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이론 톺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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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사회주의로 다시 보는 페미니즘 개념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로 페미니즘 읽기”라는 제목으로 페미니즘 도서에 대한 비판적 서평을 연재하였다. 이 기사에 대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좋은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제 페미니즘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나,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개념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연재는 가부장제, 가족임금, 상호교차성, 사회재생산 순으로 다룰 예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활발한 관심, 토론 기대한다.

여성억압 일반을 의미하는 용어, ‘가부장제’

현재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 성폭력 등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는 여성억압적 구조를 ‘가부장제’라고 일컫는다. 예를 들어 9월 6일 여성주의저널 『일다(ilda)』에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부터 최근에 있었던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온라인상의 협박, 언어폭력 사건 등 여성에 대한 각종 차별과 폭력을 고발하고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말하는 글이 「가부장제는 해체되고 있는 걸까?」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또한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발간한 『페미니즘의 개념들』은 ‘가부장제’를 “개별 가족 구성원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연소자와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를 지지하고 구조화하는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가부장제’는 성에 근거한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구조 그 자체를 지칭하는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다.

‘가부장제’, 급진주의 페미니즘의 핵심개념으로 등장하다

지난 9월 6일 급진주의 페미니스트 케이트 밀렛이 8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1970년 그녀의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출판한 『성 정치학』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급진 페미니즘의 고전이 되었는데, ‘가부장제’를 페미니즘의 중심 용어로 끌어올린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가부장제’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가부장제’라는 용어가 처음부터 성차별적 구조 그 자체를 일컫는 것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막스 베버는 “아버지가 확대된 친족 연결망의 여타 성원들을 지배하고 가구의 경제생산을 통제하는, 가구조직의 특별한 형태”라는 의미로 가부장제 개념을 사용하였다. 맑스는 가부장제를 ‘가족을 이끄는 남성이 생산을 지휘 통제하는 특정한 생산방식’으로 보며,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가부장제에 기반을 둔 농민가구가 해체된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지적했다. 린다 번햄, 미리암 루이의 「불가능한 결혼」(『여성해방이론의 쟁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인류학적 맥락에서의 가부장제는 “남성혈통을 따르는 확대된 친족구조에 대한 서술적 용어로서, 하나의 생산단위(때로는 노예노동을 포함한)로서 기능하고, 공동으로 노동하고 소유하고, 사회관계(특히 결혼)와 노동의 배분 문제에 있어서 가부장의 권위를 따르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가족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1960년대 급진 페미니즘이 등장하면서 ‘가부장제’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되고 페미니즘의 중심 용어가 된다. 케이트 밀렛은 파이어스톤과 더불어 급진 페미니즘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고, 급진 페미니즘 사상이 확산되면서 ‘가부장제’는 페미니즘 운동 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가 됐다. 베로니카 비치의 글 「가부장제에 대하여」(1979)은 이러한 ‘가부장제’ 용어의 역사와 한계를 잘 정리하고 있다. 이 글에 따르면,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언제나 어떤 사회에서든 남성은 여성을 지배하고 종속시켜 왔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가부장제 개념을 지금과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하였다. 이를테면 최근에 작고한 케이트 밀렛은 『성 정치학』에서 “가부장제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한다’ ‘나이가 더 많은 남성이 적은 남성을 지배한다’는 두 가지 원리에 따라 조직된 사회”이며 “가부장제의 가장 근본적인 단위는 아이들로 하여금 성별에 따라 역할, 성품, 지위를 받아들이도록 사회화하고 여성을 종속 상태에 묶어두기 위해 기능하는 가족”이라고 분석하며 현재 널리 쓰이는 가부장제의 의미를 정례화 하였다.

