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철수, 문재인 정권의 반대와 진보세력의 관망적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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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북미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가 결국 확정되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나 북미간의 대화를 시작한다. 북미정상회담이 정해지기까지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5월 2일 트럼프가 조만간 회담 장소와 날짜를 발표할 것이라고 트위터에 글을 썼을 때만해도 별 탈 없이 회담에 이르나 싶었으나 발표가 곧장 이루어지지 않고 북미간에 신경전이 오가는 모양새를 보였다. 결국 폼페이오가 9일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나서야 정상회담 일정이 최종 정리되었다.

한편 필자의 글인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가 『사회주의자』 홈페이지에 게시된 4월 25일부터 지금까지 북미정상회담 관련 이슈 중 단연 최고는 ‘주한미군’의 철수 여부였다. 이미 4월 중순부터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문재인 정권과 자유주의세력에 의해 크게 이슈화됐다. 전편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4월 13일 자유주의 언론 『한겨레』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하여 주한미군 문제가 북미정상회담에서 빠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역시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4월 19일에는 문재인이 직접 나서서 언론사 사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 입장은 노골적인 주한미군 철수 반대

문재인 정권이 주한미군 철수가 북미대화에서 거론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그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주한미군 철수 이슈에 새로 불을 지핀 것은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이 4월 30일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이었다. 그는 4월 1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말했다. 그런데 30일 기고문에서는 이와 달리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는 주한미군의 계속적 주둔이 정당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글은 이윽고 국내외 언론에서 비중있게 보도되었다. 수구적 관점에서 주한미군 철수가 이슈화되길 바라는 『조선일보』가 이 기고문의 내용을 크게 보도하자, 『한겨레』, 『프레시안』 등은 이를 두고 음모론으로, 왜곡보도로 맞받아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외신들은 문정인의 주장은 주한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의문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테면 『뉴욕타임즈』는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동료조차 장기간 미군 주둔의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했다”고 평했다. 분명한 사실은, 문정인의 기고문이 논란이 되자 문재인이 직접 나서 “주한미군은 평화협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반박했고, 임종석은 직접 문정인에게 전화를 걸어 “문재인 대통령 입장과 혼선이 빚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수 여부가 이슈가 되었다. 4월 27일 미국방장관 제임스 매트스는 평화협정 체결이 주한미군 감축을 의미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뿐 아니라 동맹국과 미국 사이에서 진행되는 협상 이슈일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대화 과정에서 주한미군 문제도 다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5월 3일(현지 시각)에는 『뉴욕타임즈』의 보도로 시끄러웠다. 『뉴욕타임즈』는 해당 지시를 받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가 주한미군 감축 검토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가 있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곳은 청와대였다. 청와대는 5월 4일 국민소통수석을 통해 “『뉴욕 타임스』 보도에 대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관계자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고 밝혔다. 이윽고 저녁이 되자 연합뉴스를 통해 미국 안보보좌관 존 볼턴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곤(미국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없다”고 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다른 외신들이 이런 사실을 전혀 보도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국내 언론의 매우 신속한 보도였다. 당시 미국에는 북미정상회담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정의용과 볼턴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볼턴의 입장표명이 나오는 데에 정의용의 역할이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5월 11일(현지시간) 미국무부장관 폼페이오와 외교부장관 강경화의 회담 후 진행된 합동 기자회견에서도 문재인 정권의 일관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경화는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같은 이슈는 “동맹 사이에서 다뤄질 일이지, 북한과 다룰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달 사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정권이 취했던 태도를 보면, 문재인 정권이 주한미군 철수에 기를 쓰고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주한미군,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지 않는다’

현재 문재인 정권과 자유주의 세력이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며 내세우는 논거는 세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입장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1992년 북한이 1차 북·미 고위급 접촉에서 주한미군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 이후 2000년 남북정상회당 등 여러 차례 주한미군 용인 입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지금도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아직까지 북한의 입장이 직접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는 않다. 게다가 북한은 문재인 정권의 주장과는 다른 주한미군 철수 입장을 최근까지 개진하기도 했다. 북한은 2015년 7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5대 조건’ 중 하나로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 철수를 선포하라”를 제시했다. 이중 어느 입장이 진짜인지는 실제 회담에서 확인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또 다른 논거가 나오고 있다. 위의 주장이 북한 뒤에 숨어 주한미군 주둔을 지속시키려는 것이라면 이 논거는 보다 노골적인 입장이다. 즉 주한미군 주둔은 북한과의 평화협정과는 무관한 한미동맹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통해 문재인 정권은 평화협정이 체결되는 것과 무관하게 한미동맹을 굳건히 가져가고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영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반역사적, 친미예속적 속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무리 주한미군의 존재를 북미대화, 평화협정 체결 문제와 분리하려고 할지라도 그것은 분리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평화협정은 결국 한반도에서 군사적 위협을 제거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인데, 북한에게 핵심적 군사적 위협일 뿐 아니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배수단이었던 주한미군의 존재를 그대로 둔 채 평화협정 논의가 진행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더욱이 만약 평화협정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주둔한다면, 그것은 70년간 계속된 미제국주의의 한반도 지배가 평화협정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평화이자 남한의 지배계급과 미제국주의 세력만이 좋아할 평화이다.

