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퇴진투쟁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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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변백선(노동과 세계)]

1987년, 1997년 그리고 2017년의 노동자

노동운동사를 배우면서 자랑스럽게 얘기하던 사건들이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1997년 노동법 날치기 개악에 맞선 총파업투쟁이 그것이다. 이는 조직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고, 역사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노동자는 ‘민주주의의 전위투사’였고, 어둠의 시대에 횃불의 역할을 해내었다. 그런데 현재 역사적인 박근혜 퇴진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노동자들은 이전 역사와 비교했을 때 부끄러울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한 순간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다. 그간 민주노조운동을 혁신하자고 얘기해왔음에도 그러한 노력들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조직노동자의 대표체인 민주노총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월말 촛불집회가 타오를 수 있는 공간을 열었고, 지금도 각 단위에서는 일상적인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운영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80만 조합원을 분노로 모아내고, 이들을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데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탄핵재판에서 대통령 대리인으로 참여한 서석구 변호사는 “‘촛불민심은 국민의 민의’라고 주장하는데, 촛불집회 주도세력은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민주노총”이라며 황당한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엄연히 색깔논쟁으로 물타기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맞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민주노총이 민중의 마음을 가장 잘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단칼에 반박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것이 사실은 아니라는 등의 언론의 반박에, 민주노총의 한 조합원으로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왜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조직된 노동자들은 박근혜 퇴진 투쟁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평가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실패하고 있는 총파업, 제대로 평가되지 않는 총파업

제일 처음 심각하게 느꼈던 부분은 11월 30일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었다. 사실 2015년부터 노동법 개악을 막아내기 위한 총파업을 많이 지켜보았기 때문에, 총파업에 대한 기대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하지만 박근혜 퇴진 투쟁이 놀라울 정도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과는 다른 총파업이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실망스럽게도, 그날 시청광장에서 열린 수도권 총파업투쟁에는 총파업 인원이 시청광장을 다 채우지도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옛 삼성본관 앞 집회를 제외하고는 퇴진 투쟁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진, 촛불집회참가로 마무리되었고, 참석한 노동자들을 감동시키는 의미있는 발언도 딱히 나오지 않았다.

금속노조의 경우 전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를 거쳤는데,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에서는 부결되었다. 금속노조는 이 사실이 민망했는지 공식 발표는 하지 않았다. 나머지 대공장들 또한 조합원 교육시간 등을 이용하여 2시간 동안 총파업집회에 결합했다. 쟁의권이 없어 합법적인 파업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노조단위에서 일부 간부를 제외하고는 조합원들이 총파업집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미 총파업에 돌입했던 철도노동자들이 아니었으면 시청광장을 메우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조직된 노동자들 전체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실제 감행된다면 정말로 위력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 당장 가능하지 않다면 파업집회를 통해 자신감을 확대하고, 이후 총파업투쟁의 가능성을 확대해나가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총파업은 하면 할수록 힘이 빠지는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유 중의 하나는 총파업을 하고도 제대로 된 평가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있다. 민주노총의 11월 30일 총파업 평가서를 보면, 당일 총파업 투쟁으로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확대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런 평가가 지속되면 앞으로도 계속 맥빠지는 총파업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적된 조합주의 운동의 결과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자유발언대가 크게 인기를 얻었다. 자유발언대는 그동안 분노에 쌓인 노동자 민중들, 특히 청년들의 울분을 토하게 만드는 자리였고, 이를 통해 박근혜 퇴진 투쟁의 방향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조직노동자들의 자유발언에 참여하는 비율이 매우 낮았다. 그 이유는 그동안 노동자집회문화가 참여하고, 발언듣고, 뒷풀이하는 것으로 굳어진 점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조직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드러난 대중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노동자들의 경우, 특히 민주노총의 다수를 차지하는 대공장 노동자의 경우, 그 동안 투쟁을 통해 고용, 임금 등 노동조건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불만과 관련하여 오히려 촛불민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이 드신 현장조합원들은, 우리가 예전에 투쟁 많이 했으니, 이제 투쟁 많이 안했던 시민들이 나서서 해야 되는 것 아닌가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에 속해 있다고 하더라도, 고용안정과 임금인상 투쟁 중심으로 핵심적인 조합활동이 계속 돌아가다 보니, 정작 정치적인 투쟁에서는 남보다 뒤떨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나의 고용, 나의 임금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조합주의에 빠져서는 정작 결정적인 투쟁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조합주의는, 민주노조운동이 극변하는 정세를 선도하는 전망을 제시해내는 데도 실패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민주노총이 재벌문제와 관련하여 ‘전경련해체’라는 뒤쳐진 요구를 내건 것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작년에도 민주노총의 ‘재벌개혁’이라는 요구가 문제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이미 자본가들도 해체하겠다는 전경련 해체를 주요요구로 내세우는 한계를 보였다.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싸우는 노동운동이 절실

노동자 민중은 박근혜 퇴진 투쟁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오랜 투쟁의 경험을 가지고 있고, 이런 거대한 투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박근혜 정권과 싸웠던 가장 대표적 세력인 조직노동자들이 이제 적극적인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조운동이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싸우는 노동운동이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3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박근혜퇴진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 광화문 광장에 200만 이상의 민중들이 참여할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조직된 노동자들이 평가하고 교훈을 찾아야 하는 것이 주요하다. 박근혜가 만들어 놓은 헬조선은 사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헬조선이다. 이에 분노한 민중들의 표현이, 바로 수백만 광화문 촛불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저임금에, 노조탄압에 고통받는 것처럼, 광화문에 나온 민중은 청년실업, 정리해고, 가계부채, 주거문제, 노인빈곤으로 고통받고 있고, 이 모두는 자본주의의 모순과 연결되어 있다.

투쟁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당장의 총파업투쟁이라는 형식에 매몰되기보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라는 내용이 중요한 때다. 자본주의와 싸우는 노동운동이 바로 민주노조운동이 갈 길이라는 태도를 확대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업집회에서, 촛불집회에서 우리가 평가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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