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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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자본론』 읽기 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제15장에서는 매뉴팩쳐에 이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가장 대표적인 방법인 기계제 대공업이 검토된다. 제15장은 「『자본론』 읽기 ⑨」에서 밝혔듯이 『자본론』 Ⅰ권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한 세 장 중 하나이다. 맑스가 정성을 들여 쓴 부분이다. 기계의 도입은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와 자본주의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였다. 또한 기계제 대공업은 한편에서는 산업프롤레타리아트의 형성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산조직에서 객관적인 요소가 지배하게 하여 매뉴팩쳐 시기의 노동자 불복종 행위를 끝내고 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켜 자본에 의한 노동자의 가혹한 착취를 가져왔다. 이처럼 기계의 도입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제15장은 총 10절로 구성되어 있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몇 개의 글로 나누어 검토하도록 하겠다.

기계의 발달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전에 맑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사용 목적은 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잊고 기계를 검토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그 누구의 수고를 덜어 준다는 것은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이 결코 아니다. 기계는 노동생산성을 발전시키는 다른 모든 수단과 마찬가지로 상품의 값을 싸게 하며,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부분을 단축시키며, 노동일 중 자본가에게 공짜로 제공하는 다른 부분을 연장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계는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수단이다.(『자본론』 Ⅰ, 499~500쪽)

본론에 들어가서 맑스는 예리하게 기계를 검토하는데 매우 독창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완전히 발달한 기계는 서로 다른 세 부분, 즉 동력기, 전동장치, 도구 또는 작업기로 이루어진다.

18세기의 산업혁명의 출발점은 작업기였다. 수공업적 생산 또는 매뉴팩쳐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으로 이행할 때에는 언제나 작업기가 출발점이었다. 작업기는, 일단 가동되면 자체의 도구들을 가지고 [종전에 노동자가 그와 유사한 도구들을 가지고 수행한 것과] 동일한 작업을 수행하는 기계장치이다. 진정한 도구가 인간의 손을 떠나 기계장치로 옮아간 뒤에는 기계가 단순한 도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인간이 한꺼번에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의 수는 인간 자신의 육체적 기관의 수에 의해 제한된다. 인간의 손은 둘밖에 없다! 발 역시 그러하다! 이에 반해 하나의 작업기가 동시에 움직이는 도구의 수는 [수공업자의 도구가 받고 있는] 그러한 생리기관에 의한 제한성으로부터 처음부터 해방되어 있다. 마치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처럼 오해되고 있지만 이 자체가 산업혁명을 일으키진 못했다. 반대로 작업기의 발명이 증기기관의 혁명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산업혁명의 출발점인 기계는 단 한 개의 도구만을 취급하는 노동자를 기계장치로 대체하는데, 기계장치는 다수의 같은 도구 또는 같은 종류의 도구를 한꺼번에 사용하여 작업하며, 단 한 개의 동력에 의해 가동된다.

작업기의 규모의 확대 및 그 작업 도구의 수의 증대는 이것들을 가동시킬 더 큰 기계장치를 요구하며, 이 기계장치는 그 자체의 저항력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동력보다 더 강력한 동력을 요구한다. 와트의 복동식 증기기관의 발명에 의해 고성능의 원동기가 출현하였다. 그 원동기는 석탄과 물을 소비해 그 자체의 동력을 생산하며, 그 힘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으며, 이동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이동의 수단이며, 수차와 같이 농촌적이 아니고 도시적이며, 생산을 [수차의 경우처럼] 농촌에 분산시키지 않고 도시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그 기술의 적용이 보편적이며, 그 설치지의 선정에서 지역적 사정들에 의해 제약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도구가 인간 유기체의 도구로부터 기계장치의 도구, 즉 작업기의 도구로 전환된 뒤에야 동력장치도 비로소 인력의 제한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독립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개개의 작업기는 기계제 생산의 단순한 하나의 요소로 격하된다. 이제 한 개의 동력기가 많은 작업기를 동시에 가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동시적으로 운동하는 작업기의 수가 증대함에 따라 동력장치도 커지고, 또 그와 아울러 전동장치도 하나의 방대한 장치로 되었다.

[사진: 1858년에 나온 면직산업의 조방기]

기계들 사이의 관계의 차이에 의해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협업과 복합적인 기계체계가 구별된다.

