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고갈의 근본원인은 바로 자본주의 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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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뉴스]

지난 8월 17일 국민연금 자문위원회가 국민연금 개선안이 포함된 제4차 재정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국민연금 급여의 소득대체율을 현재 계획대로 40%까지 하락시키는 것을 유지하는 방안과 45%로 올리는 두 가지 방안인데 두 가지 모두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참고로 국민연금 재정계산은 5년마다 이뤄지는데, 2007년 2차 연금개악 때 소득대체율을 당시 60%에서 50%로 낮추고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하락시키기로 했다.)

  • 40%로 유지하는 방안: 2019년부터 2029년까지 10년간 보험요율을 현재의 9%에서 13.5%까지 4.5%인상. 2030년부터 2043년까지 수급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
  • 45%로 인상하는 방안: 현재 9%인 보험료율을 당장 2019년부터 11%로 인상. 그다음 5년마다 재정계산을 통해 보험요율을 올리는 방안.

국민연금 개선안이 나오자 민주노총은 ‘기금고갈론’의 굿판을 걷어치우고 문재인이 약속한대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해 공적연금을 강화하고 노후 삶의 실질적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사회적 논의를 하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이것이 수용되지 않는다면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민주노총 하반기 총력투쟁의 주요의제로 삼고 투쟁하겠다고 한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국민연금 강화와 공적연금의 통합 및 재정안정에 필요한 연금보험료 인상 등을 포함하여 하루 빨리 사회적 논의를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회단체들을 포괄하는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해 제도의 신뢰와 급여의 적절성을 담보할 때 재정적 지속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며, 이를 위해 국민가입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하고 여기서 나오는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정부안을 국회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노동시민단체들의 요구와 주장들은 나름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왜냐면 그동안 자본가와 보수언론은 ‘기금고갈론’과 ‘후세대부담론’을 조장 한 후 연금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기금규모를 확대하여 기금소진시기를 늦추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노동시민단체의 이번 대응을 보면, 자본가들의 재정안정화 논리나 공적연금을 흔들기 위한 ’연금무용론‘에 대하여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공적연금의 본래 기능을 찾는 것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또한 이를 위해 먼저 낮은 소득대체율을 높여 실질적 노후보장을 강구할 때 제도가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재정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 할 수 있다고 하여 공적연금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반면 이런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이들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한계점들이 있다. 첫째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고, 둘째 연금이 필요한 이유는 자본가의 착취 때문이라는 점 말하지 못하고, 셋째 대중의 각성된 투쟁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그런지 이제부터 살펴보자.

저출산, 고령화는 자본주의가 만든 전형적인 모순들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지금까지 연금투쟁이 패배한 결정적 원인은 프레임을 세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연금기금 고갈의 핵심원인은 급속한 고령화와 저출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초고령화와 초저출산이 발생한 것 자체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이 문제가 왜 발생했는지는 아예 제쳐두고 오직 재정안정화 문제만 가지고 논의를 했다.

이렇게 해서는 연금문제를 결코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비유하자면 사람이 중병에 걸렸을 때에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혀야만 그 원인을 제거하여 사람을 살릴 수 있다. 병의 근본원인은 밝히지 못하면서 임기응변식 대증요법으로 대응하다가는 정말 큰일을 당할 수 있다. 따라서 초고령화와 초저출산의 원인을 제대로 밝히고 올바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는 한 어떠한 대책들도 미봉책에 불구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미봉책들이 한꺼번에 더 큰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면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필자의 답은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고 그 답은 사회주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인가?

자본주의는 발전하면서 한편으로는 과학과 기술을 발달시켜 생산력을 엄청나게 높이고 인간의 수명을 연장한다. 따라서 이것을 잘만 활용하면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삶을 향유할 조건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자본가의 이윤을 높이기 위해 이용된다. 그 결과 노동자보다는 기계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실업을 증가시키고 정규직보다는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을 대대적으로 양산한다. 좋은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자, 일자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입시 및 취업 경쟁이 극심해진다. 젊은이들은 결혼을 안 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육아 부담 때문에 출산을 하지 않게 된다. 또한 노동자가 받는 임금으로는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자본가가 자기 주머니를 털어 이들의 노후를 보장할리 만무하다.

