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민중은 왜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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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3월말부터 시작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민중들의 대귀환 행진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총부리로 억누르고 있다. 이로 인해 벌써 수많은 민중들이 생명을 잃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그래서 대귀환 행진의 배경을 설명하는 글을 기고받았다. 짧은 글 안에 투쟁의 맥락을 잘 요약 설명해준 남수경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5월 14일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과 사위를 비롯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고위 관료, 정치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축포를 쏘며 축하했다.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는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대사관 밖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개소식 축하를 위해 모인 이스라엘 극우 시위대는 “불에 태워라”, “총으로 쏴라”, “죽여 버려라” 등 노골적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같은 시간, 예루살렘에서 불과 80km 떨어진 가자 지구에서는 대규모 행진과 시위가 벌어졌다. 가자와 이스라엘 완충지대에 세워진 분리장벽 펜스를 향해 행진하는 비무장 시위대에게 이스라엘군은 실탄 조준사격으로 대응했다. 이날 하루 동안 63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하고 2,700명이 넘게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군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작년 말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면서 미국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을 발표했다. 예루살렘은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이 세 종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수도로 주장하는 곳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유엔은 1947년 예루살렘을 국제특별관리지역으로 규정했고 예루살렘을 어느 한 국가에 속하지 않는 국제도시로 만들자는 것이 지금까지 국제 사회의 합의였다. 트럼프 정부는 이런 국제적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동시에 대사관 개소식을 이스라엘 건국기념일인 5월 14일에 맞춘 것은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정면 도발이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미대사관 이전이 “의도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를 부인하고 수십 년에 걸쳐 이스라엘이 저지른 폭력에 눈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5월 14일의 시위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에 반대해 싸운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지난 3월 30일 시작된 ‘대귀환 행진’(Great Return March), 즉 이스라엘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겠다는 운동의 일부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적인 시위와 행진에 이스라엘군은 드론을 이용한 최루탄 난사와 조준 사격으로 대응했다. 지금까지 두 달 넘게 매주 금요일 진행된 시위로 팔레스타인인 약 130명이 사망하고, 1만 3천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은 지난 2014년 가자 공습 이후 이스라엘이 저지른 최악의 학살이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무차별 난사한 최루가스에 질식해 숨진 8개월 아기 레일라를 비롯해 11차 금요시위가 벌어진 6월 8일까지 15명의 어린이들이 사망했다. 대부분 총격으로 인한 사망이었다. 이스라엘 저격수들이 어린이들까지 타겟으로 삼는 것에 대해 한 이스라엘군 장성은 “이스라엘 국경과 이스라엘 시민의 미래에 위협이 되는 자는 그 누구든 죽음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한다”고 차갑게 말했다. 이스라엘군은 국제법으로 보호 받는 취재기자와 의료구급요원들도 가차 없이 사살했다. 민간인 무차별 학살을 정당화 하면서 “가자 지구에 무고한 사람은 없다”고 한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사진: 로이터]

시온주의 인종청소: “사람이 없는 땅은 유대인을 위한 땅이다”

지금 벌어지는 대귀환 행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70년 동안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이 글에서 70년 역사를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간략히 주요 사건들에 대해 살펴보자.

