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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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제7편 자본의 축적 과정이다. 자본의 축적 과정은 잉여가치론 다음으로 『자본론』 Ⅰ권의 핵심 주제이다. 제7편에서는 특히 제25장에서 자본의 축적이 노동자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맑스는 축적과정을 다루면서 두 가지를 전제하고 있다. 하나의 전제는 자본이 자기의 유통과정을 정상적으로 통과한다는 것이다(자본의 유통과정의 상세한 분석은 제2권에서 다룬다). 또 하나의 전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자를 전체 잉여가치의 소유자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자본가가 잉여가치의 최초의 취득자이기는 하나 결코 최종적 소유자는 아니다. 잉여가치는 각종의 부분들로 분할된다. 이 각종의 부분들은 상이한 범주에 속하는 인물들의 수중으로 들어가서 이윤, 이자, 상업이윤, 지대 등과 같은 서로 독립된 형태를 취하게 된다(잉여가치의 이 전환된 형태들은 제3권에서 비로소 취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석의 이 단계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자는 전체 잉여가치의 소유자로, 또는 잉여가치의 분배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의 대표자로 간주한다.

축적 과정의 고찰은 단순재생산의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단순재생산

생산과정의 사회적 형태가 어떻든, 생산과정은 연속적이어야 하며 주기적으로 동일한 국면들을 끊임없이 통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적 생산과정도, 그것을 연속된 전체로서, 끊임없는 갱신의 흐름으로서 고찰할 때에는, 동시에 재생산과정이다.

어떤 사회도 그 생산물의 일정한 부분을 끊임없이 생산수단으로 재전환하지 않고서는 생산을 계속할 수 없다. 연간생산물의 일정량은 생산을 위한 것이다. 처음부터 생산적 소비로 예정된 이 부분은 대개 그 생산물의 성질 때문에 개인적 소비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현물형태로 존재한다. 생산이 자본주의적 형태를 취하면 재생산도 같은 형태를 취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노동과정이 가치증식과정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재생산도 또한 투하된 가치를 자본으로 재생산하는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가치의 주기적 증가분인 잉여가치는 자본에서 생기는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

이 수입이 자본가에 의해 모두 주기적으로 소비된다면, 기타의 조건이 같은 경우에는 단순재생산이 일어난다. 그런데 단순재생산은 이전과 같은 규모에서 생산과정의 단순한 반복이기는 하나, 이 단순한 반복성 또는 연속성은 생산과정에 대해 새로운 특징을 부여하거나 또는 고립적인 과정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상의 일부 특징을 없애버린다.

(a) 가변자본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하고, 또 어떤 사회적 생산체제에서도 그가 언제나 생산하고 재생산해야만 하는]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재원, 즉 노동기금이 취하는 특수한 역사적 현상형태에 불과하다.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지출해 노동력의 가치와 함께 잉여가치를 상품의 형태로 실현한 뒤에 비로소 지불을 받는다. 따라서 노동자는 잉여가치뿐만 아니라 가변자본[노동자 자신이 받는 임금]까지도 생산하고 있다. 또 그는 그 가변자본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동안만 고용된다. 임금을 생산물 자체의 한 몫으로 보는 제18장에 있는 공식Ⅱ는 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임금의 형태로 되돌아오는 것은 [그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생산물의 한 부분이다.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이 상품가치를 물론 화폐로 지불하지만, 이 화폐는 그의 노동생산물의 전환된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의 이번 주 또는 금년의 노동력은 그의 지난 주 또는 작년의 노동에 의해 지불 받는 셈이다. 화폐 형태 때문에 생기는 환상은 개별자본가와 개별노동자 대신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전체적으로 고찰하기만 하면 곧 사라지고 만다. 즉,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에게 [후자가 생산하고 전자가 취득한] 생산물의 일정한 부분에 대한 청구서를 화폐형태로 끊임없이 교부한다. 노동자들은 이 청구서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자본가계급에게 되돌려 주고, 그 대신 자기 자신의 생산물 중 자기의 몫으로 되는 부분을 받는다. 따라서 가변자본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필요로 하고, 또 어떤 사회적 생산체제에서도 그가 언제나 생산하고 재생산해야만 하는] 생활수단을 제공하는 재원, 즉 노동기금이 취하는 특수한 역사적 현상형태에 불과하다.

(b)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을 그 끊임없는 갱신의 흐름 속에서 고찰하기만 하면, 가변자본이 자본가 자신의 재원에서 투하되는 가치라는 성격은 상실되고 만다.

가령 자본 1,000파운드의 사용에 의해 매년 생산되는 잉여가치가 200파운드라고 하고 이 잉여가치가 매년 소비된다고 하면, 5년 동안 소비된 잉여가치액은 200파운드×5, 즉 최초에 투하된 1,000파운드와 같게 될 것은 명백하다. 5년 후에 자본가가 똑같은 1,000파운드의 자본을 갖고 있더라도 이미 이 자본은 그가 무상으로 취득한 잉여가치총액을 대표할 따름이며, 거기에는 그의 최초 자본의 가치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축적이라는 것을 전혀 무시하더라도, 생산과정의 단순한 연속[즉, 단순재생산]은 조만간에 필연적으로 모든 자본을 축적된 자본으로, 즉 자본화된 잉여가치로 전환시켜 버린다.

