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노래로 세상을 기만하는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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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브레이크뉴스

지금 대통령 하야 정국에서 문재인은 대중이 박근혜퇴진을 요구할 때 가장 늦게 반응하는 야당 정치인이다. 그가 모셨던 전임 대통령은 세종대왕 흉내를 내서 망가졌고, 본인은 대통령후보도 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이미 된 것처럼 나라걱정을 혼자 다하고 있어서 욕을 먹고 있다.

그런 그가 이미 몇 달 전에 대선후보라면 의례 만든다는 싱크탱크(이른바 정책연구소) “정책공간 국민성장”을 차렸다. 문재인은 이 단체의 첫 공식행사에서 국민성장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보고서도 요약본으로 보기를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서비스를 한다면 문재인의 주장은 한마디로 가계소득을 높여 유효수요를 창출해 성장 동력을 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지역불균형 해소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니 사람들 좋아할 만한 이야기는 잔뜩 해놓았다. 그래서 내세운 구호가 “국민성장 시대를 열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로!”다.

뉴노말시대에 성장을 말하시는 문재인 도사

공황이후 끝도 모를 불황에 접한 서구사회에서 뉴노말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말인즉 불황, 저성장이 당연한 것이니, 그런 줄 알고 대처하는 게 경제주체들의 적절한 태도라는 것이다. 이 말이 서구자본주의에서 나왔다고 해서 그들만의 특수한 상황을 대변하는 말은 아니다. 2차대전 이후만 보면 이들은 고도성장 및 선순환의 시기, 스태그플레이션, 신자유주의 시대를 모두 겪었고, 마침내 2008년 공황이후 초유의 사태, 마이너스금리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한국자본주의는 국가주도의 고도성장기, 87년 노동자투쟁 이후 전개된 선순환시기, 즉 노동자 가족의 소득증가에 따른 내수성장기, IMF 사태이후 비정규직과 돈놀이, 투기자본 천국시기를 거쳐 2008년 금융공황에 얻어터지는 등 다른 나라와 엇비슷한 발전경로를 밟고 있다. 우리 역시 그 끝이 어딘 줄 모르는 불황에 처해 있다. 바닥인줄 알았더니, 지하가 있었고, 지하1층만 있는 줄 알았더니, B2, B3 그 끝을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온 지 벌써 몇 년 째인가? 이미 고도화된 자본주의인 한국자본주의가 전 세계가 불황인데 혼자만 고도성장을 누릴 가능성은 0%다. 방법이 있다면 최순실 뺨치는 무당을 불러다 굿이라도 하는 것일 거다.

패러다임만 바꾸면 기적이 행해진다는 문재인

저는 우리가 직면한 저성장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를 살릴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국민성장’입니다.

휴대폰도 배터리를 바꾼다는 5%를 빼고는 모두가 퇴진을 요구할 때도 퇴진을 요구할 자신이 없던 문재인은 국민성장에는 자신이 있다고 한다. 그 방법은 바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란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이 특별한 조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경영학에서 말하는 체리피킹(Cherry Picking) 식으로 좋은 것만 골라서 모아놓은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예를 들어 재벌은 우리경제의 견인차인데, 수직계열화와 문어발식 경영을 자제하면 된다는 것이고, 건강보험료는 소득에 따라 부과하고 비정규직은 해결하고, 노사정 대타협을 이루고, 제조업은 부활시키고, 출산율도 높이고, 혁신도시도 살려서 정글경제에서 사람경제로 탈바꿈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울 것도 없는 유럽사민주의 정부의 정책들이고, 이러한 정책은 80년대에 수명을 다해 용도 폐기된 정책이다. 80년대 대처나 레이건과 같은 악마 정치인들이 나타나서 이러한 정책이 수명을 다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재정적자의 압력과 이윤율 저하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니 수십 년 전의 주술을 가지고 마술을 부리겠다는 문재인은 용감한 것인가? 무식한 것인가?

이미 해볼 건 다 해본 자본주의, 문재인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까?

세계자본주의는 지난 200년이 넘는 동안 자본주의 위기라는 사태를 맞이하여 나름 해결책을 강구하였고, 하나의 해결책이 수명을 다하면 다른 대안을 내놓고 시간을 벌어왔다. 무한경쟁의 결과로 독점이 심화되자 반독점법을 만들어 규제도 해봤다. 독점과 시장분할(제국주의)이 심화되어 양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고정환율제를 도입해 강제로 무역질서를 부여하고 그를 뒷받침할 금본위제 화폐를 세계화폐로 끌고 오기도 했고, 노동자에게 대폭 양보를 해 가계소득을 높여 유효수요를 창조하기도 했다. 석유파동을 계기로 물가는 오르고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하자, 노동조합 손을 보고 자본의 국제화를 도모해 전 세계를 카지노 경제로 만들기도 했다. 이마저도 어려워지자 정부가 돈을 꾸는 것도 모자라 소비자 금융까지 천문학적인 규모로 증가시켜 나름 수요를 창출하기도 했다. 이러다 2008년에 공황이 발발하자 이자를 마이너스로 만들고 돈을 마구 찍어내기까지 하고 있다.

지금 순서대로 열거한 자본의 조치들은 자본의 선택이 아니라 할 수 없이 떠밀려 실행한 것들이다. 문재인이 대단한 것으로 여기는 가계소득증대를 통한 성장도 계급역관계의 변화, 다시 말해 전후 소련의 팽창, 그리고 2차대전을 경과하면서 자본가계급의 권위실추와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인 권위 상승이 맞물려 노동자계급에게 대대적인 양보가 불가피했다는 정황이 있었다. 지금 문재인이 말하고 있는 가계소득은 그 대부분이 임금소득이고, 그 임금소득은 노동자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도 노동자 대파업에 의해 87년부터 93년까지 자본가들을 정신없게 밀어붙였던 현장에서의 역관계가 임금소득의 대대적인 인상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자본가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노동자들에 대한 고삐를 조였다. 역대 정권들이 한 짓은 자본가들의 분탕질을 대폭 허용하고 노동자들에게 인정사정없이 채찍을 휘두른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 밀어붙이기가 수십 년이 흐르자 자본가들은 비정규직을 통해, 그리고 하청계열화를 통해 독점이윤을 빨아들여 더욱 경제력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문제는 너도나도 그런 수를 쓰다보니까 이제는 비정규직 없이는, 적어도 하청업체와 재하청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이는 재벌들이 거두어들이는 독점이윤이 존재할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비정규직 없는 평등한 노동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불구대천의 원수이고, 기업 간의 쏠림이 없는 경제는 독점자본에게 독약이나 다름없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의 정치가들이 문재인보다 머리가 없어서 하릴없이 날마다 돈이나 찍어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이라는 천재가 나타나도 뾰족한 수는 나타날 수 없다. 다만 기만이 있고 대중에 대한 눈가림이 있을 뿐이다. 자유주의 정치가들은 모두가 한통속이다. 그들이 모시고 있는 무당이 입고 있는 옷이 다를 뿐 주술은 언제나 똑 같은 엉터리다. 다 망가진 자본주의를 고쳐서 쓸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그들이 바보가 되면 그만이지만 그들에게 가려 진실을 보지 못하는 민중은 언제나 비틀거리는 자본주의 대신 단말마의 비명을 도맡아 지를 뿐이다.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기만을 넘어서는 것은 대중의 정치적 각성이다. 전국을 흔드는 촛불에도 우리가 정말 주목할 것은 광장에서 일어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광장을 통해 각성하는 민중의 전진이다. 그러한 전진이 반걸음만 진행돼도 문재인과 같은 장사치들은 설 곳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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