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 박근혜와 문재인의 정책은 왜 판박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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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지난 11월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가 열렸다. 청와대와 여야가 ‘협치’를 통해 국정현안을 풀어가자는 게 취지라고 한다. 문재인은 이날 모두발언에서도 “우리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협치’라는 그런 말을 많이 듣”고 “협치를 바라는 그런 국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협치’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한 것일까? 『사회주의자』는 얼마 전 「‘협치’와 ‘연정’의 목적지는 우경화」란 기사에서 협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바탕에는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충실하게 실현해주어야 하는 자유주의 정권의 숙명이 도사리고 있다. 촛불투쟁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의 잔당인 자유한국당에까지 협치를 구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충실히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협치의 목적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재인 대통령을 필두로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민주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등이 모여 몇 시간 논의하고 내놓은 합의문 내용이라는 것을 보면, 탄력근로제와 광주형 일자리 등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것이 11개 합의사항 중 사실상 앞자리에 올라와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자 주류 언론들은 일제히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합의한 소식을 가장 중요하게 보도했다. ‘협치’를 통해 나온 결과가 어떤 의미인지 쉽사리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모습이다.

한편 본격적인 글로 들어가기에 앞서 꼭 지적할 대목이 있다. 바로 정의당의 역할이다. 정의당은 5일 협의회 자리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규제혁신에 대해서는 반대했고 여야정 협의회 합의문 끄트머리에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애초 자본의 ‘민원창구 기능’을 하는 곳에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던 책임에 대해서는 모면하기 힘들다. 자유주의 좌파 수준의 정치세력으로 전락한 정의당의 실상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에 따르면 김성태에게서 “단서 조항을 달 거면 뭐 하러 협상장에 들어오느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다고 한다.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박근혜의 정책이 문재인의 정책으로

우리가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의 ‘협치’ 결과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탄력근로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① 탄력근로제가 도입되기까지

우선 탄력근로제, 더 정확히 말해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정의를 살펴보면, “일정한 기간의 근무시간을 평균하여 1일간 또는 1주일간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특정일 또는 특정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사용자는 연장근로수당 지급의무 및 처벌의무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시간제도”를 말한다(「<용어해설39> 탄력적 근로시간제」, 『매일노동뉴스』 2005.10.10.). 일감이 별로 없는 기간에는 법정노동시간보다 적게 일하다가 일감이 많은 특정 기간에는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라는 이야기다.

탄력근로제는 근로기준법 51조에 그 내용이 규정되어 있는데, 한국에 이 제도의 도입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96년 김영삼 정권이 ‘노사관계개혁위원회’(줄여서 ‘노개위’)를 설치하고 노동법 개악을 본격 추진하면서였다. 당시 김영삼 정권은 이 ‘노개위’를 통해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등을 도입하려고 했다. 1996년 당시 김영삼 정권의 노동법 개악 시도에 대해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12월 26일 집권여당 신한국당(자유한국당)은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악안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에 맞서 일어난 것이 바로 민주노총 총파업이었다.

그런데 당시 ‘변형근로제’라 불리던 것이 바로 지금의 ‘탄력근로제’이다. ‘대통령기록연구실’ 홈페이지에서 노동정책 기록을 찾아 들어가 보면, 당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기획과에서 생산한 문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건을 보면 “변형근로”라는 항목에 각각 “취업규칙에 따른 2주단위 변형근로시간제”, “노사협정에 의한 1개월단위 변형근로시간제”에 대한 내용이 있어, 변형근로제가 탄력근로제와 같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수십 년 만에 총파업이 일어났으나 탄력근로제는 끝내 폐지되지 않았다.

김영삼이 탄력근로제를 도입했다면, 김대중은 탄력근로제를 개악했다.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일어나면서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데,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반발하기 시작한다. 당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이런 압력의 결과 김대중 정권은 법정노동시간을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단축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은 얌전히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만 것이 아니라, 법개정을 하면서 탄력근로제도 함께 개정하여 단위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했다.

