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출발선에 선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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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현대중공업지부]

현대중공업, 조선소 역사상 첫 1사 1노조를 실현하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은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 많은 족적을 남긴 사업장이었다. 그러나 2004년 현중하청지회 故 박일수 열사투쟁에서 벌어진 노조의 분향소 침탈 및 하청노조 탄압으로 민주노총에서 제명당한 후 줄곧 어용의 길을 달려왔다. 그런 현중노조는 지난 2013년 말 민주파 정병모 후보가 당선되어 비로소 12년 만에 어용의 터널을 빠져나왔다. 조합원들의 어용노조에 대한 불신은 곧 대의원 선거에서도 어용을 몰아내고 민주파 대의원들이 대거 당선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편 현중하청지회도 2014년 최초로 하청업체들과의 단체교섭을 해나갔지만 예상대로 원청 현대중공업의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파업권을 획득하여 현장에서 독자적인 부분파업 및 중식선전전 등을 전개하면서 현장을 바꾸어 나가는데 일조했다. 그 결과 정규직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은 동요했고 정규직 노조도 조합원의 힘으로 20여년 만에 파업을 성사시키는 등 조직을 정비하고 현장을 강화시켜 나갔다.

이에 2015년 역사적인 원·하청 공동투쟁의 서막을 알린 하청노조 집단가입 운동이 시작됐다. 지역의 많은 활동가들과 전국의 운동가들도 현대중공업을 주시했고 함께 했다. 이 힘을 바탕으로 현중노조는 2016년 압도적인 가결로 금속노조 재가입을 이루어내어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했다.

하지만 권오갑의 구조조정에 맞서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현중지부(금속노조 재가입으로 명칭이 변경됨)는 하나 둘씩 밀리게 된다. 2015년 민주 2기 집행부라는 백형록 집행부에 들어서는 지부장 단식투쟁, 조합원 상경투쟁, 수석부지부장의 시청옥상 점거투쟁이 이어졌지만, 아직까지도 임단협이 체결되지 못했고 분사, 순환휴직 등으로 조합원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조합원수도 2015년(1만7천여 명)에 비해 4천여 명이나 감소했다. 예전에는 하청·물량팀이 방패막이 역할을 해서 고용은 보장받았지만, 이제는 하청이나 물량팀에게서 더 이상 빼먹을 게 없다는 것을 아는 자본은 정규직에게 칼날을 들이댄 것이다. 이런 가운데 하청노동자들의 고통 역시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현재진행형이다.

현중지부는 사측과의 싸움에서 더 이상 정규직 노동조합의 파업만으로는 공장을 멈출 수도 없을뿐더러, 조합주의에 빠져있던 활동가들과 조합간부들조차도 비정규직인 하청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고서는 고용마저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에 동의하게 됐다. 그것이 바로 “일반직 지회와 사내하청 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지부 대의원대회 통과 후 지부 조합원 자격을 갖는다”라는 규정 개정이었다.

지난 9월 21일 열린 현대중공업 지부 임시 대의원대회에서는, 현중지부 활동가들조차도 1사1노조 규정 개정안이 통과되리라 예상하지 않았다. (안건1)로 상정되었던 지부/지단/지회 임기안은 부결된 반면, (안건2)로 분할 상정된 안이 참석대의원 132명 중 찬성 88명, 반대 44명으로 가결(찬성률66.7%)되었다. 단 한 표만 반대했어도 부결되는 극적인 가결이었다.

몇 달 전 규약을 변경하여 비정규직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제외시킨 기아차지부의 반노동자적인 행태와 전교조 중집의 기간제교사 정규직화 반대 결정을 통해 퇴행적인 정규직 조합주의가 어떤 것인지 보았기 때문에 안건이 통과할지 우려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현중지부의 이번 규정 개정안의 가결은 두고두고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물론 이제 시작일 뿐이다. 하청지회, 일반직지회와의 특위 등을 통해 하나씩 준비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많이 산적해 있다.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자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현중지부도 하청지회와 일반직지회의 조합가입운동에 함께 해야 하겠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하청노동자들이 스스로 조합에 가입해서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해야 함은 물론이고 사측에 맞서 공고히 하나의 노동자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집단가입 운동으로 수백 명의 하청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그러나 조선업 불황을 빌미로 시작한 사측의 구조조정에서 해양·플랜트를 비롯해서 2만 여명이 넘는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당했고 임금(퇴직금 포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투쟁하지 못하고 제각각 살길을 모색하면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래도 분명 희망은 보인다. 예전에는 하청업체 관리자나 주위의 말만 듣고 불이익을 우려해서 노조 탈퇴를 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구조조정 가운데에서도 조합 가입자들은 현대중공업에 근무하는 한 조합원 자격을 유지했고, 퇴사하고서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물론 아직도 누군가 대신 해주어야 한다는 기대 심리도 작용하고 있어서, 조합 활동가들과 일부 조합원들이 노숙농성과 10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벌여 사측으로부터 고용승계를 어렵사리 약속받고 힘든 싸움을 정리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곤 있다. 하청노동자 중에서는 정규직 노조가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정규직 노조가 타결되면 하청노조에 제일 먼저 문의하는 것이 “하청은 성과금이 얼마나 언제 나오느냐?”이고, “정규직이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하청노조 가입을 못하겠다”라는 식의 글도 아직까지 노동조합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정규직 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멍석을 깔아놓았을 뿐이라는 점이다. 나머지는 두말 할 나름 없이 조합 활동가들과 현장 안에 있는 원·하청노동자들이 할 일이다. 현중지부와 하청지회, 일반직지회가 나란히 서서 하나의 사업장에 하나의 노동조합으로 비정규직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우리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한 해에 1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중대재해로 죽어나가도 자본은 아무 탈 없이 굴러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사업장이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다면 제대로 돌아갈까? 합법적인 착취를 통해 많은 이윤을 남겼지만, 노동자들의 삶은 나아지기 보다는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는 이런 자본주의의 모순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노동조합으로 뭉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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