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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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jacobinmag.com / 미국 최대 쇼핑업체 아마존의 물류센터 전경]

[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자본론』 읽기 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제3편에서는 필요노동시간이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절대적 잉여가치를 검토하였다. 제4편에서는 이와 대비되는 상대적 잉여가치를 검토한다. 먼저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검토하고, 협업, 분업과 매뉴팩쳐, 기계와 대공업을 검토한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

지금까지는 필요노동 시간은 주어진 것으로 전제하고 노동일이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여 발생하는 잉여가치를 검토하였다. 만약 필요노동시간이 6시간으로 주어지고 노동일이 8시간, 9시간, 10시간, 12시간이라면 잉여노동시간은 2시간, 3시간, 4시간, 6시간으로 되고 이 잉여노동시간만큼 잉여가치가 발생한다. 그런데 만약 노동일이 12시간으로 주어지고 필요노동시간이 10시간이라면 잉여노동시간은 2시간이 될 터인데, 노동일을 연장하지 않은 채 잉여노동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이 경우 잉여노동시간을 늘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필요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밖에는 없다. 만약 앞에서 든 예에서 필요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줄어든다면 잉여노동시간은 3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다. 필요노동시간이 6시간으로 줄어든다면 잉여노동시간은 6시간으로 늘어날 것이다. 잉여노동시간의 연장에는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이 대응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이때까지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있던 노동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해 지출되는 노동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요노동시간은 노동력의 가치에 의해서 정해지며(맑스는 제12장에서는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임금을 노동력 가치 이하로 지불하여 잉여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은 검토하지 않는다. 물론 실제로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만 맑스는 모든 상품은 자기의 완전한 가치대로 매매된다고 전제하면서 분석을 하고 있다.) 다시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자가 매일 필요로 하는 생활수단의 가치이다. 그리고 생활수단의 가치는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정해지므로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기 위해서는 생활수단의 생산과 관련해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해야 한다. 가령 필요노동시간이 10시간에서 9시간으로 단축되기 위해서는 이전에는 10시간에 생산되던 것과 동일한 양의 생활수단이 이제는 9시간에 생산되게 되어야 한다. 즉, 노동생산성이 증가되어야 한다.

앞의 글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맑스는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를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르고 이와 대비하여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이에 대응해 노동일의 두 부분들의 길이 변화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노동력의 가치는 생활수단의 가치와 같다. 따라서 노동력의 가치는 생활수단의 가치가 감소할 때 감소한다. 생활수단의 가치는 모든 상품이 그러하듯이 C+V+S이므로 생활수단의 가치가 감소하는 경우는 두 경우이다. 하나의 경우는, 이를 생산하는 분야에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때, 그래서 V+S가 감소할 때이다. 또 하나의 경우는 생활수단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자본의 물질적 요소를 공급하는 분야에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할 때, 그래서 C가 감소할 때이다. 그러나 필요한 생활수단을 공급하지도 않으며 그것의 생산을 위한 생산수단을 공급하지도 않는 생산부문들, 가령 사치품 생산부분에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노동력의 가치는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시간이 감소함에 따라 감소하므로 필요노동시간의 총감소분은 상술한 상이한 생산부분들 전체에서 일어난 노동시간 단축의 총계와 같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생활수단의 생산과 관련해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여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어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별자본가, 가령 생활수단의 한 종류인 속옷을 생산하는 자본가가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킬 때, 이 자본가가 결코 노동력의 가치를 저하시켜 그만큼 필요노동시간을 단축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자본가가 속옷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은, 여타의 다른 자본가들보다 더 작은 가치의 속옷을 생산하여 특별하게 더 많은 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즉,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특별잉여가치의 발생 구조를 하나의 예를 가지고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정:

1) 1노동시간은 6펜스(6펜스는 1/2실링이다. 김수행 제2개역판에는 6원으로 되어 있는데 어색하여 독일어 원문의 화폐단위를 사용한다.)로 표현된다. 12시간의 1노동일에는 6실링의 가치가 생산된다.

