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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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제6편은 집중적으로 임금을 검토한다. 임금은 노동자의 생계를 가능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소득의 원천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개념이다. 자본가 역시 일상적으로 접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임금이라는 개념, 범주가 문제이다. 이 개념이 본질을 은폐, 왜곡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의 표면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의 가격[즉 일정한 양의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일정한 양의 화폐]로 나타난다.”(『자본론』 Ⅰ, 723쪽) 이미 제6장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에서 맑스가 분석하였듯이 자본가가 노동자로 하여금 일을 시키기 위하여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현상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처럼 나타나서 이 현상이 본질을 은폐, 왜곡한다. 그 결과 뒤에서 곧 보게 되듯이, 임금은 모든 노동을 지불노동인 것처럼 보이게 하여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한다. 임금형태는 현상형태가 본질을 은폐, 왜곡하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노동의 가치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모순

맑스는 노동의 가치라는 표현이 가지고 있는 모순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하여 폭로한다. 첫 번째로 가령 12시간 노동일의 가치는 12시간 노동일에 포함되어 있는 12시간 노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면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두 번째로 노동이 상품으로서 시장에서 판매되려면 판매되기 전에 객관적으로 존재해야 하는데 노동은 살아있는 노동이지 대상화된 노동이 아니다. 세 번째로 화폐[즉 대상화된 노동]와 살아있는 노동의 직접적 교환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토대 위에서 비로소 자유롭게 발전하는] 가치법칙을 폐지하든가, 또는 [바로 임금노동에 입각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를 폐지할 것이다. 예컨대, 12시간 노동일이 6원의 화폐가치로 대상화된다고 하자. 이때 노동자가 6원보다 적게 받는다고 하면, 12시간 노동이 10시간, 6기간 등등의 노동과 교환된다. 이것은 가치규정을 폐기할 뿐만 아니라 가치법칙을 폐지할 것이다. 이와 달리 노동자가 6원을 받게 되면 그의 노동의 가격은 그의 노동생산물의 가격과 같을 것이다. 이 경우, 그는 어떤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적 토대 자체가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상품시장에서 화폐소유자가 직접 대면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이다. 후자가 판매하는 상품은 그의 노동력이다. 그의 노동이 현실적으로 시작될 때에는 노동력은 벌써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에 의해 더 이상 판매될 수 없다. 노동은 가치의 실체이며 또 내재적 척도이지만, 그 자체는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자본론』 Ⅰ, 726쪽)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노동의 가치라는 환상적 표현을 만들어낸다.

임금의 본질이 노동력의 가치라는 것은 우리가 이 단계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진실이 아니다. 이미 제6장에서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제19장에서 맑스가 목표로 하는 것은 임금의 본질을 다시 규명하는 것이 아니다. 맑스가 밝히려는 것은 여기에 있지 않고 본질이 은폐되고 전도된 현상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이 현상형태가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해버린다는 심각한 측면이다.

‘노동의 가치’라는 표현에서는 가치의 개념이 완전히 소멸될 뿐 아니라 거꾸로 되어 그 반대물로 된다. 그러나 이러한 환상적 표현은 생산관계 자체에서 발생한다. 그것은 본질적 관계의 현상형태를 나타내는 범주이다. 현상에서 사물이 흔히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은 정치경제학을 제외한 모든 과학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론』 Ⅰ, 726쪽, 강조는 인용자)

맑스는 임금이라는 형태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산물이면서 본질을 은폐하고 전도된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다는 점, 따라서 과학이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본질을 밝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본질을 밝히는 데서 실패하였다.

그러나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본질을 밝히는 데서 실패하였다. 고전파 경제학은 진실에 어느 정도는 접근하였지만, 자신이 물려받은 경제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여 결국 실패하게 되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노동의 가격‘이라는 범주를 일상생활로부터 아무런 비판 없이 빌려왔으며, 이후 이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였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수요와 공급 사이의 관계의 변동은 노동의 가격에 대해서도 가격의 변동 그 자체 외에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수요와 공급이 일치할 때의 노동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노동의 자연가격이다. 고전파 경제학은 노동의 우연적인 시장가격들을 지배하고 조절하는 가격[즉 이른바 ’노동의 필요가격(중농주의자들), 또는 ‘자연가격’(아담 스미스)]은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화폐로 표현된 노동의 가치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가치는 다른 상품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더욱 깊게 들어가니 생산비에 의해 규정되었다. 그런데 노동자의 생산비[즉 노동자 자신을 생산 또는 재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이 고전파 정치경제학에서 무의식 중에 최초의 질문을 대체하였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은 실제로 노동의 가치를 노동력의 가치로 해소했음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들이 물려받은 경제적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노동력의 가치라는 데에까지 인식이 이르지 못하고, 해결할 수 없는 혼란과 모순에 빠져버렸으며, 동시에 [원칙적으로 현상의 외관에만 충실한] 속류경제학에게 튼튼한 활동무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현상형태는 통속적인 사고방식에 의해 직접 자연발생적으로 재생산되지만, 그 배후에 숨어있는 본질적 관계는 과학에 의해 우선 발견되어야만 한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은 사물의 진상에 접근했지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정식화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그 부르주아적 외피를 벗어 던지지 않은 한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력의 가치는 어떻게 임금이라는 전환된 형태로 표현되는가?

