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정통성’은 반공주의 냉전시대의 산물

0
1051
[사진: 연합뉴스]

올해 3월의 시작과 함께 전국을 수놓던 3.1운동 100주년 기념행사 열기는 어느 정도 잦아들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역사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임시정부 띄우기’가 한창이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인 2017년 7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 사업을 확정하고 여기에 5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또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시정부’) 수립일을 4월 13일에서 4월 11로 변경한다는 뉴스를 생산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 4월 13일 수립 설은 일제 기록에 근거한 것이며 실제 임시의정원 회의가 처음 열린 4월 11일을 임시정부 수립일로 봐야 한다는 일각의 요구에 따른 조치였다. 물론 이와 관련된 약간의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문재인 정부는 임시정부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의 건의를 받아 이 날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올해를 ‘3.1운동 100주년’이 아니라 굳이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으로 규정하면서 3.1운동과 임시정부를 한 패키지로 묶은 것도 임시정부를 부각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정부의 의도에 발맞추어 제도권 내 자유주의 언론들도 임시정부와 관련된 프로그램과 기사 등을 대거 편성하면서 분위기를 잡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대다수 사람들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다만 나경원 의원 등 이른바 ‘친일수구세력’ 일부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역사공정’이니 ‘국론분열’이니 하는 키워드로 반발하긴 했지만 오히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는 바람에 문재인 정부의 ‘역사공정’에 정당성만 더해주었다. 아무튼 문재인 정부의 임시정부 띄우기 프로젝트는 순항하고 있는 바,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임시정부 법통’, 또는 ‘임시정부 정통론’이라는 명분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임시정부 정통론’에는 정통성이 있을까.

‘임시정부 정통론’은 남북 냉전시대 반공주의 산물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는 ‘임시정부 정통성’이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정통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근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 오히려 임시정부는 수립 초기부터 해방 직후까지도 줄곧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지도기관임을 자처했지만 실제로 민족해방운동 진영 전체를 아우르며 지도력을 발휘한 적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조차도 임시정부를 무시하고 스스로 한성정부 대통령으로 행세하고 다녔을 정도였다. 또 이승만은 1925년에 임시정부대통령 직에서 탄핵을 당했을 때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고집했고,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아니라 한성정부를 계승한 것으로 주장했다. 신채호처럼 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이승만에 반대하여 반(反)임시정부 노선을 명확히 한 경우도 많았다. 한때 임시정부 국무총리로 재임하던 이동휘 또한 운영자금 문제와 이승만의 거취 문제로 기호파 세력과 갈등하다가 임시정부와 결별했다. 그런 과정에서 임시정부는 늘 존폐위기를 겪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시 민족해방운동 진영 안에서는 임시정부 해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서 임시정부는 국민대표회의를 소집하고 여타 독립운동 세력과의 통합을 시도하며 독립운동 지도부로서의 정당성을 가지려 했다. 하지만 임시정부의 이런 노력은 부족한 지도 역량을 노출하며 번번이 실패로 귀결되었다. 그런 동안에 민족해방운동 진영은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크게 양분되었고, 임시정부는 점점 우파 민족주의 계열 독립 운동가들의 본거지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리고 해방직후 신탁통치 국면에서 임시정부의 집권여당인 한국독립당은 반공주의 노선에 입각하여 반탁운동을 전개하면서 ‘임시정부 법통’을 내세웠다. 자신들이 유일한 정통 정부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당시 남한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미군정은 ‘미군정이 남한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며 임시정부 법통 선언을 즉각 부정해버렸다.

이처럼 해프닝으로 끝난 ‘임시정부 법통’론이 다시 대두된 것은 남북에 단독정부가 들어서 분단이 고착되고 체제 대결이 본격화한 1960년대 이후였다. 그 무렵 북한의 관변 역사학계는 역사 왜곡을 감행하면서 김일성의 만주항일운동 업적을 북한의 법통으로 세웠다. 북한 역사에서 임시정부는 당연히 배제되었다. 이에 맞서 남한의 관변 역사가들은 ‘임시정부 법통’을 내세우며 이데올로기적으로 북한과 맞섰다. 반공을 국시로 삼고 있던 정권 치하에서 어쩌면 당연한 조치였다. 이처럼 ‘임시정부 법통’은 학계의 과학적 연구와 토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반공주의 냉전 세력의 정치적 목적과 의도에 따라 설정되었다.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법통으로 선 것처럼 남한에서는 ‘임시정부 법통’이 지배 권력의 통치체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로 구축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임시정부 법통’은 냉전시대에 남한에서 형성된 반공주의의 산물인 셈이다.

‘임시정부 법통’ 명시한 헌법 전문의 모순과 오류

한편 민주화 열기가 뜨겁게 타오른 1980년대 이후, ‘임시정부 법통론’에 획기적으로 정당성을 부여한 건 87년 개정헌법이었다.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이른바 ‘민주헌법’ 전문(前文)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표현이 명시됨으로써 ‘임시정부 법통’론은 법적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계급사회에서는 법적 정당성이 사회적 정당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 헌법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위에서 인용한 헌법 전문에서도 모순이 발견된다. 요컨대 헌법 전문은 세 가지 전제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3.1운동의 결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립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일한 정통’이라는 것, 그리고 셋째는 ‘대한민국임시정부와 4.19 이념 두 가지를 함께 계승한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 각각의 전제는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또한 각 전제들 사이의 논리적 관계도 모순된다. 차례대로 살펴보자.