2) 현재의 지배적인 노동생산성은 12개의 상품/12노동시간이다.

3) 상품 한 개당 소비되는 생산수단의 가치는 6펜스이다.

이 경우 상품 1개의 가치=생산수단의 가치 6펜스+1노동시간 6펜스=1실링

이때 어떤 자본가가 노동생산성을 2배로 증가시키는 데 성공하면 노동생산성은 24개의 상품/12노동시간이 된다. 따라서 이 자본가가 생산하는 상품 1개의 개별 가치=생산수단의 가치 6펜스+1/2 노동시간 3펜스=9펜스로 된다. 사회적 가치는 여전히 1실링, 12펜스이므로 이 상품의 개별가치 9펜스<사회적 가치 1실링, 12펜스이다.

만약 이 자본가가 상품을 사회적 가치인 1실링으로 판매하면 상품 한 개당 3펜스의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 자본가가 판로를 확보하기 위하여 상품을 1실링이 아니라 10펜스로 판매한다면 상품 한 개당 1펜스의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자본가들이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높여 상품가치를 저렴하게 하려는 동기를 갖는 것은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다른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 방식을 도입한다. 그 결과 새로운 생산방식이 일반화되게 되고 상품의 개별 가치와 사회적 가치 사이의 차이가 제거되게 되어 특별잉여가치는 소멸한다.

특별잉여가치의 발생과 소멸 과정이 누적되어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산업부문들에서 일어나서 노동력의 가치를 구성하는 상품들을 값싸게 했을 때, 필요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잉여노동시간이 연장되어 일반적인 잉여가치율을 상승시키게 된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에 정비례한다.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에 따라 증가하며, 그 저하에 따라 저하한다. 가령 노동생산성이 증가한 결과 생활수단의 가치가 저하해서 노동력의 하루 가치가 5실링에서 3실링으로 감소한다면, 잉여가치는 1실링에서 3실링으로 증가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노동력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10노동시간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다만 6노동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이상이 상대적 잉여가치가 발생하는 전체적인 구조이다. 개별 자본가들은 특별잉여가치를 획득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여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상품의 개별 가치를 작게 한다. 경쟁에 의해 다른 자본가들도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그 결과 특별잉여가치는 소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동력의 가치의 저하가 발생하고 이것이 전반적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고 일반적인 잉여가치율을 상승시키게 된다.

이것을 파악하게 되면 『자본론』의 다음 구절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본의 일반적이고 필연적인 경향들은 그것들의 현상형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자본론』 Ⅰ, 428쪽)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법칙이 개별 자본들의 외적 운동에 표현되어 경쟁이 강제하는 법칙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며, 그리하여 개별 자본가를 추진시키는 동기로서 그의 의식에 도달하는 방식을 여기에서 고찰하려는 의도는 없다. 그러나 이 점만은 분명하다. 즉, 경쟁의 과학적 분석은 자본의 내적 본성이 파악된 뒤에라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은 마치 천체의 외관상의 운동은 [감각적으로 직접 인식할 수 없는] 천체의 진정한 운동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이해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론』 Ⅰ, 428쪽)

그러므로 상품을 값싸게 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자체를 값싸게 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려 하는 것은 자본의 내재적 충동이며 끊임없는 경향이다.

(『자본론』Ⅰ, 432쪽)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앞으로 『자본론』 여러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날 것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 등등에서 노동생산성의 증가는 핵심적인 개념으로 반복되어 사용될 것이다. 필자는 「『자본론』 읽기 ①」에서 이미 “노동생산성은 『자본론』 전체에 걸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역할 한다. 특히 제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서 핵심적인 개념이다. 자본가들은 특별잉여가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기계 등을 도입하여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자본론』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노동생산성에 대해서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독자들이 이번 기회에 노동생산성의 개념을 복습하여 확실히 자기 것으로 만들 것을 권한다.

