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읽기 ⑩: 제10장 노동일 제2~4절―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의 통렬한 고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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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다시보기]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

『자본론』 읽기 ②: 가치형태 또는 교환가치

『자본론』 읽기 ③: 『자본론』의 핵심, 물신성 문제의 시작―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론』 읽기 ④: 교환과정과 화폐물신성

『자본론』 읽기 ⑤: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가치의 척도, 유통수단)

『자본론』 읽기 ⑥: 화폐의 기능들 파헤치기(축장, 지불수단, 세계화폐)

『자본론』 읽기 ⑦: 화폐가 ‘자유로운 노동자’를 만나 자본이 된다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⑨: 노동시간(노동일)을 둘러싼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투쟁

『자본론』 읽기 ⑪: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장기간에 걸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사이의 다소 은폐된 내전

『자본론』 읽기 ⑫: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필요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⑬: 매뉴팩쳐―분업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⑭: 기계와 대공업(1)―노동자의 저항을 무력화시킨 기계의 도입

『자본론』 읽기 ⑮: 기계와 대공업(2)―자본주의에서 기계는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자본론』 읽기 ⑯: 기계와 대공업(3)―교육, 가족, 여성, 생태문제의 해결 방향을 담고 있는 보물창고

『자본론』 읽기 ⑰: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자본론』 읽기 ⑱: 자본주의적 착취를 은폐, 왜곡하는 임금형태

『자본론』 읽기 ⑲: 단순재생산―“로마의 노예는 쇠사슬로 얽매여 있었지만, 임금노동자는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그 소유자에게 얽매여 있다.”

『자본론』 읽기 ⑳: 확대재생산―“상품생산의 소유법칙인 자기노동에 기초한 소유가, 자본주의적 취득법칙인 타인의 불불노동에 기초하는 더 많은 불불노동의 취득으로 전환된다.”

『자본론』 읽기 ㉑: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1)—자본가계급측의 부의 축적은 노동자 계급측의 빈궁, 노동의 고통, 노예상태의 축적이다

『자본론』 읽기 ㉒: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2)—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생생한 폭로

『자본론』 읽기 ㉓: 이른바 본원적 축적(1)—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자본론』 읽기 ㉔: 이른바 본원적 축적(2)-자본주의적 사적 소유의 조종이 울린다. 수탈자가 수탈당한다

바로 앞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제10장은,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생생한 폭로와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또 현재의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여 꼼꼼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을 들여서 독자들이 반드시 전체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런 점을 전제로 해서 전체를 요약하지 않고 몇 가지 내용을 강조하도록 하겠다.

당초에는 제1절을 제외한 제10장의 나머지 부분을 「『자본론』 읽기 ⑩」에서 모두 다루려고 하였으나 글이 길어 이번 글에서는 제2~4절만을 다루고 「『자본론』 읽기 ⑪」에서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을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다. 제3절 부분을 책으로 대신하고 생략하여 글을 압축하는 것을 고민해 보았지만 제3절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 공장주와 보야르

잉여노동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일부의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노동자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에다 여분의 노동시간, 즉 잉여노동시간을 첨가해 생산수단의 소유자를 위한 생활수단을 생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 착취적인 생산양식에서는 모두 잉여노동이 존재한다. 그런데 같은 착취사회라고 해도 생산물의 교환가치가 아니라 그 사용가치가 지배하고 있는 경제적 사회구성체에서는 잉여노동은 대체로 한정된 욕망의 범위에서 제한되지만, 정반대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가령 미국의 남부 주들의 흑인 노예 노동도 생산의 목적이 주로 직접적인 국내 수요의 충족이었던 때에는 온전한 가부장적 성격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면화의 수출이 남부주들의 사활 문제로 됨에 따라 흑인노예에게 과도노동을 시키는 것, 때로는 흑인의 생명을 7년간의 노동으로 소모해 버리는 것이 계획적인 수익증대 수단으로 되었던 것이다. 현재의 루마니아 지역인 과거 다뉴브 제후국의 부역 노동에서도 사정이 마찬가지였는데 맑스는 다뉴브 제후국에서 보는 보야르(봉건적 대지주)의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과 영국의 공장주들의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을 비교하고 있다.