그러나 밀렛의 분석에는 가부장제가 대체 왜 존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다른 급진 페미니스트들 또한 ‘무엇이 남성을 성적 억압자로 만드는지’, ‘특정한 사회형태의 어떤 특성들이 남성을 여성에 비해 권력을 가진 위치에 놓는지’. ‘가부장적 사회가 왜 존재하는지’, ‘왜 역사를 초월하여 모든 사회에서 지속되는지’, ‘그 근본 토대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밀렛은 과거 보수세력과 反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종속을 생물학적 차이로 정당화한 것에 반대했기에, 가부장제의 기원 내지 근본 토대를 양성 간 생물학적 차이에서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다른 급진주의 페미니스트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에서 위의 질문에 대해 ‘여남간 생물학적 차이’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여성 억압의 토대가 남성에 의해 통제되는 여성의 재생산 능력, 즉 여성의 임신 출산 가능성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명 또한 한계에 부딪힌다. 사회의 생산양식 형태에 따라 사회적 관계의 형태들은 제각각이고, 해당 사회에서 성차가 야기하는 결과 또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석은 이 점을 간과했기에 사회의 생산양식 변화에 따라 남성지배/여성종속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설명하지 못했고, 남성지배/여성종속의 원인이 ‘시간을 초월한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력욕’에 있는 것처럼 제시했다. ‘여성억압은 본디 존재하는 것’이라는 정해진 결론만 있을 뿐, 여성억압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설명은 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맑스주의/사회주의를 페미니즘과 결합시키려고 했던 일군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맑스주의가 여성의 종속을 설명하지 못하고 부차화한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부장제’ 용어를 도입하고자 했다. 즉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계급투쟁은 맑스주의로 설명되고, 가족 내에서의 가사노동, 양육 등 재생산관계와 이와 관련된 여성억압은 ‘가부장제’로 설명된다는 이원론적 이론을 제시한 것이다. 허나 이렇게 이 둘을 서로 분리된 독자적인 것으로 분석하다 보니,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는 자율적인 영역이 되고, 각자는 고유한 착취와 사회계급의 체계를 갖는다“는 식의 이론적 입장에 다다랐다. 그 결과 생산관계와 가족관계가 관계 맺는 방식, 사회적 생산관계가 가족관계를 포함한 모든 사회관계를 변형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유기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38년 전에 쓰인 베로니카 비치의 글을 통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급진 페미니즘의 부상과 함께 ‘가부장제’ 용어가 널리 확산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지어 페미니즘 내에서조차 여성억압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부장제’ 용어가 지닌 한계가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치는 “그 개념이 폐기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남성 지배와 여성 종속을 개념화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대안적 분석을 발전시키기 전까지, 페미니스트 정치와 이론에서 가부장제 개념이 유용한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열려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가부장제 이론의 가장 큰 한계: 여성억압에 대한 초역사적 접근

‘가부장제’라는 용어가 지닌 가장 큰 한계는 여성억압에 대해 초역사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린다 번햄, 미리암 루이의 「불가능한 결혼」에 따르면 가부장제 이론은 가부장제를 “모든 사회와 생산양식 속에서 존재해 온 것”으로, “계급을 초월하여 남성들 간의 연대를 만들어내고 동시에 그것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여긴다.

앞에서도 짚었듯이, 남성지배/여성종속이라는 사회적 관계를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항상 존재해왔던 것’으로 전제하게 되면,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서의 여성억압을 제대로 분석해내지 못한다. 이는 여성억압의 원인 분석을 요원하게 하고, 결국 ‘여성억압이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가 있고 가부장제는 항상 있어 왔기 때문에 여성억압이 있다’는 식의, 여성억압의 현상 기술을 다시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혹은 역사적, 과학적 분석과는 멀어진 채 초역사적인 남성의 지배 본능을 여성억압의 원인으로 지적하게 되기도 한다. 이는 인류학적 연구 결과들과도 배치된다. 역사적으로 여남이 평등했던 인류 사회가 존재했음이 확실히 밝혀졌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이론의 또 다른 문제점은 계급, 인종 등 다른 사회적 관계와 남성지배/여성종속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과 남성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는 간과되고, 여성과 남성은 각각 동질적 이해를 갖고 있다는 명제가 가부장제 이론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다. 사실상 ‘남성의 지배적 본능’을 여성억압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이를 통해 여성과 남성의 갈등을 화해불가능한 근본적인 대립으로 보는 ‘가부장제’ 이론의 접근은 ‘피지배계급의 단결’보다는 ‘범계급적 여성단결’을 더 내세우는 데 이르기도 한다.

