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 체제 변혁으로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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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byebyenuke.net/]

탈핵운동의 위기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과 그에 뒤따른 15m 높이의 해일이 도쿄전력이 운영하던 후쿠시마 제1 핵발전소를 덮쳤다. 이 해일로 발전소가 침수되었고, 발전소 내의 모든 전기장치가 멈췄다. 전기 공급이 끊긴 원자로는 냉각수를 공급받지 못하면서 서서히 녹아내렸다. 격납용기의 파손으로 방사능이 대기로 유출되었으며, 정화가 불가능한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을 바다로 방출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기술로도 통제할 수 없는 노심용융상태는 ‘차이나 신드롬’이란 신조어를 낳았다.(핵발전 사고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나온 용어로, 미국에서 원자로 노심이 녹아내리면 그 노심이 땅 밑으로 계속 녹아내려가 결국 지구 반대편 중국으로 뚫고 나온다는 비유이다).

1979년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거리상으로도 멀고, 시간상으로도 오래전 사고라 한국에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인접국가인 탓에 직접적인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전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31기(운영 24기, 운영중지 1기, 건설중 6기)의 핵발전소를 보유한 한국 사회는 그 사고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핵발전과 관련하여 한국 사회에서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사고 이전에 2003년 부안 핵폐기장 유치반대투쟁과 2005년 밀양 송전탑 반대투쟁이 있었다. 그러나 탈핵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였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탈핵을 주장하는 계기가 됐다. 핵발전소가 운영 중인 지역과 건설예정인 지역주민들의 건설반대투쟁과 밀양과 청송의 송전탑 건설반대투쟁은 전국적인 투쟁으로 번져나갔다. 그 투쟁의 결과 고리 1호기의 가동중단과 건설예정인 핵발전소의 취소(예정지의 고시 해제 절차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다)를 쟁취했다. 그러나 전면적인 탈핵으로 전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핵발전소 현안지역 주민들과 정책협약을 통해 탈핵을 약속했다. 월성 1호기 폐쇄는 수명연장과 관련한 법적 다툼이 있기 때문에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을 용인한다고 해도, 애초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 중단’은 정책 협약식까지 하면서 주민들과 약속했던 공약사항이었다. 문재인은 이 공약을 지키지 않고 공론화위원회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신고리 5, 6호기 건설을 결정했다. 그리고 건설 중인 다른 4기의 핵발전소를 계속 추진해서 오히려 핵발전소가 6기 더 늘어날 상황이다. 이것을 탈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특히나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명백하게 자신의 약속을 깨는 행동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지금 당장! 탈핵!’을 외치지 않았던가? 그러나 탈핵운동진영 대부분이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하면서, 탈핵운동진영이 문재인이 약속을 깬 것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것은 탈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탈핵운동진영의 지속적인 공동대응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실제로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했던 단체들은 그 이후 계속된 지진 발생으로 위험이 커진 핵발전소 가동중단 문제나 ‘핵연료 재처리(pyro-processing)’ 문제에 대해서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들은 사실상 문재인정권과의 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그러나 근본적이지는 않은, 탈핵 전략으로 전환했다고 볼 수 있다.

에너지 생산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권과의 협력을 통한 탈핵 로드맵을 밟아가겠다는 생각은 공론화위원회의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탈핵 로드맵이 강제로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를 갖는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탈핵운동진영 단체들 대부분이 핵발전 문제를 전기에너지의 생산과 송출의 방식으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핵발전 방식만 아니면 된다는 기술적인 사고에 빠져있어 오히려 탈핵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이는 그 단체들의 주요 주장이었던 생태적 전환으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대규모의 생태계 파괴를 낳을 수 있다.

산업통산자원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용도별 전력소비에서 산업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56%에 달하고, 일반용이 23.4%, 주택용이 14.5%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탈핵운동의 주류는 사실상 전체 전력소비의 56%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산업생산을 직접 지원하거나 산업생산과 같은 사이클로 움직이는 일반용을 포함하면 실질적인 산업용 전기소비는 80%가 넘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에 대한 계획보다는 가정용 전력소비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서울시와 협력하고 있는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탈핵운동진영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는 ‘(사)에너지정책기후연구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에너지 시나리오는 미래의 에너지 수요를 예측/설정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어떻게 공급하고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구상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에너지 수요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는, ‘탈핵 에너지 전환 시나리오’는 에너지 효율화와 절약 등으로 에너지 수요 증가를 막고 감축시켜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대체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여 노후 핵발전소를 대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부족한 전력 생산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적은 천연가스를 통한 발전을 이용해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상할 수 있다. (「시민참여형 에너지 대안 시나리오,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중에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환경단체나 녹색당으로 대표되는 탈핵운동의 주류는 에너지원별 전력생산에서 핵발전과 화력발전의 비중을 줄이고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을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자신들의 운동의 대안이자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인류절멸의 핵발전이나 미세먼지의 주범이라는 화력발전을 중단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전기소비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스템을 깨뜨려 산업용 전기를 통제할 수 없다면, 고작 15%, 공공용과 교육용 등을 포함하더라도 최대 20%에 불과한 가정용 전기를 절약하는 것만으로 실질적인 탈핵으로 갈 수 있다고 낙관한다는 것을 어불성설이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거나, 전기소비가 높은 산업을 저소비 산업으로 전환하고, 현장에서 전기효율을 높인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전기소비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없다. 이것은 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차곡차곡 작은 것부터 밟아나가면 꼭대기에 올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개량주의’이거나, 근본적인 변화보다는 생활정치라는 명분으로 실현가능한 것만을 찾아 활동하는 ‘가능주의’일 뿐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운동과 함께, 체제변혁을

에너지정책기후연구소나 녹색당을 통해서 볼 때 우리는 탈핵운동 주류의 대안이 자본주의의 생존원리인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전력수요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인 대규모 생태파괴를 묵인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본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자연생태계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탈핵운동이 이런 폐해를 바라는 것은 아닐테지만, 전력소비 자체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고 에너지원을 전환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운동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탈핵운동에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1년 5월 18일, 충남 아산과 충북 영동에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주간연속 2교대제와 고정월급제를 요구하면 투쟁에 들어갔다. 현대, 기아차와 같은 완성차 노동자들도 시작하지 못했던 야간노동 폐지를 요구하면 싸운 것이다. 8년의 투쟁 과정에서 수많은 조합원들이 해고당하고, 용역깡패와 경찰의 폭력으로 다치고,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쓰러졌다. 2016년 3월 17일 한광호 조합원이 유성자본과 창조컨설팅이 자행한 살인적인 노조파괴를 견디지 못하고 자결하기도 했다. 만약 야간노동이 폐지되면 야간 생산을 지원하던 노동들도 같이 사라진다. 그러면 공공부문의 필수적인 노동을 제외하면 사회 전체가 야간노동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건강권을 확보하는 것과 더불어 저녁이 있는 인간적인 삶도 얻을 수 있으며, 당연히 전 사회적으로 전력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운동이나 탈핵운동이 서로를 지원하는 차원의 연대운동이었다면, 야간노동 폐지를 시작으로 하는 노동시간 단축투쟁은 탈핵운동이 노동운동과 함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공동투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투쟁은 대량생산/소비를 근간으로 끊임없이 위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는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자본의 생산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 건설로 나아가는 투쟁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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