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의 끝자락에 매달린 문재인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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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한국사회는 이른바 ‘조국사태’로 들끓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사태의 와중에서 때 아닌 사상검증이 벌어지기도 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조국의 과거 사노맹 활동 경력을 들추어내며 사회주의자에서 전향했는지 여부를 물은 것이다. 그러자 조국은 “저는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답변했다. 사상검증의 덫을 피하 는 동시에 진보적 이미지도 지키려는 의도였을 터였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사상검증의 녹슨 칼을 들이대는 수구세력이나, 진보 이미지를 위해 자신에게 사회주의자 라벨을 덧붙이려 한 조국의 궤변이나 시대착오적인 작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해프닝을 계기로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주제가 잠시 공론장으로 나왔다는 점은 의의로 삼을 만하다. 조국의 발언이 없었더라도, 문재인 표 자유주의 체제가 벼랑 끝에 선 지금은, 자유주의 이념 자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 대안으로써 사회주의를 논해야 할 때인 까닭이다.

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표현 

자유주의 체제에서 발간된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로운 인격 표현을 중시하는 사상’이라고 정 의하고 있다. 아름다운 말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개인들의 자유가 보장되려면 다른 개인들의 자유가 억압될 수밖에 없다. 오직 재산과 권력을 가진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이러한 본질적 모순 때문인지 아직까지 자유주의에 대하여 정형화된 이론이나 일관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주의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개인주의, 권력분립, 천부인권, 사상의 자유와 같은 내용들을 떠올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자유주의를 민주주의와 같은 개념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나 애국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를 진보적 이념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제 각각인 것은, 자유주의 이념에 내재한 다양성과도 관련이 있다. 비록 선언적이지만 무수히 다른 개인들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는 다원주의이며, 배타적이지 않은 특성을 보여 왔다. 오히려 흡수력이 탁월하여 때로 는 애국주의와 결합하고, 때로는 민주주의와 손을 잡았다. 심지어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통 해 자유주의적 욕망을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직 한 가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화합하지 않는다. 아니 본질적으로 두 이념은 충돌한다. 그것은 자유주의가 어떤 이념적 언어로 표현되든 재산 소유의 자유나 상품 생산의 자유,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을 부정하는 순간 이미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 점에서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는 조국의 발언은 어불성설이다. 

18세기 유럽 상업자본가들의 자유무역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며 성립된 이래, 자유주의는 200년 이상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을 합리화 해왔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옷을 걸치고 나타났다. 요컨대 낡은 봉건제에 맞서 부르주아 혁명이 벌어지던 당시에 자유주의는 나름대로 진보적인 성격을 띠었다. 특히 농노들이 지주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거처를 옮기며 임금노동자로 변신할 명분을 제공했다. 그러나 애초에 자유주의는 사유재산의 자유로운 축적과 간섭없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이념이었다. 따라서 소수 자본가들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다수 노동자가 억압당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이미 자유주의 앞에는 잔혹한 불평등의 세계가 예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자유주의 이념을 내걸고 들어선 이른바 근대국가는 공권력으로 노동자계급을 억누르며 자본가계급의 자유를 지켜주는 파수꾼 노릇에 충실했다. 시장경제가 만능이라는 믿음이 팽배한 분위기에서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야만적 원리가 통용되었다. 애초부터 생산수단에서 소외된 다수의 노동자 민중은 도탄에 빠졌다. 여기에 주기적인 공황이 반복되면서 자본주의 체제는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그러자 자 유주의는 그 방임적 본질을 약간 제어하며 이른바 ‘케인스주의’라는 옷을 걸치게 된다. 하지만 그도 오래 가지 않았다. 1970년대 오일쇼크 를 계기로 자유주의는 다시 19세기의 낡은 옷을 꺼내 입은 채 신자유주의(Neo liberalism)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새로운 자유주의라는 뜻이다. 하지만 말이 새롭지 신자유주의는 19 세기의 야만적 자유주의를 리폼(reform)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 옷을 걸치고 나타났지만, 그 본질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모순을 은폐하기 위한, 자본주의 체제의 이념적 표현일 뿐이다.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역사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자유주의는 지배이념이다.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도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라며 자유주의의 원리가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의 뿌리를 흔히 이승만 정권 시절에서 찾는다. 대통령 재임중 이승만은 ‘철저한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이념으로 공언한 바 있다. 물론 미군정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그런데 한국 자유주의 유래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주장도 있다. 이나미의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책세상, 2001)에 따르면 최초로 자유주의 이념을 소개한 건 구한말 개화파들이었다고 한다. 특히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서재필, 윤치호 등이 『독립신문』을 통해 자유주의 이념을 본격적으로 대중에 전파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이승만이 청년 시절에 서재필과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이다. 이때 서재필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념 성향과 나중에 미 제국주의의 입김이 더해져서 이승만 정권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탄생했다고 본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라는 옷을 걸치고 등장한 이승만의 자유주의는 실은 철저한 반공주의에 불과했다. 동서 냉전과 남북 대치의 긴장된 정세가 반영된 결과였을 것이다.

이어 박정희, 전두환 등 군부정권이 잇달아 들어서면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군부독재 체제에 부역하거나 아니면 핍박받는 야당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가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군부독재에 맞선 대중적 저항이 거세어지면서 자유주의 야당세력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진 뒤, 비로소 자유주의 정치세력에게 활로가 열렸다. 1990년대에 이르러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야당 세력이 차례로 집권에 성공했다. 군부독재세력이 퇴장하고 자유주의 세력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거기에 민주화운동을 주도해 온 이른바 ‘재야세력’ 가운데 상당수 인사들이 운동경력을 팔아 의회에 진출했다. 앞서 말했듯이 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이념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보면, 한국 자본주의가 성숙 단계에 이른 1990년대야말로 보편적 의미의 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시기라 할 수 있다.

