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킬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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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광호/사회주의자]

1. 촛불 집회의 본질

10월 29일 3만 명의 규모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한 달여 만인 12월 3일에 232만 명의 규모로까지 늘어날 만큼 촛불집회의 기세는 맹렬하였다. 이 기세는 결국은 동요하는 정치세력을 압박하여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근혜의 연이은 거짓말, 꼼수가 촛불집회를 촉발시키고, 그 규모를 키웠던 것은 분명하지만, 촛불 집회의 기세가 맹렬했던 것은 이보다 더 중요한 저변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변의 이유 중 하나는 박근혜가 집권 이후, 민중의 투쟁으로 쟁취한 제한된 민주주의조차 차례차례 유린하고, 급기야는 역사교과서조차 왜곡하려는 것에 민중이 강한 거부감을 갖고 분노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민중의 삶이 오랜 기간 동안 악화일로에 있고, 이것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민중이 분노했기 때문이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필자의 글 「현 정세에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리고 ‘민중의 삶이 오랜 기간 동안 악화일로에 있고, 이것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바로 한국자본주의체제의 모순 심화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심화가 민중의 삶을 악화시키고, 민중의 희망을 앗아간 것이고, 이것이 민중의 분노를 누적시켜 왔는데, 이른바 ‘최순실 사건’이 이 누적되어온 분노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의 역할을 한 것이다. 우리는 촛불집회의 맹렬한 기세에서 이것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즉, 겉에서 벌어지는 현상에만 주목하지 말고, 현상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본질을 읽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촛불집회가 제기한 문제를 올바로 파악하고 과제 역시 올바로 설정,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현상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본질을 읽어내지 못하고 거꾸로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친 예를 들어보도록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이른바 ‘최순실 사건’이 폭로되는 데에서 조선일보와 박근혜 정권 사이의 권력 투쟁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내의 권력 투쟁을 촛불집회의 주된 동력으로 보고 민중의 주체적 투쟁이 갖는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촛불집회가 그 초기를 제외하고는 조선일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전개되어 조선일보조차 전전긍긍하게 만든 사실과 배치된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서, 마치 촛불집회가 조선일보의 음모대로 진행된 것으로 생각하는 조선일보음모론이 있는데 이것 역시 박근혜의 버티기와 민중의 거센 투쟁의지 사이에서 조선일보가 속수무책의 상태에 빠졌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과 배치된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똑같이 현상에 매몰되어 본질을 놓진 예가 ‘민주공화제가 위기에 놓이고, 사회의 공정한 룰이 붕괴된 것에 대한 분노가 촛불집회의 주된 동력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알량한 수준의 민주주의조차 박근혜정권에 의해 유린된 것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촛불집회의 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특혜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촛불집회의 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한 촛불집회의 확고함과 이를 가능하게 한 민중의 분노의 거대함을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민중의 분노는 단지 박근혜정권의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행태 만에 의해 최근 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십 수 년 동안 한국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차곡차곡 누적되어온 것이다. 즉,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체제가 만들어낸 분노이다. 이 견해는 이러한 사실을 놓치거나 애써 보려하지 않는 견해인데, 현재의 위기가 체제의 위기로 전환되는 것을 막아보려는 지배계급이나 지배계급에 협조적인 세력의 이해에 딱 맞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2. 지금은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킬 때이다

12월 9일 국회에서의 탄핵소추 의결 이후 헌재에서 탄핵심판이 진행되면서 촛불집회의 규모는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일단 탄핵심판을 지켜보자는 민중의 심리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소강상태에도 불구하고 촛불집회의 기세는 여전히 살아있으며 탄핵심판 결정을 앞두고 다시 그 기세가 올라갈 것이다.

