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항상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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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필자가 최근 년 점점 더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온 질문들이 있다. 한국은 고도로 자본주의화 되어 이미 선진국의 경제 수준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토대와는 대조적으로 상부구조 중 하나인 정치에서 자본가 정치세력들이 독점적 정치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노동자의 수가 2,000만 명을 넘고 있고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노동자계급인데 어떻게 아직도 노동자를 멸시하는 문화가 일상적으로 횡행하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상이 가능한 것인가? 한국 사회가 헬조선이라고 불린지도 오래되었고 갈수록 자본주의적 모순이 격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사회주의자의 수는 전국적으로 1만 명도 되지 않는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앞의 질문들에서 언급한 현상들은 오래 동안 되풀이 되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매우 비현실적인 것들이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박정희의 사망 30여년 만에 1970년대식 사고를 그대로 가진 채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당시에는 있을 수 있는 현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지만,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던 것처럼 말이다(결국 박근혜의 당선이 매우 비현실적인 것이었다는 것은 박근혜의 탄핵으로 나중에 입증되었다.). 필자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 고리에 다가가려고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필자가 도달한 결론은, ‘한국사회의 경제적 토대와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의 존재와 모순되게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은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된 핵심적인 이유는 지배계급에 의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이 낮은 단계에 머물러 있을 것을 강요당한 데에 있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고양시키는 데에서 현시점까지는 실패해왔다. 앞으로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항상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 강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다.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은 경제투쟁, 정치투쟁, 이론(사상)투쟁의 세 가지 기본 형태를 갖는다.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은 이러한 계급투쟁 과정에서 강화된다. 그런데 주체역량의 강화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계급의식의 발전이다. 계급의식의 각성이 투쟁을 가능하게 하고 계급의식의 발전이 투쟁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다. 모든 계급투쟁이 계급의식의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게 배치되고 전개되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고 투쟁을 평가할 때 이 투쟁이 계급의식의 고양에 미친 영향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양한 단계의 노동자계급의식의 발전이 있을 수 있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하는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적대적 관계에 있고 자본주의 사회가 노동자계급을 억압, 착취하는 사회이며 자본주의가 영원히 계속되는 사회가 아닌 역사적으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로서 노동자들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가 아니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노동자국가를 수립하여 자본주의 사회를 새로운 사회로 대체할 수 있다는 의식, 사회주의 의식이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이 이러한 사회주의 의식으로 발전할 때 계급투쟁 역시 강력하게 발전하여 주체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고 계급투쟁의 발전은 다시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이처럼 계급의식의 고양은 매우 중요하다. 계급투쟁의 기본 형태에 경제투쟁, 정치투쟁뿐만 아니라 이론(사상)투쟁이 포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엥겔스와 레닌이 계급투쟁에서 경제투쟁, 정치투쟁뿐만 아니라 이론(사상)투쟁을 강조한 부분은 인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독일의 노동자들은 그 밖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두 가지 점에서 본질적 이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이론적인 민족에 속하며, 독일의 이른바 배웠다는 사람들이 완전히 잃어버린 이론적 감각을 보존하고 있다. 독일 철학, 특히 헤겔 철학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독일의 과학적 사회주의―지금까지 존재한 단 하나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자들 사이에 이론적 감각이 없었다면, 이 과학적 사회주의는 결코 오늘날의 상황처럼 노동자들의 살과 피로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 영국노동자 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그 모든 출중한 조직 상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전진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 원인들 가운데 하나인 일체의 이론에 대한 무관심과 비교해 볼 때, 또 다른 한편으로 프루동주의가 프랑스 인들과 벨기에 인들 사이에 그 원래적 형태로 야기했고 바꾸닌이 에스빠나 인들과 이딸리아 인들 사이에 더욱 회화화된 형태로 야기했던 비행 및 혼란과 비교해 볼 때,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장점인가를 잘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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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노동자들이 보기 드문 분별력을 갖고서 자신들의 처지로부터 나오는 이점들을 이용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성립한 이래 처음으로, 투쟁은 세 가지 측면이론적 측면, 정치적 측면, 실제적경제적 측면(자본가에 대한 저항)에 걸쳐서 단일한 음조와 연관을 유지하면서 계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집중적 공격에 바로 독일의 운동이 가지고 있는 강력함과 불패의 힘이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이 지위를 점하고 있는 한, 독일의 노동자들은 아마도 응당 그 지위에 속하는 직분을 이행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쟁과 선동의 모든 영역에서의 두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지도자들의 의무로 되는 것이 있으니, 그들은 모든 이론적 문제들에 대해 더욱더 이해를 높여야 하고, 낡은 세계관에 속하는 전래의 공문구들의 영향에서 더욱더 자신을 해방시켜야 하며, 또한 사회주의는 과학으로 된 이래 과학처럼 추진되기를, 즉 연구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새겨두어야 한다. 이리하여 획득된 점점 더 명확해져 가는 인식을 더욱 열심히 노동자 대중 속에 보급하여 당 조직과 노동조합 조직 사이의 연결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3권, 박종철 출판사, 167, 168, 169쪽, 강조는 인용자)