다뉴브 제후국에서의 잉여노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부역노동이다. 이 부역노동에서는 농민이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수행하는 필요노동은 보야르를 위해 수행하는 그의 잉여노동과 명백히 분리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는 가령 1주일에 3일은 필요노동을 자기 자신의 경작지에서 수행하고, 3일은 잉여노동을 영주의 농장에서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시간의 두 부분은 독립적으로 나란히 존재한다. 이와 달리 영국의 공장에서는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은 서로 융합되어 있어서 구분되어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형태의 차이가 잉여노동과 필요노동 사이의 양적 비율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잉여노동에 대한 갈망은 보야르의 경우에는 부역일수를 늘리려는 추구로, 자본가의 경우에는 노동시간(노동일)을 무제한으로 연장하려는 충동으로 나타난다. 맑스는 전자의 경우를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것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맑스는 전자의 경우를 밝힌 후 이와 대비시키며 잉여노동을 늘리려는 자본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폭로하고 있다.

『자본론』 Ⅰ권이 쓰인 1867년 현재에 1850년의 공장법이 법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하루 평균 10시간의 노동을 규정하고 있었다. 공장법은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는데 공장법이 제정된 것은, 자본가들에 의한 노동시간의 무제한적인 연장이 국민의 생명력을 뿌리 채 파괴하고 있어 ‘자본가와 지주가 지배하고 있는 국가’마저 법으로 이에 제동을 걸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1850년의 공장법은 하루 평균 10시간의 노동을 규정하고 있었다. 즉, 주초의 5일간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의 12시간인데, 그 중에는 아침 식사에 반시간, 점심 식사에 한 시간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노동시간은 10시간 반이었다. 그리고 토요일에는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까지의 8시간인데, 그 중에는 아침 식사를 위한 반시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1주에 60 노동시간인데, 주초의 5일간은 10시간 반씩이고, 토요일은 7시간 반이었다. 이 법은 이 법의 준수를 감시하는 공장감독관들을 임명하였다. 이 중 성실히 이 임무를 수행한 공장감독관들 중 하나인 레너드 호너는 어떻게 자본가들이 이 법을 교묘하게 어기며 잉여노동을 늘렸는지를 생생하게 폭로하였다. 『자본론』Ⅰ권 317~318쪽에 인용되어 있는 ‘공장감독관 호너의 공장법개정제안’을 그대로 재인용한다.

사기꾼같은 공장주는 아침 6시보다 15분 전에-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작업을 시작해서, 오후 6시보다 15분 늦게-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끝마친다. 또 그는 명목상 아침식사를 위해 할당된 반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에 5분씩을 떼어내며, 점심시간에 할당된 한 시간의 처음과 마지막에 10분씩을 떼어낸다. 토요일에는 오후 2시보다 15분 늦게-그보다 더 빠를 때도 있고 그보다 늦을 때도 있다-작업이 끝난다. 이로부터 그가 얻는 이득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1주일에 5시간 40분이나 되는데, 이것을(공휴일이나 임시휴업의 2주간을 공제한) 50노동주간으로 곱하면 27노동일로 된다.

호너가 폭로한, 자본이 노동자의 식사시간과 휴식시간에서 훔쳐내는 이 ‘좀도둑질’을 당시 공장감독관들은 “분도둑”, “분 뜯어내기”라고 부르고, 노동자들의 전문 용어로는 ‘식사시간 야금야금 깎아먹기’라고도 불렀다.

착취의 법적 제한이 없는 영국의 산업부문

맑스는 제10장 제3절에서 노동력의 착취가 당시까지도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고 있거나 당시 시점 기준으로 얼마 전까지도 구속을 받지 않았던 생산부문에 시선을 돌린다. 맑스는 레이스 제조업, 도자기 제조업, 성냥 제조업, 벽지 제조업, 빵 제조업, 농업, 철도, 부인복 제조업, 대장장이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중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스태퍼드셔의 도자기 제조업은 세 차례에 걸쳐 의회의 조사 대상이었다. 1860년 및 1863년의 보고로부터 아동들 자신의 약간의 증언을 인용하면 착취당하는 아동들의 실태를 잘 알 수 있게 되고 이 아동들의 상태로 미루어 보아 성인들, 특히 부녀자들의 상태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데, 그들이 종사하는 도자기 제조업에 비해 면방적업은 훨씬 쾌적하고 건전한 직업으로 나타난다.