1노동일은 12시간이고,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는 3실링[이것은 6노동시간이 대상화되어 있는 가치의 화폐적 표현]이라고 가정하자. 노동자가 3실링을 받는다면 그는 [12시간 기능하는]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받는 것이다. 이제 노동력의 이러한 하루의 가치가 하루의 노동 그 자체의 가치로 표현된다면 12시간의 노동은 3실링의 가치를 갖는다는 공식이 나온다.

노동의 가치라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를 나타내는 불합리한 표현에 지나지 않으므로, 노동의 가치(v)는 노동의 가치생산물(v+s)보다 항상 적다. 앞에서 든 예로 말하면 3실링은 6실링보다 적다. 그리하여 우리는 6실링의 가치를 창조하는 노동 그 자체가 3실링의 가치를 갖는다는 얼핏 보아 불합리한 결과에 도달한다. 또한 이 경우, 노동일의 지불되는 부분[즉 6시간]을 대표하는 3실링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는 6시간을 포함하는] 전체 12시간 노동일의 가치 또는 가격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임금형태는 노동일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 지불노동과 불불노동으로 분할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게 한다. , 전체노동이 지불노동으로 나타난다.

이로부터 노동력의 가치와 가격이 임금의 형태로[또는 노동 그 자체의 가치와 가격으로] 전환되는 것이 얼마나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가를 알 수 있다. 임금형태는 자본관계, 착취관계를 은폐하고 왜곡한다. 현실적 관계를 은폐하고 그와 정반대되는 관계를 보여주는 이 현상형태야말로 노동자와 자본가의 일체의 정의관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일체의 신비화, 자유에 대한 자본주의의 모든 환상, 속류경제학의 모든 변호론적 속임수의 토대가 되고 있다.

이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검토할 때 자본주의적 착취가 등가교환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은 채 이루어짐으로써 은폐됨을 밝혔었다. 그런데 이때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인 것으로서 다루어졌다. 그런데 노동력의 가치가 임금의 형태로 전환됨으로써 마치 자본가는 예컨대 12시간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전부 지불한 것처럼 나타난다. 따라서 착취관계는 철저히 은폐된다. 만약 노동자조차 이러한 현상형태에 매몰되어 이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경우, 착취관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문제는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었느냐가 되고, 임금노동제의 철폐가 아니라 노동에 대해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 되는데, 이는 이미 임노동제를 전제하는 것으로, 즉 자본주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 된다.

임금형태의 필연성, 그 존재 이유

자본주의에서는 상품거래가 일반화되면서 어떤 것과 화폐가 서로 거래되는 것이 익숙한 것이 되기 때문에, 특별히 ‘노동의 가치’, ‘노동의 가격’이라는 표현이 예컨대 ‘’면화의 가치’, ‘면화의 가격’이라는 표현보다 더 불합리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 보통 임금은 후불로 지불되는데, 이 때문에 노동의 대가가 지불된 것처럼 보인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사용가치’는 실제로는 그의 노동력이 아니라 노동력의 기능, 즉, 재봉노동, 제화노동, 방적노동 등등과 같은 일정한 형태의 유용노동이다. 바로 이 노동이 가치를 창조하는 일반적 요소라는 것, 그리하여 이 속성에 의해 노동은 다른 상품과 차이가 있다는 것은 과학의 도움 없이는 일상적인 의식으로서는 인식할 수가 없다. 더욱이 임금의 현실적 운동은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능[즉 노동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해 지불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은 현상을 보여준다. 이 현상들은 두 개의 부류로 분류할 수 있다. (1) 노동일의 길이의 변동에 따르는 임금의 변동이다. 시급, 일급, 주급, 월급 등, 시간급제 임금. (2)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는 상이한 노동자들의 임금차이다. 성과급제 임금. 결국 이것은 ‘노동의 가치, 가격’, 임금형태를 당연한 현상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시간급제 임금

임금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일급, 주급 등의 시간급제 임금이다. 시간급제 임금은 얼마 동안의 기간에 일하면 그 대가로 얼마를 받는다는 형태의 임금이다. 시간급제 임금을 고려하는 경우 일급, 주급 등의 임금총액과 노동의 가격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동의 평균가격은 노동력의 하루의 평균 가치를 평균 노동일의 시간 수로 나누면 나온다. 가령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가 6노동시간의 가치생산물인 3실링이고 노동시간은 12시간이라고 하면 1노동시간의 가격=3/12=1/4 실링이다.

