 2:1, 3:1, 4:1, 5:1, 6:1 등등으로 된다. 그 결과 노동에 대한 수요는 총자본의 증가에 비례해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총자본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며 또 총자본의 증가에 따라 그 상대적 감소는 가속화한다.

[총자본의 증가에 따라 촉진되며 총자본 자체의 증가보다 빠른 속도로 촉진되는]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는 외관상 오히려 [가변자본 또는 고용수단의 증가보다 언제나 급속하게 증가하는] 노동인구의 절대적 증가라는 전도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적 축적 그 자체가 [자기 자신의 정력과 규모에 비례해] 상대적으로 과잉인 [즉 자본의 평균적인 자기증식욕에 필요한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노동인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노동인구는 그들 자신이 생산하는 자본축적에 의해 그들 자신을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드는 [즉 상대적 과잉인구로 만드는] 수단을 점점 더 큰 규모로 생산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특유한 인구법칙이다.

그런데 과잉 노동인구가 축적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이번에는 이 과잉인구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로 된다. 축적과 그에 수반하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갑작스러운 확장력도 증대한다(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읽기 ⑮:기계와 대공업(2)」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공장 제도가 충분히 보급되고 일정한 성숙단계에 도달할 때, 특히 공장 제도에 고유한 기술적 기초인 기계 자체가 다른 기계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할 때, 석탄과 철의 생산 및 금속의 가공과 수송 수단의 혁명이 일어났을 때, 한 마디로 말해 대공업에 상응하는 일반적 생산 조건이 성립되었을 때, 기계제 대공업은 탄력성[, 돌발적, 비약적인 확대 능력]을 획득한다. 기계제 대공업은 짧은 기간 안에 생산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 확대 능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원료의 이용 가능성과 판매시장의 규모뿐이다. 기계는 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계는 원료의 공급 증대를 직접 촉진한다. 또한 기계 제품의 싼 가격과 운수 교통수단의 변혁은 외국 시장을 정복하기 위한 무기로 된다.”). 과잉 노동인구는 [마치 자본이 자기의 비용으로 육성해 놓은 것처럼] 절대적으로 자본에 속하며 자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산업예비군을 형성한다. 이 산업예비군은 현실적 인구증가의 한계와는 관계없이 변동하는 자본의 가치증식욕을 위해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인간재료를 이룬다. 이 산업예비군이 자본의 갑작스러운 확장력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공한다.

산업순환(호황, 활황, 공황, 침체)는 산업예비군 또는 과잉인구의 끊임없는 형성, 다소간의 흡수 및 재형성에 의거하고 있다. 반대로 산업순환의 국면들의 교체가 과잉인구를 보충하며, 그것의 재생산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인들 중의 하나로 된다.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가변자본부분의 상대적 감소가 발생한다고 했는데 이때 가변자본의 증감은 취업노동자 수의 증감과 일치한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가변자본이 증가할 때에도 노동자의 수는 불변이거나 심지어 감소하는 수도 있다. 개별 노동자가 더욱 많은 노동을 제공하고, 따라서 그의 임금이 증가하는 경우[노동의 가격이 불변이든가, 심지어 떨어지더라도 그 떨어지는 속도가 노동량이 증대하는 속도보다 느리기만 하면, 임금은 중가한다] 그렇게 된다. 그리하여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한편으로는 더 큰 가변자본이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더 많은 노동량을 운동시키며,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크기의 가변자본이 같은 양의 노동력으로 더 많은 노동량을 운동시키며, 끝으로 더 숙련된 노동력 대신 더욱 큰 수의 질 낮은 노동력을 운동시킨다.

그러므로 상대적 과잉인구의 생산은 생산과정의 기술적 변혁보다 더욱 급속히 진행되며, 가변자본 부분의 상대적 감소보다 더욱 급속히 진행된다. 이리하여 노동자계급 중 취업자들의 과도노동은 그 예비군을 증가시키고, 거꾸로 예비군이 경쟁을 통해 취업자들에게 가하는 압박의 강화로 취업자는 과도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의 일반적 변동은 노동인구의 절대수의 변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현역군과 예비군으로 분할되는 비율의 변동에 의해, 과잉인구의 상대적 규모의 증감에 의해, 또 과잉인구가 때로는 흡수되고 때로는 다시 축출되는 정도에 의해 결정된다. 근대산업에 적합한 법칙은 자본의 확장과 수축의 교체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규제한다는 법칙일 것이다. 즉, 자본이 팽창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때때로 상대적으로 공급부족이 되며, 그리고 자본이 수축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이 때때로 상대적으로 공급과잉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운동이 단순히 인구의 운동에 종속되고 있다는 법칙은 전적으로 엉터리다.

산업예비군은 침체기와 평균 정도의 호황기에는 현역 노동자군에 압력을 가하고, 과잉생산과 열광적인 확장기에는 현역군의 요구를 억제한다. 따라서 상대적 과잉인구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 배경이며, 이 법칙의 작용범위를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욕과 지배욕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한계 안에 국한시킨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자본의 증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며, 노동의 공급은 노동자계급의 증가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자본은 두 측면 모두에서 동시에 작용한다. 자본의 축적이 한편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킨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유리’시켜 그 공급을 증대시키고, 동시에 실업자들의 압력은 취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며, 따라서 일정한 정도까지는 노동의 공급은 노동자의 공급과 무관한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의 수요 및 공급의 법칙의 작용은 자본의 독재를 완성한다.