(a) 다수의 같은 종류의 기계의 협업: 단순협업과 유사한데, 동시적으로 함께 운동하는 같은 종류의 작업기가 한 곳에 집합한 것으로 나타난다. 많은 작업기들은 동일한 동력 기구의 기관들을 형성한다.

(b) 진정한 기계체계: 매뉴팩쳐에 특유한 협업, [즉, 분업에 기초한 협업]과 유사한데, 각 작업기는 결합된 기계장치에서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는 한 개의 특수한 기관을 형성한다.

매뉴팩쳐적 생산과 기계제 생산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에서는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그들의 손 도구를 가지고 각각의 특수한 부분과정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자가 과정에 적응한다고 하지만, 과정 그 자체가 미리부터 노동자에게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주체적인 분업원칙은 기계제 생산에서는 없어진다(주객전도 현상). 여기에서는 총과정은 객체적으로 그 자체로 고찰되며, [그것이 인간의 손에 의해 어떻게 수행되느냐는 문제와는 관계없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여런 단계들로 분할된다. 각각의 부분과정을 어떻게 수행하고, 상이한 부분과정을 어떻게 통합하는가의 문제는, 기계학, 화학 등의 응용에 의해 해결된다.

기계들의 체계는 두 경우 중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한 개의 자동 원동기에 의해 운전되자마자 그 자체가 하나의 큰 자동장치로 된다. 작업기가 원료의 가공에 필요한 일체의 운동을 인간의 협력 없이 수행하고 오직 노동자의 통제만을 필요로 하게 되면 기계의 자동체계가 이루어진 것이며 그 세부는 끊임없이 개량될 수 있다. 한 개의 중앙 자동장치로부터 전동장치를 통해서만 자기의 운동을 받는 작업기들의 편성체계는 기계제 생산의 가장 발달한 형태이다.

매뉴팩쳐는 기계를 생산했는데, 그 기계의 도움에 의해 대공업은 [그것이 최초에 장악한 생산부분들에서] 수공업 생산과 매뉴팩쳐 생산을 폐지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기계를 생산하는 체계는 자기에 적합하지 않은 물질적 토대 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것이다. 그 체계가 일정한 발전 단계에 도달했을 때 이 빌어온 토대를 타도하고 자신의 생산방식에 상응하는 새로운 토대를 창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공업의 한 분야에서 일어난 생산방식의 변혁은 다른 분야에서도 생산방식의 변혁을 일으킨다. 우선 다른 공업에서 변혁을 일으킨다. 다음으로 통신 수단과 운수 수단의 변혁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대공업은 기계 그 자체를 기계로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대공업은 자기에게 적합한 기술적 토대를 창조했으며 자기 자신의 두 발로 서게 되었다.

기계의 형태를 취하는 노동수단은 인간력을 자연력으로 대체하도록 하며, 경험적 숙련을 자연과학의 의식적 응용으로 대체하게 한다. 매뉴팩쳐에서는 사회적 노동과정의 조직은 순전히 주체적이며 또 부분노동자들의 결합인데, 기계체계에서는 대공업은 전적으로 객체적인 생산조직[이것은 노동자에게 이미 존재하는 물질적 생산조건으로 대면한다]을 갖는다. 단순협업, 그리고 분업에 의해 전문화된 협업에서조차, 결합된 노동자가 고립된 노동자를 몰아내는 것은, 아직도 어느 정도 우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기계는 오직 결합노동 또는 공동노동에 의해서만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노동과정의 협업적 성격은 노동수단 자체의 성질에 의해 강요되는 기술적 필연성으로 된다.

기계가치가 생산물로 이전

불변자본의 다른 구성부분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으나 생산물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이전한다. 대공업에서 특징적인 노동수단인 기계와 기계체계는 수공업적 생산과 매뉴팩쳐적 생산의 노동수단에 비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큰 가치를 가진다.

제7장에서 이미 밝혔듯이 기계는 노동수단이다. 또한 제8장에서 이미 밝혔듯이 노동수단은 노동과정에는 언제나 전체로 참가하지만 가치형성과정에는 언제나 일부씩만 참가한다. 기계의 가치와, [일정한 기간에 생산물로] 이전되는 가치 부분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용과 마멸 사이의 차이는 도구의 경우보다 기계의 경우에 훨씬 더 크다.