(c) 단순재생산에 의해 최초에는 출발점에 불과했던 것(노동의 생산물과 노동 그 자체의 분리)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적인 결과로 된다.

『자본론』 Ⅰ권 제6장에서 맑스는, 화폐를 자본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상품의 생산과 유통 그 이상이 필요함을 밝혔다. 즉, 한편에는 가치 또는 화폐의 소유자가, 다시 말해, 한편에는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다른 한편에는 노동력만의 소유자가 서로 구매자와 판매자로 대면하는 것이 필요했다. 매우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에 해당 부분을 다시 인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품유통이 조금만 발달하면 모든 화폐형태가 나타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본은 그렇지 않다. 자본의 역사적 존재 조건은 결코 상품유통과 화폐유통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오직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소유자가 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서의]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하는 경우에만 발생한다. 그리고 이 하나의 역사적 전제조건만으로도 하나의 세계사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자본은 처음부터 사회적 생산과정의 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자본론』 Ⅰ, 222쪽, 강조는 인용자) 따라서 노동의 생산물과 노동 그 자체의 분리, 객체적 노동조건과 주체적 노동력의 분리가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현실적인 토대이며 출발점이었다.

그런데 이 출발점을 단순재생산은 결과물로 만든다. 한편으로 생산과정은 물질적 부를 자본으로, 그리고 자본가를 위한 가치증식수단과 향락수단으로 끊임없이 전환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는 언제나 그가 생산과정으로 들어갈 때와 같은 모습―즉 부의 원천이기는 하지만 이 부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 모든 수단을 박탈당한 모습―으로 그 과정에서 나온다. 그리하여 노동자 자신은 객체적인 부를 자본[즉 그를 지배하며 착취하는 외부의 힘]의 형태로 끊임없이 생산하며, 자본가는 노동자를 임금노동자로 끊임없이 생산한다. 노동자의 이 끊임없는 재생산 또는 영구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조건이다.

(d) 노동자의 개인적 소비도 개별자본가나 개별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을, 그리고 고립된 생산과정이 아니라 완전히 발달한 자본주의적 생산을 그 실제의 사회적 규모에서 고찰한다면,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자본의 재생산과정의 한 계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재생산과정은 노동자들의 생산물을 끊임없이 노동자의 쪽으로부터 그 반대되는 자본의 쪽으로 옮겨놓음으로써 노동자들이 떨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

노동자들의 개인적 소비는, 한편으로는 그들의 유지와 재생산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활수단을 끊임없이 소멸시킴으로써 그들을 노동시장에 계속 나타나도록 만든다. 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그가 독립적인 존재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은 개별 고용주들이 끊임없이 바뀐다는 것과 계약이라는 법적 허구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자본론』 Ⅰ, 779, 780쪽, 강조는 인용자)

맑스는 이 인용문에서 임금노동자가 겉으로는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독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가계급에 얽매여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고용주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수시로 바뀐다. 그리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관계는 계약관계라는 모습을 띈다. 이러한 외관이 마치 노동자가 자본가계급으로부터 독립된 존재인 것 같은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맑스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자기의 소유물로 대하는 예를 과거와 『자본론』 Ⅰ권 집필 당시에 걸쳐서 들고 있다. 과거에는 자본은 자유로운 노동자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할 때에는 언제나 강제법에 의거했다. 예컨대 1815년까지는 영국의 기계제조 노동자들의 국외 이주가 중형으로 금지되고 있었다. 자본가가 『자본론』 Ⅰ권 집필 당시에 어느 정도로 기능노동자계급의 존재를 자기가 소유하는 생산조건들 중의 하나로 생각하고 이 계급을 실제로 자기의 가변자본의 현실적 존재로 보는가 하는 것을 맑스는 『자본론』에서 생생히 폭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e)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재생산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품이나 잉여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관계 자체를, 즉 한편으로는 자본가를,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자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은 노동력과 노동조건 사이의 분리를 재생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노동자를 착취하기 위한 조건을 재생산하고 영구화한다. 그것은 노동자로 하여금 살기 위해서는 자기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끊임없이 강요하며, 또 자본가로 하여금 부유해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동력을 살 수 있게 한다. 생산과정 자체가 노동자를 자기 노동력의 판매자로 끊임없이 다시 상품시장에 내던지며, 또 끊임없이 노동자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구매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전환시킨다. 노동자의 경제적 예속은 자발적 자기 판매의 주기적 갱신, 자기에 의한 고용주의 변경, 자기 노동력의 시장가격의 동요에 의해 매개되기도 하고 은폐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재생산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상품이나 잉여가치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자본관계 자체를, 즉 한편으로는 자본가를,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자를 생산하고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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