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학습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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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작년 8월 16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장장 8개월간 진행된 『자본론』 강좌의 대장정이 지난 4월 12일 졸업식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에 사무금융노동자로 8개월 동안의 강좌를 성실히 수강한 고영장 동지가 『자본론』 강좌를 통해 배우고 느낀 점을 기고해 주었다. 

『자본론』 강좌는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본주의에 대해 올바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를 올바로 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맑스가 쓴 『자본론』을 읽는 것이다. 『자본론』을 공부하는 이들이 더 많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자본론』을 해설서나 단행본으로만 접해오던 아쉬움 뒤에는 항상 언젠가 전집을 완독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다짐만으로 쉽사리 덤비기에 『자본론』의 현실적인 벽은 높았다. 우선 무려 다섯 권에 달하는 두터운 책의 높이와 복잡하고 난해한 특유의 서술 방식, 이전의 여러 학설과 조사보고서 등의 방대한 참고 문헌과 주석들은 외로운 다짐을 자꾸 뒤로 미루는데 핑계거리로 충분했다. 그러던 차에 『사회주의자』에서 기획한 『자본론』 학습은 홀로 어두운 사막을 걷는 여행자에게 빛나는 별과도 같았다.

학습과정이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무더운 8월 한복판에 시작했던 『자본론』 학습은 혹독한 겨울을 지나 이듬해 4월까지 한 주도 빠지지 않는 강행군 끝에 완독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현장 업무와 학습을 병행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일정이 겹치는 날에는 일정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고, 몇 번씩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구간에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빠듯한 시간과 먼 거리, 고단한 일정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적극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는 다른 동지들을 볼 때마다 위로가 되었다. 난해한 글을 한 줄 한 줄 강독하며 의미를 따져보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현실과 비교하며 자본주의의 실타래를 푸는 일은 결코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러 동지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같은 글을 읽으며 생각을 나누다보니 어느새 자신감도 붙고 서로 의지도 되었다. 중간 중간에 진행된 수련회와 뒤풀이는 『자본론』 학습을 단순히 강의실에 가두지 않고 동지들 간에 서로 격의 없는 토론과 우정을 쌓을 수 있는 자리였다.

직접적으로 많은 배움이 있었지만 이번 학습 과정 내내 관통하는 생각은 “현상으로부터 가려진―은폐된―본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과학적 인식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즉,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본질을 은폐함으로써 우리가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물신성’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의 중요성이다.

물신성은 ‘상품’이라는 형태로 인해 생산자와 생산자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은폐되고 이 관계가 상품과 상품 사이의 관계인 것처럼 보이게 되는 상품물신성에서 출발하여,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이 본질인데 그것이 은폐되고 그게 모두 자본의 힘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자본물신성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러한 물신성 때문에, 자본주의에 사는 노동자들은 그 속에서 착취당하며 살아가지만 자본주의의 착취구조를 알지 못하고, 겉으로 보이는 왜곡된 현상이 진실인 것처럼 믿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론』을 학습하면서 비로소 환상들을 걷어내고 자본주의의 작동원리와 착취구조의 참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물신성이 어떻게 이러한 것들을 은폐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자본론』을 학습하기 이전에는 노자관계의 대립을 적대적 계급관계로 분명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단순히 개별 자본가의 선의나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자본론』 학습을 통해 이런 인식이 얼마나 나태하고 게으른 사유의 결과인지 알게 되어 매우 부끄러웠다. 현실 자본주의의 경제운동법칙을 분석하다 보니 자본주의의 내재된 모순을 포착하게 되었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과학적 결론과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에서 착취는 개별 자본가의 선의에 따라 우연히 선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고유한 운동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노동운동을 윤리적 관점에서 과학적 관점으로 이동시키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상품의 출현과 교환의 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화폐에 대한 환상이 벗겨졌다. 그리고 마치 이윤이 유통과정에서 매매차익을 통해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통이 아닌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하고 이것이 이윤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분석은 우리에게 앞으로 운동의 목표를 단순히 분배정의(?)를 외치는 투쟁에서 탈피해 생산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투쟁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한편 노동일을 둘러싼 맑스의 고발장은 통렬했다. 어린 노동자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장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환경은 200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보아도 전혀 생경하지 않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산화한 일이나 각종 위험에 내몰린 비정규노동자들의 산업재해가 연일 계속되는 오늘날의 열악한 노동현실과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에 우울하기도 하다.

맑스는 노동일의 표준화와 관련해 “동등한 권리와 권리 사이에서는 힘이 사태를 결정짓는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8시간 노동제를 둘러싼 노자간의 투쟁이 지난한 역사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상하기라도 한 것일까. 아직도 우리의 노동현실은 주 40시간도 법제화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자본주의는 끝없이 확대 재생산을 통한 가치증식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매번 자본가들은 엄청난 이윤과 수백조 원에 달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두고도 위기를 외쳐대는 것이었다. 『자본론』 학습을 하기 전에는 단순히 그 자본가들을 엄살쟁이라거나 곳간에 재물을 쌓아둔 욕심 많은 구두쇠 정도로 생각했다. 자본주의 축적의 본질을 간과한 순진한 생각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순진한 인식으로는 자본가와의 대결에서 절대 승리할 수 없다. 일부 쟁취한다고 하더라도 빵부스러기에 지나지 않는 승리에 불과하다. 대략적으로나마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는 경쟁을 통한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향상을 얘기하지만 왜 정작 본인들은 시장에서 경쟁을 무력화시키며 끝없이 독점화로 나아가는지 『자본론』을 학습하게 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사진: 사회주의자 / 『자본론』 강좌 졸업식에서 학생들을 대표해 발언을 하고 있는 고영장 동지]

이번 학습과정을 통해 『자본론』 전체를 다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번 『자본론』 학습을 통해 세계관에 중대한 변화가 있었고 따라서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데 역시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언젠가부터 우리의 운동현실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투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가 적극적인 주체로써 투쟁을 통해 스스로 쟁취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시혜를 바라는 온정주의나 권력에 의지하는 대리주의를 맴도는 경향이 익숙한 풍경이다. 과연 이대로 좋은가? 언제까지 현실조건을 탓하며 도돌이표 같은 투쟁을 계속할 것인가. 열심히 투쟁하는 것만으로 세상은 변화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과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더 많은 부를 차지하려는 것으로 착취는 소멸되지 않는다.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를 고쳐 쓰는 것으로 모순은 해결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철폐와 새로운 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임금투쟁뿐만 아니라 투쟁을 더 높은 정치투쟁과 사상투쟁으로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 자본주의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의 지배, 사람에 의한 사람의 지배를 철폐하기 위해서는 왜 필연적으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지 역사적 흐름과 과학적 인식을 벼려내야 한다. 그 생각의 단초, 실천의 실마리, 투쟁의 희망을 이번 『자본론』 학습에서 보았다면 너무 큰 자신감일까.

『자본론』을 그저 일련의 경제학 책으로만 읽는다면 오독하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맑스는 단순히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기 위해서 자본주의를 분석했다. 그래서 『자본론』은 혁명적으로 계급투쟁의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읽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자본론』 학습은 매우 탁월한 성과였다.

이번 『자본론』 학습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성두현 강사님, 그리고 항상 학습모임 준비에 수고해주신 박준규 간사께도 특별히 감사인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바쁜 일상과 현장 활동 중에서도 함께 공부하신 여러 동지들의 집념과 수고에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한개의 댓글

  1. 고영장 동지, 자본론 학습 완주하신 거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현재 자본론 1권 복습 모임이 진행 중인데요, 더 수고하셔서 이번에 자본론 1권의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드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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