② 문재인 정권이 도입하려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은 박근혜의 대표적 노동정책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의 합의로 크게 불거졌지만,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는 이미 몇 개월 전부터 나오고 있었다.

문재인 정권은 올해 초인 2월 28일 노동시간 52시간 ‘단축’이란 거짓 입법을 했다. 그전까지 한 주가 7일이 아니라 5일이라는 황당한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통해 자본가들에게 불법적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왔던 정부는, 이로 인해 휴일 노동수당의 중복 할증 문제가 발생하자 ‘한 주가 7일’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법조항에 집어넣는 법개정을 한 것이다. 그러고서는 애초 법 자체가 법정 노동시간 40시간 + 초과 노동시간 12시간으로 최대 52시간 노동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시켰다는 파렴치한 주장을 해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노동시간을 단축했으니 자본가들이 피해를 본다, 그 피해를 줄이려면 탄력근로제 적용기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주장하는 나팔수는 다름 아닌 홍영표였다. 그는 민주노조운동에서 뭔가 대단한 역할을 한 것처럼 행세하면서 노동운동을 향해 쓴소리를 날리지만, 사실 80년대 잠시 스치듯 노조에 몸담았다가 김우중에게 발탁되어 해외지사에서 일했고 대우그룹이 망한 후에는 한국에 돌아와 개혁국민정당을 거쳐 친노의 길을 일관되게 걸었다. 한때 공장에서 일했고 노조활동도 했었다고 이런 인물이 노동운동 경력을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홍영표는 자본의 나팔수가 되어 노동시간 관련 법개정이 이루어진 후부터 탄력근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7월 1일 개정된 노동법이 시행되기 직전인 6월 28일 대한상공회의소 정책간담회에서 홍영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야정 합의 후인 지난 7일, 홍영표는 탄력근로제와 관련된 내용과 자기 생각을 더욱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탄력근로제 확대는 지난 2월 국회 환노위에서 법정 근로시간 기준법을 통과시킬 때 여야가 추후 논의키로 합의한 사항”이라고 하고, “노동계가 반대만 말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대화에 응해달라”고 주장했다. 홍영표, 더 나아가 문재인 정권이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가 어떠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시계 바늘을 몇 개월 뒤로 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몇 년 뒤로 돌리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 내지 1년으로 늘리는 개악을 문재인 정권만 추진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이명박 정권 말기 새누리당 이완영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취업규칙의 경우 2주에서 4주로, 노사합의 시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같은 시도가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에 있었다. 2013년 10월 경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노동시간을 연장근로 포함 52시간을 줄이는 대신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최소 6개월 이상, 가급적 1년’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했다. 2014년에는 재차 새누리당 권성동이 발의하여 법정 노동시간을 주 52시간에서 주 60시간으로 늘리고, ‘휴일근로 가산임금’ 규정을 삭제하며, 탄력근로제를 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려고 했다.

2015년부터는 정권 차원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이 강력하게 추진됐다. 박근혜는 8월 6일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는데, 경제 재도약의 첫 번째 과제로 노동개혁을 들었다. 이 담화에는 임금피크제 연내 도입 완료 등 다른 주목할 내용도 있지만, 무엇보다 노동유연성을 강조하고 “현재 중단되어 있는 노사정 논의를 조속히 재개”하여 “노사정 대타협”을 이룰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 직후인 8월 12일 고용노동부는 대국민담화 후속조치로 노동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하여 이른바 ‘5대 노동개혁 법안’을 추진했다. 그 안에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은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급전진시켰고 9월 15일 민주노총이 불참한 상태에서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사정대타협을 끌어냈다. 그러나 한국노총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일반해고 행정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행정지침’마저 강행했고, 결국 2016년 1월 11일 한국노총마저 “노사정 합의 파탄”을 선언하게 된다. 이 와중에 일어난 촌극이 바로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경련 주도의 관제 서명운동이었다. 2016년 1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경련은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 서명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들이 말하는 “민생구하기 입법” 중 핵심이 노동개악이었다. 박근혜는 이 서명운동에 대해 “오죽하면 국민들이 그렇게 나서겠느냐”고 말하고 본인도 직접 서명운동에 참여하기까지 하여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10월 촛불퇴진투쟁이 대거 일어나면서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촛불투쟁 2주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문재인 정권은 박근혜 정권과 동일한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TV 캡쳐]

문재인 정권은 수구세력보다 유능한 자본가정권?