1992년 대선에 당선되어 이듬해 출범한 김영삼 정권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슬로건으로 내거는 등 자유주의 이념에 충실했다. ‘노동 시장유연화’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노동착취를 강화하고자 하는 자본가들의 요구에 부응했다. 이어 1997년 외환위기 국면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권은 초국적 금융자본에 문호를 활짝 개방해 줌으로써 본격적인 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다. 이어 2002년 대선을 통해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대놓고 신자유주의자임을 자처했다. 노무현 정권은 이전 자유주의 정권의 경제정책을 계승하는 한편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 등 굵직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다. 2004년 4월, 노무현은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기간에 신자유주의 전도사로 알려진 마거릿대처 수상의 전기를 읽었다는 사실을 언론에 흘리기도 했다. 또한 대처 수상과 자신을 빗대는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종종 하곤 했다. 노무현이 복지후퇴와 노동조합 탄압으로 악명을 떨친 대처리즘을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들이다.

그러나 노무현의 자유주의적 신념은 그의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노동자 민중의 삶을 거덜내는 결과로 나타났다. 노동자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화되어 고용불안이 심화되었다. 전국의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그에 따라 일부 자산가들은 더욱 부유해졌지만 다수의 무산자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양극화가 가속화 되었다. 임기 반환점을 넘기도 전에 노무현 정권의 국정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고, 과 반수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재보선에서 참패했다. “모든 게 노무현 탓”이라는 유행어마저 번졌다. 물론 그러한 악순환이 노무현 탓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완전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나락에 떨어진 노무현은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그리고 자유주의 세력 은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을 앞세운 수구세력 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자유주의의 끝자락에 매달린 문재인 정권 

노무현정권의 신자유주의 정책 실패에 대한 대중의 심판은 수구보수 세력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 체제의 선거정치에서, 자신을 대표해 줄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대중은 이처럼 엉뚱한 쪽으로 참정권을 소모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패한 자유주의자들에 비해서도 아둔하기 짝이 없고 노골적으로 자본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데만 전력하는 두 정권을 거치면서 대중은 염증을 느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대중은 대규모 촛불을 들어 박근혜 정권을 심판하기에 이른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촛불의 속내에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누적된 울분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을 앞세운 자유주의 세력이 수구세력의 대안을 자처하였고, 다수 대중은 이들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그렇게 문재인 정권이 탄생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자유주의 세력이 독식했던 것처럼, 대규모 촛불시위의 결실 또한 자유주의 세력의 차지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온갖 아름다운 말들을 동원한 공약으로 대중의 표를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허울뿐인 말잔치였음이 임기 절반을 넘기도 전에 드러났다. 가령 ‘소득주도성장’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 노동시간 단축 등을 약속했지만 그와 관련된 이벤트만 요란하게 벌였을 뿐, 결국 자본가계급의 반대를 빌미로 대부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최근에 문재인 정권은 의료민영화나 금산분리 해제 등 대자본가들의 숙원을 풀어주는 정책마저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도 쉽게 손대지 못 한 영역들이다. 촛불정권을 자처하고 나선 문재인 정권은 촛불시위를 자신들의 권력적 욕망을 실현하는 수단으로 이용할 뿐, 그들의 본질적인 역할은 자본가들의 요구를 실현해주는 데 있음이 진즉 드러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과거 노무현 정권 때 이미 실패로 판명난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퍼즐을 맞추느라 여념이 없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 정권들보다 더 대책없는 자유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요컨대 출범 당시 문재인 정권은 아파트값을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으나 그의 재임기간 30개월 만에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3억 원이나 올랐다고 한다. 강남의 한 아파트는 이 기간에 15억원이 올랐다. 아파트 한 채로 매월 1천만에서 1억 5천만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다주택 소유자들의 권리를 제어하지 않은 결과이다. 이쯤 되면 자유주의 체제의 끝판이라 할 수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실상이 이러함에도 문재인 정권이 자신을 진보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이전 자유주의 정권은 민주주의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진보라는 가면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를 진보로 내세우며, 그렇게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조국의 저서 『진보집권 플랜』이 여기에 기여한 바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정치에 입문하여 재집권 전략을 고민하던 문재인은 2010년 무렵 이 책을 읽고 조국에게 친필 편지를 써서 러브콜을 보 냈다고 한다. ‘진보’를 매개로 문재인과 조국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은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조국을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하여 최측근으로 삼았다. ‘진보 집권플랜’이 실현된 것이다. 여기에 청와대 밖에서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그를 자처하는 유시민 등이 연일 방송 매체를 통해 자유주의 이념과 진보의 논리를 뒤죽박죽으로 섞은 언설을 쏟아냈다. 그로써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추종하는 해괴한 진보, 즉 사이비 진보가 탄생하게 된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조국이 자신을 ‘자유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라고 표명한 데에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자유주의 집권 세력이 자신에게 진보의 이미지를 입히려 하는 데에는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자본주의에는 답이 없다는 게 자명해진 시대에, 이들 또한 자신들이 추구해온 자유주의 체제가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이다. 한 마디로 이들은 자유주의의 끝자락을 붙들고서 벼랑 끝에 서 있다.다만 이들은 되도록이면 자유주의 체제의 위기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위기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가 내년도 경제성장률 목표를 2.4%로 높게 잡은 이유도 그런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상이 낱낱이 드러나면 이들은 퇴장해야 할 운명에 놓인다. 이들이 스스로를 진보로 위장하는 데에는 그런 사정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현실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  자유주의자들의 진보 행세는 역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만행일 뿐이다. 자유주의는 낡았다. 낡은 체제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그 낡은 자유주의의 끝자락을 놓지 않고 있다. 이제는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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