기계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이 그 기계의 사용에 의해 절약되는 노동보다 적으면 그 기계는 노동을 절약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기계를 생산물을 싸게 하는 수단으로만 본다면, 기계를 사용하는 한계는 기계 자체의 생산에 드는 노동이 기계의 사용에 의해 대체되는 노동 보다 적어야 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자본가에 의한 기계 사용의 한계는 기계의 가치와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치 사이의 차이에 의해 설정된다. 즉, 기계의 가격이 기계가 대체하는 노동력의 가격보다 작을 때만 기계가 사용된다. 따라서 영국에서 발명된 기계는 임금이 높은 미국에서만 사용되었으며, 16세기와 17세기에 독일에서 발명된 기계는 네덜란드에서만 사용되었고, 또 18세기의 프랑스의 많은 발명은 영국에서만 사용되었다. 맑스가 『자본론』을 썼을 당시 영국에서는 운하에서 배를 끄는 일에 때때로 말 대신 아직도 여성을 사용하였는데, 그 이유는 여성들을 부양하는 데 필요한 임금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즉, 여성들의 임금이 너무 낮아 자본가들은 말을 쓰거나 기계를 도입하지 않고 여성노동자들을 쓴 것이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계의 사용 범위가 제한된다. 이와 달리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기계가 부르주아 사회에서와는 전혀 다른 사용 범위를 가질 것이다.

기계제 생산이 노동자들에게 미치는 직접적 영향

(a) 자본에 의한 추가 노동력의 취득. 여성과 아동의 고용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은 자본가에 의한 기계 사용의 첫 번째 결과였다. 기계는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노동자 가족의 구성원 모두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함으로써 임금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되었다.

기계는 노동자 가족 전체 구성원들을 노동시장에 내던짐으로써(가족 전체 구성원을 생산과정에 끌어들이면서 자본이 가족과 양성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제15장 제9절에서 자세하게 다룬다) 가장의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킨다. 가령 4명으로 구성된 가족의 노동력에 자본가가 지불하는 비용은 늘어나겠지만 4노동일이 1노동일을 대체하므로 4노동일의 잉여노동이 1노동일의 잉여노동을 초과하는 것에 비례해서 그들 가족의 노동력의 가격은 하락한다. 이와 같이 기계는 처음부터 인간적 착취재료를 추가할 뿐만 아니라 착취의 정도를 증가시킨다.

기계의 도입으로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이 사용되면서 매우 처참한 일들이 발생한다. 남성노동자는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의 노동력을 노예상인처럼 자본가에 판매한다. “베스날 그린이라는 런던의 악명 높은 지역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아침에 공개시장이 열리는데, 거기에서는 9세 이상의 남녀 아동들이 런던의 견직 공장주들에게 자신을 임대한다. …… 부모들이 “구빈원에서 아동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을 아무 구매자에게나 주 2실링 6펜스로 임대하는” 일이 지금도 영국에서는 일어나고 있다.”(『자본론』 Ⅰ, 532쪽) 여성이 아동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함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유아 사망률은 높아졌다. “이처럼 사망률이 높은 원인은, 지방적 조건을 도외시하면, 주로 어머니의 가정외 취업과 이로부터 생기는 유아에 대한 무관심과 학대, 예컨대 부적당한 음식, 영양부족, 마취제의 사용 등등인데, 이 밖에도 어머니와 유아 사이의 부자연스러운 반목, 그 결과 고의적으로 굶기는 것과 유독물을 주는 것 등이 그 원인으로 되고 있다.”(『자본론』 Ⅰ, 534쪽)

미성년자들을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단순한 기계로 전환시킴으로써 인위적으로 조성한 지적 황폐는 결국 영국 의회로 하여금 초등교육을 [공장법의 적용을 받는 공업부문들에서] 14세 미만 아동들의 생산적 고용을 위한 법적 조건으로 선포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자본주의적 생산의 정신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공장법의 교육조항(교육조항에 대해서는 제15장 제9절에서 자세하게 다룬다)은 공장에 고용되는 아동들은 교육받아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규정도 포함하지 않았다. 공장법은 “아동들을 주 중의 어느 날들에, 그리고 매일 일정한 시간(3시간) 동안 학교라고 부르는 4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가두어 두어야 할 것과, 아동들의 고용인은 그렇게 했다는 증명서를 매주 교사로부터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자본론』 Ⅰ, 537쪽) 맑스는 책에서 공장법의 교육조항이 어떻게 허구적인 것으로 귀결되는지를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맑스는 ‘(a) 자본에 의한 추가 노동력의 취득. 여성과 아동의 고용 부분’을 다음과 같은 구절로 마치는데, 바로 앞의 글에서 언급한 매뉴팩쳐 노동자의 불복종 행위를 기계가 끝내 버렸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 구절은 기계의 도입이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역관계를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변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계는 아동과 여성을 대량으로 노동자계급에 추가함으로써, 성인 남성노동자가 매뉴팩쳐 시기 전체를 통해 자본의 독재에 대항했던 반항을 드디어 타파하게 된다.