상대적 과잉인구의 상이한 존재 형태.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맑스는 상대적 과잉인구는 여러 가지의 형태들을 검토한다.

(a) 유동적 형태

근대산업의 중심인 공장, 작업장, 제철소, 광산 등등에서는 노동자들이 축출되고 다시 흡수되어 취업자의 수는 비록 생산규모에 비해 끊임없이 감소하는 비율이지만 증대한다. 과잉인구는 이 경우 유동적 형태로 존재한다.

(b) 잠재적 형태

자본주의적 생산이 농업을 장악하자마자 농촌 노동인구에 대한 수요는 절대적으로 감소한다. 여기에서는 [다른 비농업 산업에서와 달리] 노동자의 축출은 더 큰 흡수에 의해 보상되지 않는다. 농촌인구의 일부는 끊임없이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나 비농업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환되는 상태에 있으며, 이 전환에 유리한 조건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은 농촌 자체 안에 항상적인 잠재적 과잉인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c) 정체적 형태

정체적 과잉인구는 그 취업이 매우 불규칙적인 현역 노동자집단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이 정체적 과잉인구는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무진장한 저수지를 게공한다. 그들의 특징은 최대한도의 노동시간과 최소한도의 임금이다. 이들의 주요형태는 이미 가내공업의 항목에서 보았다(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읽기 ⑮:기계와 대공업(2)」를 참조하기 바란다.). 이 정체적 과잉인구는 대공업과 농업의 과잉노동자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되며, 특히 [수공업적 생산이 매뉴팩쳐적 생산에, 그리고 매뉴팩쳐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에] 정복당해 몰락하고 있는 공업부문으로부터 보충된다.

(d) 구호빈민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은 구호빈민의 영역이다. 본래의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제외하면, 이 사회층은 세 개의 범주로 구성된다. 제1은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2는 고아와 구호빈민의 아이들이다. 제3은 타락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과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구호빈민은 현역노동자군의 폐인수용소이며 산업예비군의 고정 구성원이다.

사회적 부, 기능하는 자본, 그 증대의 규모와 활력, 따라서 또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수와 그의 노동생산성이 크면 클수록, 산업예비군은 그만큼 더 커진다. 자본의 확장력과 같이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도 똑같은 이유들로 인해 발전된다. 따라서 산업예비군의 상대적 크기는 부의 잠재적 힘과 함께 증대한다. 그러나 현역 노동자군에 비해 이 예비군이 크면 클수록 이 고정적 과잉인구는 그 만큼 더 많아지는데, 그들의 곤궁은 노동고통과 역비례 관계에 있다. 끝으로, 노동자계급의 극빈층과 산업예비군이 크면 클수록, 공식적인 구호빈민은 그만큼 더 많아진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법칙이다.

(『자본론』 Ⅰ, 879쪽, 번역이 정확하지 않아 독일어판을 번역하여 인용한다.)

이로써 노동자들을 향해 노동자들의 숫자를 자본의 증식욕에 적응시키라고 설교하는 경제학적 지혜의 어리석음은 이제 명확해졌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메카니즘이 이 숫자를 자본의 증식욕에 적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적응의 첫 번째 결과는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의 창출이고, 그 마지막 결과는 현역노동자군 중 끊임없이 증대하는 부분의 빈곤과 구호빈민에 대한 부담이다.

맑스는 마침내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제4편에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분석할 때 본 바와 같이, 자본주의체제 안에서는 사회적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회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들은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되며, 노동자를 부분인간으로 불구화하며, 노동자를 기계의 부속물로 떨어뜨리며, 그의 노동의 실제 내용을 파괴하므로써 노동을 혐오스러운 고통으로 전화시키며, 과학이 독립적인 힘으로 노동과정에 도입되는 정도에 비례해 노동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로부터 소외시킨다. 또한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모든 방법들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개악하며,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를 독재[그 비열함 때문에 더욱 혐오스럽다]에 굴복시키며, 그의 전체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며,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자거노트의 수레바퀴 밑으로 질질 끌고 간다. 그러나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의 방법이며, 그리고 축적의 모든 확대는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된다. 이로부터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의 상태는 [그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 및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헤파이스토스의 쐐기가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에 결박시킨 것보다도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한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따라서 한 쪽 끝의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 편 끝[즉 자기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계급의 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 무지, 야만화,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자본론』 Ⅰ, 880, 881쪽, 강조는 인용자)

자본주의적 축적의 이 적대적 성격은 정치경제학자들에 의해 각종 형태로 언급되었다. 맑스는 여러 가지를 인용하지만 생략하고 데스튜트 드 트라시의 말만을 인용하도록 하겠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고, 부유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가난하다.

(『자본론』 Ⅰ, 8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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