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비정규직이란 없다: 문재인의 ‘비정규직 제로시대’ 약속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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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신문/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은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했다. 인천공항공사는 전체 노동자들 중 84%가 비정규직으로 악명 높은 기관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특히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안전과 생명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그 분야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원칙을 세우겠다”며 “직원들이 출산이나 휴직·결혼 등 납득할 만한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전부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다. 정규직화와 차별철폐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탄압했던 공사 사장도 1만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답했다. 당사자인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스러워했고 문재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스스로 로드맵을 가지고 있거나 제시한 것이 아니고 공항공사 사장에게 로드맵(계획)을 마련해달라고 부탁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지 지켜봐야할 것이다(자회사를 통한 고용승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비정규직 투쟁에서 원칙으로 세웠던 것들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올바를 해결을 위해서는 원칙을 놓고 투쟁해야하기 때문이다.

27일동안 광화문 광고탑에서 고공단식농성을 했던 투쟁사업장 공동투쟁

정규직화의 원칙

우리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기준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사업을 시행하는 원청이 파견, 위탁업체를 배제하고 직접 고용해야 한다. 둘째는 단기근로계약이 아니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근로계약이어야 한다. 셋째는 편법으로 중규직 또는 유사정규직이라고 불리는 분리직군이나 하위직제(이와 관련해서는 한겨레신문의 「’무기계약직’ ‘분리직군’ ‘하위직제’ 등 ‘유사정규직’ 속출」을 볼 것)신설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과 임금과 승진 등에서 어떠한 차별도 없어야 한다.

이렇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원칙을 다시 말하는 것은 투쟁의 원칙이 현실 앞에서 무너져가고 있고, 하나의 흐름으로 정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동안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 많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으로, 단기계약 노동자들이 무기근로계약으로 전환된 것은 투쟁의 성과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은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모범이 될 수 없다. 특히 무기근로계약노동자들의 상태를 우리 운동은 어떤 이견도 없이 ‘정규직화’라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판단이다. 무기근로계약으로 전환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임금 등 모든 노동조건이 비정규직 당시 그대로이며, 정규직과 커다란 차별이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회사나, 재단, 시설공단으로의 고용은 틀렸다

자본에게 정규직화를 강제하기는 당장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공공부문부터, 특히 정권의 의지로 가능한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부터 정규직화의 물꼬를 트자고 요구했고, 그렇게 투쟁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투쟁에서 정규직과 차별 없는 정규직화를 쟁취한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거나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성과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최근 비정규직 투쟁의 대세이며,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 서울시에서 민간위탁업체에 고용되어 서울시의 민원을 상담하는 노동자인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이 서울시 산하의 재단에 고용되는 방식으로 고용형태가 변경됐다. 정규직화의 제1 원칙인 직접고용 방식이 아니라 서울시가 ‘120다산콜재단’을 설립하고 그곳에 고용하는 명백히 간접고용 방식이다. 최근 공공부문에서의 비정규직투쟁은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당사자들의 투쟁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여기가 비정규직 투쟁의 끝이 아니며 모범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투쟁의 미래를 만들어갈 수 없다. 문제는 이것이 모범적인 사례로 회자되면서 그 이상의 투쟁을 조직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늘어나고 필연적으로 자유주의 정권과의 협력이 비정규직 투쟁의 주요한 전략과 전술이 돼버리는 현실이다. 이러한 모습은 수많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에서, 사적 자본과의 투쟁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서울시농수산물시장 노동조합 사례:  “무늬만 정규직에서 벗어나고 싶다”)

기준인건비제를 폐지하라

물론 이렇게 편법으로 돌파하려는 방식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필요한 인력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기존의 비정규직(민간위탁이든 계약직이든)을 정규직화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기준인건비제” 때문이다. 2014년에 시행된 기준인건비제는 이전의 총액인건비제와 별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이다. 총액인건비제는 공무원 정원과 예산을 동시에 묶어 신규채용 자체를 규제다면, 기준인건비제는 예산을 묶어버려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려면 사실상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정책적으로 필요해서 많은 인력(비정규직이든 정규직이든)을 채용하면 다음 해에 예산에서 패널티를 주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물론 공공기관도 다르지 않다.

문재인은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란 행사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정규직화를 약속하며, “우선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평가지침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고용을 늘려나가고, 정규직으로 전환해 나가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도록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덧붙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말한다면 근본적으로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기준인건비제를 폐지하고, 정책적 필요에 따라 채용하는 인력에 대한 인건비를 필요한 만큼 지급하면 된다. 물론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인사채용과 같은 폐해는 심사를 합리적으로 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예방하면 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원칙적으로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물론 노동운동(조합)은 힘들더라도 이런 원칙에 따라 정규직화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조직해야할 것이다.

비정규직악법 폐지가 답이다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확대된 것은 98년 이른바 IMF사태를 겪으면서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에서 정리해고제가 법제화되고 1984년 법제화된 파견법이 개정되면서(노동자 파견의 범위가 26개 업종에서 32개 업종으로 확대됐다), 그리고 2006년 노무현 정권에서 비정규직법안이 통과되면서 자본은 비정규직 사용에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자본가계급에겐 천국이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했다. 전체 노동자의 약 70%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다. 취업을 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꿈은 정규직이 되는 것이 된지 오래다. 2년이 경과하면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고용의제를 피하기 위해 1개월짜리 쪼개기 계약도 횡행한다. 지옥이 따로 없고,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려면, 비정규직을 합법적으로 확대했던 핵심적인 법안인 비정규직법안(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을 폐지하면 된다. 그래야만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고, 문재인이 말하는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을 그대로 두고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좋은 노예제도가 없듯이 좋은 비정규직이란 있을 수 없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고 계약해지로 해고된 동양시멘트하청노동자들

더불어 사회적 분업이 최고로 발달한 자본주의사회에서 하나의 노동만으로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산물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다.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은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생산의 한 축이며, 생략되거나 배제될 수 있는 하찮은 노동이 아닌 필수불가결한 노동이다. 모든 노동이 존중받아야만 그 사회가 진정한 평등한 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악법을 폐지하는 것만이 비정규직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고, 모든 노동자가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열어갈 수 있는 엄중한 시대적 요구이다. 노동운동이 이 원칙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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