(『자본론』Ⅰ, 540쪽)

(b) 노동일의 연장

이 글의 앞 부분에서 언급하였듯이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사용 목적은 노동자의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기계는 상품의 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데 이 기계의 도입이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준으로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노동생산성의 발전에 의한 노동의 절약은 결코 노동일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미 「『자본론』 읽기 ⑫: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다루었다).

기계는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즉,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지만, 그것은 자본의 수중에서는 기계에 의해 처음 정복된 공업부문들에서 모든 자연적 제한을 넘어 노동일을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된다. 기계는 한편으로는 자본으로 하여금 이러한 경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조건들을 조성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의 노동에 대한 자본의 탐욕을 격화시키는 새로운 동기를 조성한다.

(『자본론』Ⅰ, 541쪽)

자본가들이 기계를 도입하면서 노동일을 연장하려고 하는 동기는 다양하다. 가령 7½년 동안 매일 16시간씩 사용하는 기계는 15년 동안 매일 8시간밖에 사용하지 않는 동일한 기계와 동일한 노동시간을 가지며 동일한 가치를 총생산물에 이전시킨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후자의 경우보다 기계의 가치가 2배나 빨리 재생산될 것이며, 또 자본가는 후자의 경우 15년 동안에 흡수하게 될 잉여가치를 전자의 경우에는 7½년 동안에 흡수해버릴 것이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기계를 도입하면서 노동일을 연장하려고 한다.

자본가들이 기계를 도입하면서 노동일을 연장하려고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갖게 만드는 것이 기계의 도덕적 마멸이다. 기계의 도덕적 마멸은 기계의 물리적 마멸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기계는 사용하면 마멸된다. 이와 달리 기계를 사용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마멸도 있다. 예를 들면 칼을 사용하지 않으면 녹스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 둘 모두는 물리적 마멸이다. 그런데 도덕적 마멸은 이와 다르다. 기계는 같은 구조의 기계가 더 싸게 재생산되거나 더 우수한 기계가 경쟁자로 나타나면 교환가치를 잃게 된다. 이 경우 기계가 아무리 아직 새것이며 생명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치는 감소한다. 기계의 총가치가 재생산되는 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도덕적 마멸의 위험은 그만큼 더 적어지며, 또 노동일이 길면 길수록 그 기간은 그만큼 더 짧아진다. 이 때문에 기계의 생애 초기에는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동기가 가장 강하게 작용한다.

기계제 생산의 발전과 함께 자본 중 갈수록 증가하는 부분이 노동수단에 묶이게 된다. 이 노동수단이 살아있는 노동과 접촉하는 시간을 자본가들은 증대시키려고 한다. “기계사용의 끊임 없는 확대는 노동일을 점점 더 연장하는 것을 ‘소망스러운’ 것으로 만든다.”(『자본론』 Ⅰ, 545쪽)

자본가들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는 것은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이에 대해서는 「『자본론』 읽기 ⑫: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이 특별잉여가치는 새로운 기계가 널리 사용되게 되면 사라지게 된다. 기계의 사용이 일종의 독점 상태에 있는 이 과도기동안 이윤은 엄청나게 크다. 맑스는 이 시기를 문학적으로 ‘첫사랑의 시기’라고 표현하는데, 자본가는 이 ‘첫사랑의 시기’를 가능한 한 노동일을 연장함으로써 철저히 이용하려고 한다.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기계의 사용에는 내재적인 모순이 있다.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위해 기계를 도입하면 잉여가치율은 높아지지만 기계에 묶이는 자본이 크게 늘어 자본 중 가변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고 따라서 잉여가치율의 상승이 노동자 수의 감소와 동시에 일어난다. 잉여가치의 두 요인 중 하나인 잉여가치율은 다른 요인인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키지 않고서는 증대될 수 없다. 이 내재적 모순은, 기계가 어떤 공업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기계에 의해 생산되는 상품의 가치가 그 종류의 모든 상품의 사회적 가치를 규제하게 되자마자 나타난다. 그리하여 이 모순 때문에 자본가는 착취되는 노동자 수의 상대적 감소를 상대적 그리고 절대적 잉여노동의 증가로 보상하기 위해 노동일을 무자비하게 극도로 연장하려고 하게 된다.