아홉 살 되는 윌리엄 우드의 증언: “노동하기 시작한 것은 만 7살 10개월 되던 때였다.”, “처음부터 그릇 만드는 틀을 날랐다.”, “저는 1주에 6일 동안 매일 저녁 9시까지 일합니다. 나는 최근 7,8 주일 동안 그렇게 해왔습니다.”, 일곱 살 난 아이가 15시간 노동을 하는 것이다!

12살 난 소년 머리의 증언: “나는 그릇 만드는 틀을 운반하며 녹로를 돌립니다. 내가 일하러 오는 것은 아침 6시인데, 4시에 올 때도 있습니다. 나는 어젯밤 밤을 새워 오늘 6시까지 일했습니다. 그제께 밤부터 자지 못했습니다. 어젯밤은 나와 함께 8,9명의 다른 소년들도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오늘 아침에도 모두 왔습니다. 나는 1주일에 3실링 6펜스를 받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일해도 그 이상을 받지 못합니다. 지난 주일에 나는 이틀 밤을 새워 일했습니다.”

스토크 지방에서는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 인구의 36.6%, 윌스탠턴에서는 30.4%가 도자기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 연령에 속하는 성인 남자 중 폐병으로 인한 사망자 총수의 반 수 이상[스토크 지방에서]과 약 2/5[윌스탠턴 지방에서]가 도자기공이다.

의사 부스로이의 증언: “도자기공들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점차로 체격이 작아지고 허약해지고 있다.”

북부 스태퍼드셔 병원의 선임 의사 알레지의 증언: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도자기공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육체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퇴화된 주민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발육부진 때문에 체격이 좋지 않고, 가끔 가슴이 기형인 경우도 많다. 그들은 빨리 늙고 수명이 짧다. …… 이 지방 주민의 신체가 지금보다 더 심한 정도로 퇴화하지 않은 것은 주위의 농촌지방으로부터의 인원보충과 더 건강한 계층들과의 결혼 덕택이라고 할 것이다.”

같은 병원 외과의사 출신 찰스 파슨스의 편지: “… 나는 이 불쌍한 아이들의 건강이 그들의 부모나 고용주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희생된 것을 보고 분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 그는 도자기공의 병의 원인들을 열거하면서, ‘장시간 노동이라는 말로 집약하고 있다.

다음은 빵 제조업. 런던의 빵 제조공들은 공공집회와 의회에 보내는 탄원서에서 과도 노동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했다. 이 불평불만이 매우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에 트리멘히어가 칙명 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보고서 『빵제조공의 불평에 관한 보고서』는 빵의 믿기 어려울 정도의 불순 제조를 드러내어 빵제조업은 국가 감독관의 감시 하에 놓이게 되었고(1863년의 의회 회기 끝에), 의회의 법령에 의해 18세 미만의 빵 제조공에게는 오후 9시에서 오전 5시 사이의 노동은 금지되었다. 이 조항은 이 부분의 과도노동에 대해 여러 권의 책보다 더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런던의 빵제조공의 노동은 보통 밤 11시에 시작된다. 이 시간에 그는 ‘반죽’을 하는데, 이 일은 가마솥의 빵의 분량과 품질에 따라 1/2시간 내지 3/4시간 계속되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그는 반죽판―이것은 동시에 밀가루통의 뚜껑으로도 쓰인다―위에 누워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머리 밑에 베고 또 다른 한 장의 밀가루 포대를 몸에 덮고 두 시간 쯤 잠을 잔다. 그 뒤 5시간에 걸친 신속하고 쉴 새 없는 노동, 즉 반죽을 던지고, 그 중량을 달고, 그 형태를 만들고, 그것을 가마에 올리고, 가마에서 끄집어내는 등등의 노동이 시작된다. 빵제조실의 온도는 화씨 75도 내지 90도에 달하며, 규모가 작은 빵제조실의 온도는 그보다 낮지 않고 도리어 높다. 식빵이나 원통형 빵 등을 만드는 일이 끝나면 빵배달이 시작된다. …… 이른바 ‘런던시즌’에는 빵을 ‘정가’로 판매하는 웨스트 엔드의 빵집에서 일하는 직공들은 으례히 밤 11시에 작업을 시작해 1회나 2회의 대체로 매우 짧은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빵을 굽게 된다. 다음에 그들은 오후 4시, 5시, 6시까지 또 경우에 따라서는 7시까지도 계속 빵을 배달하며 또는 이따금 빵 제조실에서 비스켓도 굽는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때까지 그들은 5~6시간, 종종 4~5시간 수면을 취한다. 금요일에는 노동은 언제나 더 일찍 저녁 10시에 시작해서 토요일 저녁 8시까지 계속되고, 일반적으로 일요일 아침 4~5시까지 계속된다. 일요일에도 다음 날을 위한 준비 때문에 두세 번 공장에 나와 1시간 내지 2시간 일해야 한다. …… 싸구려 빵집(빵을 정가 이하로 파는 빵집으로,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런던의 전체 빵집의 3/4에 달한다)에서 일하는 직공들의 노동 시간은 이보다 더 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동은 거의 전적으로 빵제조실 내부에 국한되어 있다. …… 목요일 밤 10시부터 노동이 시작되어 사소한 중단이 있을 뿐 토요일 밤늦게까지 계속된다.