1947년 11월 유엔은 당시 영국 식민지이던 팔레스타인을 유대인 (이스라엘)과 아랍인 (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제국주의 열강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것처럼, 그때까지 유대인과 아랍인이 같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은 제국주의 열강의 임의대로 분할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면서 고작 6퍼센트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엔은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 영토의 55퍼센트를 할애해 주었다. 유엔 분할안에 따라 시온주의자들은 이듬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곳에서 강제로 쫓아내는 인종청소를 감행한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은 땅이 없는 사람 (유대인)을 위한 것이다”가 시온주의의 대표적 구호였다. 문제는 팔레스타인 땅에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온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팔레스타인인들을 땅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해결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이라는 뜻) 라고 부르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인종청소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마을을 파괴하고, 팔레스타인인 150만 명 중 75만 명을 강제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살이 벌어졌다. 이렇게 팔레스타인인들의 피와 눈물 위에 건설된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1967년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을 기습 공격한다. 이 ‘6일 전쟁’으로 동예루살렘, 요르단 강 서안 지역과 가자, 골란고원 그리고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를 점령한 이스라엘은 순식간에 통치 지역을 3배로 늘렸다. 이스라엘은 1978년 이집트와 평화협정을 맺고 시나이 반도를 반환했지만, 팔레스타인 영토는 지금까지 불법 점령하고 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87년 12월 가자의 난민캠프에 사는 팔레스타인인 네 명이 이스라엘 군용 트럭에 깔려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에 항의해 일어난 봉기가 순식간에 가자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확대되어 이스라엘의 점령에 반대하는 장기투쟁으로 발전하는데, 이것이 ‘1차 인티파다 (민중항쟁)’이다. 수년에 걸쳐 계속된 항쟁은 거리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노동자파업으로 번져 나갔고, 이집트와 알제리에서도 인티파다에 영감을 받은 투쟁이 벌어졌다.

인티파다가 팔레스타인을 넘어 중동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되는 것을 두려워한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운동 정파의 하나인 ‘파타’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그 결과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오슬로 협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공존을 보장하는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채택하고, 이스라엘이 점령 지역에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 철수와 서안과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잠정 자치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내부의 반대 여론은 높았고, 오슬로 협정을 주도한 라빈 총리는 1995년 극우파에게 암살된다. 이후 오슬로 협정을 반대해 온 강경파 네타냐후가 총리가 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의 대등한 공존이라는 오슬로 협약의 기본 약속은 사실상 폐기되고, ‘평화 프로세스’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분리차별지배 (아파르트헤이트)를 위장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이스라엘은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한 정착촌 철수는커녕 점령지에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하면서 불법 영토 확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국제법은 점령을 합법적인 영토 획득 방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점령 지역에 건설된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이다.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에 유대인들을 계속 이주시키면서 1967년 이후 지금까지 서안과 동예루살렘, 골란지역 등지에 유대인 60만 명을 이주시켰다. 1993년 이후 서안 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수는 3배로 늘어났다. 현재 가장 많은 정착촌이 건설된 서안에는 약 135개의 정착촌에 이스라엘인 약 4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동예루살렘에는 20만 명의 이스라엘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오슬로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표로 인정받은 파타는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을 대신해 팔레스타인 민중을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는다. 오슬로 협정 이후에도 계속된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과 이를 묵인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분노가 2000년에 ‘2차 인티파다’로 터져나왔다. 약 4년간 계속된 2차 인티파다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3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거대한 강제수용소가 된 가자 지구

2006년 1월 열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무장 정파 ‘하마스’가 파타를 제치고 승리했다. 이때까지는 파타가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대표이자 이스라엘과의 협상의 주체였다. 파타는 1960-70년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을 이끈 주요 분파였지만, 이후 변질되어 인티파다가 아랍 전역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데 일조했고,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하면서 부정부패에 빠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파타는 더 이상 이스라엘 점령지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권리를 분명히 말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민중 투쟁이 기존 질서를 위협하지 않도록 단속하는데 급급했다.

반면 하마스는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을 되찾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천명했다. 2006년 총선 결과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파타에 대한 불만과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반대가 하마스에 대한 지지로 표현된 것이다.