그래서 자본주의는 인간수명을 연장하나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되게 만들고, 새로운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만 생활이 어려워진 노동자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 고령화와 저출산이라는 해결 불가능한 모순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실질적인 노후보장이 이루어지려면 반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 투쟁이 강화되어야만 한다. 재정안정화 프레임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연금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가지고 연금투쟁을 만들어갈 때만이 노동자민중을 올바로 각성시키고 논의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연금이 필요한 까닭은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가들의 착취 때문이다

2015년 10월에 있었던 공무원연금투쟁 관련 토론회에서 필자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들이 노후를 위한 연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자본가들의 착취 때문이고 따라서 모든 비용은 국가와 자본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사회보장이 필요한가에 대하여 말하여야 한다.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는 직접생산자들이 자신의 도구를 소유하고 자신의 노동생산물을 직접 관리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본격화 되면서 도구와 생산수단이 자본가인 공장주에게 넘어갔다. 따라서 자신의 생산수단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착취에 의해 임금노동자가 생산한 부 중에서 그들이 임금으로써 받는 부분은 정말 적기 때문에 그들의 가장 절실한 생활욕구를 채우기는 도저히 부족하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상해, 질병, 노령, 폐질의 결과 노동력을 잃는 경우와 자본주의와 직결되는 실업에 대비하여 자신의 임금의 일부를 저축할 기회를 완전히 빼앗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를 착취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지 않았다면 노령과 위험에 대비할 여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노령과 위험에 사용할 비용마저 빼앗아 노동자들은 전혀 여력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국가에 대하여 당당하게 사회보장 재정을 책임지도록 요구할 분명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

이태하, 「공무원연금 투쟁평가와 연금투쟁의 올바른 방향」

임금투쟁이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것처럼 연금투쟁도 노동자들의 노후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임금투쟁은 자본주의 착취를 인정하면서 사후적으로 좀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 연금투쟁도 단지 자본가의 착취는 말하지 않으면서 사후적 계수조정에만 매달리는 투쟁으로서는 실질적인 노후보장을 달성 할 수 없다. 연금투쟁을 제대로 하려면, 노동자들에게 연금이 필요한 까닭이 자본가의 착취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만, 모든 연금재정은 전적으로 자본가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착취가 자신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어, 계수조정에 매달리거나 역사적으로 파산한 복지국가의 환상에 매달리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이해한 대중들의 각성된 투쟁이 필요하다

지금 진행되는 연금투쟁은 주로 노조상층과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 등이 여론과 프레임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이들의 주장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노동자들은 오직 자본주의 틀 내에서 소득대체율 인상에만 협소하게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따라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연금재정 악화의 가장 중요한 근본원인인 초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바로 자본주의에 의해 발생한 문제이고 반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 투쟁과 결합하지 않는 한 연금문제의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연금 등 사회보장이 필요한 이유가 자본가들의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때문이라는 것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사실상 연금혜택이 가장 절실한 비정규직 및 미조직사업장 노동자들은 연금논의에서 당사자이면서도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투쟁에서도 주로 노조 상층과 시민사회단체 및 전문가들이 주도하여 연금 소득대체율 인상과 그에 따른 보험요율 인상을 사회적 대화로 해결하자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비록 사회보험금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는 ‘두루누리’ 지원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은 월급 자체가 적기 때문에 정규직들처럼 개인적 저축 등 별도의 대책을 세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연금 혜택을 충분히 받기도 어렵다. 재직 시 월급액에 비례해서 연금 소득대체액이 정해지고, 30년 이상을 납부해야만 명목 소득대체율 40%에 해당하는 연금을 수령할 수 있고, 이직기간 및 실업기간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에게 연금은 말이 연금이지 용돈에 불과한 형편이다.

지금까지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개악이 이루어 질 때 많은 투쟁들이 있었으나, 이 투쟁의 귀결은 최대한 자신들의 부담을 적게 하는 계수조정으로 끝났다. 그렇게 되자 노동자들은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분열하였다. 또한 다음 투쟁에서는 그만큼 협소해진 틀 내에서 다시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고 공격이 최대의 수비라는 말처럼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의 연금을 삭감하려 하면 이 모든 책임이 자본주의와 자본가들에게 있음을 폭로해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만이 노동자간의 분열을 극복하고 전체 노동자들의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학습과 토론을 통해서 연금문제는 자본주의 착취에 기인하는 문제라는 것을 각성할 필요가 있고,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할 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 후 조직되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들에게도 이런 내용으로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하여 함께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 자본주의가 해결 못하는 연금문제는 사회주의 투쟁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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