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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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10년대 런던 양말공장에서 편물 작업을 하고 있는 아동과 여성 노동자들]

[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자본론』 읽기 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자본론』 제15장의 마지막 두 절인 제9, 10절은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어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절들이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각각의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그래서 글 전체의 흐름도 파악할 뿐만 아니라, 매우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많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짧은 구절들을 숙고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 제9, 10절을 검토해보겠다.

이미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에서 언급하였듯이 “공장법이 제정된 것은, 자본가들에 의한 노동시간의 무제한적인 연장이 국민의 생명력을 뿌리 채 파괴하고 있어 ‘자본가와 지주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마저 법으로 이에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맑스는 “공장법[생산과정의 자연발생적 발전 형태에 대한 사회의 최초의 의식적이며 계획적인 반작용]은 우리가 이미 본 바와 같이 면사, 자동기계, 전신과 마찬가지로 대공업의 필연적인 산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맑스는 영국에서 공장법의 일반적 적용을 고찰하기 전에 노동시간과 관계없는 일부 조항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공장법의 보건조항

공장법의 보건조항은 자본가가 쉽게 회피할 수 있게 용어가 사용되고 있고 그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 아일랜드에는 1864년에 1,800개의 타마공장이 있었는데 가을과 겨울에 주로 소농들의 자녀들과 부인들이 기계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압연기에 아마를 먹이다가 수많은 사고의 희생양이 되었다. “코크 근방의 킬디난에 있는 단 하나의 타마공장에서만도 1852년부터 1856년까지에 사망이 6건, 불구 정도의 중상이 60건이었는데, 그 모두가 [몇 실링의 비용이면 되는] 매우 간단한 장치로 방지할 수 있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매우 간단한 청결, 보건 규정의 준수도 공장법에 의거해야 할 정도로 공장의 상황을 열악하였다. 당시 영국의 의사들은 작업이 계속되는 경우 1인당 최저한도의 공간은 500입방 피트여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으나 공장법은 이렇게 규정하지 않았다. 보건당국, 공업조사위원, 공장감독관들은 노동자들이 500입방 피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자본가에게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복해서 말하였다.

공장법의 교육조항

공장법의 교육조항은 대체로 빈약한 것이지만 초등교육을 아동고용의 의무조건으로 선언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역사상 처음으로 일반적인 공공의(public) 교육이 출현한 것이다. 때문에 공교육의 탄생은 공장 제도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조항들의 성공은 교육과 체육을 육체노동과 결합시키는 것의 가능성, 따라서 육체노동을 교육, 체육과 결합시키는 것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했다.

로버트 오웬이 상세하게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공장제도로부터 미래의 교육의 맹아가싹터 나오고 있다. 이 교육은 일정한 연령 이상의 모든 아동들에게 생산적 노동을 학업 및 체육과 결합시키게 될 것인데, 이것은 생산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을 생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자본론』 Ⅰ, 648쪽, 강조는 인용자)

맑스는 여기서 아동들에게 있어 생산적 노동과 교육, 체육을 결합시키는 것을 오웬을 따라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전면적으로 발달한 인간을 양성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가 계급출현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생산적 노동을 학업 및 체육과 결합시키는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대공업은 [각 인간을 어떤 한 부분작업에 일생 동안 묶어두는] 매뉴팩쳐적 분업을 기술적으로 타파한다. 그와 동시에 대공업의 자본주의적 형태는 그 분업을 더욱 괴상한 것으로 재생산한다. 매뉴팩쳐의 분업과 대공업의 기본 특징 사이의 모순은 강렬하게 표출된다. 맑스는 예를 들고 있는데 근대적 공장과 근대적 매뉴팩쳐에 고용된 아동들의 대부분은 매우 어릴 때부터 가장 단순한 작업에 다년간 착취당하면서도 나중에 써먹을 유용한 어떤 기능도 습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영국의 인쇄업에서 과거에는 아동들은 완전한 인쇄공이 되기까지 여러 가지 훈련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인쇄기가 나타나면서 이 모든 것이 달라졌다. 11~17세의 아동들은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 그들은 17세가 되면 인쇄업에서 해고된다. 그들은 우범자가 된다.