 

엥겔스는―우리가 흔히 그러하듯―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커다란 형태로 두 가지(정치투쟁, 경제투쟁)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 가지, 즉 그들과 나란히 이론투쟁도 인정하고 있다.

(레닌, 『 무엇을 할 것인가?』, 박종철 출판사, 40쪽)

현재 노동자 계급투쟁과 노동자 주체역량은 그 잠재적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를 앞에서 강조한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재 노동자 계급투쟁은 그 발전 가능성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 가능성을 현실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계급투쟁의 세 형태 중 주로 경제투쟁이 약화된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제대로 결합되지 못하고 있고 이론투쟁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에서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이, 그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계급의식이 고양되지 못하고 있고 사실상 다수가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노동자계급의 다수가, 존재는 노동자계급이지만 의식은 부르주아적, 소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낮은 계급의식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판단에 대해 과도한 판단이 아닌가하는 반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을 실제와 다르게 좋게 표현한다고 해서 안타까운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기만적인 주체상태 판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극복방법을 찾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사회에서 지배계급의 분단, 반공 체제, 이데올로기는 아직도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록 분단, 반공 체제의 노골적인 폭력적 억압은 약화되었지만 이것이 사라진 것도 아니며 폭력적 억압보다도 더 끈질기게 지속되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지배계급이 노동자, 민중에게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서 주입시킨 분단, 반공이데올로기이다. 주입된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는 내면화되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 발전을 노동자가 스스로 억제하게 만든다. 이것의 영향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에 대한 태도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많은 외국의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우리의 경우는 분단, 반공 체제 형성 이전의 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선진적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아직도 선진적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사상에 공감하고 사회주의자가 되는 과정은 여전히 특별한 결단의 과정으로 남아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청년층으로 갈수록 약화되어가지만 이러한 조건은 사회주의세력에게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회주의세력이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 고양을 위해 하는 노력과 활동은 매우 부족하다. 대부분의 활동내용이 노동조합운동에 치중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사회주의세력은 이러한 활동을 사실상 방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과거의 진보세력의 많은 부분은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자유주의세력으로 변질되어 노동자계급 내에 부르주아적 의식을 퍼뜨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변질되지 않은 진보세력의 일부도 반자본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과거처럼 소부르주아적 의식을 노동자, 민중 사이에 퍼뜨리고 있다. 이상과 같은 주객관적 조건이 결합하여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은 그 가능성에 비해 발전이 크게 지체되고 있고 그 결과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 발전 역시 크게 지체되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이 우리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현실의 상태이고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세력이 주객관적 조건을 냉정히 인식하고 이 조건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고 확고한 태도로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중심에 놓지 않는 계급투쟁은 위력을 발휘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중심에 놓고 투쟁하는 것은 사회주의노동운동의 역사적 경험에서 확립된 일반적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한국처럼 주체적 역량의 발전이 그 가능성에 비해 크게 지체되고 있는 조건에서는 더욱더 중요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이를 올바로 실천하지 못하여 계급투쟁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겠다.

