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이윤을 위한 속임수, 직무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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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이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취업 후 경력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호봉제)가 기본적인 임금체계였다. 그러다가 위기에 처한 자본이 가장 확실한 이윤보장의 수단인 ‘낮은 임금과 경쟁체제를 통한 노동자 분할’을 위해 성과연봉제를 추진했었고 공공부문에서부터 확대되는 중이었다(성과연봉제 추진 배경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의 「호봉제가 잘못된 5가지 이유…성과연봉제를 해야하는 4가지 이유」를 참고하길 바람). 그러나 성과연봉제가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과 차별을 과도하게 부추기고 노동강도를 심각하게 강화하면서도 성과는 오르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자 문재인 정권은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임금체계를 개편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직무급제’이다(『아웃소싱타임즈』 2017. 12. 28.자 기사 「[분석]정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임금체계 6단계 직무급제 도입).

현재는 공공부문의 정규직(실제로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계로 시작되고 있지만, 곧 정규직 공무원과 공공기관 노동자에게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려는 직무급제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차별을 구조화하여 자본의 이윤을 보장한다는 면에서 성과연봉제와 어떤 차이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 또한 성과급제와 비슷한 내용의 ‘성과직무급제’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공부문은 민간자본의 행보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민간자본에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문재인 정권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과 연동되어 나오고 있는 직무급제에 비판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무급제로 누가 이익을 보는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직무급제는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제로 약속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체계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렇지만 사실 이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던 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있던 임금체계와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민간자본에서도 정규직화 대상의 노동자들에게 별도의 직군을 신설하여 정규직과 다른 (저임금)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이런 식의 직무급제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전체 노동자들에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표준임금제’라고도 불리는 직무급제의 핵심은 노동자들을 직무의 난이도(업무의 종류)에 따라 구분하고, 그 직무에 따른 임금에 차등을 두겠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그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정권은 형식적으로 정규직화를 하는 모양새는 내되 자본가 계급에게 해가 되지 않는 직무급제라는 임금체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인데, 그 내용은 실상 노동자들을 저임금 무기계약직으로 묶어두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것은 노동운동에서 주장했던 노동조건(임금)의 하락 없는 정규직화에 명백하게 배치되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기관에서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조차 무시되고 전환과정에서 직무 강등으로 오히려 임금이 삭감되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한다.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던 문재인 정권이 그 이후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서 자회사를 통한 전환이나, 대상자 축소, 임금체계를 정규직과 다르게 하는 꼼수를 부렸던 것을 보면, 직무급제가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실효성도 없으면서 원성이 자자했던 성과연봉제를 폐지한다는 찬사는 받으면서 성과급제의 효능은 그대로 간직한 직무급제로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한 임금체계 개편을 하려는 것이다. 직무급제의 문제점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노동자를 저임금 구조에 가두게 된다.

정부의 표준임금모델에 따르면 각 직무별 최고임금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직무에 종사하는 노동자인 청소직무에 속한 노동자는 평생을 일한다고 해도 월급이 절대로 200만원을 넘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노동계의 반발로 정부는 임금지급의 기준을 최저임금으로 설계했던 것을 삭제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의 기준이 최저임금으로 된 지 오랜 상태라는 것을 감안하면, 직무급제 하에서 임금인상이 최저임금의 상승폭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노동계의 예상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또한 6단계까지 승급하면서 임금이 오른다고 하지만 15년 동안 제대로 승급(일정한 연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승급하는 호봉제도가 아닌 인사위원회에서의 결정으로 승급한다)한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는 최고 40만원에 불과하다. 평생을 저임금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직무급제는 현재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 정규직 전환 대상자의 임금을 산정하는 기준으로 설계된 것으로, 정규직과의 차별 시정 계획이 아예 없다. 사무전문직인 정규직과의 차별 지속도 문제이고, 일반직무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을 고착화해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노린 것도 문제이다.

② 노동자간의 분할과 차별을 구조화한다.

직무급제는 노동자 사이의 직무를 기준으로 임금 차별을 강제하는 것으로 차별적 신분제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직무의 구별과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가? 노동자가 하는가, 자본가가 하는가?

직무급제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직무의 난이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은 직무의 난이도가 낮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남들이 회피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그들의 노동에 대해 난이도만으로 임금 수준을 결정할 수 없다.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는 쿠바의 사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호주나, 캐나다, 스웨덴, 미국 등에서는 건설노동자들과 같은 일부 기술직종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과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려는 직무급제는 사무전문직과 생산직, 단순노무직의 난이도를 강제로 상대평가하고 그 임금에 차별을 두겠다는 것이다. 즉 직무 그 자체에 차별을 두는 것으로 새로운 신분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노동은 한 사회를 운영하는데 모두 필요한 노동일 뿐 아니라, 그 사회에서 모두 존중받아야 할 노동이다. 직무에 따라 임금에 차별을 두어야 하는 어떠한 합리적 이유는 없다. 있다면 자본가 계급이 지금까지 지배를 위해 심어놓은 뿌리 깊은 노동에 대한 차별 이데올로기만 있을 뿐이다.

노동조합 스스로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려는 직무급제에만 문제가 있지 않다. 노동조합에서도 성과급제 폐지의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현재까지 연공급제는 노동자에게 가장 유리하며, 합리적인 임금체계였다. 안정적인 고용과 임금은 노동생산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노동이 분업과 협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개별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성과를 크게 내기도 어렵게 때문이다. 성과급제가 문제라면 그것을 폐기하면 되고, 그 대안으로 직무급제를 만들 이유도 없다. 승진과정에서 남여 차별 등의 문제가 있다면 그런 문제들을 개선하면 된다. 그러나 정권은 굳이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해 성과급제의 기조를 유지하는 임금체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노동자들 역시 대안이 필요하다는 프레임에 갇혔다. 노동운동 일각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차별을 받아들이는 심각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보건의료노조가 정권의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임금을 합의 한 것이다. 당사자인 보건의료노조는 성명을 통해 그것이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하는 직무급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임금과 승진에서 차별적 기준을 제시하는 정권의 ‘가이드라인’을 수용하여 기존 정규직과의 차별을 합의한 것, 정규직 전환 노동자들의 임금을 저임금에 묶어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보건의료노조가 먼저 합의를 하면서 직무급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정권의 가이드라인을 받아들일 것을 강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합의를 해주었기 때문에 직무급제에 대한 비판과 항의가 어려워졌다.

임금에 대한 계급적 관점이 필요하다

직무급제에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의 가이드라인이 목표로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노동자 사이의 차별을 구조화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비용’이다. 한 사회에서 노동자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없고, 따라서 근거없는 직무 구분에 따라 임금을 차별하는 것은 부당하다.

직무급제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위해서 ‘임금은 노동력의 재생산 비용’이라는 계급적 관점이 필요하다. 그 관점이 세워졌을 때 올바른 대안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노동 사이의 차별이 폐지되고 누구나 평등하게 사는 세상, 모두의 삶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노동이 제대로 인정받는 세상을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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