이상의 것을 요약하며 맑스는 기계의 사용이 노동일의 길이에 대한 온갖 도덕적, 자연적 제한을 없애 버렸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한편으로 노동일의 무제한 연장에 대한 강력한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고, 또 노동방식 자체와 사회적 노동유기체의 성격을 크게 변혁시킴으로써 노동일을 연장하려는 경향에 대한 모든 반항을 좌절시키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은 부분적으로는 노동자계급 중 종전에 자본가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층들을 자본가에 복종시킴으로써, 또 부분적으로는 기계에 의해 쫓겨난 노동자들을 하는 일 없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과잉노동인구를 생산한다. 기계는 노동일의 길이에 관한 온갖 도덕적, 자연적 제한을 없애버린다는 근대산업사의 주목할 만한 현상이 여기에서 나온다. 또한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모든 생활시간을 자본의 가치증식에 이용할 수 있는 노동시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수단으로 된다는 경제적 역설이 이로부터 나온다.

(『자본론』Ⅰ, 547쪽, 강조는 인용자)

(c) 노동의 강화

기계의 도입 이후 영국에서는 반세기 동안 노동일의 연장과 공장노동의 강도의 증대가 병행해 진행되고 있었다. 기계의 사용이 보급되고 기계사용에 익숙해진 특수한 노동자계급의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의 속도 따라서 노동의 강도가 자연발생적으로 증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일의 연장과 노동의 강도가 서로 배제하게 되는 지점이 결국 도래하게 된다. 점차 증대하는 노동자계급의 반항 때문에 의회가 노동시간을 강제적으로 단축하고, 우선 진정한 공장에 대해 표준노동일을 명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자마자, 즉 노동일의 연장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의 증가가 전혀 불가능하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자본은 기계체계의 발전을 한층 더 촉진함으로써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데 몰두했다. 그와 동시에 상대적 잉여가치의 성격 변화가 나타났다. 이때 자본가들이 사용한 것이 노동의 강화였다. 가령 10시간 노동일의 더 집약적인 1시간은, 12시간 노동일의 더 느슨한 1시간과 비교해 더 많은 노동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더 집약적인 1시간의 생산물은 더 느슨한 1⅕시간의 생산물과 동일한 가치를 가지거나 더 큰 가치를 갖는다.

실제로 노동이 강화된 것을 살펴보면, 노동일의 단축의 첫 효과는 노동력의 능률이 노동력의 사용시간에 반비례한다는 자명한 법칙에서 나온다. 노동시간의 단축으로 입은 자본가의 손실은 노동력 지출의 강도를 증가시킴으로써 보상된다. 노동일의 단축은 노동자로 하여금 일정한 시간에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할 수 있게 한다. 기계는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노동을 짜내기 위한 객체적인 수단으로 된다. 이것은 기계속도의 증가와 노동자 1인당 감시[또는 가동]하는 기계 수의 증대에 의해 달성된다.

영국에서는 1832년에 노동일이 1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이때 공장에서의 노동은, 기계 속도의 현저한 증가가 노동자에게 주의력과 활동성의 강화를 요구하기 때문에 대단히 증가했다. 1847년에 10시간 노동법이 실시된 이후 “노동자의 더욱 강화된 노동은 단축된(2시간, 즉 1/6 단축된) 노동일로부터 적어도 종전의 더 긴 노동일에 생산되던 양만큼의 제품을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자본론』 Ⅰ, 558쪽)

노동일의 연장이 법률에 의해 영원히 금지되자, 자본은 이것을 보상하기 위해 노동강도를 체계적으로 강화하는 경향과 기계의 모든 개량을 노동력 흡수의 더욱 완전한 수단으로 전환시키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얼마 안 가서 또 다시 노동시간의 새로운 단축이 불가피하게 되는 하나의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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