먼저 ‘3.1운동의 결과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립되었다’는 전제는 두 가지 역사를 억지로 꿰맞춘 도식에 불과하다. 3.1운동 전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말고도 국내외에서 최소 6개의 임시정부가 출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처럼 난립한 여러 임시정부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물론 “여러 임시정부가 나중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통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통합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3.1운동의 결과로 임시정부가 조직되었다’는 설정도 시간적 순서를 인과관계를 꿰맞춘 억지이다. 실제로 임시정부 설립 움직임은 이미 3.1운동 이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독립을 쟁취할 것으로 기대한 세력은 파리강화회의를 앞두고서 외교적 방략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다. 그런데 파리에 대표단을 파견하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정부 형태의 조직이 필요했다. 그에 따라 여러 세력은 곳곳에서 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당연히 주도권 경쟁도 벌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들 정부 추진 주체들은 자신들의 정부 구상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리고 대중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 단위의 대규모 시위를 기획했다. 이것이 3.1운동을 촉발시킨 요인 중 하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3.1운동과 임시정부 사이의 인과관계가 뒤바뀔 수도 있다. 따라서 3.1운동의 결과로 임시정부가 건립되었다는 가설은 일면적이다. 더욱 분명한 건 3.1운동이 없었어도 어디에선가 임시정부는 수립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일한 정통’이라는 두 번째 전제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그 오류를 충분히 설명한 바 있다. 문제는 이 두 번째 전제와 ‘대한민국임시정부와 4.19 이념 두 가지를 함께 계승한다’는 세 번째 전제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4.19는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의거이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다. 이승만을 반공주의 독재자로 키운 데는 임시정부 세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를 고려하면 ‘임시정부 법통’과 ‘4.19민주이념’은 대립할 수 있다. 정통성도 인정되지 않은 ‘임시정부’를 3.1운동과 4.19의거 사이에 억지로 끼워 넣어서 빚어진 결과이다. 덩달아 이 두 가지 모순되는 정통성을 계승하는 ‘대한국민’의 머릿속은 모순과 역설 사이에서 오락가락할 수밖에.

이처럼 헌법 전문에서조차 문제를 일으키는 ‘임시정부 법통’ 개념은 사라져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임시정부의 역사 자체를 버리자는 건 아니다. 임시정부는 사회주의, 민족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이념을 가지고 활동한 전체 민족해방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해 온 게 사실이다. 또한 27년이라는 세월을 버티며 일관되게 독립운동을 펼쳐온 건 그 자체로 인정할 만하다. 더구나 수립 초기 이동휘가 국무총리에 취임하고 한인사회당이 참여한 임시정부는 좌우연합 정부로서의 위상을 나름대로 갖추기도 했다. 충칭 시절의 임시정부는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민족혁명당 등을 끌어들여 민족주의 내 좌우연합을 형성하고 비교적 안정된 형태의 정부를 운영하며 민족해방운동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고 수행했다. 이러한 업적은 40여 년 동안 이어진 전체 민족해방운동사 안에서 정확하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임시정부 법통’은 민족주의 우파 논리

그러나 여기에 ‘법통’이나 ‘정통성’을 갖다 붙이면 임시정부가 아닌 나머지 민족해방운동은 어쩔 수 없이 배제되고 만다. 특히 1920년대 후반 김구 내각이 들어선 이후 임시정부가 철저한 반공주의 노선을 고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임시정부 법통을 내세우는 순간 사회주의자 계열의 치열한 민족해방투쟁의 역사는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개념은 헌법 전문에 버티고 있으며, 다수 대중은 거기에 익숙하다. 오히려 한국의 다수 대중은 ‘임시정부 법통’을 지지하는 편이다. 여기에는 심심찮게 ‘8.15 건국절 지정’ 논란 따위를 일으키는 반공 수구세력이 기여한 바 크다. 인민들 입장에서는 그들의 눈꼴사나운 행태를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한다”는 외침으로 압도하며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이다. 수구세력의 행패가 냉전시대 반공주의의 산물인 ‘임시정부 법통’ 이데올로기에 상대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

다수 대중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친숙하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름을 계승한 건 맞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일은 아니다. ‘대한’이라는 말은 ‘대한제국’에서 나온 것이다. ‘나라를 되찾아 임금을 다시 세우겠다’는 복벽주의의 그림자를 다 지우지 못한 이름이다. ‘민국’은 당시 공화주의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말이다. 참고로 3.1운동 직후 전단지 정부로 등장한 ‘조선민국임시정부’나 ‘신한민국임시정부’에서 먼저 사용했다.

4월 11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이라면 이에 앞선 3월 17일은 대한국민의회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또 4월 23일은 한성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8월 어느 날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설립 100주년이기도 하다. 물론 지배 정권이 이 가운데 어느 날을 기념하든 특별히 개의할 일은 아니다. 피지배 인민의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역사는 통치세력의 입맛에 따라 각색되는 이데올로기 수단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이미 과대평가된 임시정부를 3.1운동과 동등한 위상에 놓고 ‘100주년’이라는 명분하에 과도하게 띄우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로 8 15건국절 지정 따위 논란을 벌이는 수구세력과 차별화함으로써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 때문일 것이다.

반공주의 냉전 시대 산물인 ‘임시정부 법통’론은 민족주의 우파 중심의 역사관을 굳건하게 고수한다. 그 점에서 임시정부 법통을 헌법에 명시한 대한민국은 민족주의 우파 이념을 지향하는 나라이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임시정부 띄우기에 나선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위상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해진다. 자유주의 집권 세력과 수구세력이 벌이는 역사전쟁의 본질 또한 이 편협한 범주 안에서 이뤄진다.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의 역사전쟁이 우리와 무관한 이유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임시정부 법통’과 같은 우파 논리가 아니라 3.1운동에 자발적으로 나선 조선 민중의 저항정신 그 자체이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