1) 경제투쟁에만 머무는 투쟁, 혹은 경제주의적 한계에 갇힌 투쟁

가장 대표적인 예는 투쟁이 경제투쟁에만 머무는 경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본가들과 자본가정부들은 경제투쟁은 순수하고 정치투쟁은 불순하다는 이데올로기를 반복하여 퍼뜨린다. 이러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이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계급투쟁이 경제투쟁에만 머문다면 당장의 투쟁력조차 강화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투쟁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 제한되어 이후 투쟁력이 강화되어 갈 가능성도 사라진다. 1990년대 전투적 조합주의자들이 경제투쟁에만 머물다가 점차 무력해지고 결국에는 노사협조주의자로 전락해간 경험은 하나의 반면교사라고 할 수 있다.

경제주의는 주로 경제투쟁을 통해서만 정치투쟁이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이것은 실제와 부합되지 않는 주장이고, 역사상 그 오류가 증명된 주장이다. 정치투쟁은 정치선동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가능하고 노동자계급의 의식의 고양도 경제투쟁을 통해서만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경제주의는 노동자계급의식의 발전의 경로를 협소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2) 사상투쟁이 실종된 투쟁

1항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사상투쟁은 경제투쟁, 정치투쟁과 함께 3대 계급투쟁 중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투쟁이다. 엥겔스가 지적하였듯이 독일의 노동자 운동이 활기 있게 발전한 것은 활발하게 사상투쟁이 이루어졌기 때문이고 영국의 노동자 운동이 개별 노동조합의 우수한 조직 상태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전진하지 못한 것은 영국의 노동자 운동이 이론에 무관심하고 사상투쟁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운동 내 기회주의적 조류가 강화될수록 이론과 사상투쟁에 대한 경시가 강화된다는 것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진리이다. 사상투쟁이 투쟁에서 실종되면 노동운동 내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이 유지, 강화되고 똑같이 노동운동 내 노동자계급의 배신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유지, 강화되며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이 낮은 단계에 머물게 된다. 그리하여 노동자계급의 투쟁력이 약화되게 한다. 결국 사상투쟁이 실종된 투쟁은 주요한 투쟁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임투시기에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의식수준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배치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주요한 투쟁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사상투쟁이 실종된 투쟁은 사실상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포기한 투쟁이고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포기하는 투쟁은 손발을 스스로 묶는 투쟁으로서 무력화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주요한 투쟁무기인 사상투쟁을 포기하는 투쟁이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사진: 사회주의자]

3.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항상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

이상에서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항상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한국은 고도로 자본주의화되어 이미 선진국의 경제 수준에 이르렀고 노동자의 수는 2,000만을 넘어 그 가족까지 포함하면 노동자계급이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현재 노동자계급은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서 거의 배제되어 있으며, 자본가정치세력들은 독점적 정치구조를 형성하고 마치 노동자계급의 불만과 분노는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서로 간에 진흙탕 개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치세력들이 이렇게 오만하게 행동하는 이유들 중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이 그 잠재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실화되지 못하여 이들이 노동자계급을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노동자계급의식이 그 발전 가능성에 비해 고양되지 못하여 낮은 단계에 머물러 이들이 노동자계급을 두려워하지 않고 깔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매우 안타까운 것이지만 이를 뒤집어서 실천적으로 재해석하면 적극적인 실천 방침을 끌어낼 수 있다. 그것은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주체역량을 비약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실천적 핵심고리라는 것이다. 즉,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야말로 한국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실천적 핵심고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적 핵심고리를 실천하기 위해서 사회주의세력은 사회주의노동운동에서 일반적으로 확립된 원칙―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을 항상 중심에 놓고 투쟁해야 한다―을 확고하게 실천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 사회주의세력은 노동자계급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올바로 결합하고 한동안 실종되다시피 한 이론(사상)투쟁을 다시 투쟁의 무기로서 치켜들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강력한 투쟁무기인 이론(사상)투쟁을 처음부터 포기한 운동이 성공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 감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처럼 게으르고 어리석은 것이다. 사회주의세력은 강력한 투쟁무기로 새롭게 무장하고 승리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이상에서 검토한 것처럼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변혁할 수 있는 실천적 핵심고리다. 노동자계급의식의 고양이라는 실천적 핵심고리를 움켜쥐고 승리할 수 있는 투쟁을 전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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