다음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맑스는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다. 하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가 상품을 싸게 만드는 동시에 상품에 들어있는 잉여가치를 증대시키기 때문에, 자본가는 교환가치의 생산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도 상품의 교환가치를 끊임없이 떨어뜨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노동생산성의 발전에 의한 노동의 절약은 결코 노동일의 단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뒤에서 곧 보게 되는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의 주요 수단인 기계제 대공업은 노동일의 단축이 아니라 오히려 16시간 전후에 이르는, 전대미문 수준의 노동일 연장을 가져왔다.

협업

상대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밝힌 후 맑스는 노동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여러 가지 방식을 검토한다. 검토의 출발점은 협업이다. 협업은 하나의 동일한 생산과정에, 또는 서로 다르지만 상호 관련된 생산과정에 많은 사람이 계획적으로 함께 협력해 일하는 노동형태를 말한다. 협업은 언제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기본형태이다. 이 점은 소농민과 수공업자의 노동형태가 협업이 아닌 것과 대조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각 개별 자본이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에 고용하고, 따라서 노동과정이 대규모로 수행되어 대량의 생산물을 공급하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실제로 시작한다. 많은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같은 자본가의 지휘 밑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자본주의적 생산의 출발점을 이룬다. 생산방식 그 자체에 대해 말한다면, 초기의 매뉴팩쳐(공장제 수공업)는 동일한 개별 자본에 의해 동시적으로 고용된 노동자의 수가 더 많다는 것 이외에는 길드의 수공업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에는 그 차이는 순전히 양적인 것이었다. 만약 12시간 노동일 하루가 6실링으로 대상화된다면, 그러한 노동일 1,200일은 6실링×1,200으로 대상화될 것이다. 1,200명의 노동자의 경우에는 12×1,200 노동시간이, 개별 노동자의 경우에는 12노동시간이 생산물에 합쳐진다. 가치의 생산에서는 다수의 노동자는 언제나 개별 노동자의 단순한 합으로서만 계산된다. 따라서 1,200명의 노동자가 각각 개별적으로 생산하든, 또는 그들이 동일한 자본의 지휘 하에 통합되어 생산하든, 생산되는 가치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발생한다.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가 많을 경우 각각의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서로 상쇄된다. 가치증식의 법칙은, 자본가가 다수의 노동자를 동시적으로 고용할 때, 즉 처음부터 사회적 평균노동을 사용할 때, 비로소 그에게 완전히 실현된다.

똑같은 작업방식이더라도 많은 노동자의 동시적 이용은 생산수단의 일부가 노동과정에서 공동으로 소비되게 만든다. 이때 생산수단의 교환가치는 등귀하지 않는다. 또한 가령 작업장은 동시에 일하는 노동자가 늘 경우 반드시 노동자 수에 비례적으로 커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 공동으로 사용하는 생산수단은 개개의 생산물에 자기 가치의 더 적은 부분을 이전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각 상품의 총가치에 포함되어 있는 불변자본의 일부의 가치는 저하하며, 이 저하의 크기에 비례해서 상품의 총가치도 역시 저하한다.

협업과 결합노동은 다음과 같이 개인들의 생산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생산력[즉, 집단적인 힘]을 창조한다.

