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박근혜 배후의 또다른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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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는 100만 명의 민중이 모였다. 저녁 6시를 전후하여 말 그대로 남녀노소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쏟아져 나왔고, 서울역, 광화문, 종로, 청계천을 가득 메웠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0월 24일 최순실이 박근혜의 연설문을 고친다는 구체적 증거가 폭로된 이후, 불과 20여일만에 100만 명 노동자 민중은 한치의 흔들림없이 ‘박근혜 퇴진’을 광장에서 외쳤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노동자민중은 2차례에 걸친 박근혜의 ‘유체이탈’ 사과에도 흔들리지 않았고, ‘헌정중단이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조중동의 협박에 굴하지도 않았고, 갈팡질팡하는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대응에 기대지도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 민중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단호한 구호로 정세를 이끌어 나갔다. 박근혜는 5%의 지지율을 이어가고 있고, 청년들에게는 0%라는 놀라운 지지율 기록을 세웠다.

보수적인 법원은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처음으로 허용했다. 새누리당은 친박-비박으로 나누어져 해체직전으로 나아가고 있고, 더불어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은 분출하고 있는 노동자민중의 눈치를 보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재벌은

최근 새누리당 대표인 이정현은 비박의 퇴진요구를 거절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사안이 터져서 그렇지 노력에 따라 회복될 수 있는 지지율”이라고 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정현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노동자 민중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밑바탕에 깔린 분노의 본질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는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일반인 최순실이 박근혜를 등에 업고 농단을 저지른 것에 대한 분노를 넘어, 체제의 문제, 삶의 문제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자는 박근혜만 감옥으로 보낼 것이 아니라, 보수언론도, 검찰도 감옥에 보내야 하고, 재벌도 감옥에 보내야 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깨버려야 한다는 발언으로 환호를 받았다. 왜 이렇게 삶이 고달파지고 힘들어지는가? 빈부격차는 왜 이렇게 확대되고 있는 것인가? 최순실 게이트는 노동자 민중에게 이러한 문제의식을 제공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순실게이트로 드러난 재벌과 정권과의 유착은, 이 사회가 누구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최순실게이트가 처음 드러날 때만 해도, 권력을 등에 업은 최순실 일당이 재벌들의 약점을 이용해 ‘삥’을 뜯고 다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재벌과 자본가 정권의 적나라한 유착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는 2015년 7월 삼성, 현대, CJ 등 대기업 총수들과 식사를 하고, 그중 7명의 총수들과 독대를 통해 미르재단에 후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모금이 진행될 당시 전경련은 노동개혁5법, 원샷법(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을 다시 한번 요구했다. 저성과자 해고(일병 ‘쉬운 해고‘), 파견범위 확대 등의 정책은 이미 2014년 전경련이 박근혜 정권에 건의한 민원사항이었다. 2015년 9월 16일에는 정부와 새누리당은 파견노동 범위를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이른바 ‘노동관련 5개법안’을 발의하기에 이른다.

기업들이 미르재단에 입금한 다음날인 2015년 10월 27일 박근혜는 국회 시정연설에서 ‘청년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동개혁 5대법안 통과 등을 호소했고, K스포츠재단 입금이 끝난 2016년 1월 18일에는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며 벌인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하러 직접 거리에 나섰다. 재벌과 박근혜는 손발이 맞아도 이처럼 잘 맞을 수 없는 환상의 콤비였던 것이다.

박근혜가 항상 즐겨 사용하는 ‘창조경제’, ‘경제민주화’는 이미 내용도, 실체도 없어진지 오래다. 청년실업해소 등에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재벌들의 민원사항을 들어주는 대가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을 통해 돈을 빼돌리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재벌, 독점자본은 이를 이용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의 왕국을 구축하는 준비를 차근차근 해왔다. 노동자들이 쌓아 온 막대한 부를 자식들에게 세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데 방해가 되는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세무조사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은 비선실세라고 하는 최순실의 딸에게 수십억을 지원하고, 재단에 기부금을 냈다.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늘리기 위해 그들은 계속해서 정권에 줄을 대고, 누가 실세인지 파악하고, 노동자들이 피땀으로 만들어낸 부의 일부를 그들에게 제공했다. 은밀하게 진행되었는지,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본가 정권과 재벌들은 이런 관계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이 그랬고, 노무현 정권도 다르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은 IMF이후 재벌개혁을 추진했지만, 돌아온 것은 미미한 재벌개혁, 기업구조조정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과도한 해고로 요약될 수 있다. 더민주 박영선 의원은, 얼마전 ‘정책공간 국민성장’이라는 연구소를 만들고 첫 행보중 하나로 재벌 연구소장들과 간담회를 가진 문재인을 향해,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 참여정부 5년이 남긴 유산은 ‘삼성공화국’이었다”, “‘재벌을 개혁하겠다’고 한 대통령 당선자의 책상 위에 당시 참모들이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만든 정책집을 올려놓았다”며 비판했다. 이는 노무현 정권과 재벌과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권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경유착은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

재벌은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잉여가치인 1000조에 가까운 돈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놓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재벌은 자본가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의 삶은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으로, 쉬운 해고로, 비정규직 증가로, 청년실업으로 파괴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재벌은 영원하다는 사실은 바로 이 사회를 한줌 재벌들이, 독점자본이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것은, 좀더 세련된 자본가 정권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박근혜 퇴진 투쟁을 통해 노동자 민중은 재벌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가고 있지만, 정작 전경련 해체와 같은 요구에 머물러 있다. 전경련 해체로 끝날 일이 아니다. 독점자본이 지배하고, 자본가 정권이 합작해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이다. 노동자들이 만들어 놓은 부를, 한 줌 자본가들이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가자. 전경련 해체를 넘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고, 노동자가 통제하는 사회에 대한 요구를 확대해 나가자.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확대되고 있는지가 바로 최순실 게이트로 폭발한 박근혜 퇴진투쟁에서 노동자민중이 승리하고 있는가 하는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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