수공업과 매뉴팩쳐가 사회적 생산의 전반적 토대를 이루고 있는 한, 생산자를 어떤 한 생산부문에 종속시키는 것은 발전과정의 필연적인 측면이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개별적인 각 생산부문은 기술적으로 적합한 자기의 형태를 경험적으로 발견하며 그것을 천천히 완성시켜 간다. 그리하여 일정한 성숙도에 달하자마자 그것은 급속히 고정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변화를 야기하는 유일한 것은, 새로운 노동재료와 노동도구의 점차적인 변화뿐이다. 그러나 노동도구도 경험에 의해 적합한 형태가 일단 발견되면 고정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정을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은,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직업을 ‘비법’이라고 불렀고, 오직 경험적으로 또 직업적으로 통달한 사람들만이 그 비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대공업은 이러한 장막[즉 인간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사회적 생산과정을 은폐하고, 또 자연발생적으로 분화된 각종 생산부문들을 외부인뿐 아니라 그 부문의 상속자들에 대해서까지 수수께끼로 만든 그 장막]을 찢어 버렸다. 대공업의 원리—즉 각 생산과정을 그 자체로서 파악하며 그것을 구성요소들로 분해하는 것[인간의 손이 그 새로운 과정들을 수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먼저 고려하지 않고]—는 새로운 근대적 과학인 기술공학을 낳았다.

근대적 공업은 결코 어떤 생산과정의 기존형태를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도 않으며 그렇게 취급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종전의 모든 생산방식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었지만 근대적 공업의 기술적 토대는 혁명적이다. 근대적 공업은 노동자의 기능과 노동과정의 사회적 결합들을 끊임없이 변혁시키고 있다. 따라서 또한 사회 안의 분업도 변혁시키며, 대량의 자본과 노동자를 한 생산부문에서 다른 생산부문으로 끊임없이 이동시킨다. 그러므로 대공업은 노동의 전환, 기능의 유동, 노동자의 전면적인 이동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 대공업은 그 자본주의적 형태에서는 종래의 분업을 그 고정된 특수성을 가진 채로 재생산하기 때문에 모순이 생긴다. 이 모순은 노동자의 생활 상태의 모든 평온, 확실성, 보장을 빼앗으며, 노동자의 수중으로부터 노동수단을 제거함으로써 생활 수단을 박탈하려고 끊임없이 위협하며, 노동자의 전문 기능을 폐지함으로써 그들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려고 끊임없이 위협한다. 또 이 모순은 노동자계급을 끊임없이 희생시키고 노동력을 한 없이 낭비하게 하고 파괴적인 사회적 무정부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대공업의 부정적인 측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공업은 노동의 전환[따라서 노동자가 다양한 종류의 노동에 최대로 적합하게 되는 것]을 하나의 사활적인 문제로 만든다. 따라서 노동전환의 이러한 가능성은 사회적 생산의 일반 법칙이 되어야 하며, 기존의 관계들은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개조되어야 한다. 비참한 상태에 묶어 두고 있는 산업 예비군이라는 괴물은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도 절대적으로 할 수 있는] 개인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 부분적으로 발달한 개인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개인에 의해 대체되어야 한다. 맑스의 이러한 분석은 현재 들어도 매우 과학적이고 천재적인 것이다. 당장은 대공업이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지만 대공업은 전면적으로 발달한 노동자를 사활적인 문제로 만든다. 이처럼 맑스는 대공업이 만들어내는 노동에 대한 부정적 영향과 긍정적 영향을 동시에 파악하고 있는데 일면적으로 부정적인 측면만 보거나 긍정적인 측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을 동시에 통일적으로 보는 변증법적 사고를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긍정적 측면은 노동자계급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는 만개할 것이다.