‘가부장제’ 이론의 유용성, 열린 토론이 필요하다

경력단절, 임금격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살해 위협, 일상적인 성희롱,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도 겪는 데이트 폭력, 가정폭력, 성폭력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폭력의 위협과 차별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여성차별과 억압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가부장제’를 손쉽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급진 페미니즘의 등장 이후 여성억압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역사적, 사회적 관계인 여성억압을 초역사적인, 독자적인 구조로서 접근하는 한계를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여성억압을 극복하고 여성을 향한 폭력과 차별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여성억압을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서 분석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모든 사회적 관계는 본래 있었던 것이거나, 본성 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 관계들과 함께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억압 또한 다른 사회적 관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형성되고 변화해왔다.

최근 터키의 9,000년 전 초기 농경사회 유적은 그 사회가 여남이 평등한 사회였음을 보여준다는 연구가 언론에 보도됐다. 남성지배/여성종속이 남성의 권력욕, 본능 등에 입각한 것이라면 이러한 사회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성억압을 역사적, 사회적 산물로 본다면, 여남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특정한 지배, 종속 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여남이 서로 평등했던 사회가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평등이 파괴되고 남성지배/여성종속이 등장하게 된 이유를 농경의 등장과 같은 생산의 변화에서 찾고, 그 후 장기간 지속된 여성종속이 자본주의에 와서는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 계급관계와 결합했는지 설명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여남의 관계를 근본적인 대립으로 보고 범계급적 여성단결을 주장하는 시각과는 사뭇 다른 이론적, 실천적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까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던 ‘가부장제’라는 용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부장제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부장제’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대안적 분석이 필요한 때이다.

3 댓글

  1. 역사적으로여남이 평등했던 사회가 있던 시대가 언제인가요 궁금합니다 자료를 어디서 찾았는지 링크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인류학에서는 수렵채집사회가 역사적으로 여남평등 사회였다고 봅니다. 어떤 체계적인 차별, 억압이 존재하지 않고 평등주의가 매우 강한 사회였다고 하죠. 이와 관련해서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 결과가 많이 발표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프리카 남동부 쿵산족의 지류인 부시맨을 연구한 학자가 가디언에 기고한 글이 있습니다. 해당 글 링크를 올려놓겠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inequality/2017/dec/05/how-neolithic-farming-sowed-the-seeds-of-modern-inequality-10000-years-ago?CMP=Share_iOSApp_Other

      이 학자는 사회주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류가 과거 평등한 사회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일부의 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서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인간 사회들에 존재하는 위계를 불가피한 것으로, 우리라는 존재의 자연적 일부분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호모 사피엔스 20만년 역사의 대부분 기간과 모순된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대부분 “지독하게 평등주의적”인 사람들로 어떠한 형태의 불평등도 허용치 않았다. 수렵채집민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솜씨, 능력, 특성을 가졌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그것을 어떠한 형태의 위계로도 제도화시키려는 노력을 맹렬히 거부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 심리 속에서 평등주의가 사라지는 심대한 변화를 일으켰는가? 고고학, 인류학, 게놈 자료를 균형있게 살피면, 그 대답은 대략 1만년 전 시작된 농업 혁명에 있다.”

      동일한 학자는 가디언에 다른 기사를 기고했습니다. 주제는 본인 전공분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수렵채집민인 아프리카 나미비아 ‘주/호안시’ 부족, 일명 부시맨의 삶에 대한 것입니다. 해당 기사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www.theguardian.com/inequality/2017/oct/29/why-bushman-banter-was-crucial-to-hunter-gatherers-evolutionary-success

      이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은 불평등이나 자기 자랑을 감내할 수 없으며, 어떤 공식화된 지도자 제도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은 의사결정에서 동등한 힘을 누렸고, 아이들은 여러 연령대가 섞인 집단 속에서 대개 경쟁적이지 않은 놀이를 했다. 그리고 연장자는 매우 애정어린 대우를 받았지만, 어떤 특별한 특권을 부여받지는 않았다. 이것은 다시 어떤 이도 성가시게 부나 영향력을 쌓으려고 하지 않았고 자기 주변의 환경을 결코 과잉착취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변이 되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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