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자』 주거문제 기사들을 읽고: 20대 청년들을 주거 빈곤층으로 만드는 부동산문제

0
274
[사진: 청년사회주의자모임]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는 그 동안 꾸준히 한국 사회에서 심각한 주거문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관점의 기사들을 여러 편 게재해왔다. 이번 호에서는 이런 기사들이 독자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주거문제 기사들에 대한 독자의 논평을 기고 받았다. 글을 써주신 이석훈 독자께 감사드린다.

나는 서울에서 거주하고 있는 지방 출신 대학생인 『사회주의자』 독자이다. 매해 원룸 계약기간이 끝나면 비슷한 가격대에 좀 더 좋은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서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친구들의 자취방도 같이 봐주게 되었고, 자취에 대한 고민이 생기면 으레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나름의 해답도 내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비싼 보증금과 월세다. 통학을 위해서 짧게는 왕복 2시간, 길게는 5시간도 걸리는 친구들은 험난한 등하굣길 한탄을 하며 하늘에 별따기 같은 기숙사에 붙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출근길 지옥철에서 버티는 시간이 많을수록 기숙사와는 멀어지기 마련이었다. 부모님께 자취를 시켜 달라 얘기하기에는 어느 정도 가정형편을 알기에 떼를 쓰지도 못하겠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입니다.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 마련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특별히 공급확대에 역점을 두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양한 주택공급 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겠습니다.

그러나 공급이 늘어나면 치솟은 부동산이 잠잠해지면서 힘들게 통학하던 내 친구들도 자취를 할 수 있게 될까? 이미 『사회주의자』에서 여러 차례 기사로 밝혔듯, 그럴 수 없다. 한국에서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긴 것은 벌써 10년 전 이야기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489만 채의 주택이 생겨났지만 같은 기간 주택 보유자수는 241만 명이 증가하는 데 그쳤다. 새롭게 공급된 주택의 절반 이상이 기존 보유자의 소유가 된 것이다. 투기의 대상이 된 주택은, 그 기세가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20대의 47.1%가 주거 빈곤층이고 서울 전세가는 올해 1월 14일까지 82주 연속 상승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진정으로 주거 안정을 원하고 있을까?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사회주의자』 47호 기사인 「주거문제의 해결 방안, 토지국유화와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의 몰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으로 취득세, 재산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감면 등의 세제 혜택을 주고 임대 사업자에게 집값의 80%까지 주택담보 대출을 허용하여 이를 이용한 주택 사재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청와대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30%가 다주택소유자인 정부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정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주택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위 기사에서 잘 밝혔듯이 자본주의에서 지대의 상승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창조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에서부터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땅을 사야 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다. 그것의 정확한 원리를 모르더라도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토지와 주택의 소유자가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지대와 지가가 상승한다는 점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맑스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농업지대부터 얘기한다. 농업자가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임대하여 생산물들을 일궈낸다. 그로 인해 개량된 토지는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그대로 토지소유자에게 돌아간다. 토지소유자는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은 채 개량된 토지만큼의 지대를 추가하여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이로 인해 토지소유자는 경제 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지만 사회발전의 성과를 본인 주머니에 넣게 되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건축지 지대의 증대도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새 지하철역이 생기면 그저 그 지역에 땅을 갖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주인들은 상승한 지대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것은 결코 우연적인 문제가 아니다. 때문에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부동산 문제를 대하는 입장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하고 찾아보니 ‘토지공개념’과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가 그나마 진보적이라고 하는 정당에서 내놓은 대안이었다. 이름만 들었을 때는 괜찮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으나 『사회주의자』 50호 「토지공개념,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사에서 이러한 방안들의 문제점을 명확히 짚고 있다.

먼저 토지공개념은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에 의해 주창되었다. 모든 사람이 토지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지며 토지는 공공재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 자체는 유지한 채 ‘토지가치세’라는 세금을 부과하여 지대를 사회 전체가 나누어 가지면 된다고 얘기한다. 앞서 살폈듯이 사적 소유를 유지한 채로는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가령 지대가 사실상 경제적 의미를 갖지 못할 정도로 세금을 매겨야 하는데, 사적 소유를 이미 허용하는 상황에서 이는 현실적이지 못하다.

또한 이러한 관점은 오히려 퇴보적인 주장이다. 헨리 조지는 소수가 투기 목적으로 과다하게 토지를 보유하는 것을 규제하여 모두가 자신의 토지를 보유한 소소유자가 되는 사회를 지향하였다. 그 이전에 프루동도 노동자가 각자 자기 주택을 소유하도록 하면 주거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 맑스와 엥겔스는 프루동 식의 주장에 대해 변증법적 시각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소소유자가 몰락하여 이들이 자신의 토지를 갖지 못한 노동자로 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나 다른 한편으로 이 과정에서 등장한 노동자들은 이전과는 달리 계급 착취 자체를 종식시킬 힘을 가진 계급이 된다. 때문에 임금노동자가 다시 자기 토지를 갖고 소소유자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퇴보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또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부동산 소유자가 토지나 주택으로부터 얻는 지대만이 ‘불로소득’이고, 자본가가 얻는 이윤은 그렇지 않다는 착각을 강화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노동자가 부를 창출하면, 자본가가 창출된 부 중 노동자의 노동력 가치만큼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모두 잉여가치로 착취해가며, 이 중 일부가 지대의 형태로 토지 소유자에게, 이자의 형태로 대부자본에게 분배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마치 상품의 가치가 임금, 이윤, 이자, 지대의 합계로부터 초래되는 것처럼 나타나서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에 기여한 대가, 이윤은 자본이 생산에 기여한 대가, 이자는 대부자본이 생산에 기여한 대가, 지대는 토지소유자가 생산에 기여한 대가인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대만을 ‘불로소득’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 이외의 이윤, 이자가 불로소득이 아닌 것 같은 환상을 강화하는 꼴이 된다.

때문에 토지공개념이나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같은 허울만 좋은 얘기들에서 벗어나 토지의 사적 소유를 건드리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청년 사회주의자 모임과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에서는 과도적 요구로 토지국유화와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 몰수를 내세웠다. 먼저 토지국유화는 놓인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데, 실제로 제1차 러시아 혁명 시기의 토지국유화 요구는 농업에서 자본주의화를 재촉하는 요구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발전이 된 현 시점에서 토지국유화는 토지의 사적 소유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일반에 대해 타격을 가하는 주장이다. 토지의 국유화는 절대지대를 없애는 효과가 있고 지대의 수취자를 국가로 만들어 지대와 지가를 하락시킬 수 있다. 또한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을 몰수하여 이를 저렴한 임대료의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여야 한다.

이렇게 『사회주의자』에 실린 기사들은 왜 청년들이 제대로 살 곳도 구하기 어려운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월세와 보증금으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단호하게 얘기한다. “자본주의 때문에 자취조차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그새 졸업을 해서 전세를 알아보는 친구들에게도 얘기한다. “부동산 문제는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토지와 주택의 사적 소유를 건드리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라고. “네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세상의 모호함에 대한 걱정이 깔려있었다. 사회주의 세상에 대해서 그 어떤 실마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친구들을 위해, 월세를 내기 위해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을 위해 부동산 문제가 자본주의에 의한 것임을 선전하고, 토지국유화와 1가구 1주택 초과 소유 주택 몰수 및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요구하는 투쟁하고 싶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