대공업에 기초해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한 이 변혁과정의 한 요소는 공업학교와 농업학교이며, 다른 요소는 ‘직업학교’[여기에서는 노동자의 자녀들이 기술공학과 각종 노동도구의 실제 사용법에 관해 약간의 수업을 받는다.]이다. [자본으로부터 쟁취한 최초의 빈약한 양보인] 공장법은 초등교육을 공장노동과 결합시키는 데 불과하지만, 노동자계급이 불가피하게 정권을 장악했을 때에는 이론과 실천이 병행하는 기술교육은 노동자 학교에서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와 같은 혁명의 효소[이것의 목표는 종래의 분업을 철폐하는 것이다]는 자본주의적 생산형태와 그것에 상응하는 노동자의 경제적 상태와 전적으로 모순된다는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정한 역사적 생산형태의 모순들이 전개되는 것은 그 생산형태가 해체되고 새로운 생산형태가 형성되는 유일한 역사적 길이다. “제화공이여, 자기의 본분을 지켜라!”라는 최고의 수공업적 지혜는, 시계제조공 와트가 증기기관을, 이발사 아크라이트가 방적기를, 보석공 풀턴이 기선을 발명한 순간부터 그야말로 터무니없는 구절이 되어버렸다.

(『자본론』 Ⅰ, 654쪽, 강조는 인용자)

대공업이 가족, 양성관계에 미친 영향

대공업은 종래의 가족제도의 경제적 토대와 그에 상응하는 가족노동을 붕괴시킴으로써 종래의 가족 관계까지도 해체했다. 자본주의적 착취방식은 친권에 상응하는 경제적 토대를 제거함으로써 친권을 남용하게 만들었다. 이미 앞의 글,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에서 보았듯이 기계의 도입이 가져온 첫 번째 결과는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이었다. 기계의 도입은 노동자 가족의 구성원 모두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시키고 가장의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켰다. 자본주의적 착취 방식은 이와 같이 친권에 상응하는 경제적 토대를 제거한다. 그 결과 친권의 남용이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종래의 가족제도의 붕괴가 아무리 무섭고 메스껍게 보일지라도, 대공업은 가정의 영역밖에 있는 사회적으로 조직된 생산과정에서 부인, 미성년자, 남녀 아동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가족과 양성관계의 더 높은 형태를 위한 새로운 경제적 토대를 창조하고 있다. …… 또한 남녀노소의 개인들로 집단적 노동그룹이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것의 자연발생적이고 야만적인 자본주의적 형태[여기에서는 생산과정이 노동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생산과정을 위해 존재한다.]에서는 부패와 노예상태의 해로운 원천으로 되지만, 적당한 조건 하에서는 이와 반대로 인간적인 발전의 원천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도 명백하다.

(『자본론』 Ⅰ, 656쪽, 강조는 인용자)

이처럼 맑스는 대공업이 가족, 양성 관계에 미친 영향도 노동에 미친 영향과 똑같이 변증법적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미래의 전망을 여는 데에서 매우 중요한 방향을 제공하고 있다.

[사진: 19세기 초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 노동자]

공장법의 일반화

공장법이 특별법으로부터 일반법으로 전환되는 것은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공장법의 일반화에는 두 가지 사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나는, 자본은 사회의 어떤 한 지점에서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될 때에는 다른 모든 지점들에서 더욱더 무모하게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경험적인 사실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본가 자신이 경쟁 조건의 평등, 즉 노동착취에 대한 규제의 균등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정 때문이다.

아동노동 조사위원회는 그 최종보고에서 1,400,000명 이상의 아동, 미성년자, 부인들에게 공장법을 적용하라고 제의하였는데, 토리당 내각은 1867년 2월 5일의 국왕의 연설을 통해, 이 아동 노동조사위원회의 제안을 법안으로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공장법 확장조례가 1867년 8월 12일에 통과되었다. 이것은 대기업체를 규제하였다. 1867년 8월 17일에 통과된 노동시간 규제법은 소작업장들과 이른바 가내공업을 단속했다.

맑스는 다음과 같이 공장법 일반화의 의의를 요약하고 있는데 원문 그대로를 인용한다.