문재인 정권은 그동안 촛불정부를 운운하고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을 추진했는데, 이렇게 노동자에게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 정책, 자본가에게 커다란 이득을 주는 정책에 대해서는 왜 박근혜 정권과 판박이 같은 모습을 보일까? 그것은 바로 문재인 정권이 자본가 정권이기 때문이다. 어떤 정권과 정당의 성격을 규정하는데 그 곳에 속한 개개인이 어떤 과거를 지녔고 어떤 좋은 일을 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정권과 정당이 어떤 계급의 입장을 취하고 어떤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꼼수 정규직화, 최저임금 개악, 친재벌 행보, 은산 분리 완화, 의료민영화 추진 등 지금까지 문재인 정권이 보인 모습은 다름 아니라 문재인 정권이 자본가계급 정권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탄력근로제의 경우도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수구 박근혜 정권과 자유주의 문재인 정권이 판박이 같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추진한 이유는 그것이 자본가계급이 요구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2012년 이완영의 개정안을 보도한 2012년 9월 6일자 『매일노동뉴스』 기사(「이완영 의원 ‘수당 없는 연장근로시간 확대’ 법안 발의」)는 “재계는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면서 이것이 “재계 오랜 숙원”이라고  말했다. 2018년 6월 3일자 『중앙일보』 기사(「탄력근로제 확대 놓고 노-사 팽팽…정부 ‘오락가락’」) 역시 “대기업들은 유연근무제의 한 종류인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기간 단위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ICT업계가 만난 자리에서도 기업들은 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 운영기간 확대’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탄력근로제는 자본가계급의 일관된 요구이고 박근혜 정권과 문재인 정권 공히 자본가 정권으로서 “자본의 민원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둘은 서로 똑같은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아니 어떤 측면에서는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수구 세력보다 자유주의 세력이 더 낫다고까지 말 할 수 있다. 수구세력은 민중의 저항이 심해 자본가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어려웠는데, 자유주의 세력은 그 저항감이 덜해 자본가들의 오랜 숙원을 이뤄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11월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의 합의의 또 다른 정치적 의미는 문재인 정권이 이제 자신의 원래 계급적 입장을 숨기지 않고 노골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구세력과 손잡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민노총 반대해도 추진”하는 한편, 이렇게 하는 것이 ‘사회대타협’이니 민주노총은 대화기구와 들어와서 무릎 꿇고 내놓을 거 다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박근혜표 “노사정 대타협”과 문재인표 “사회적 합의”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여기서 확인된다. “민주노총이나 전교조 등이 더 이상 사회적 약자는 아니라”는 임종석의 발언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약자”가 아니니 받을 것은 없고 내놓을 것만 있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권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맞서 싸우자!

현재 문재인 정권은 계급적 성격을 노골화하면서 민주노총을 위시한 민주노조 운동을 강력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상황이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려고 하지만 노동자 전체를 고립시킬 수는 없고,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은 노동자에게 즉각적인 타격을 주는 정책이라는 점이다. SNS를 살펴보면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에 대한 노동자들의 생각이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의 입장과 이해를 확고하게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투쟁을 조직한다면, 문재인 정권에 대해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일말의 환상조차 깨지고 정권 자체가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투쟁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고 그 실체를 분명히 보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통해 “청와대와 정부, 국회가 재벌자본의 민원창구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게 진실이라면 그에 걸맞은 의식과 행동이 따라야 한다. 문재인 정권에 맞서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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