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를 넘어 체제교체를 외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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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정농단’이라고 얘기되는 사건이 불거지던 날, 모든 언론과 주위 사람들이 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난다. TV도, 친구들과의 카톡방도, 일터도 모두 박근혜와 최순실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졌고 이런 반응들은 박근혜 퇴진투쟁의 뜨거운 열기로 이어졌다. 주위 사람들 중 집회에 반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모습이 많이 보였고, 11월 12일에는 100만명의 사람들이, 11월 19일에는 60만명의 사람들이, 11월 26일에는 160만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였다. 그리고 11월 29일 박근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며, ‘국회에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하지만, 광장을 가득 채운 ‘박근혜 하야’만으로는, 이것에 굴복한 박근혜가 한발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겐 박근혜 퇴진을 시작으로 하는, 퇴진 그 이상의 변화가 필요하다. 필자와 여러 사람들이 세 번의 집회에 ‘정권교체를 넘은 체제교체’, ‘문제는 체제, 자본주의 철폐’라는 내용의 선전전을 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우리의 탓이 아니다. 그들의 탓이다.

우리가 화가 난 이유를 생각해보자. 취업, 주거 등 ‘먹고 사는 것’만도 어려워,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걱정이 산더미 같은 세상이다. 내 삶이 이렇게 팍팍한 것은 내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먹고 살기 어려운 세상이니 악착같이 공부해서 꼭 좋은 대학에 가야 된다는 얘기를 들으며 공부했고, 대학에 와서도 취업하기 어려운 세대이니 악착같이 스펙 쌓아서 꼭 좋은 곳에 취업하라는 얘기를 들으며 스펙을 쌓았다.

그렇게 대입 재수·삼수, 취업 재수·삼수 거쳐 힘들게 대입을 하고 힘들게 취업을 한다. ‘네 꿈을 펼치라’던가,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가진 게 없으니 취업하지 않으면 딱히 먹고 살길이 없고, 취업을 하면 퇴근만 바라보는 삶을 산다. 하기 싫은 일에 치이며, ‘회사의 이익이 너의 이익이다’는 세뇌를 받고, 나에게 돌아오지도 않을 이윤을 만드느라 내 하루가 다 간다. 그렇게 힘들게 벌었는데, 집주인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 인생 깎아가며 번 돈의 3분의 1을 떼어간다.

내 삶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렇게 힘든 이유는 나의 탓은 아니다. 경제가 위기라서 이렇게 일자리가 부족하고, 다들 먹고 살기 힘든 것이라고들 한다. 그리고 우리가 배워오기로는 경제위기, 일자리 부족, 주거 확보 등의 문제없는 사회를 운영하라고 국민의 권리를 정치인에게 위임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니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고들 하고, 그래서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후보자들 사이에서도 열심히 고민해서 투표도 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내 삶에는 관심 없고 자기네들끼리 K재단이니 미르재단이니 해가면서 그들의 이해만 궁리하고 있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이 깨지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기에 화가 난다. 그러는 사이 박근혜의 지지율은 5%까지 떨어졌다.

그들이 내 삶에 관심이 없는 이유

그렇다면, 박근혜가 한발 물러났으니, 이제 우리의 분노를 유발하던 현실은 해소가 되는 걸까. 혹은 박근혜의 담화는 여전히 화나지만 야당이 끝까지 요구해서 탄핵까지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이번 사태를 반성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앉힐 수 있다면, 나의 화를 유발했던 요인들은 사라질까. 내 삶은 나아질까. 아니면 내 삶이 나아지지는 않을지언정, 정치인들은, 국가는 나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박근혜가 담화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자나 깨나 내 생각만’ 할까.

이제 더 근본적인 것을 물어야 한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내 일’이 아닌 ‘남의 일’만 하게끔, 그리고 ‘남의 일 잘되는 것이 곧 나의 이익이다’라고 내재화하며 하루하루 퇴근만 기다리며 살아가게끔, 그리고 그런 일자리 얻는 것조차도 어려워 끊임없이 경쟁하게끔 하는, 내 삶을 힘들게 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원인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그리고 그 이윤은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그리고 이 경제 체제에서는 정치인들이 내 삶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가진 자들의 이해가 중요한 사회에서, 가진 것 없는 노동자민중의 삶과 가진 자들의 이해 중 국가·정부·정치권의 관심사는 당연히 후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이윤추구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구제해주고, 폐해를 시정해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교과서 속 이야기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는 우리에게는 투표와 시민의식 정도를 줌으로써 주권자라는 환상을 주지만 실상은 자본가를 위한 정치를 하고, 이윤논리를 수호하는 기구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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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국가가 해 줘야할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앉히는 것만으로는 우리의 분노를 유발하는 원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본적인 변화 없이 사람만 바꾸는 것으로는 또 다른 최순실, 또 다른 박근혜만 등장할 뿐이다. 내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내 삶에 관심 없이 그들의 이해, 자본의 이해만을 추구할 것이다.

답 없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해결하기 위한 체제교체

11월 12일, 19일, 26일, 지금의 행태에 화가 많이 난 한 사람으로서 집회에 갔고, ‘박근혜 하야를 넘어선 체제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피켓을 들고 리플렛을 나눠주고 구호를 외치고 발언을 하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동시에 ‘대책없는’ 이야기라며 냉소하는 사람들도, ‘너무 센’ 이야기라며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대책 없는’ 이야기도, ‘너무 센’ 이야기도 아닌 필수적인 이야기이다. 160만명의 사람들이 현실에 분노하며 이를 바꾸고자 거리로 나왔다. 이 분노가 ‘박근혜 퇴진’으로 끝난다면, ‘내 삶은 이렇게 힘든데, 정치인들은 자기 이해만 챙긴다’는 우리를 분노케 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내 삶에 관심 없이 그들의 이해, 자본의 이해만을 추구할 것이다.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 삶의 힘듦의 원인, 내 삶에 관심없는 국가의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를 바꿔야 한다. 지금 우리의 분노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채, ‘아무리 분노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박근혜 하야를 넘어선 체제교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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