노동자계급의 육체와 정신의 보호수단으로서 공장법의 전반적 확대가 불가피한 것으로 되었다면, 다른 한편 이 확대는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소규모의 분산된 다수의 사업체들이 대규모의 소수의 결합된 사업체로 전환하는 것을 촉진하며, 따라서 자본의 집적과 공장제도의 배타적 지배를 강화한다. 공장법의 확대는 [자본의 지배가 아직도 부분적으로 은폐되고 있는] 낡은 형태들과 과도적 형태들을 분쇄하고, 그 대신 자본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지배를 야기한다. 그리하여 공장법의 확대는 자본의 지배에 대한 직접적인 투쟁도 일반화한다. 그것은 개별 작업장에서 균일성, 규칙성, 질서, 절약을 강요하는 한편, 노동일의 제한과 규제가 기술개량에 준 강력한 자극을 통해 전체로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무정부성과 공황, 노동강도 그리고 기계와 노동자 사이의 경쟁을 증대시킨다. 공장법의 확대는 소규모 가내공업을 파괴함으로써 ‘과잉인구’의 마지막 피난처를 파괴하며, 따라서 또 전체 사회 메커니즘의 종래의 안전판을 제거한다. 공장법의 확대는 생산과정의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결합을 성숙시킴으로써, 생산과정의 자본주의적 형태의 모순과 적대를 성숙시키고, 이리하여 새로운 사회를 형성할 요소들과 낡은 사회를 타도할 세력들을 모두 성숙시킨다.

(『자본론』 Ⅰ, 675쪽)

[사진: http://londongreenleft.blogspot.com]

대공업과 농업

대공업과 농업에 할애된 지면은 4쪽에 불과하지만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생태문제의 해결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대공업이 낡은 사회의 보루인 ‘소경영 농민’을 없애버리고 임금노동자로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어느 분야보다도 농업분야에 더욱 혁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사회적 변혁의 요구와 계급적 대립은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같게 된다. 낡고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전통적 작업방식은 과학의 의식적이고 기술적인 적용에 의해 대체된다. 농업과 매뉴팩쳐 모두가 유치하고 미발달한 단계에 있었을 때 그 둘을 서로 얽어매고 있던 원시적 가족적 유대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의해 완전히 해체된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새로운 더 높은 종합—즉, 농업과 공업이 서로 적대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동안에 발전시킨 형태를 토대로 다시 결합하는 것—의 물질적 조건을 만들어 낸다.

(『자본론』Ⅰ, 677, 678쪽, 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강조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매우 중요한 물질대사 개념이 생태문제와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또 다시 등장한다(이미 여러 글에서 물질대사 개념을 강조하였다. 『자본론』 읽기 ①, ⑤, ⑧).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구를 대중심지로 집결시키며 도시인구의 비중을 끊임없이 증가시키는데, 이것은 한편으로 사회의 역사적 동력을 집중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한다. 즉 인간이 식품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토지 성분들을 토지로 복귀시키지 않고, 따라서 토지의 비옥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연조건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노동자의 육체적 건강과 농촌노동자의 정신생활을 다 같이 파괴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물질대사의 유지를 위한 자연발생적 조건을 파괴한 뒤에야 비로서, 물질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서 그리고 인류의 완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건할 것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자본론』 Ⅰ, 678쪽, 강조는 인용자)

더욱이 자본주의적 농업의 모든 진보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토지를 약탈하는 방식의 진보이며, 일정한 기간에 토지의 비옥도를 높이는 모든 진보는 비옥도의 항구적 원천을 파괴하는 진보다. 예컨대 미국처럼 한 나라가 대공업을 토대로 발전하면 할수록, 토지의 파괴과정은 그만큼 더 급속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와 노동자를 동시에 파괴한 뒤에야 비로소, 각종 생산과정들을 하나의 사회 전체로 결합하여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자본론』 Ⅰ, 679, 680쪽)

대공업 이전에 인간이 식품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토지 성분들은 토지로 복귀하였다. 인간은 식품의 형태로 토지성분을 소비한 후 이를 인분의 형태로 다시 토지로 복귀시켰다. 그러나 대공업의 출현 이후 이 순환은 단절된다. 그 결과 토지의 비옥도는 유지되지 않는다. 대신 인분은 강과 인근 바다를 오염시켜 생태문제를 야기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만들어 낸 물질대사의 파괴가 야기한 것이다.

물질대사 개념은 생태문제의 과학적 해결 방향을 제시하는 핵심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물질대사 개념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기본 개념으로서 생태 문제 해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이로써 제15장과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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