하마스가 집권하자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 정권에게 쓴 고전적인 방식을 동원해 하마스 정부의 전복을 시도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하마스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대신 과거 협상 파트너였던 파타하고만 상대하려 했다. 미국의 중동 특사는 파타를 지지한다고 선언했고, 파타에 대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2007년 파타의 쿠데타 시도가 불발로 끝나면서 하마스는 파타를 몰아내고 가자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했다. 2007년에 시작된 가자 봉쇄는 하마스를 선택한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징벌이었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가자는 거대한 강제수용소가 되었다. 200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외부와 철저히 고립된 채 갇혀 있다. 가자 지구의 동쪽과 북쪽은 이스라엘이 설치한 8m 높이의 분리장벽에 가로막혔다. 남쪽의 이집트 국경도 가자 주민에게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지중해와 접한 서쪽 또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조업을 금지해 출로가 막힌 상태다.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두 곳, 즉 이스라엘 검문소와 이집트 검문소인데, 가자에 들고 나는 모든 물자와 사람은 이곳에서 철저히 통제된다.

2017년에 나온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과 경제 봉쇄로 인해 가자는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 96퍼센트의 물이 오염되어 식수는 물론 목욕이나 세탁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적당하지 않다. 수차례에 걸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하수처리 시설을 복구할 건축자재가 봉쇄로 인해 들어오지 못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가자의 수원(水源)은 2020년 전에 ‘회복 불가능하게’ 고갈 될 것이라고 유엔은 경고하고 있다.

식량난 또한 심각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에 들어가는 식량공급을 제한하면서 57퍼센트의 가구가 식량난을 겪고 있다. 인구의 약 70퍼센트인 130만 명이 구호 식량에 의존해 간신히 생존하고 있다. 전기는 하루에 기껏해야 서너 시간만 들어온다. 2015년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의 실업률은 44퍼센트로 세계 최고이다. 봉쇄로 인해 모든 생필품이 부족하지만 특히 만성적인 의약품과 의료시설의 부족은 가자 주민들의 삶을 한층 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특히 3월 30일 이후 총상을 당한 부상자들이 몰려들어 응급상황이 계속 되면서 일상적인 환자 진료는 거의 중단이 되었고 열악한 의료체제는 거의 붕괴 직전이라고 전해진다.

가자 인구의 3분의 2가 1948년 나크바 때 강제이주 당한 난민이거나 그 후손들이다. 가자의 열악한 상황과 난민으로서 겪은 이들의 집단적 경험이 가자 지구를 팔레스타인 민족해방 운동과 난민귀환 운동의 용광로로 만들었다.

특히 이번 투쟁에서 소위 ‘오슬로 세대’들의 주도와 참여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이들 젊은 세대는 오슬로 협정 이후 가자에서 자라난 세대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자를 떠나본 적 없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최소한의 가능성마저 부정된 세대이다. 가자 지구의 청년 실업률은 60퍼센트가 넘는다. 그들의 부모들은 1차 인티파다를 겪었고, 오슬로 협상 이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삶의 조건이 훨씬 더 나빠지는 걸 목격했다. 한마디로 가자 지구의 구세대와 신세대 모두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미래가 안 보이는 상황에서 처해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느낀다. 가만히 앉아서 천천히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싸우는 것이, 설사 빨리 죽는 위험이 있더라도, 적어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나은 선택으로 보인다.

6월 1일 이스라엘 저격수에게 사살 당한 21세의 의료구급요원 라잔 알 나자르의 어머니는 딸이 죽은 바로 다음 주 금요일에 시위에 나왔다. 딸의 피가 묻은 의료요원 조끼를 입고 온 그녀는 시위 현장에서 라잔을 대신해 부상자들을 돌보았다. 그녀는 “라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오슬로 세대’인 라잔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트위터 메시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물러서지 않고 계속 나갈 것이다. 너의 총알로 나를 내리쳐도 두렵지 않다. 매일 나의 땅에, 평화적으로, 나의 가족과 함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설 것이다. 우리는 (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라잔의 메세지는 대귀환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전세계에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하마스가 시위대를 조종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은 지난 70년 간 계속된 이스라엘의 학살과 고사작전으로 미래가 사라진 암담한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자생적인 생존투쟁이다. 동시에 국제법에 보장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투쟁이고, 이스라엘 점령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투쟁이다.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나크바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들은 70년이 지난 오늘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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