이렇게 노동의 가격이 산정되기 때문에 노동의 가격은 계속 떨어지더라도 일급, 주급 등은 여전히 동일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의 가격이 여전히 불변이든가 심지어 떨어지더라도 일급, 주급은 증대할 수 있다.

임금의 일반적 법칙은 다음과 같다. 하루 노동량 또는 주 노동량이 일정하다면 일급 또는 주급은 노동의 가격에 달려있다. 그와 반대로, 만약 노동의 가격이 일정하다면, 일급 또는 주급은 하루 노동량 또는 주 노동량에 의존한다.

시간급제 임금 아래에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임금도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가령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가 3실링이고 노동일은 12시간이고, 필요노동시간이 6시간이라고 하면, 노동자는 시간급제 임금 아래에서 1시간에 1/4실링을 벌게 된다. 그런데 만약 그가 6시간, 8시간만 일을 할 경우 1 실링, 2실링만 벌게 되어 하루 노동력의 가치 3실링도 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가 12시간 이하로 일하는 경우 노동력을 재생산할 수 있는 3실링도 벌 수 없게 된다. 이때 불완전 취업으로부터 노동자의 고통이 발생하게 된다.

만약 시간임금이 확정되어 자본가가 일정한 일급 또는 주급을 지불할 의무가 없고 다만 노동자들을 그의 마음에 드는 시간만큼 취업시키고 그 노동시간에 대해 지불하기만 하면 된다면, 자본가는 원래 시간임금의 산정단위로 되고 있는 시간보다도, 가령 앞의 예처럼 12시간보다도 짧게 노동자를 노동시킬 수 있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존 유지에 필요한 정도의 노동시간을 허용하지 않고도 노동자로부터 일정한 양의 잉여노동을 짜낼 수 있다. 자본가는 취업의 규칙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혹독한 과도노동과 상대적 및 절대적 작업 중단을 교대시킬 수 있다.

노동일이 긴 산업부문일수록 임금이 더 낮은 경우가 보통이다. 노동의 가격이 낮으면 낮을수록, 노동자가 비참한 수준의 평균임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일이 그 만큼 길어져야 한다. 낮은 노동의 가격이 노동시간 연장을 자극한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연장은 또한 노동가격의 저하를 가져오며 일급 또는 주급의 저하를 가져온다.

성과급제 임금

성과급제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상품 한 개당 얼마를 지불받는다는 형태의 임금인데 시간급제 임금의 전환된 형태이다. 성과급제 임금에서 노동의 가격은 시간급제 임금에서와 같이 (노동력의 하루의 가치)/(주어진 시간 수의 노동일)이라는 분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의 작업능력에 의해 결정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외관을 진실이라고 믿는 확신은 우선 임금의 이 두 가지 형태가 동일한 산업부문에 동시에 병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히 흔들린다. 예를 들면 맑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에 런던의 식자공들은 보통 성과급제 임금을 받고 일했는데, 지방의 식자공들은 시간급제 임금을 받고 일했다. 런던의 동일한 마구제조공장들에서도 흔히 동일한 노동에 대해 프랑스인들에게는 성과급제 임금이 지불되고 영국인들에게는 시간급제 임금이 지불되었다.

성과급제 임금에서 생산물 1개당 노동자가 버는 금액은 다음의 예와 같이 계산된다. 노동일은 12시간이고 필요노동시간은 6시간이라고 하자. 12시간의 가치생산물을 6실링이고 따라서 1노동시간의 가치생산물을 1/2실링이라고 하자. 또 생산물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을 소비하는 노동자가 12시간에 24개의 생산물을 생산한다고 하자. 이러한 조건 아래에서 이 24개의 가치는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불변자본 부분을 공제하면 6실링이며, 한 개의 가치는 6실링/24개=1/4실링이다. 노동자는 한 개당 1/8실링을 받으며, 12시간에 24개을 생산하여 3실링을 번다.

성과급제 임금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성과급제에서는 노동의 질이 생산물 자체에 의해 통제된다. 왜냐하면 노동자가 각각의 생산물에 대해 완전한 보수를 받으려면 그 생산물이 평균적 품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둘째, 임금은 자본가들에게 노동강도를 측정하는 가장 확실한 척도를 제공한다.