주한미군 주둔을 옹호하는 세 번째 논거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평화유지군 내지 동북아 균형자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남한 내 여러 사람들 입에서 오래 전부터 오르내린 주장이다. 최근 들어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제기될 것이 뻔해지자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호박에 줄을 그어 수박을 만드는 격이다.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갑자기 이제부터 평화유지군으로 변하기로 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세 번째 논거를 지지하며 “전략 자산 없는 주한미군”이라는 꼼수를 내놓은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조차도 “동아시아 갈등의 중심축은 미일 동맹 대 중국(혹은 중러협력체제) 사이의 경쟁에 있다. 그런데 주한미군은 미국 군사력의 일부이고 갈수록 미일 동맹과의 일체화를 추구해왔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면 주한미군은 ‘안정자’가 아니라 ‘불안정자’가 될 공산이 크다”라고 시인했다.

그렇다면 문재인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이 주한미군 철수에 쌍심지 켜고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수구세력의 정치공세를 우려해서 일 것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거론된다면 이것이 수구세력을 집결시켜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의 전부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수구세력뿐 아니라 남한의 자유주의 세력 역시 해방 이후 미국이 점령하여 구축한 지배질서 속에서, 계속 지배계급의 한 축을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남한 자유주의 세력은 한편에서는 한반도에서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길 바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자신의 지배체제가 훼손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 과정이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길 바라고 노동자 민중이 적극 나서서 주도해가길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자유주의 세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배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이 지배체제를 오랫동안 뒷받침해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자유주의자들의 주한미군 역할 변화론, 동북아 균형자론은 주한미군 주둔이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는 상황에 맞춰 새로운 주둔 정당화 논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그들의 ‘플랜B’라고 말할 수 있다.

주한미군 철수 목소리, 더욱 커져야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 이슈가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시기에 진보세력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남북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와중에, 성주 소성리에서는 사드배치를 굳히기 위한 시설공사가 강행되었고, 지금까지 소성리 주민들은 경찰의 무자비한 억압을 버텨내며 싸우고 있다. 소성리에서 일어난 시설공사 강행은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한 한반도에는 제대로 된 평화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런 성주의 엄혹한 투쟁 상황에서도 진보운동 속에서 주한미군 철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사진: 사회주의자]

지난 5월 1일 서울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확인되었다.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민중민주당 정도가 주한미군 철수를 분명하게 주장했다. 그나마 주한미군 철수를 가장 명료하게 내걸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지난 3월에 이어 이번 달 3일에도 한국을 내방한 미국 전쟁반대노조협의회 소속 대표단과 함께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군의 철수와 평화체계 구축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단위는 아직 소수이다.

전반적으로 운동진영은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관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민중당의 경우 최근 주한미군과 관련된 성명은 분담금 협상에 잘 임하라는 수준의 성명서 하나 외에는 전무했다. 한국진보연대, 평통사 등의 단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온 통일운동세력이 지금과 같이 중요한 시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만약 북한에서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서라거나, 어렵사리 형성된 북미대화를 허물지 않기 위해서라는 식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면, 한반도 문제를 남한 민중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입장이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설령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다고 해서 우리가 주한미군 철수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정말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하는 입장을 택했다면, 남한의 민중과 진보세력은 오히려 이런 북한의 입장을 준엄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기에 지금보다 적기는 없다. 우선 그 이유야 어떻든 자유주의 세력이 직접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뜨거운 이슈로 만들어주었다. 미국에서도 집권 세력조차 협상 여하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에 대해 고려할 수 있다는 모양새다. 게다가 문정인조차 인정하듯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의 주둔은 정당화하기 어렵게 된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주한미군의 존재를 계속 걸고 들어가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진보세력의 요구와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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