  • 대부분의 생산적 노동에서는 단순한 사회적 접촉만으로도 각 개별노동들의 작업능률을 증대시키는 경쟁심이나 혈기라는 자극이 생긴다. 이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 기인한다.
  • 비록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작업 또는 같은 종류의 작업에 동시적으로 협동하더라도, 각 개인의 노동은 총노동의 일부로 그 노동과정의 상이한 국면을 이룰 수 있는데, 이때 노동대상은 협업의 결과 이 국면들을 더 빨리 통과하게 된다. 예: 12명의 벽돌공이 사다리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운반하기 위해 열을 서는 경우.
  • 노동과정이 복잡하면, 상이한 작업을 각각의 노동자에게 분배할 수 있게 되며, 따라서 그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된다.
  • 한 떼의 양의 털을 깎는다든가 일정의 면적의 곡물을 베어 수확해야 할 때, 작업할 수 있는 기간이 제한된다. 이 경우 다수의 노동자가 투입되어야 한다.
  • 배수공사, 제방공사, 관개공사, 운하건설, 도로건설, 철도부설 등에서 협업은 작업을 넓은 공간에서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다른 한편, 협업은 생산규모를 확대하면서도 생산의 공간적 영역을 상대적으로 축소할 수 있다.

어떤 경우라도 결합된 노동일의 특수한 생산력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 또는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다. 다른 노동자들과 체계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노동자는 그의 개별성의 족쇄를 벗어 던지고 그의 종족의 능력을 발전시킨다.

[사진: 1925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라디오 공장]

그런데 협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는 가변자본이 존재해야 하고 이에 상응하는 불변자본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개별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대량의 생산수단이 집적되는 것은 임금노동자들의 협업을 위한 물질적 조건이며, 협업의 범위 또는 생산의 규모는 이러한 집적의 정도에 의존한다.

다른 한편, 많은 임금노동자의 협업에 따라 자본의 지휘는 노동과정 그 자체의 수행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생산의 현실적 조건으로 발전해간다. 지휘와 감독과 조절의 기능은 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노동이 협업적으로 되자마자 자본의 하나의 기능으로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 자체가 한편으로는 생산물의 생산을 위한 사회적 노동과정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가치증식과정이라는 이중적 성격(이에 대해서는 제7장 노동과정과 가치증식과정에서 이미 다루었다. 해설은 「『자본론』 읽기 8: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참조하기 바란다.)을 띠기 때문에 자본가의 지휘 역시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자본가는 감독업무를 특수한 종류의 임금노동자들에게 넘겨준다. 감독이라는 업무가 그들의 전문기능으로 확정된다.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집단적인 노동과정의 성질로부터 발생하는 지휘기능과,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적대적 성격에 의해 필요하게 되는 지휘기능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후자의 기능은 전자의 기능과는 다른 것이다. 지휘 기능과 관련 있는 감독과 관리노동의 이중성 문제는『자본론』 Ⅲ권 제23장 이자와 기업가이득에서 다시 한 번 다루어진다.

자본주의적 협업에서 노동자가 발휘하는 생산력은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은 노동자들이 일정한 조건 하에 놓일 때는 언제나 무상으로 발휘되며, 그리고 노동자들을 바로 이러한 조건 하에 놓는 것은 자본이다. 이 생산력은 자본에게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것이고, 또 이것은 노동자의 노동이 자본에 속하기 전에는 노동자 자신에 의해 발휘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생산력은 자본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생산력으로, 자본에 내재하는 생산력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의 전도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협업에 의해 발휘되는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자본의 생산력으로 나타나듯이, 협업 그 자체도 [분산적이고 독립적인 노동자 또는 소경영주에 의해 수행되는 생산과정과 대립해서]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현실의 노동과정이 자본에 종속될 때 경험하는 최초의 변화이다.

제13장 말미에서 맑스는 단순한 형태의 협업은 모든 대규모 생산의 필연적인 부수물이지만, 단순협업 그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의 어떤 특수한 발전단계를 특징짓는 하나의 고정적인 형태는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단순협업이 기껏 해서 대략이나마 위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매뉴팩쳐의 수공업적인 초기에서, 그리고 매뉴팩쳐 시기에 상응하며 주로 동시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의 수와 집적된 생산수단의 규모에 의해 농민적 경영과 구별되는 대규모 농업에서였다. 자본이 큰 규모로 사용되기는 하나 분업과 기계가 아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생산부문에서는, 단순협업이 언제나 지배적인 형태였으며 여전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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