셋째, 성과급제 임금에서는 노동의 질과 강도가 임금의 형태 자체에 의해 통제되므로 노동에 대한 감독은 대부분의 경우 소용없게 된다. 그러므로 성과급제 임금은 앞에서 서술한 근대적 가내노동의 토대를 이루며, 또 착취와 억압의 계층체계의 토대를 이룬다. 이 계층체계에는 노동의 하청(고한제도)과 두목노동자의 두 개의 기본형태가 있다.

넷째, 성과급제 임금이 실시되는 경우,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력을 가능한 한 집약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자기의 개인적 이익으로 되는 것은 당연한데, 이것이 자본으로 하여금 노동의 표준강도를 더욱 쉽게 강화할 수 있게 한다. 성과급제 임금은 개인적 임금을 평균적 수준 이상으로 높이면서 동시에 이 평균수준을 저하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성과급제 임금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임금형태라는 것은 분명하다. 성과급제 임금이 처음으로 광범한 부분에 적용된 것은 진정한 매뉴팩쳐 시대의 일이다. 대공업의 질풍노도 시대, 특히 1797년부터 1815년까지는 성과급제 임금은 노동일의 연장과 임금인하를 위한 지렛대로 이용되었다. 맑스가 『자본론』을 쓸 당시 공장법의 적용을 받는 작업장에서는 자본은 노동일을 다만 내포적으로만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과급제 임금이 통례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노동생산성의 변동에 따라 동일한 생산물량이 표현되는 노동시간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성과급의 수준도 달라진다. 가령 노동생산성이 2배로 되면 동일한 노동일이 24개가 아니라 48개의 생산물을 제공하게 된다면, 성과급의 수준은 개당 반으로 줄어든다. 이와 같은 성과급의 수준변동은, 그 자체로서는 순전히 명목적인 것이지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을 불러일으킨다.

임금의 국민적 차이

임금은 국민적으로 차이가 난다. 임금의 국민적 차이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국의 동일한 산업의 하루의 평균임금을 같은 길이의 노동일에 대한 것으로 환원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하루의 임금을 조정한 다음 시간급제 임금을 성과급제 임금으로 환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과급제 임금만이 노동생산성이나 노동강도에 대한 척도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나라에는 일정한 평균적 노동강도가 있고 서로 다른데, 이것의 측정 단위는 전세계적 노동의 평균강도이다. 따라서 강도가 더 높은 국민노동은 강도가 더 낮은 국민노동에 비해 같은 시간에 더 큰 가치를 생산하며, 이 가치는 더 많은 화폐량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더 생산적인 국민적 노동도 강도가 더 높은 노동으로 계산된다.

어떤 나라의 국민적 노동강도와 노동생산성은, 그 나라의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국제적 수준 이상으로 상승한다. 따라서 상이한 나라들에서 같은 노동시간에 생산되는 동종 상품의 상이한 양은 서로 다른 국제가치를 가지는데, 그 가치는 상이한 가격[즉 국제가치의 차이에 따라 상이한 화폐액]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화폐의 상대적 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더 발전한 나라에서는 덜 발전한 나라에서보다 더 작을 것이다. 이로부터 명목임금[즉 화폐로 표현된 노동력의 등가]는 전자의 경우가 후자의 경우보다 더 높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하루의 임금, 주 임금 등은 발전국이 저발전국보다 더 높지만, 노동의 상대적 가격[즉 잉여가치 및 생산물 가치에 비한 노동의 가격]은 저발전국이 발전국보다 더 높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영국의 공장감독관 레드그레이브는 1866년 10월 31일의 『보고서』에서 영국과 대륙 나라들의 통계를 비교함으로써 대륙의 노동은, 임금이 더 낮고 노동일이 훨씬 긴 데도 불구하고, 생산물에 비해서는 영국보다 비싸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다른 예를 들면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영국의 회사들은 철도부설의 청부를 맡고 있었는데 토착민들과 함께 일정한 수의 영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경우 영국인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았는데, 이 때문에 영국회사가 손실을 입은 것은 전혀 없었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임금이 높았지만 영국 노동자의 노동의 상대적 가격은 낮았다.

한개의 댓글

  1. 다른 부분도 중요하지만 『자본론』Ⅰ권에서 꼭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할 부분이 제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 그리고 제6편 임금입니다. 제7장에서 잉여가치가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밝혔다면 제6편 제19장 노동력의 가치(또는 가격)가 임금으로의 전환은 임금형태가 어떻게 잉여가치의 발생을 은폐하는지를 밝혔습니다. 임금부분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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