촛불집회는 거대한 규모의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게 만들었는데 분노는 앞으로 계속 폭발하면서 한국 사회에 새로운 자극과 충격을 가할 것이다. 또한 촛불집회를 통해 민중은 집단적 의지를 표출시켜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의결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이를 통해 스스로의 힘을 자각한 민중은 당연하게도 앞으로 그 동안 억눌렸던 자신의 요구를 분출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 조만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마 박근혜 탄핵결정 이후 민중의 요구는 봇물 터지듯이 분출할 것이다. 승리를 실제로 경험하고, 그것을 만들어낸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임을 아는 민중은 그동안 억눌렸던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제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민중의 요구가 분출되는 정세에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세력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사회 곳곳에서 민중의 억눌린 요구가 터져 나오도록 하고, 요구가 지배계급이 쳐놓은 틀에 갇히지 않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민중의 분노는 곳곳에 누적되어 있다. 이 분노를 대다수의 민중은 지금까지 표현조차 못하고 지내왔다. 소수의 조직된 민중만이 분노를 표출하고 자신의 요구를 미약하게나마 제출할 수 있었을 뿐이다.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세력은 촛불집회로 폭발하기 시작한 민중의 분노가 사회 곳곳에서 폭발하고, 요구가 분출되게 만들어야 한다. 분노의 폭발과 요구가 사회 곳곳에서 당연한 것이 되게 2017년을 ‘분노와 요구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민중의 요구가 분출할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배계급도 알고 있다. 친박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분파를 제외하면 지배계급은 이 요구에 대해 과거처럼 무조건 묵살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지배계급은 민중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되 요구가 급진화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 충분히 예상하며,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세력은 분출되는 민중의 요구가 지배계급이 쳐놓은 틀에 갇히지 않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즉, 요구의 실현이 체제 문제 해결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음을 알리고 요구의 수준을 상승시켜 가야 한다. 가령 일자리 보장의 경우 지배계급이 20년간 그 해결에 실패한 점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대표 등 지배세력의 각분파가 현재 제출하는 일자리보장책이 이미 실패한 정책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점을 폭로하고, 일자리 보장이 체제의 변혁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현재 재벌문제의 경우 민주노총조차 사실상 재벌개혁의 요구에 머물고 있는데, 이를 재벌해체의 요구로 상승시키고, 다시 재벌의 몰수국유화, 노동자통제의 실시로 상승시켜 가야 한다.

3.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의 뒤쳐진 정세인식부터 정리해야 한다.

글의 모두에서 지적하였듯이 촛불 집회의 기세가 맹렬했던 것은 민중의 삶이 오랜 기간 동안 악화일로에 있고, 이것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민중이 분노했기 때문이고, 이런 점에서 촛불집회는 한국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민중은 유례가 없는 저항의지를 보였는데, 이러한 정세의 전개는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에게는 침체로부터 벗어나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쉽게 오지 않는 기회였다. 그러나 분명히 많은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세력이 촛불집회의 진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열심히 움직였지만 정치적 내용의 측면에서 존재감은 거의 제로 상태였다. 그 이유는 자칭 진보정치세력의 상당히 큰 부분이 이미 자유주의정치세력의 수준으로 전락했고, 그렇지 않은 세력도 박근혜퇴진, 구속 요구에서 나름 일관성을 보였지만 정치적 내용에서 자유주의야당과 비교하여 뚜렷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유주의정당으로 전락한 정의당의 심상정대표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주장함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대표가 주장할 만한 수준의 내용을 내걸었다. 이미 이재명시장이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11월 30일 총파업집회에서조차 재벌해체주장을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전경련해체, 재벌개혁만을 주장하는 매우 현상 유지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회주의정당을 표방하는 사회변혁노동자당은 촛불정세가 전개되는 동안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자신의 기관지에서조차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정세에 사회주의를 선전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대다수의 진보정치세력과 진보운동세력은 촛불집회의 주요동력이 한국자본주의체제의 모순 심화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인식에도 이르지 못했고, 민중의 투쟁이 고양되는 것에 맞추어 체제의 변혁을 주장할 생각도 없었다. 당연히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자체가 박약했다. 이번 촛불정세의 흐름에 가장 적응하지 못한 세력이 박근혜와 친박 수구세력이라고 한다면, 촛불정세가 제기한 문제의식을 읽어내지 못하고 기존의 낡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보수적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촛불정세의 흐름에 두 번째로 적응하지 못한 세력이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정세 이전의 진보운동세력의 지리멸렬함이 그대로 촛불정세에도 반복된 것이다.

때문에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세력의 이러한 뒤쳐진 정세인식부터 정리해야 한다. 만약 현재와 같은 상태를 반복한다면 진보정치세력, 진보운동세력은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중의 발목을 잡고, 민중의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맺으며

촛불집회는 처음에는 지배계급내의 권력투쟁으로 촉발되었지만, 한번 시작되자마자 지배계급의 의도를 벗어나는 수준의 민중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이 분노는 한국자본주의체제의 모순심화가 만들어낸 것으로 박근혜의 탄핵만으로 쉽게 해소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촛불정세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전형적으로 자본주의체제 모순심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하여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세력은 박근혜의 탄핵 이후 분출될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는 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민중의 요구를 확장시키기 위하여 사회 곳곳에서 민중의 억눌린 요구가 터져 나오도록 하고, 요구가 지배계급이 쳐놓은 틀에 갇히지 않게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주의자들과 진보세력은 민중의 체제변혁의지를 고양시켜가야 한다.

촛불집회와 박근혜정권의 몰락으로 새롭게 역사의 장이 열리고 있다.

새로운 역사의 장을 넓혀내기 위해 분투하고 분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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