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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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사건으로 간추린 사회주의노동운동사>는 『사회주의자』 27호부터 새로 연재하고 있는 기획 기사입니다. 그동안 지면 상으로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를 매달 한 편씩 게재합니다. 사회주의노동운동사의 전모를 다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겠지만 역사적 중요 사건들을 개략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기대합니다.

①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계급의 최초의 계급적 행동

② 리옹 봉기,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자성을 향한 한 걸음

③ 차티즘,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적 정치운동

④ “독일이여 우리는 짠다 너의 수의를”―슐레지엔 직조공 봉기

⑤ 1848년 프랑스 6월 봉기: 노동자, 부르주아 국가의 실체를 깨닫다

⑥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864년 국제노동자협회 결성

⑦ 1871년 파리코뮌, 최초로 등장한 노동자국가

⑧ 1878년 사회주의 탄압법과 독일 사민당의 성장

⑨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의 창립

⑩ 1905년 러시아 혁명: 피의 일요일과 대중파업, 노동자 소비에트

⑪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⑫ 1917년 10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 발발하다

⑬ 1918년 11월 독일 혁명: 유럽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고양되다

⑭ 1919년 코민테른의 창립: 새로운 혁명적 인터내셔널의 수립

⑮ 1922년 극동인민대표대회: 러시아 혁명이 민족해방운동의 횃불로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는 유럽의 공식적인 사회민주당들의 다수파가 자신들의 신념과 그 진지한 슈투트가르트 및 바젤 결의를 극악하게 배신함으로써 훨씬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기회주의의 완전한 승리와 사회민주당에서 민족적 자유주의 노동당으로의 변질을 상징하고 있는 이러한 붕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제2인터내셔널의 전 역사적 시기의 결과일 뿐이다.

레닌

1889년 대중적으로 성장한 사회주의 정당들이 주축이 되어 창립된 제2인터내셔널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오래 전부터 전쟁발발의 가능성을 경고하며, 전쟁을 막기 위한 노동자계급의 태도와 행동방침에 대한 결의들을 해왔다.

1907년 슈투트가르트대회에서는, 자본주의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세계시장을 획득하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계급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전쟁발발의 위험이 다가올 경우에는 전쟁의 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에는 전쟁이 야기한 정치, 경제적 위기를 이용하여 자본주의적 계급지배의 철폐를 앞당겨야 한다는 구체적 행동 방침도 정했다. 이러한 결의는 1910년 개최된 코펜하겐대회에서도 재확인되었고, 1912년 개최된 바젤대회에서도 ‘만장일치’로 재확인되었다. 

하지만 1914년 7월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당시 제2인터내셔널의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던 기회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결의와 선언들을 종잇조각처럼 내팽개치고, 자국의 부르주아지를 따라 ‘조국방어’를 뻔뻔스럽게 외치기 시작하였다. 제2인터내셔널의 주도세력인 독일사민당의 의원들은 부르주아지, 융커와 함께 임시군사예산에 찬성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의 사회주의당들도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였다. 이들은 자국의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교전국의 노동자계급을 학살할 것을 선동함으로써, 결국은 노동자계급 전체를 대량살육의 장으로 내몰았으며, 자국 부르주아지의 부르주아민족주의를 추종하는 사회국수주의자들로 전락하였다. 

이로써 제2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다. 그런데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는 갑자기 일어난 일은 아니었다. 사회국수주의는 제2인터내셔널 내 똬리를 틀었던 기회주의가 성장한 것이었다. 부르주아지가 초과이윤의 일부를 이용해 노동자계급과 그 지도자들 일부를 매수, 포섭하여 등장한 노동귀족이 기회주의의 토대였다. 1890년대 등장한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는 그것의 이론적 표현이었다. 비록 1904년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수정주의는 배격되었지만, 기회주의는 그 이후 제2인터내셔널에서 계속 강화되었다. 기회주의는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이후에도 그 타락을 멈추지 않아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자본가편에서 혁명을 공격하고 자본주의를 노골적으로 보호하는 반혁명 세력으로 전락하였다.

한편 제2인터내셔널 내 카우츠키 등 중앙파는 그동안의 결의들을 왜곡하며 사회국수주의자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들은 말로는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떠들었지만 행동으로는 사회국수주의자들과의 통일을 주장함으로써, 그들의 본질이 밝혀지는 것을 방해하고 대중에 대한 영향력 유지에 도움을 주었다. 결국 중앙파는 사회국수주의자들을 구원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제국주의적 전쟁에 대해 원칙적이고 혁명적인 노동자계급적 입장을 지키고 투쟁한 것은 소수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뿐이었다. 독일에서는 리프크네히트가 의회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였다. 러시아 볼셰비키 의원들은 임시군사예산에 반대하고,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혁명적 선전을 했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 사회주의자들 역시 전쟁에 반대했다. 당시 국제적으로 이들은 소수였지만 어려운 조건을 구실로 타협하지 않고 매우 용감하고 단호하게 행동하여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적, 혁명적 흐름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들은 찜머발트 좌파 를 구성하여 제3인터내셔널의 맹아가 되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와 더불어 혁명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국제적 노동운동이 요청되었다. 1917년 러시아혁명에 뒤이어 1919년 등장한 제3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은 바로 이런 요청의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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