또 하나의 예로 부인복 제조업에서의 ‘과도노동에 의한 사망’. 1863년 6월의 마지막 주에 런던의 모든 일간신문은 ‘순전히 과도노동으로 인한 사망’ 소식을 전하였다. 그것은 명성이 자자한 어느 부인복 재봉소에서 일하고 있던 20세의 메어리 안 워클리라는 여성 노동자의 사망에 관한 것이었는데, 여러 번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던 오래된 이야기가 이제 새로 폭로된 것이다.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반을, 사교 계절에는 가끔 30시간을 중간에 쉬는 일도 없이 계속 노동하며, 지칠 대로 지쳐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게 되면 때때로 세리주, 포도주, 커피를 공급함으로써 기운을 차리게 했다. 때마침 새로 온 웨일즈 공주를 축하하는 무도회에 초청된 귀부인들이 입을 화려한 옷을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들어 내어야만 했다. 워클리는 60명의 다른 소녀들과 함께, 30명씩 배치된 그리고 그 인원에게 필요한 공기량의 1/3도 들어 있지 않은 한 방에서, 중단 없이 26시간 반을 일했다. 그리고 밤에는 한 개의 침실을 널빤지로 칸을 나누어 숨이 막힐 듯이 만들어진 여러 개의 구멍들 중의 한 구멍에서 두 명씩 잠을 잤다. 그런데 이것은 런던의 부인복 재봉소 중에서도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워클리는 금요일에 병이 나서 일요일에 죽었다. 뒤늦게 이 소녀가 죽어있는 침대에 불려 온 의사 키즈는 검시배심원 앞에서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증언했다.

메어리 안 워클리는 지나치게 빽빽한 작업실에서 장시간 노동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환기가 잘 안되는 너무나 좁은 침실에서 잤기 때문에 죽었다.

[사진: 참여와 혁신]

주간노동과 야간노동. 교대제(Ablösungssystem, relay system)

자본가는 불변자본을 쉬는 시간 없이 사용하려고 한다. 노동시간을 자연일의 한계를 넘어 야간에까지 연장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으며, 노동자의 살아있는 피에 대한 흡혈귀적 갈증을 약간 풀어주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러므로 노동을 하루 24시간 전체에 걸쳐 착취하려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내재적 충동이다. 그러나 동일한 노동력을 낮과 밤 계속 착취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 육체적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과 야간에 소모하는 노동력을 교대할 필요가 생긴다. 교대제가 실시되고 있던 곳에서 노동과정은 6일간의 노동일 동안에는 매일 24시간 계속될 뿐만 아니라, 일요일에도 거의 24시간 계속되었다. 노동자들은 남녀의 성인과 아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아동과 소년들의 연령은 8세부터 18세까지의 연령층에 걸쳐 있었고 약간의 부문들에서는 소녀와 부인도 남자 노동자와 함께 야간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제10장 노동일의 ‘표준노동일을 위한 투쟁’ 부분은 「『자본론』 읽기 ⑪」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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